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알람을 새벽 5시 15분에 맞춰 뒀었다. 체험시설에서 텐트를 치고 묵어 갈 수 있게 도움을 준 경비아저씨가 곤란하지 않도록 되도록 서둘러 출발하기 위해서다. 꾸물대는 성격이지만, 최대한 바삐 움직이며 서둘러 텐트를 걷고 물건들을 바이크에 싣는다. 버너에 올린 미소국이 끓어 오르는 사이 잽싸게 씻고, 부랴부랴 아침밥을 흡입하고는 길을 나선다. 일찍 일어나서 서둘렀음에도 벌써 6시 50분, 두 시간 조금 못되는 시간이 순식간에 훌쩍 흘러가 버렸다.
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온 후, 마을 가까이의 신사 입구에서 잠시 멈춰선다. 지도를 꺼내 오늘 하루만큼 가야 할 길을 확인하고, 투명 비닐 테이프에 도로번호를 네임펜으로 순차적으로 기입하여 핸들바에 부착한다. 펼쳐든 지도에 빠져, 이것저것 들여다보는 사이 앞 쪽에서 "안녕하세요"하는 인사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이른 아침부터 신사를 찾은 동네 할머니다. 걸걸한 아침목소리를 힘겹게 깨며 그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넨다. 출근 후 마시는 커피나, 담배처럼 이른 아침 처음 만나는 누군가와의 인사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이다. 목을 지나 새어 나오는 인사소리와 함께 희미한 리셋이 생체내에서 일어난다. 다시 시동을 걸고 하루의 길을 시작한다.
좌 : 관리인 아저씨의 호의로 이슬맞지 않고 편안히 보낸 하룻밤.
등 배기지 않는 장소에 1인용 텐트 하나 세울 장소만 있다면 충분히 하루가 만족스러워지는 생활이다.
우 : 메쉬장갑으로 솔솔 새어 들어오는 바람을 오십일 넘게 접하다보니 손끝이 갈라지고 거칠게 메말라 가고 있다.
가끔 달리던 길을 멈추고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생길때면, 마음도 이렇게 말라가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손도 마음도 유분 가득한 핸드크림이 필요 한 시기가 있는게다.
뒷짐지며 신사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올라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삶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한 장면을 꼽으라면 당연, 세상을 한껏 살아낸 나이든 이의 뒷모습 아니겠는가.
마을이 위치한 계곡 사이로 따사로운 아침볕이 조금씩 들어차고 있다. 새벽녘에 살짝 끼어있던 안개가 밝아오는 볕에 밀려 조금씩 사라진다. 이른 아침의 고요한 마을길은 더없이 평화롭고 평온하다. 벗어나고 싶지 않도록 고요한 마을길을 따라 이어지던 샛길이 국도와 다시 만났다. 계곡을 따라 놓인 국도가 한참이나 이어지다가 151번 국도와 합류한다. 151번 국도는 오늘 지나야 할 토요가와시와 토요하시시까지 주욱 이어지는 도로이다. 두 도시는 모두 제법 큰 도시인지 국도를 따라 출근하는 차량들이 길게 정체를 만들어 내고 있다.
마을길 옆에 화사하게 핀 코스모스와 가을 꽃들 위로 아침 볕이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정갈한 가옥들이 연이어진 마을길을 지난다.
마을이 들어선 계곡을 향해 제법 높이 떠오른 태양이 따사로운 아침 볕을 내던진다.
포근하고 고요한 마을길을 한동안 달려오자 국도와 다시 만났다.
30km 가량 151번 국도를 따라 달리자 번화한 시가지가 국도변에 나타난다. 시가지를 건너뛰어 바닷길로 곧장 이어지는 바이패스 유료도로를 나도 모르게 진입해 버렸다. 길게 놓여있는 교각을 따라 마을을 우회해서 지나는 유료도로에는 조금 전까지 보이던 차량정체가 전혀 없다. 시원하게 뚫린 4~5km의 길을 달려 톨게이트 앞에 멈춰섰다. 톨게이트 박스 바깥에 나와 서있는 요금소 직원이 나와 스풋을 쓰윽 쳐다보더니 "10엔입니다" 라며 허허롭게 웃으며 말한다. 100엔도 아니고 10엔이라는 그 소리가 어찌나 허무한지,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호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건넨다. 요금표를 올려다 보니 125CC 이하의 이륜차(원부)는 통행요금이 정말로 10엔이다. 우리 돈으로 140원 정도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지불한 셈 치고는 복잡한 시가지 길을 피해서 시원스레 길을 잘 달려온 셈이다. 10엔이라는 통행료에 어쩐지 행복해지기까지 한다.
