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쥬가하마(煙樹ヶ浜)해변에서 눈을 뜬다. 텐트를 펴고 누운곳이 캠핑장이 아닌 바닷가 공원 부근이라 아침 일찍부터 산책나온 발자국소리와 두런두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사소한 소리들이 알람소리 같이 느껴지는 아침이다. 한적하게 보이는 장소와는 달리 제법 많은 이들이 오가는 길목이라 최대한 빨리 텐트를 걷을 계획이다. 사람 목소리가 들리던 말던, 외부의 변화에 신경쓰지 않고 조금은 느긋해지며 스스로에게만 집중하는 약간의 무신경이 길 위에서 더욱 필요한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언제즘 되어야 오롯히 내게서 나오는 사고와 감정들만으로 움직이게 될까.
새벽 5시 30분부터 일어나 씻고 텐트를 걷고나니 아침 7시가 되었다. 어제 미리 사두었던 편의점 도시락을 아침으로 먹고, 출발한다. 출발 직전 시계를 보니 8시다. 간만에 하루 일정을 일찍 시작하는 날이다.
앤쥬가하마 해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뒷편은 소공원이고 텐트를 펼쳤던 방파벽 앞의 좁은 길은 마을사람들이 아침 운동삼아 분주하게 지나다닌다.
그 탓에 새벽부터 들려오는 숱한 발자국 소리가 텐트 속에서 누워있는 내 귓 속으로 알람소리 마냥 속속 파고 들었다.
앤쥬가하마 해변에 마네킹처럼 일렬로 자리잡은 낚시꾼들.
어둔 밤속에서도 야광찌들이 드문드문 보인걸로 봐선, 저들 중 몇몇은 밤을 새워 저자리에서 낙싯대를 드리우고 있었을 것이다.
아침해가 따스한 온기를 머금고 해안으로 스며들고 있다.
어제 가려고 했던 목적지인 히노미사키(日ノ御埼)로 향한다. 달려가며 올려다 보이는 히노미사키 곶 끝의 산기슭에는 별장으로 보이는 주택들이 숲 속에 지붕을 내민채 수십채가 들어서 있다. 삐죽히 튀어나온 곶으로 이어지던 해안도로가 오르막 길로 바뀌고 히노미사키 공원으로 향하는 길이 이어진다. 점점 높은 지점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달려가자, 발아래로 지나온 해안길과 저 멀리로 보이는 해안마을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공원 한 켠에서 내려다 보이는 근사한 전망들을 천천히 즐기고 곶 끝까지 나있는 소롯길을 따라 잠깐 걷는다. 비탈진 길은 숲이 빼곡히 우거져있어 풍경을 여유있게 즐길 수는 없지만, 짧은 아침 산보 덕분에 머리가 맑아진다. 소롯길 끝의 빈 폐가에서 잠시 황량한 냄새를 맡으며 서있다가 다시 되돌아와 스쿠터에 올라탄다. 곶을 따라 해안선으로 이어지던 도로가 이 곳에서 끝이 났기때문에 4킬로미터 가량 왔던길로 되돌아 달린다. 스킨스쿠버 샵들이 해안도로를 따라 자주 보인다. 물이 맑고 바닷속 풍경이 빼어난 곳이란 소리겠다.
앤쥬가하마 해변을 출발해 해안도로를 따라 달려간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맑고 상쾌한 아침이 시작되고 있다.
비가오지 않아서 고마운 아침이다. 일어난 아침부터 파란 해안선을 따라 며칠씩 달려가는 것, 내 인생에 이런날이 며칠이나 더 있을까.
어제 목표로 삼았던 히노미사키(곶)가 해안도로 멀리, 길 끝에 놓여있다.
히노미사키(日ノ御埼)의 끝. 산기슭을 따라 별장으로 보이는 집들이 여러채 숲속에 지어져 있다.
히노미사키 공원 가까워지며 급하게 휘어지는 도로, 길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능선 위쪽에 위치한 히노미사키 공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해안풍경. 아침 일찍 지나온 해안마을들이 속속들이 내려다 보인다.
