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을 새벽 5시에 맞추어 두었더니 제시간에 울려댄다. 비바람탓인지 춥다. 게다가 텐트바닥이 차가운 시멘트라서 한기가 올라오기도 한다. 여전히 텐트바깥에서는 빗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5일째 비가 내리고 있다. 가을이 다 됐는데 장마일리는 없고 지리하게도 연이어지는 비다. 혹시 저기압을 따라 내가 이동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미소된장국을 덮히면서 침낭과 매트, 옷가지류를 챙겨서 바이크 사이드백에 차곡차곡 집어넣는다.
동전이 모자라서 완전히 건조시키지 못한 티셔츠는 역시나 덜 말라있다. 어쩔 수 없이 약간 덜 마른 채로 하나를 껴입고 나머지는 의류팩에 집어넣는다. 뭐에 쫒기듯 짐정리를 마치고 나니 6시 30분이다. 비가 좀 약해지더니 다시 거세게 내린다. 이 상태에서 달린다면 오늘도 어김없이 신발은 아쿠아슈즈가 되겠다. 비옷을 아래위로 껴입고 출발한다. 오늘은 캠핑장의 편안한 시설에서 숙박을 하고, 돈안내고 튀는 먹튀 여행자가 되었다.
토와다코 히노데캠핑장. 비가 줄창 내리는 탓에 관리사무소 처마아래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캠핑장 내부, 숲사이에 널직한 텐트사이트 부지가 있다.
캠핑장. 짐을 다꾸린 7시가 되어도 관리소 직원이 나타나지 않는다.
7시가 조금 덜된 시간이다. 지나온 마을쪽으로 가서 일단 부족한 연로부터 채우기로 한다. 오늘 목적지는 42번 국도가 나오는 일본의 북동쪽 해안이다. 그곳은 하늘이 맑아 있을까?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따라 내려가면 더 이상 비가 없는 걸까? 비를 그만 만날 수 있는 길을 달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7시인데도 아직 동네주유소는 문을 열지 않았다. 어제 못 가본 호반길을 따라 일단 가본다. 숲길, 빗길, 코너마다 빗물에 떠내려 온 낙엽이 쌓여서 바이크 주행에는 위험한 길이 이어진다. 5분가량 시속 30KM로 천천히 달려가자 토와다코 호수가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 안내 지도판에는 한글/영어/일본어/중국식한문으로 기입되어 있다.
넓다란 호수에 두개의 반도가 양옆으로 튀어나온 웅대한 광경이 펼쳐진다. 비구름까지 끼어있어서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호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모두 800~1,000m 높이의 고산들이고, 이 넓은 호수는 화산이 분출된 정상부가 붕괴되어 생성된 칼데라호수이다. 화산섬 지형인 일본은 비교적 넓지 않은 땅덩어리임에도(그래도 우리나라보다는 넓다!) 이렇게 다양한 지형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쨍한 느낌이 숨어있는 호수를 앞에 두고 한참이나 빗속에 서서 내려다본다. 전망대 뒤쪽에 놓인 처마밑 의자에 앉아서 비를 피할겸 앉아 있어 본다. 시간이 좀 지나자 비가 그친다.
아침부터 빗길을 달려서인지 춥다. 12'C정도 될까. 우의를 벗어 말리고, 화장실에서 세수와 칫솔질을 하고 난 후 어제 쓰다만 일기를 쓴다. 이른 아침부터 전망대를 들리는 여행객들이 두서넛 있다. 차량으로 이곳을 찾는 그들이 갑자기 부럽다. 아마도 한기 느끼며 뒤집어쓴 비 때문일 게다. 전망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다시 빗줄기가 굵어진다. 오늘은 어떻게 될까. 계속 비가 이어진다면 얼마나 달려 갈 수 있을까. 비만 그쳤다면 토와다코 호수를 한바퀴 돌아서 일주해볼 예정이었으나, 아침부터 만난 빗줄기에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게다가 이 전망대에서 훌륭한 호수의 전경까지 보고나니 동쪽해안으로 한시라도 빨리 옮겨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해안에는 이곳과 달리 비가 없을거라는 막연한 기대만 생겨나고 있다.