차량통행이 복잡해진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도중, 길을 잘못들어서 토요하시 항구로 진입해 버렸다. 덕분에 항구로 향하는 6개의 교각이 바다 위의 허공에서 마구 뒤엉킨채 놓인 독특한 고가도로를 경험하기도 한다. 항구에서 잠시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다시 23번 국도로 길을 돌려 빠져 나온다. 일단 이 인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자오산 전망대(蔵王山展望台)로 향한다.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따라 자오산 정상의 전망대 건물에 들어서자 나지막한 항구도시의 윤곽과 아츠미 반도의 해안선, 나고야를 향해 이어지는 이세만(伊勢灣)의 풍경까지 한 눈에 전부 들어오는 시원한 전경이 펼쳐진다. 전망대가 서있는 자오산은 200여 미터 정도의 고도 밖에 되지 않지만, 속이 뻥 뚫리는 시원스런 파노라마 풍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집요하리 만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를 즐긴다. 높은 산 정상에 올라선다거나 사방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우뚝 솟은 장소에 멈춰섰을때 누구나 느끼는 편안함과 해방감. 이것들이 내게만 생겨나는 욕구는 아닐테다. 선사 이전부터 살아오며 누적된 역사적인 공동의 경험이 인간의 의식 한 켠에 누적되어 보전된 것 중의 하나 일 것이다. 이런 심상을 융은 원형(archetype)이라는 말로 설명 했다. 말을 타고 사냥을 하던 여유로움과 유사한 차량을 운전하는 행위에서는 머릿속이 편안한 상태가 되며 이런저런 잡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것, 사자에게 사냥당하는 초식동물이 포식자의 강력한 발에 맞기 직전에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의식을 잃어버리는 것, 낭떠러지에서 추락하며 땅으로 떨어질때 지면과 충돌 직전에 의도적으로 기절해버리는 인간의 숨겨진 심상, 사방이 막힌 외부의 적으로 부터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공간(화장실 같은)에서 더없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 등, 우리 속의 우리가 잘알지 못하는 심상인 이것들을 원형이라 할 수 있겠다. 고리타분한 이야기처럼 읽혀지는 여러 신화는 우리가 미처 지각 하지 못하고 있는 이런 원형들을 가장 잘 드러내는 참고서적이기도 하다.
전망대에 악착같이 오르고자 하는 이 행위를 융의 집단무의식(이런게 진짜로 있기나 한지 의문이지만...)에 근거한 원형이 만들어낸 욕구의 결과 정도로만 해석한다면 사실 살아가는 행위는 허무하다. 물리적으로 한계를 지닌 인간의 범위를 폭넓게 확장시키고 재규정 짓는 것과 함께 연계해야만 신이 꼭 요 만큼만!이라며 테두리를 만들어 놓은것 같은 단순한 본능의 행위를 넘어서, 제 삶과 제 역사의 주체적인 행위로 의미 있게 될 것이다. 그럼 그 인간의 범위라는 것, 개인의 영역이라는 것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는 머리카락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로 분화되고 생겨나는 세포로 인하여 인체는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과거와는 다른 유기체로 바뀌게 된다. 그러므로 나를 이루고 있는 범위중에서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사고와 의식일 뿐일테다. 따라서 나라고 일컬어지는 개인의 범위라는 것은 물리적인 신체의 영역으로 한정 지을것이 아니라 의식의 범주로 정의되어야 한다. 전망대나 산을 찾아 높은 곳에 올라서서 시선을 넓히고자 하는 지금의 이 행위도 물리적인 신체의 영역을 뛰어 넘어 의식의 영역을 확장 시키고자 하는 보폭 넓히기로 봐야 주체적인 삶의 연속성 위에서 유의미 한 것아닐까. 물론 이 의식의 범주를 넓혀가고자 하는 행위에는 시선의 확장뿐만 아니라 교양과 격있는 시선을 얻는 훈련과 확장도 함께 포함되어야 할 것이고.
고층 건물없이 나지막한 집들이 들어선 이츠미 반도가 바다와 만나는 지점, 만 너머로 보이는 육지의 스카이라인 까지 시선을 한껏 확장 시키고 여유로운 풍경을 즐겨본다. 보이는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통 유리창으로 막혀있는 전망대 건물 안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답답함이 몰려 온다. 건물 바깥으로 걸어 나와 산 정상을 스치고 지나는 시원한 바람 속에 선다. 가까이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까지 하나 빼들고 서있자니, 사방으로 불어가는 바람속에 여유로움으로 녹아나 흘러 들 것만 같다. 하늘이 시리게 푸른 날, 바람이 참 좋은 날이다. 스쿠터에 시동을 걸고 다시 아츠미 반도의 끝을 향해 길을 나선다.
왼쪽 해안으로 따라가는 해상 교각으로 진입 했어야 했는데, 토요하시 항구로 향하는 오른쪽 길로 잘 못 들어섰다. 젠장스럽게 복잡한 진입로다.
이런 복잡한 구조물들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 한편으로, 인간들은 참 용쓰며 살아 간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니들도 파이팅이다! 인류!
토요하시 항구로 진입하자 나타나는 공공건물. 이름을 모르겠으나 화장실을 사용에 도움을 줘서 감사한 마음 가득이다.
다시 길을 고쳐잡고 자오산 전망대로 향한다.