공원 한켠의 계단길에 귀엽게 놓인 거북이들이 산으로 향하고 있다.
장난삼아 거북이 등위에 앉아 바이크라이딩 자세를 잡고 있는데, 뒷쪽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두 사람이 수근댄다.
곶끝으로 향하는 소롯길을 걷자, 해안암반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내려다 보인다.
저러다가 너울성 파도라도 한번씩 오면 어떻게 할까. 대단한 집념에 박수를.
곶 끝머리로 나있는 숲길을 따라 와봤더니 낡은 건물이 버려진채 서있다.
별달리 풍광을 즐길만한 포인트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바이크를 세워둔 곳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히노미사키를 내려오며 보이는 하늘. 바람의 날개가 구름속에 감춰진듯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파르란 바다와 바로 맞닿은 해안국도를 따라 주욱 달려가자, 맑은 오전의 하늘아래로 깨끗한 포구마을들이 여럿 나타난다. 인적이 드문 어촌마을의 모습들이 지극히 정갈할 뿐아니라 지루하지 않은 해안선의 모습들이 끊임없이 눈 앞으로 다가온다. 한참을 달려가자 시로미사키가 가까워졌다.
시로미사키는 바닷길 모퉁이에 불쑥 튀어나온 너른 암반지형으로 석회암이 새하얀 색을 발하는 독특한 곳이다. 눈부시도록 새하얀 바위암반, 그 앞으로 펼쳐지는 파란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여기가 어딘지, 일본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까맣게 잊어버려진다.
히노미사키를 나와 다시 북상하는 도로를 따라 달려간다.
잠시, 마을 뒷길로 들어서자 평온한 저수지도 나타난다.
기이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북상하며 보이는 바다.
더할 나위없이 정갈한 어촌마을을 지난다. 히다카초의 히다마을.
히다마을을 지나는 길.
따뜻한 지역에서 주로 자라는 후박나무 잎을 닮은 용나무가 바다와 도로 경계에서 풍성한 잎을 드리우며 자라고 있다.
히다마을 앞바다. 정갈하고 조용한 마을만큼이나 깔끔한 바다 풍경이 방파제 너머로 이어진다.
히다(比井)마을에는 복잡하게 얽히어 신기한 모습으로 자라는 용(榕))나무(雀榕,アコウ)가 자생하고 있다.
용나무는 무화과속으로 일본에서도 따듯한 지방인 큐슈, 시코쿠 남부 등에서만 자란다.
조류에 의해 다른나무에 옮겨진 씨앗이 점점 뿌리를 내려 숙주를 뒤덮으며 자라나는 이 나무는 일종의 기생식물이다.
심각하게 뒤덮으면 숙주나무가 말라죽기도 한다.
앙코르와트에서 툼레이더 나무라 불리는 나무가 바로 이 용나무로 독특한 형태와 기생하는 특성 때문에 killer-tree라 불리기도 한다.
국도변에서 보이는 해안풍경.
아직 연초록으로 남아있는 작물과 짙은 바다, 그경계에 서있는 가옥들. 한없이 느긋해지는 풍경이다.
유라초 유라포구
방파제 위에 쪼르르 앉아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연휴라선지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굉장히 많이 보인다.
헬기가 뜬금없이 포구마을 한켠에 놓여있다. 대당 500억원에 달하는 해상자위대의 대잠초계헬기인 SH-60J로 점차 퇴역하고 있는 추세다.
그 옆으로 해상자위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축구공을 차며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전투축구인셈.
저 헬기에 스풋을 실어서 중앙아시아 고원 어딘가로 훌쩍 날아가면 좋겠다. 헬기한대 장만해야 할까보다.
온통 노란 칠을 해놓은 독특한 깔맞춤 건물이 도로변에서 보인다. 밝은 대낮에 이 건물에 출입하려면 썬글래스는 필수인 듯.
아마도 집주인은 노란색타이, 노란구두, 노란모자, 노란자켓, 노란안경을 끼지 않을까.(응? 태진아??)
