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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읽다

강대나무를 노래함/문태준





강대나무를 노래함


                                                                                                   문태준



빛이 있고 꽃이 있는 동안에도 깊은 산속 강대나무를 생각한다

허리를 잡고 웃고 푸지게 말을 늘어놓다가도 나는 불쑥 강대나무를 화제 삼는다

비좁은 방에서 손톱 발톱을 깎는 일요일 오후에도 나는 강대나무를 생각한다

몸이 검푸르게 굳은 한 꿰미 생선을 사 집으로 돌아 갈 때에도 강대나무를 생각한다

회사의 회전의자가 간수의 방처럼 느껴질 때에도 강대나무를 떠올린다

강대나무를 생각하는 일은 내 작은 화단에서 죽은 화초를 내다 버리는 일

마음에 벼린 절벽을 세워두듯 강대나무를 생각하면 가난한 생활이 비로소 견디어진다

던져두었다 다시 집어 읽는 시집처럼 슬픔이 때때로 찾아왔으므로

우편함에서 매일 이별을알리는 당신의 눈썹 같은 엽서를 꺼내 읽었으므로

마른 개설의 소금밭을 걷듯 하루하루를 건너 사라졌으므로

건둥건둥 귀도 입도 마음도 잃어 서서히 말라 죽어 갔으므로

나는 초혼처럼 강대나무를 소리내어 떠올려 내 누추한 생활의 무릎으로 삼는 것이다

내가 나를 부르듯 저 깊은 산속 강대나무를 서럽게 불러 내 곁에 세워두는 것이다. 



(* 강대나무 : 선 채로 말라 죽은 나무)





 제주 / 2009.10. / 기억할만한 지나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