자오산 정상의 전망대에 도착했다.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경사진 진입로가 건물 바깥으로 반원을 그리며 길게 뻗어있다.
대개의 건물에서 천대 받는 공간으로 여겨지는 휠체어 진입로가 이 전망대에서는 미적으로 유려한 구조물로 활용되고 있다.
내 맘대로 짧은 공중 산책로라 이름 붙여본다.
자오산 전망대 꼭대기 전망층에서 유리창 바깥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전경을 감상한다.
북쪽으로 보이는 토요하시 항구. 토요다 렉서스 주력 공장이 강하구(왼쪽)에 있다.
서쪽의 공단지대와 미카와만(三河湾). 미카와 만의 서쪽은 이세만과 맞닿아 있다.
산줄기가 이어지는 남쪽 끝에 도착해야 할 이라고미사키(곶)가 위치하고 있다.
전망대 건물의 주창장 끝에서는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미카와만의 연안을 따라 보이는 서쪽 연안은 매립지역들이 다수 들어서 있고, 공단부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공장 바로 앞으로 조그맣게 보이는 화물선의 노란색이 눈길을 끈다. 컨테이너선이나 화물선, 어선들도 색채가 좀 다양해지면 어떨까.
초록색 컨테이너선, 하늘색 원양어선, 노란색 통통배, 무지개색 크루즈 등...
전망대 건물 앞의 난간에 기대어 럭셔리(?) 에스프레소 캔커피를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여유롭게 즐겨준다.
가만보면 인삼 드링크 병 분위기다.
259번 국도를 따라 아츠미반도의 가장 끝머리인 이라고곶(伊良湖岬, 이라고미사키)에 위치한 페리선착장으로 향한다. 이라고 미사키가 가까워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잘 만들어진 해안공원이 보인다. 잠시 들러서 바다를 바라보며 그늘진 벤치에 드러누워 밍기적 대며 노숙자 풍의 게으름도 피워본다. 공원 앞에 펼쳐지는 짙푸른 바다의 색이 연안의 바다색 같지 않고, 깊은 바다로 나와 있는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묘한 느낌이 있는 곳이다. 느긋이 누워서 뒹굴다가 다시 출발한다. 이라고 곶이 멀지 않은 이라고초(町)의 마을을 지나며 나타나는 서점에 잠시 들러서 관서지방 투어링 매플 지도를 찾아봤지만 없다. 지금 들어서 있는 이츠미 반도와 이세만을 건너서 도착하게 될 미에현의 상세지도가 없어서, 오늘 머무를 캠핑장을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이라고곶의 페리선착장에 도착 후, 10분 남은 배시간에 맞춰서 부랴부랴 승선을 한다. 이세만을 가로질러 55분간 지나는 바닷길의 이용료가 3,000엔(4,1500원)으로 싼 편은 아니다. 나고야를 경유해 복잡한 도로를 거쳐 가는 것에 비하면 페리를 이용한 이 경로가 시간과 거리를 단축시켜 준다. 화물칸으로 스풋과 함께 올라타서 간단히 짐을 챙겨드는 사이, 페리가 기우뚱대며 이라고미사키의 포구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자오산을 내려와 아츠미반도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이라고 미사키(곶)로 향한다.
해안도로 옆으로 시라이소 해안공원이 나타났다. 잠시 들러보기로 한다.
해안공원을 잠시 둘러보고 그늘진 벤치에서 잠시 쉬어간다. 쉴 만큼 바삐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공원을 만나면 쉬어 줘야 하는거다.
이라고 미사키를 향하는 259번 국도.
아츠미 반도 동쪽인 태평양 연안은 거센파도가 만들어낸 해식절벽도 생성되어 있으나 파도가 가로막힌 반대쪽의 서쪽 끝 지형은 퇴적물이 쌓여서 형성된 낮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달려가는 내내 산이 없는 평탄한 지형이 연이어 진다.
아츠미 반도 끝머리에 위치한 이라고 미사키 페리터미널에 도착.
페리터미널이 휴게소로도 함께 활용되는지 미치노에키(道の駅, 국도변 휴게소)라 붙어있다.
페리선상에서 보이는 터미널. 10분 남은 뱃시간 때문에 부랴부랴 티켓을 끊고 배에 올랐다.
올라탄 배와 똑같은 모양의 이세만 페리가 바로 옆에 정박하고 있다.
페리가 작은 항구를 벗어나며 항해가 시작된다. 배타기를 유독 즐기는 내게 가장 기분 좋은 시간은 배가 포구를 벗어나는 설레임 가득한 지금이다.
신천지를 찾아나서는 항로도 아니건만 심장이 두근두근 대기까지 한다.
이라고 미사키 끝 지점의 등대를 지나 점점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페리.
둔덕 위의 큰 등대는 밤이 되면 글자가 점등되는 이색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세만 지형도 및 페리 항로.