유라마을을 지나 오자 시라사키가 해안도로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시라사키로 이어지는 해안선에는 하얀 암반들이 새하얀 빛을 발하며 듬성듬성 떠있다.
요런 해식지형의 동굴도 보이고,
하얀 시라자키의 석회암 색깔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파란 하늘과 짙푸른 바다.
시라자키는 하얀 암반의 지형내부가 움푹패여 있고, 해안도로 가까이에서 보면 이런 지형이다.
사라사키로 들어섰다. 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운다.
전망소를 향해 오르는 도중 내려보이는 주차장. 하얀 암반들이 비잉 둘러싸고 있는 분지인셈.
바윗돌에서 반사된 빛 때문에 눈이 부시다. 썬바이저가 달린 바이크 헬멧을 벗어두지 말고, 쓰고 올걸 그랬다.
산책로를 따라 걸어오른 전망터. 하얀 석회암과 바다가 만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터키의 지중해 해안 같은 느낌이 살짝 묻어난다.
시라사키 암반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 해안을 따라 달려오며 줄곳 보이던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기이반도 서쪽끝 즈음에 위치한 시라자키의 지형도. 바다 건너편이 시코쿠(일본 4개의 섬 중 가장 작은 섬)다.
눈부시게 하얀 암반 위에서 펼쳐지는 짙푸른 바다를 마음껏 즐기다가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시로사키 해안에서 스킨스쿠버 강습이 벌어지고 있다. 파도도 제법 이는데 열심이다.
바다는 바닥이 투명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다.
시라사키에서 보이는 북쪽해안, 달려가야 할 방향이다.
다시 현도를 그대로 주욱 이어 달려 아리타강이 하구로 길게 이어지는 아리타시에 도착했다. 이제는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것을 멈추고 아리타 강을 따라 기이반도의 내륙 중심으로 달려갈 계획이다. 며칠간 경로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다가, 결국 고야산을 들러가기로 마음먹은 상태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480번 국도를 타고 고야산으로 향한다. 이 인근은 온통 감귤과수원이 가득하다. 국도변에서 올려다 보이는 산비탈에는 거의 대부분 감귤나무가 식재되어 있고, 도로 옆이며 마당앞에도 감귤나무들이 빼곡이 심어져 있다. 따스한 남쪽이라 감귤 농사에 비교적 수월한가 보다. 일본 전도를 펼쳐보면, 지금 달려가는 기이반도의 위도가 시코쿠와 큐슈 북부지방과 비슷하고, 제주도와 전남 해안 사이 즈음 되므로 감귤농사가 많이 이뤄질 만도 하다.
길을 따라 지나는 마을들에서 마츠리가 열리고 있는 모양이다. 월요일이긴 하지만, 일본의 공휴일인 체육의날(원래는10월10일이었으나, 2000년 부터 10월 2째주 월요일로 변경됨)이라 토,일요일에 이어진 연휴의 마지막날이다. 그래선지 마츠리를 따르는 행렬들도 제법 여유가 있어 보인다. 강이 편안히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주욱 달려간다. 깊고 높은 산들이 양 옆으로 이어지는 내륙의 길들이 연이어지면서 라이딩 내내 눈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하다. 길 중간중간 멈춰서 계곡과 댐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을 건너가 보기도 하고, 계곡길의 까마득한 경치들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느긋이 길을 달려간다.
시라사키를 지나 나타난 고비키 마을 인근의 해안.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가 간다.
복잡스레 이어지며 나타나는 해안풍경 덕분에 달리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가장 진한 바다 빛을 볼수 있는 때는 아무래도 지금 같은 오전 시간이다. 정오를 넘어서면 해의 각도 때문에 바다색이 옅어진다.
짙은 바다색를 마음껏 즐기려면, 반드시 오전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유라초의 도쓰이 마을.