아침부터 내리는 빗길을 지나서 도착한 토와다코 전망대.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그치지 않는다.
전망대에서의 토와다코 전경. 칼데라 호수답게 주변을 높다란 산줄기들이 둘러싸고 있다.
호수 남쪽에서 가운데를 향해 가느다란 반도 두곳이 튀어나와 있다.
전망대에서의 토와다코 전경.
전망대 정면 멀리로 둘러싼 산들이 요새의 방벽같다.
토와다코는 이렇게 생긴 호수이다. 사방에서 호수를 볼수있는 전망대가 있다.
지금있는 곳은 현재지라 붉게 적힌 남쪽의 전망대이다.
면적 61k㎡로 일본에서 12번째로 큰 호수로 아오모리현과 아키타현의 경계인 해발400미터에 위치해있다.
호수의 가장 깊은 수심은 327미터, 일주도로는 50km로 매년 7월 하순에 일주도로를 12시간에 걸쳐서 걷는 '토와다코 워크'가 열린다.
토와다코 호수에서 마을을 지나는 산길을 넘어 동쪽으로 향한다. 국도지만 구불구불하고 노면이 거친 산길의 도로다. 게다가 호수를 둘러싼 산들이 제법 높아서 길이 험한 편이고, 모퉁이마다 내린 빗물에 흘러온 낙엽뭉치가 곳곳에 깔려있어서 미끄러질까 조심스럽다. 30~40km/h 정도밖에 속도를 내지못한다. 손의 장갑은 이미 젖어있고 신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추위가 더욱 파고든다. 장기여행을 하려면 바이크용 비옷, 부츠까지 전부 갖춰서 다니는 것이 좋겠다. 내가 갖춘 장비가 좀 느슨한건 사실이다.
산 고개를 넘어서자 비가 사그라든다. 바닥은 여전히 젖어있는 상태다. 내리막길이 주욱 이어지고 현도로 다시 길을 꺽어 산간마을을 지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계곡지형의 조그마한 평지도 농지로 개간해서 작물을 키우고 있는 모습들이 지나간다. 노랗게 익은 벼는 이미 추수가 시작되어 이빨 빠지듯 맨땅을 드러내고 있다. 추수 후 통채로 널어서 말리던 볏단이 여기저기 보인다.
주변의 산봉우리에는 안개인지 비구름인지 구분이 안가는 하얀증기가 비가 그친 후 사르르 피어나고 있다. 다시 구불구불, 좁은 현도의 산길을 넘는다. 국도를 따라가면 둘러가므로 가로질러가는 현도를 따라간다. 30km정도 왔는데 어찌나 길이 구불구불한지 1시간이나 걸렸다.
4번 국도에서 다시 395번 국도로 옮겨 타고서 주욱 동쪽바다를 향해 달린다. 이제사 비가그친 하늘에는 파란색의 맑은 빛이 오랜만에 조금씩 내비치기도 한다. 조금더 지나자 햇빛도 나타난다. 얼마만의 햇빛이던가, 그리웠다. 이내 곧, 그간의 그리움을 잊어먹고 일상처럼 그 아래를 달려가겠지만 지금의 반가움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다. 조금 추위가 덜해지긴 했으나 아침 일찍부터 맞은 비 때문에 생겨난 한기로 여전히 춥다. 멈춰서서 집업 후드를 하나 더 끼어 입고 눈사람처럼 바이크에 올라탄다. 어디서 겨울용 파카라도 하나 구해야하나 싶을 정도다.
토와다코 호수를 넘어 동쪽으로 향하는 지방도로
내린비로 인해 남아있는 구름의 잔재들이 주변의 산자락에 연기처럼 걸려있다.
216번 현도
현도변의 풍경. 경사면을 흘러내리는 물아래에 누군가 올빼미조각상과 조그마한 수차를 만들어놓았다.