페리에 올라탄 이라고 미사키에서는 북쪽(나고야방향)의 지타반도 끝자락인 모로자키(40분소요)를 향하는 페리노선과 서쪽의 도바(55분소요)로
향하는 페리노선이 있다. 내가 올라 탄 페리는 이세만의 입구 20km가량을 가로질러 서쪽의 도바항으로 향하는 중(빨간선)이다.
이세만을 건너가며 나타나는 조그마한 섬들을 지날 때면 선내의 안내방송이 실시간으로 흘러 나오며 각 섬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흘려내고 있지만 당췌 알아들을 수가 없다. 뱃머리의 난간에 기댄채 지나가는 바다와 섬의 풍경들, 이세만을 바삐 오가는 어선과 대형 선박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거대한 컨테이너선들이 수평선의 먼 바다로부터 하나 둘 나타나서는 페리의 앞 뒤를 지나 태평양과 맞닿은 나고야항을 향해 사라지는 모습들이 연이어진다. 이세만 초입에서 보이는 바다 위의 풍경들은, 언제나의 바다가 그렇듯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르름으로 가득차있으며, 매력적이고도 설레이는 풍경이다.
이라고 미사키 인근을 바삐 오가는 어선들.
이세만은 평균 수심 19.5 미터, 만의 중심을 향해 최저 30 미터 수심으로 대형선박들이 운행하기에 충분한 바다지형이다.
이세만을 가로질러 일본 최대의 무역항인 나고야 항을 오가는 대형선박들이 오가는 모습들이 선상에서 자주 보인다.
이라고미사키와 도착항인 도바항 사이에 위치한 카미시마 섬을 지나간다.
카미시마를 지나자 보이는 무인도.
이세만을 지나는 페리 위에서는 바다 위를 자유롭게 헤엄쳐 가는 돌고래도 가끔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 행운까지는 기대 할 수 없는 날인가 보다.
도바항 방향으로 보이는 육지가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도바 인근의 섬들 사이로 페리가 지난다.
도바항에서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지마 섬.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의 모습이다.
산능선 따라 전봇대가 이어지는 것이 보이는 걸로 봐선, 섬을 길게 가로 지르는 도로가 나 있나보다.
도시지마 맞은 편에 위치한 스가시마 섬
도바항이 가까워진 연안
도바항 인근에는 섬 사이를 오가는 조그마한 유람선들이 많다.
도바항 바로 앞 바다에 떠있는 사카테지마 섬
도바항이 정면으로 가까워졌다.
도바항 인근은 세계최조의 진주 양식이 시작된 곳으로 지금도 진주양식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도바항 남측 풍경. 네모난 뗏목 모양의 해상의 구조물들은 양식시설이다.
도바항이 가까워졌다.
연안의 도사시마 섬과 여러 작은 부속 섬들이 나타나더니, 얼마지나지 않아 페리가 도바항에 도착했다. 항구가 있는 도바시와 바로 인접해있는 이세시(伊勢市)에는 유명한 신사인 이세신궁(伊勢神宮)이 있다. 일부러 찾아 다닐 만큼 신사에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세신궁의 이름을 많이 들어봤을 뿐 아니라 신궁(神宮)이라는 이름이 괜스레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게다가 일본 3대 신궁의 하나라고 불린다는 소리도 있고,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터라 겸사겸사 한번 가보기로 한다.
내륙을 가로지르는 현도를 따라 1시간 정도를 달려가자 이세신궁의 내궁에 도착했다. 인근의 주차장은 차량들로 가득 차있고, 지나다니는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참배객이 바글댄다는 년초도 아니고, 몽땅 나들이 나오는 주말도 아닌데 이토록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을 보면 꽤나 유명한 곳임이 틀림없나보다. 일본인이라면 죽기 전에 한번 씩은 찾는다는 떠도는 말이 정말 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선내 한 쪽 귀퉁이에 묶여있는 스풋. 안장 위를 둘러친 고정줄 아래에 스폰지를 덧댄 모습이 재미나다.
대체로 일본의 페리에서는 이런 식으로 바이크를 고정시킨다. 바이크를 고정시키는 선원들은 스풋의 번호판을 보고는 꼭 한번씩 고개를 갸우뚱 한다.
타고온 페리의 뒷꽁무니를 빠져나와 도바항에 내려섰다.
1시간 채 못되는 운항시간에 조그만 스쿠터 한대 실어주고 3,000엔(41,500원)을 받아 챙기면 너무 비싼거 아닌가 하는 꽁한 생각이
내려서자 마자 물 밀듯이 밀려온다. 하여튼 뒷간 들어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이 사람의 맘.
이세신궁으로 향하는 내륙도로.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유료도로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곳에 돈을 뿌릴 수는 없다. 무료의 현도를 따라 가기로 한다.
이세신궁 내궁(內宮, 나이쿠) 앞의 주차장에는 세워진 차량과 바이크들로 가득하다. 이 많은 바이크 중 스쿠터들은 어디에 숨어있는 것인지!
이세신궁의 내궁 영역이 시작되는 우지교 앞의 도리이.