일본은 어딜가나 대체로 포구마을이 깔끔하고(물론 전부가 그렇지는 않다) 정갈하다. 정갈한 그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재미없게 느껴질때도 있다. 적당히 무심한듯 어질러져 있기도 해야 사람사는 맛이 나는게다.
아래쪽에 얼핏 보이는 해안도로를 따라 갔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산중턱을 따라가는 호젓한길로 가게되었다.
그 덕분에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시원스런 전경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도로에서 보이는 구로시마섬의 일부분.
멈춘곳이 산중턱에 위치한 곳이라 기분좋은 바람이 끊이지 않고 불어온다.
갓길에 자리를 깔고 앉아 아무 목적없이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도 새파란 바다가 스스륵 들어차는 것만 같다.
달려가야 할 북쪽 해안선. 복잡스레 보이는 지형들이 파란 바다 뒷쪽으로 가물댄다.
이런 바다 앞에서는 내 스쿠터가 트랜스포머처럼 보트로 짜잔!하고 변신해주면 좋겠다. 바다를 가르며 신나게 달려가게 말이다.
유라초 에나포구. 포구를 지나는 중 새로 진수한 양식장 어선이 보인다.
우리네 어선들도 진수식 이후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는 깃발을 걸어 두듯이, 일본도 비슷하다.
유아사초 니시히로 마을.
산길을 오르기전 되돌아 본 마을 앞의 바다 풍경, 계단식 논을 뒤에 두고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이 시원스럽다.
니시히로 마을 인근. 길을 따라 감귤과수원이 많이 보인다.
지금은 주로 온주밀감이 귤품종의 주류이지만, 온주밀감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이 지역(와카야마현)에서 생산되는 기슈밀감이 귤의 주된 품종이었다.
기슈밀감 시절부터 귤생산이 활성화되었던 지역이라 감귤농사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유아사 마을(유아사초)을 지나면서 보이는 간장 제조 창고. 유아사 마을은 일본간장의 발생지로 알려진 곳이다.
13세기 중국에서 전래된 날된장에서 유래된 간장이 그 시초가 되어, 에도막부시절 이 마을에서 100여개의 간장집이 번성하였다.
이곳으로부터 전국 각지로 간장 제조법이 퍼져나갔다고 한다. 현재에도 오래된 건물군이 여럿 남아있는 이 인근은 전통건물보존지구로 지정되어
고풍스런 분위기가 남아있다.
참고로 한국의 간장(조선간장, 재래식)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삼국사기에 신문왕(683년)때의 장류사용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음식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는 왜간장(개량간장)은 개화기 이후로 국내에 유입된 것이다.
(자료참조 - 위키피디아, japan-i)
아리타시 인근의 해안도로. 이곳을 끝으로 바다와는 작별, 내륙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달린다.
아리타시의 외곽 주택가를 통과하는 도중, 재활용 상점 앞을 지난다.
꽤 멀쩡해 보이는 중고 자전거가 3,000엔(약 4만원)에 나와있다.
잘 뒤져 보면 재미난 보물찾기가 가능할듯 하다. 헌책방과 중고상점은 오래 머무를수록 재미난 곳.
아리타강을 따라 내륙으로 이어지는 길. 주욱 이 국도를 이어 달려 고야산까지 갈 계획이다.
이라타강 하구에 위치한 아리타시는 일본 제일의 갈치 어획량을 자랑하는 항구도시이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국도변에서 보이는 마츠리행렬.
사흘째 연휴라서인지 지나는 길에 나타난 또 다른 동네에서도 마츠리 행렬이 보인다.
사람들은 신사 안으로 들어가 있어 많이 보이지 않지만, 길가에 서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이들 덕분에 시끌벅적한 분위기다.
강변을 따라 줄 곳 이어지는 도로.
캠핑용 가스를 사기위해 잠시 들런 홈센타. 접속구가 맞는 캠핑가스를 팔지 않는다.
캠핑용 버너 접속구를 일반부탄가스로 연결해주는 어뎁터(옥션에서 5천원이면 구매가능)만 있다면
편하게 편의점에서도 가스구매가 가능했을텐데 내내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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