지방도로를 따라 넘는 길에 보이는 산간마을
추수가 끝나고 볏단을 통채로 널어말리는 모습이 독특하다.
395번 국도를 따라 동쪽해안으로 향하는 도중, 드디어 스풋의 거리계가 1만 킬로미터를 표시했다.
며칠째 내린비때문에 속도계에 습기가 가득.
1만 킬로미터 기념샷. 이곳은 이와타현 구노헤군의 395번 국도.
"고생했다, 스풋!"
395번 국도변의 오오노 미치노에키(국도변 휴게소) 뒷쪽으로 목장이 있다.
잠시 목장길을 달려본다.
목장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조그마한 천문대가 서있고, 주변으로 구릉의 목초지가 펼쳐진다.
쿠지시 북쪽 해안으로 달려가는 도중의 148번 현도
70km를 달려 드디어 바다다. 차량으로 운전하는 70km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거리이지만, 비 맞으며 산길을 달려온 스쿠터로는 참 멀게도 느껴지는 거리이다. 해안을 향하는 도로에서 전망대를 가르키는 팻말을 따라 스풋을 세워두고 200미터 정도 걸어 들어간다. 소나무숲길을 지나자 삐죽한 바위가 바다로 뻗어 내려가는 동양화의 한 폭 같은 경치가 눈앞에서 벌어진다. 수 일 만에 다시 만난 바다이다. 멀지 않은 내륙의 길을 돌아서 다시 바다로 오는데 꼬박 4일이 걸렸다.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실실 나온다.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토와다코를 거치지 않고 미사와시에서 곧장 남쪽으로 달려 내려갔다면 지금 즘이면 센다이를 지나고 있었을게다.
드디어 내륙의 길을 지나와 동쪽해안에 도착했다. 길가에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 요코누마 전망대로 향한다.
비는 벌써 그친상태다.
200미터가량 소나무숲길을 지나간다.
속시원해지는 요코누마 전망대가 눈 앞에 나타난다.
요코누마전망대에서의 해안풍경. 절경이 따로없다. 게다가 4일만에 만난 바다의 풍경이라 보고있는것만으로도 즐겁다.
실실 웃음이 난다.
요코누마전망대 인근 풍경.
요코누마 전망대에서 도로를 따라 약간 북상하면 조그마한 포구가 있다.
포구에서의 풍경조차 아름답기 그지없다.
요코누마포구
다시 45번 국도로 돌아와서 남쪽을 향해 달린다. 쿠지시를 지나 268번 현도를 따라 코소데해안길을 지난다. 기이한 바위와 해안동굴이 몇 킬로미터 가량 이어지더니 다시 길이 산속으로 지나간다. 삼나무에 이끼가 가득한 길을 지나려니 문득 걸어서 지났던 시코쿠의 깊은 산속 길이 생각난다. 이젠 그것도 그립다. 다시 45번 국도로 돌아와 주유를 하고 후다이하마 야영장을 찾아 나선다. 마을을 지나 해수욕장으로 꺽어 들어가는 길을 놓치고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두리번거리며 찾아온 해안가에는 적송이 높다랗게 늘어서 있다. 깨끗한 모래사장에 잘 관리된 소나무 숲이 들어서있어서 해안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아무도 없다. 샤워장은 잠겨있고, 화장실과 취사장만 이용가능하다. 넓다란 해안가의 사이트에 언제나처럼 혼자서 텐트를 친다. 짐을 풀고 있으려니 관리하시는 할아버지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영수증만을 써준다. 성수기의 사용료가 300엔인데, 안받으신다
쿠지시를 지나는 길에 카메라 메모리가 가득차서 USB 메모리를 구입할겸 들런 홈센타.
일본은 이런 홈센타를 자주 볼수있다.
쿠지시를 지나 해안을 따라 가는 298번 현도 도중에 나타난 낡은 전망대.
올라가는 것도 위태로울 정도이지만 보이는 풍경은 근사하다.