일본의 신사들 앞에 빠짐없이 서있는 이 도리이(鳥居)는 세속과 신계를 경계짓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세신궁은 외궁과 내궁으로 나뉜다. 이곳 내궁은 일본 왕실의 시조신이자 일본 민족의 총 씨족신이자 태양신인 아마테라스 오카미를 주신으로 두고 있으며, 외궁(外宮)은 6km떨어진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토요우케노 오카미라는 쌀과 의식주를 베푸는 산업의 신을 주신으로 두고 있다.
■ 신궁(진구, 神宮)
신궁(일본어: 神宮 진구)은 일본의 왕이나 일왕의 시조를 모시는 제단을 이르는 용어로 통용되나, 엄밀히 말하자면 일본에서의 '진구'(神宮)는 미에 현 이세 시에 있는 이세 신궁(伊勢神宮)의 정식 명칭, 또는 '~神宮'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사를 의미하며, 반드시 일왕 및 왕족을 모시는 것은 아니다. 1945년 이전에는 '진구'란 이름을 쓰기 위해서는 칙허 등이 필요하였으나, 현재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의거하여, 특별한 허가 없이도 격이 높은 신사의 경우, '신궁'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
니혼쇼키에는 이세 신궁 및 이시카미 신궁만이 '신궁'(神宮)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 이시카미 신궁을 대신하여 가토리 신궁과 가시마 신궁이 '신궁'으로 기록되며, 에도 시대에 이르기까지 '신궁'이라는 용어를 명칭으로 사용한 신사는 이 세 곳뿐이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 황실의 선조, 천황 및 야마토 평정(大和平定)에 공적이 있는 일부 신을 모신 신사 중 몇 군데가, 명칭을 '신사'에서 '신궁'으로 변경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전까지는 신사의 명칭을 '신궁'으로 바꾸는 데에는 칙허가 필요하였으나, 전후 국가가 더 이상 신사를 관리하지 않게 되어, 현재는 특별한 규정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신궁'의 이름을 쓰기 위해서는 그만한 특별한 유래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통례이다. 2차대전 이후 '신궁'이 된 곳은 세 곳으로, 이들 모두 신사본청의 특별한 승락을 받아 개칭된 것이다. (홋카이도의 홋카이도 신궁(구 삿포로 신사), 후쿠오카 현의 히코산 신궁, 효고 현의 이자나기 신궁)
■ 신궁이 일본에만 있었을까?
신궁은 일본 외의 지역에도 세워졌었는데, 한반도의 경우 일제 강점기때 경기도 경성부 남산(현 서울특별시 중구)에 '조선 신궁'(朝鮮神宮)이 세워졌고 타이완에서도 타이완신궁(台湾神宮)이 세워졌다.(내용출처 : 위키피아)
■ 우리나라에 지어졌던 조선신궁?!
일제 강점기 한일병탄이후 일제는 남산의 정중앙에 5년간의 공사끝에 조선신궁을 지어 우리 민족의 문화를 그들 문화 아래에 두고자 했던 발칙한 일들을 별이기도 했었다. 그 흔적이 아직도 남산 곳곳에 남아있기도 하다. 하단의 사진 및 링크 참조.
▶ 남산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신궁 흔적 : 삐뽀 이야기-블로그(http://pipo.kr/250)
▶ 한국일보 [한일 강제병합 100년] <13> 식민지배의 상징-조선신궁·신사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4/h2010042622260486330.htm
▶ 남산 중턱의 조선신궁을 기억하십니까?[ 정운현의 역사에세이]: http://metablog.idomin.com/blogOpenView.html?idxno=101878
신궁 영역으로 건너가는 나무다리 앞에서 주변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으려니, 너 댓명으로 이루어진 여성 한 그룹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카메라를 내민다. 그들의 카메라를 받아들고 사진을 찍는다. 높다랗게 솟아있는 도리이 아래에 다정한 포즈로 서있는 그들을 비스듬히 떨어진 곳에 서서 프레임에 집어 넣고 찍다보니 사람들이 조그맣게 한 쪽으로 내몰린 모습으로 담겨 버렸다. 게다가 수평까지 비뚜름하게 찍혀있다. 혼자서 풍경만을 찍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사람을 카메라에 담는 방법을 까먹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당황스럽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카메라를 건네받은 그녀들도 메모리를 되돌려 확인을 하더니, 역시나 머리를 갸우뚱 댄다. 뒤돌아서며 "뭔가 사진이 이상하지 않아?" "응, 그렇지?" "응..." 하는 말들을 주고 받으며 다리 너머로 사라진다. 그들의 추억을 삐뚜름히 새겨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이 살짝 든다.
