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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나서다/스쿠터일본일주

[스쿠터 일본가다] 48일차-2, 빗속의 평온한 센죠가하라 고원을 걷다.







비를 맞고 오랫동안 바이크로 주행하는 것은 불가능해도, 비 맞고 걷는 일은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고원 습지 산책로가 있는 센조가하라 까지만 오늘의 일정에 포함시키기로 한다. 닛코에서 쥬센지호수로 넘어가는 길은 굉장히 구불구불한 산길이다. 도로 100선에도 들어있는 추천 코스이지만, 내리는 비와 안개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다. 정신없이 꺽이는 도로를 타고 고개를 거의 다 올라서자 넓다란 주차장의 휴게소가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전망대로 올라가는 기점이 되는 곳인데, 비 때문인지 운행을 하지 않고 있다. 높은 지형의 주차장인지라 주차장 너머의 산줄기에 비구름이 끼어있는 묘한 광경이 바로 앞에서 보인다. 맑은 날씨라면 어떤 경치가 보였을까 궁금해지는 곳이다. 계속 내리는 비가 약해지면 출발하기위해 처마 밑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1시간 가량을 기다려본다. 전혀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빗속을 나선다.




닛코에서 쥬젠지호수로 향하는 120번 국도의 고갯길, 아게치다이라(明智平) 휴게소.

구불구불 따라 올라온길의 정상 가까이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간다.




비 구름낀 인근의 산세가 어렴풋이 보이는 아게치다이라 휴게소 




터널을 지나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멈추지 않는 빗속을 달려 쥬젠지호수에 도착했다. 호수변의 잘 정돈된 길을 따라 까페, 호텔, 펜션들이 정갈하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쥬젠지호수의 동북쪽을 지나는 길을 달려 15km정도 떨어져있는 센죠가하라로 향한다. 호수를 지나자 고원을 향하는 오르막길이 다시 시작되고 독특한 고원식생의 숲길 후, 평원이 펼쳐진다. 먼저 센죠가하라에 위치해있는 캠핑장을 찾아가본다. 인근 관광안내판에서의 표시와는 달리 입구에 쇠사슬과 차단막이 내려져 있고 폐쇄되어 있는 상태다. 이곳에서 텐트를 친 후, 슬리퍼만 끌고 센죠가하라의 초원길을 걸어볼 계획이었는데 다 틀렸다.


센죠가하라의 트래킹코스 시작점인 아까누마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휴게정자 아래에서 머물러 보지만, 여전히 비는 약해지지 않는다. 우의를 고쳐입고 트래킹 코스로 걸어나간다. 얼마 걷지 않아 독특한 습원 평원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곳에도 곰주의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다. 뭐 그래봐야 안 나오는거 다 안다. 곰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센죠가하라의 트래킹 출발점인 아키누마 버스정류장. 휴게정자에서 잠시 비가 약해지기를 기다려 본다.

화장실 간판에 한글로 '공중토일렛'이라 적혀있어 눈길을 끈다. 



센조가하라 습원 탐방로 안내도. 

가장 긴 코스는 편도 2시간이걸린다. 유타키까지의 4.5km코스로 왕복 3시간정도를 예상하고 길을 나선다.



센조가하라도 어김없이 곰주의를 알리는 경고판이 도보코스 안내도 아래에 붙어있다.



곰이 설마 나타나겠어 하는 마음이지만, 실제 센조가하라에도 6월에 나타났었나보다. 주의판이 붉은 글씨로 또 붙어있다.




비에 젖은 평원 길을 따라 도보로가 끝없이 이어진다. 습원사이로 놓인 좁은 나무판의 도보로를 1시간 가량 따라 걷는다. 넓다란 초원너머로 비구름이 가득 덮힌 주변의 산들이 멀리로 보이고 시원스레 펼쳐진 평원이 길옆을 지난다. 고원에 위치한 이 평원을 따라 구불구불한 하천이 관통하고 있어서 식생이 풍부하게 나타난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하천과 서식하는 물고기들 때문에 곰도 가끔 이곳에 나타나는 것이겠다.