낡은 전망대에서 보이는 코소데 해안 풍경.
전망대에서의 해안풍경.
전망대에서의 해안풍경.
298번 현도를 따라 쿠지시에서 남하하는 코소데 해안 풍경
길옆으로 그림같은 기암들이 즐비해있다.
낡은 빈집과도 잘 어울리는 해안풍경
도깨비 뿔모양의 암반도 보인다.
바다로도 터널이 열려있고, 땅으로도 터널이 열려있는 해안도로
돌섬에도 터널이 뚫려있다.
코소데 해안가의 암반 시리즈1
코소데 해안가의 암반 시리즈2
코소데 해안가의 암반 시리즈3
코소데 해안을 따르던 길이 끝나는 즈음에 일본해녀의 북방한계선(서식하는 생물도 아닌데 북방한계선까지 있다!!)인 코소데포구마을이 있다.
부둣가에는 코소데 해녀센타 건물도 보인다.
포구의 기암
포구에서 꺽이는 길은 산길로 접어든다. 울창한 삼나무숲길은 내린 비때문에 습기가 가득하여 음습하다.
시멘트로 통째 경사면을 덮어놓은 사방벽에도 시간이 지나 초록색 융단같은 이끼가 그득 자라있다.
극지방의 오로라가 벽속으로 박혀든것만 같다.
태평양을 따라 달리는 일본 북동부 해안의 45번 국도
오후 늦게 구름사이로 강하게 새어나온 빛이 해안의 기암들에 부딪혀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렇듯 에너지를 가진 하나는 많은 것들을 부수적으로 엮어낸다.
오다보니 야영장이 있는 후다이하마 해수욕장을 지나버렸다. 되돌아보면 가까운 거리인데 곧장 가는 길이 없어서 마을길로 한참 돌아서 가야한다.
내일 날씨가 궁금해서 할아버지께 여쭤보니 내일도 비가 올거란다. 혹시 모르니 텐트를 취사장 안으로 옮기라고 알려주신다. 저녁으로 인근의 마을 슈퍼에서 산 라면과 김치를 먹는다. 라면은 너무 느끼하고, 김치에서는 쓴맛이 난다. 역시 김치는 한국김치가 최고다. 편의점을 잘 뒤져보면, 종갓집김치와 한울김치 등의 한국산 김치가 있다. 일본김치가 못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모르게 약간 다른 맛이 난다.
휴가시즌이 지난 해안가의 한적한 야영장에는 파도소리만 가득 들려온다.
후다이하마 해수욕장의 야영장 가는길. 높다랗게 자란 적송이 근사하다.
후다이하마 해수욕장 캠핑사이트. 바다를 향해 시원하게 열린 곳이다.
일몰 후의 후다이하마 해수욕장
일몰 후의 후다이하마 해수욕장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숙박지 : 후다이하마 해수욕장 야영장
- 유료: 300엔/ 관리인이 돈을 받지않아 무료사용
- 비수기에는 화장실, 취사장만 사용가능
* 관광안내
* 이동거리 및 경로 : 165km
토와다코 오이데캠핑장 → 이와타현 쿠지시 → 후다이하마 해수욕장 야영장
큰 지도에서 스쿠터일본일주-40일차 경로 보기
'길을나서다 > 스쿠터일본일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쿠터 일본가다] 42일차, 극락정토의 이름을 가진 조도가하마를 지나다. (0) | 2011.05.13 |
---|---|
[스쿠터 일본가다] 41일차, 리쿠추해안 국립공원의 잊지 못할 선경 (0) | 2011.05.11 |
[스쿠터 일본가다] 39일차, 원시림의 트래킹코스 오이라세 계류를 지나다 (0) | 2011.05.10 |
[스쿠터 일본가다] 37~38일차, 우연히 만난 에어쇼와 외딴 캠핑장 (0) | 2011.05.09 |
[스쿠터 일본가다] 36일차, 일본 혼슈 최북단 오오마곶을 지나 남쪽으로 (0) | 2011.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