이세신궁의 본 건물(정궁)과 함께 20년 마다 새로 지어진다는 100여 미터 길이의 나무다리(우지교)를 건너고 나서도 한참이나 참배로가 이어진다. 비포장의 길이 넓기도 하거니와 인근을 둘러싸며 자란 숲과 길 옆으로 보이는 아름드리나무들이 걸음을 잡아끈다. 올려다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는 거목들(아름드리라는 단어로도 턱없이 모자란)이 여기저기 서있다. 내궁의 본 건물인 정궁은 바로 앞에서는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하얀 옷을 입은 신관들이 입구의 조그마한 가옥에서 조용히 앉아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이 곳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친 후 두손을 모아 고개 숙여 합장 하며 참배를 하고 지나간다. 참배를 하는 인파와 울창한 숲 속에 조용히 서있는 신사의 모습을 옆에서서 구경하며 신사와 주변에서 느껴지는 느낌들을 잠시 쫒아 본다. 본궁 건물의 담장 밖으로 걸어나와서 다시 울창한 숲길을 따라 걷는다.
이세신궁 내궁 영역으로 건너가는 목조교각인 우지교(宇治橋). 내궁의 본 건물(정궁)과 함께 20년 마다 새로 지어진다.
지금의 교각은 1993년에 지어졌다.
우지교를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세밀하게 잘 짜맞춰진 구조가 한눈에 드러난다. 딱 일본의 목조건축물들과 동일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우지교 교각 아래에는 이스즈강이 흐르고 있다.
정궁을 향하는 도중의 커다란 도리이
숱한 참배객과 관광객이 이세신궁을 찾는다.
정궁으로 향하는 길 가운데즘에 서있는 나이쿠(내궁) 가구라전.
지붕이 동판으로 덮여 있으며 맞배와 팔작의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리모야즈쿠리 양식, 入母屋造)이다.
가구라전의 건물은 한 덩어리의 건물이긴 하지만 지붕들이 각각 다른 높이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풍성한 느낌을 준다.
길을 따라 걸어 들어 갈 수록 울창한 숲과 더 큰 거목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 몸통의 몇 곱절은 되는 듯한 아름드리 거목들이 자라고 있는 신궁내부.
수령 800년의 나무도 있다고 한다.
어찌나 높게 자라있는 나무들인지 크레인을 이용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대다수 사람들의 목적인 참배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신궁이 위치한 울창한 숲과 길, 오래된 나무는 더없이 기분을 편안하게 한다. 북적대는 사람 없이 한적하게 거닐 수 있다면 바랄게 없을 정도다. 고목과 나무들이 만들어 낸 깊고 시원한 그늘로 인해 마음이 느긋해 지는 장소다. 숲과 나무를 만나는 곳은 세상 어느 곳이라도 상관없이 이렇게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한참이나 신궁 내의 숲길을 천천히 거닐고는 다시 주차장 쪽으로 되돌아 간다. 주차장으로 건너기전, 신궁 바로 앞에는 오른쪽으로 난 거리를 따라 상가가 빽빽하게 형성되어 있고, 그 상가 거리에는 관광객들이 뒤엉켜 또 한번 복잡한 인파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잠시 거리를 따라 걸어보다가, 머리가 아파오는 통에 주차장으로 되돌아 나온다.
이세신궁 정궁인 고다이진구의 제 1문. 여기까지가 일반인이 출입 할 수 있는 곳이며, 계단을 올라서서 부터는 사진촬영도 금지된다.
일본씨족의 시조신이자 태양신인 아마테라스 오카미를 주신으로 받드는 건물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태양과 달로 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으며 진화의 과정을 거쳐 왔으므로, 생리현상에까지 반영되는 태양과 달의 주기가 탄생과 죽음을 만나 신화화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다. 이세신궁(내궁)의 근간이 되는 태양신화는 우리의 천지신명, 일월성신과 더불어 아프리카, 아시아, 폴리네시아, 유럽, 아메리카까지 고루고루 분포한다.
인류의 다양성은 여러 민족과 고유한 문화의 숫자 만큼이나 꽤 복잡 한 것 처럼 보여지지만, 관통하는 흐름의 줄기들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정궁 입구 가까이에 서있는 거대한 삼나무. 그 거대한 크기에 감탄하는 이들이 나뿐만은 아니다.
사람도 한 600년을 살아내면, 저리 엄정하리만큼 중심잡힌 자세가 나올 수 밖에 없을것이다.
정궁(고다이진구) 바로 가까이에는 정궁 건물이 새로 들어서게 될 부지가 정해져 있고, 그 앞에 표식이 세워져 있다.
이세신궁은 20년을 주기로 정궁 건물을 몽땅 새로 짓는데, 이 대대적인 의식을 시키넨센구라고 한다.
1993년에 61회째 시키넨센구가 이루어 졌으며, 2013년에 다시 62회째를 실시하게 된다. 참 부지런한 신사다.
하긴 신(神)도 한 곳에만 오래 머무르면, 지겨워서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이든 신이든 한번씩은 이사해 줘야 하는거다.
이렇게 신사 건물을 새로 옮겨 짓는 행사에는 기술 전승의 의미도 들어있다.