4시가 조금 덜 되었는데도, 하늘을 덮고 있는 비구름 탓인지 벌써부터 어둑해지고 있다. 센죠가하라의 3시간정도 걸리는 가장 긴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돌아 걸으려던 계획을 접고 평원 한가운데를 지나는 하천의 나무다리에서 되돌아 걷는다. 이 와중에서도 카메라에 주변의 모습들을 담겠다고 우의 아래로 카메라를 목에 걸고, 셔터를 누를때는 옷자락을 살짝 들어올려 비를 막으며 엉거주춤한 상태로 사진을 찍고 있다. 다소 황량하면서도 아득해 보이는 평원의 멀리로 2,000미터급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풍경, 이 길의 포인트다. 날씨가 맑았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비 내리는 평원의 길도 그나름 운치가 있다. 초봄의 신록이 형광초록으로 돋아날때와 눈이 하얗게 덮혀있을 시기에 이곳을 찾는다면 만족할만한 풍경들을 만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센조가하라 탐방로 초입. 좁은 물줄기를 따라 길이 시작된다.



물길 바로 옆까지 낮은 고산식생의 식물들이 나지막하게 둘러싸고 있다.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으로 탐방로를 따라 걸어간다.

습원지역으로 들어서자 땅에서 일정띄어 올려만든 목책로가 길게 이어진다.



센조가하라를 통과하는 조그마한 하천도 탐방로 옆으로 보인다.



우거진 수풀을 지나서자 습지의 평원이 모습을 살짝 드러난다.



오래된 고목들이 넘어간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큰 수목이 자라는 군락지는 주로 하천 주변이다.



길위로 점점 밀려드는 평원식물들 곁을 지난다.



센조가하라의 습지



천수관음을 닮은 고사목의 뿌리



습지의 평원이 시원스레 보이는 전망터. 비구름 너머로 주변을 둘러싼 산줄기들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탐방로가 통과하는 지역의 식생이 고원지대 답게 독특하다.



마치 평지의 평원처럼 보이지만, 이 센조가하라는 해발 1,400미터 지점에 위치한 말그대로 고원이다.

일찍 가을이 된 고원의 수풀들은 벌써 노랗게 말라가고 있다.



센조가하라 탐방로 가운데에 자란 나무




 戦場ヶ原(센조가하라)라는 이름에서 보여지듯 이곳은 난타이산과 아카시로산의 신이 싸움을 벌인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쟁터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지막한 평원의 습지가 어쩐지 전쟁터로 황폐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평원을 지나, 다시 하천으로 길이 이어진다.



깨끗하고 맑은 센조가하라의 하천인 유가와 위로 나무다리가 탐방로를 잇고 있다.



오후 4시정도 밖에 되지 않았으나, 비구름탓에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한다. 더 앞으로 나아가기는 시간이 어중간하므로 다시 되돌아가기로 한다.




되돌아 걷는 길, 나 외에는 빗속의 이 길을 지나는 이가 아무도 없었건만 등산복 차림의 남자 한명이 담배를 물고 습원 탐방로 도중의 전망터에 앉아있다. 그 옆에는 휴대용 직화기와 등산용 컵에 담긴 커피가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다. 이 빗속에서도 멀리의 비구름 걸쳐진 산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는 저이야 말로 진정한 여행자다. 잠깐 생겨나는 참견의식(여기서 불피워도 되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따위는 습원바닥에 던져버리고, 그가 바라보는 풍광과 그가 들어있는 풍광 속으로 나도 모르게 조금씩 동화되어간다. 비가 안개처럼 약하게 흩날리고 있는 센조가하라의 한가운데이다.


탐방로가 한동안 습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 옆을 따라간다. 얇은 낚시대(플라이낚시로 추정되는)를 들고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이 보인다. 국립공원일텐데 여기서 낚시가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 도보를 끝내고 아카누마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니 낚시에 대한 이해가 간다. 이곳은 연중 일정기간만 유료로 낚시를 허용하고 있다. 