신궁내 부속건물. 양식, 미학 따위로 시선을 끄는 것이 아니라, 지붕에 자라는 이끼가 지나는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
이세신궁의 신관부속 건축물들은 이 건물처럼 전부가 시읏자의 초가 지붕이 올려져 있고, 둥근 기둥의 원주를 제외하고 곡선이 전혀 없는
직선으로 지어진 신메이즈쿠리(神明造) 양식으로 되어있다. 그 탓인지 원시성이 조금씩 옅보인다.
신궁 내의 별궁인 아라마츠리노 미야. 마찬가지로 신메이즈구리(神明造)의 직선 양식으로 지어진 별궁이다.
걷는 길을 따라 숲이 울창한 이세신궁은 내, 외궁을 합쳐 90헥타르(27만평, 90만㎟)에 달하는 숲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신궁에서 신성시 여겨지는 닭이 여기저기 풀어져 돌아다니고 있다. 여유있는 이 녀석은 땅까지 파고 들어가 있다.
이세신궁의 제사에서는 신계의 닭 울음 소리를 세번 내는 의식이 있다고 한다. 신라의 계림이 연계지어져 떠오르는 동시에 삼계탕도. 쩝...
울창한 숲 그늘 아래에 이끼가 포근하게 깔려있는 곳도 있다.
극히 일본스러운 조경수가 신궁청사 가까운 한켠에 가꾸어져 있다.
단번에 눈을 끄는 모습이지만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있으므로, 지속적이지 못한 조형미를 보인다.
일본의 문화들과 일정 부분 닮아있다.
맨 처음 건너왔던 우지교를 다시 건너 주차장 쪽으로 되돌아 간다. 볕이 따습고 하늘이 맑은 날이다.
지은지 17년이나 된 교각이건만 관리가 잘된 탓인지 새로지은 다리같다. 3년 뒤면 다시 허물어지고 새로 지어진다니 좀 아깝다.
이세신궁 우지교 앞에서부터 800미터 가량 뻗어있는 오하라이마치 도오리. 상가 밀집 지역으로 이세신궁을 찾은 인파로 득시글하다.
주욱 늘어서 있는 상가건물들이 제법 고풍스럽다.
신궁 아래에 위치한 마을 서점에서 간사이 지방 지도를 구입하기 위해 잠시 들렸다. 다행이 이곳에는 지도책이 있다. 서점 주차장에 선 채로 지도를 보고 미리 파악하지 못한 앞으로의 경로를 확인한 다음, 몇 시간 전에 도착했던 도바항으로 다시 되돌아가기로 한다. 도바항에서 시작되는 해안도로를 따라 기이반도(紀伊半島)의 최남단까지 따라 내려갈 계획이다.
다시 도바항으로 되돌아와 시가지를 벗어나자,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펄로드라인이 시작된다. 도바시의 해안 인근은 진주가 유명한 곳인터라 곳곳에서 진주가 들어간 이름들이 써붙여져 있다. 도로 이름도 펄로드, 진주관, 진주판매점, 진주양식장 등... 해안도로는 진주길(펄로드라인)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경들을 드러내고 있다. 도중에 나타나는 토바전망대에 오르자 뒤편으로 이어지는 내륙의 산줄기와 앞으로 펼쳐지는 시원한 태평양이 한 눈에 드러난다. 전망대 주변을 돌아다니며 인근의 풍광을 즐기다가 다시 펄라인을 따라 해안도로를 달려간다. 리아스식 해안의 독특한 지형들이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펄로드 라인(pearl road)이 시작되는 도바시 인근의 해안풍경
도바시(鳥羽市)에서 남쪽 방향에 위치한 시마시(志摩市)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인 128번 현도 23km 구간은 펄로드라인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펄로드 라인에서 보이는 해안풍경.
펄로드 라인에서 내려다 보이는 오노라만. 진주양식의 최초 시원지 답게 곳곳에서 진주양식이 이뤄지고 있다.
펄로드 라인 해안 풍경
펄로드 라인 해안 풍경. 연평균이 15~16도 정도로 따스한 이곳은 해안을 따라 활엽수 군락지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펄로드 라인 도중에 보이는 도바전망대에 올랐다. 도바시에서 시마시까지 이르는 해안선은 이세시마 국립공원에 속해있다.
도바전망대 기념물
멋있는 필체로 적혀 있지만, 내용은 이 지역 출신의 형제가수의 '형제술(兄第酒)'라는 노래의 가사만 담겨있다.
도바전망대에서 내려보이는 해안선
도바전망대에서 내려보이는 해안선. 앞으로 달려 가야 할 펄로드라인의 도로가 멋스럽게 드러난다.
도바전망대에서 내려보이는 해안선
도바전망대 건물과 주차장. 이 전망대는 162미터의 산정에 위치하고 있다.
도바전망대 뒤쪽으로 이어지는 내륙의 산세
도바전망대를 내려와서 다시 펄로드 라인을 이어 달린다.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달리는 터라 심심하지 않고 주변풍경도 더 없이 좋다.
펄로드 라인의 해안전경
산능선을 따라 달리는 펄로드 라인의 구간에서는 내륙으로 움푹 들어온 독특한 지형의 마토야만(的矢灣)이 내려다 보인다.
마토야만 내의 남서쪽(사진의 오른쪽)에는 6km 둘레를 가진 작은 와타카노지마 섬이 있다. 이 섬은 에도시대 에도(도쿄)와 오사카를 오가는 항로가 발달함에 따라 바람과 파도가 심해질때 뱃사람들의 피난항으로 사용되어 온 곳이다. 선원들을 상대로한 유곽이 성행되어 ‘여자만 사는 섬(女護ヶ島)'이라는 별칭까지
붙게 되었다. 지금은 굴과 진주로 유명하고 풍부한 어패류와 더불어 온천과 해양스포츠도 즐길 수 있는 리조트도 들어서 있지만,
전통처럼 굳어진 성매매 역사가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독특한 곳이다.(내용 참조 : 위키피디아)
리아스식 해안인 마토야만 전경
마토야만은 좌측의 스게곶과 우측의 아노리곶이 둘러싸면서 입구를 열어두고 있고, 내륙으로 10여 킬로미터 들어오며 복잡한 해안선을 만든다.
마토야만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터 한 귀퉁이에는 도로에서 죽은 동물들을 위로하기 위해 너구리 상이 조그맣게 만들어져 있다.
아, 이 배려돋는 꼼꼼함 이라니. 시험이 종료된 실험 동물들을 숱하게 폐사시킨 죄를 지었던 나로써는 이것만 봐도 가슴 한 켠을 바늘로 쑤시는 것 같다.
길 위에서 였든, 지구 위의 어느 곳에서 였든, 지극히 자연스레 세상을 떠나지 못한 생명들의 명복을 빈다.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마토야만을 건너는 다리를 지난다.
마토야만다리(교각)에서 펼쳐지는 고요한 만의 풍경은 호수나 담수처럼 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에 감싸여 있다.
마토야만이 바다로 이어지는 지형.
마토야마만의 해안 인접 지역에는 골프장과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고,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장소에는 대부분 별장과 휴양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마토야만에 위치한 스페인마을(스페인 무라)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보여서 따라와 봤더니 문을 닫은 상태라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다.
23km의 펄라인 도로가 끝나고, 128번 현도로 옮겨 타자 바다는 더 이상 사라지고 숲과 마을이 이어진다. 지나는 길에 나타난 마을 마트에서 저녁으로 먹을 도시락과 먹거리를 사고 주유를 한 다음, 오늘의 최종목적지인 시마반도의 끝 즈음에 위치한 캠핑장을 찾아 나선다. 시마반도를 따라 남하하는 260번 국도에 꺽어 들었어야 하는데 한참을 지나와 버렸다. 다시 경로를 고쳐잡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도로번호나 표식이 전혀 없어서 현재 위치를 알 수가 없다. 어쩔수 없이 짐작되는 방향의 도로를 따라 무작정 달려가다가, 뒤따르는 차량 행렬에 떠밀려 10km 가량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해버렸다. 잠시 멈춰서서 지도를 다시 펴들지만 이미 어두워진 6시. 바이크 헤드라이트 불빛에 지도를 비춰서 천천히 들여다보며 주변의 지형 지물을 비교해보니 목적했던 캠핑장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운이 좋았다. 다시 길을 따라 5분 정도 달려가자 시마시 토모야마 공원과 캠핑장을 알리는 간판이 나타난다.
공원으로 들어가 사무소에서 사용접수를 하고, 안내인이 직접 알려준 사이트의 취사장 아래에 텐트를 친다. 캄캄한 숲속의 캠핑장 주변에는 고양이 두 세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거닐고 있다. 숲 너머의 다른 사이트에는 어린아이들이 단체로 야영을 왔는지 밤 늦도록 꼬맹이들이 소리치며 까르르 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숲으로 둘러싸인 캠핑 사이트이긴 하지만 멀지 않은 곳이 해안이다. 그래선지 어둠속으로 부터 비릿한 밤바다 내음이 약하게 섞여 날아들고 있다.
대충 짐작대로 길을 달렸음에도 제대로 찾아온 토모야마 공원 캠핑장.
오늘도 이슬에 젖지 않기 위해서 취사장 아래에 텐트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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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박지 : 시마시 토모야마 공원 캠핑장(1박-1,100엔)
- 화장실, 취사장, 샤워장
- 사이트 : 링크
* 주유 : 603엔
* 이세만페리 바이크 승선 : 아츠미반도(이라고미사키, 伊良湖岬)~도바(鳥羽)
- 125cc 미만 : 3,000엔
- 125~750cc : 3,500엔
- 700cc 이상 : 4,000엔
야마비코노오카(山びこの丘) → 자오산 전망대 → 이라고미사키 → 도바 → 이세신궁 → 도바, 해안도로
큰 지도에서 스쿠터 일본가다-54일차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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