되돌아 걷는 길에 다시 지나는 습지의 평원



높은 고지대인 탓에 10월 무렵이면 겨울이 오고, 이듬해 5월까지는 눈이 남아있을 정도다.



습원이었던 이곳은, 습지의 노화에 따른 초원화가 진행중이다. 습지식물과 고원식물들이 공존하는 특이한 형태의 경관을 드러낸다.



'발밑주의'라 붙은 탐방로. 한쪽이 기우뚱 기울어져 깜짝 놀랐다.



센조가하라를 관통하며 흘러가는 유가와



평원을 지나오자 출발점 가까이에 설치되어 있는 목조다리가 보인다. 숲과 어울리는 멋드러진 모양새다.




낚시대를 들고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보이더니, 이유를 알겠다.

5월에서 9월까지는 1일 2,000엔을 내고 유료로 낚시를 즐길수 있게 되어있다.




센조가하라 탐방로를 따라 곳곳에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 있다.




두 시간 조금 못되는 거리를 열심히 걸었더니, 우의 아래 갇힌 몸에서 열이 난다. 휴게정자에 들어가 우의를 잠시 벗었더니 하얀 김이 모락모락 몸에서 피어오른다. 잠시잠깐 어깨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보고 있으니, 마치 내가 대기중으로 하얗게 피어올라 녹아드는 기분이다. 한번즘은 봄날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되어 보고싶었는데, 대신 가을 장마빗속의 하얀김이 되고있다.


다시 바이크에 올라타고 빗길을 달려 쥬젠지 호수로 되돌아간다. 호수 북쪽에 있는 캠핑장을 찾아가기로 한다. 캠핑장 입구에서 깊숙이 위치한 텐트사이트까지는 걸어서 짐을 날라야 하는 곳이다. 주차장이 있는 관리소에 리어카가 있긴 하지만, 리어카로 실어 나를만큼 짐이 많지는 않다. 바이크로 짐만 날라다 두고 다시 되돌아오면 안되냐는 문의에 단호하게 안된다는 관리인. 포기하고 천천히 짐을 옆구리에 끼고 나른다. 일단 텐트를 쳐놓고, 먹거리를 사기위해 쥬젠지호수 초입에 위치한 마을로 향한다. 안개낀 밤 빗길을 헤치고 도착한 마을안의 조그마한 식료품점의 진열대에 신라면이 있다. 도대체 얼마만에 보는 한국라면인가. 잽싸게 집어들고 대충 장을 본 후, 캠핑장으로 되돌아온다. 왕복 오가는 거리가 10km이다. 저녘을 해먹기 위해 이리저리 준비하는 사이 렌턴의 밧데리가 다떨어졌는지 불빛이 희미하다. 아직 밤은 한참 남아있고 밧데리 여유분은 없는 상태, 관리소에도 밧데리는 없다. 다시 왕복 10km 호반길을 달려 밧데리만을 달랑 사들고 온다. 




일본에서 판매하는 신라면. 두달만에 만난 한국 라면이라 가족상봉보다 더 반갑다.

원래 농심은 먹지 않지만 이번엔 어쩔수 없다.




호숫가라서인지 춥다. 밤이 깊었는데도 부슬비가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비 좀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바짓가랑이잡고 고사라도 지내던지 해야 할 판이다. 막걸리야 맥주로 대신한다 치고 북어는 뭘로 대신 해야하나?. 돼지머리 대신 돼지저금통 올리고 고사 지내는 우스개 사진을 본적이야 있지만, 북어는 대체제가 마땅치 않다. 고민이다. 멸치라도 올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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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박지 : 소오부가하마 캠핑장 菖蒲ケ浜キャンプ場

  - 1,000엔

  - 화장실, 취사장, 샤워, 방갈로, 구내식당.


* 주유 : 628엔


* 토쇼구 입장료 및 주차 : 1400엔 + 150엔


* 이동거리 및 경로 :  50km

   키누가와, 넨넨 오토캠핑장  →  닛코의 신사와 사찰(린노지, 토쇼구, 후타라산신사) → 쥬젠지호수 → 센죠가하라 → 쥬젠지호수변 소오부가하마 캠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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