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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나서다/스쿠터일본일주

[스쿠터 일본가다] 26일차, 일본 최북단 소야곶과 하늘 좋은날/북해도10日








밤새 텐트가 휘청이도록 바람이 불어댔다. 다행히 며칠 전 처럼 폴대가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침낭 속에 몸을 집어넣지 않고 이불처럼 덮고만 잤더니, 새벽녘에는 자다가 깰 정도로 한기가 느껴진다. 솔밭 한 가운데에 텐트를 치면서 바람이 많이 분 탓에 평소에는 설치하지도 않는 고정용 로프까지 묶어 놓았다. 철수하기 위해 풀려고 하니 그것때문에 귀찮다. 텐트를 다 벗겨내고, 느긋이 돗자리에 앉아 야끼소바 컵라면을 아침 삼아 먹는다. 아침부터 야끼소바라니 웃기는 상황이다. 귀차니즘 때문에 라면이 주식이 되고 있다. 원하는대로, 꺼리낌없이 길 위를 실컷 돌아다닐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만족하는 내게, 길 위에서 먹는 음식의 질 따위는 이미 그다지 중요치 않으므로 상관없기는 하다.


짐 정리를 끝내고 나자, 8시 30분이다. 주차장에 내려가 보니, 바이크를 손 보느라 분주한 청년 옆에 아저씨 한 명이 이래저래 말을 걸고 있다. 내 바이크와 번호판을 보더니 내게도 말을 걸어온다. 오늘따라 몸이 퉁퉁 부풀어 부어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친절하거나, 사교적인 성격도 아닌 내가 꼬박꼬박 답변을 하기에는 귀찮기 그지없다. 그래서 인사를 해오는 첫마디부터 짧은 영어로 답변을 해버리자, 내게 질문 던지는 것을 그만두고, 옆에서 바이크를 보수하고 있는 청년에게로 다시 간다. 단순한 궁금증에 매몰된 호기심은 귀찮을 뿐이다.


사이드백에 짐을 다 쑤셔넣고 출발하려는 찰나, 자전거로 여행하는 청년 한명이 가방을 꾸리더니 먼저 앞서서 달려가고 있다. 그는 얼마나 달려온걸까. 스스로를 내던지며 나서는 길은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법이다. 시동을 걸고 앞으로 달려나가자, 춥다. 어제 산 긴팔 티셔츠에 민소매 집업을 입었음에도 쌀쌀한 날씨다. 게다가 오늘도 어제 만큼이나 바람이 불어 대고 있다. 아직도 9월인 지금이 내게는 아무래도 여름 같지만, 북해도의 날씨는 내 살아온 관성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왓카나이 시내를 지나 소야미사키(소야곶)로 향한다.




왓카나이 삼림공원 캠핑장. 제법 오랫동안 텐트를 쳐왔는데도 남들처럼 각이 생겨나질 않는다.

지난밤 바람에 부러지지 않은 폴대에 감사한 아침이다.



공원을 내려가며 보이는 왓카나이 항.



왓카나이 공원의 상징인 효세츠노몬(氷雪の門) 탑이 공원을 내려가는 길에 보인다.

높이 8m의 문 사이에는 2.4m의 여인상이 서 있고, 한 때 일본인들이 거주하기도 했던 사할린을 바라보고 있다.

가라후토(사할린) 도민들의 위령탑이다. 자국민들을 위한 위령탑에, 사할린에 징용당해 되돌아오지 못한 조선인 3만명이 겹쳐져서 눈앞의 바다색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먼 바다를 향해 잠시 눈을 감아본다. 맑은날에는 이곳에서 사할린이 보인다고 한다. 

사할린은 왓카나이에서 직선거리 60km정도 떨어져 있다.




해안선을 따라 휘어지는 완만한 해변이 아주 길게 이어지고, 저 멀리로 소야곶이 있는 북쪽으로 툭 튀어나간 지형이 보인다. 일본 최북단의 땅 소야곶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소야곶이 가까워지자, 묘하게도 파도가 해안선 부근에는 잔잔하고, 100~200m 정도 떨어진 바다에서 부터는 파도가 일어나고 있다. 그 탓에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경로임에도 마치 잔잔한 호숫가를 달리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속도를 잘 높이지 않는 편이지만, 잔잔한 바다가 옆을 계속 따르고 있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속력을 올려본다. 부다다 하는 엔진소음과 바닷바람을 뚜렷하게 맞닿뜨리며 소야곶에 도착했다.


소야미사키에 세워진 많은 오토바이들 틈에 스풋을 세워두고, 천천히 바다를 구경한다. 최북단의 의미만을 제외한다면 별다른 특이점은 없는 곳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의미와 가치로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다. 내 두 발로 올 수 있는 최북단에 왔다는 의미로 인해 잠시동안 아무것도 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감상에 빠져든다. 다시 바이크를 몰아 소야곶 뒷 편으로 이어지는 좁은 도로를 따라 소야구릉길을 따라 달린다. 구릉산지의 목초 방목지에는 시커먼 흑우들이 풀어져서 방목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아름답고 평온한 광경이 길 옆으로 펼쳐지고 있다. 하늘과 구름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목초지 위에 떠있다.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길을 따라 돌아다닌다. 이런 풍경 옆을 계속 달리다보니, 내 능력과는 상관없이 어쩐지 소설이 쓰고 싶어진다. 예전 시코쿠의 길 위에서도 이런 충동이 느껴졌던 적이 있었다. 길 옆의 아름답고 평온한 길이 배경이 되는, 이미 세상에는 사랑이야기가 차고 넘치건만 하나더 써서 보태고 싶어진다. 머릿속의 이야기와 현실을 넘나드는 내 앞으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구릉성 산지의 오목한 계곡의 길 위로 구름이 선명한 하늘과 나, 그리고 스풋. 이게 이곳의 전부다. 차량이 없는 조용하고 한적한 길을 여유있게 달려본다. 이런 풍경을 만날때면, 길을 달리는 스스로가 더욱 가치있게 여겨질 뿐더러, 세상 모든것이 귀하게 여겨진다. 물론 여행하지 않는 일상에서도 자존감이야 차고 넘칠 정도로 충만하지만 말이다.




왓카나이에서 소야곶으로 향하는 도중의 해안. 길게 이어지는 해안 도로 옆으로 하얀 포말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휘어진 만으로 몰아쳐오는 파도 너머로 소야곶의 구릉지가 멀리로 보인다.



소야곶을 향하는 도중 어촌마을. 마을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서 조금만 더가면 소야곶이다.



소야곶을 향하는 어촌마을. 마을 뒷편으로 구릉지의 초지가 부드럽게 이어진다.

정상 부위에는 풍력발전기가 수십기 서있다.



해안이 독특하다. 해안에서 가까운 100미터 정도의 부근은 파도가 잔잔하고, 그 바깥에서 하얀 포말의 파도가 일어나고 있다.

낮은 해안 암반이 해안 가까이의 바닥에 넓게 깔려있는듯 하다.



일본의 최북단인 소야곶(宗谷岬, 소야미사키)에 도착했다.


최북단임을 알리는 소야미사키의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내 바이크로 올 수 있는 가장 북쪽에 도착했다는 의미와 바다 위로 파랗게 펼쳐지는 하늘 때문에 울컥해지는 곳이다.



소야곶 가까이의 얕은 바다. 바닥이 드러나도록 투명하다.

조그마한 물고기들도 왔다갔다 한다.



차량보다 바이크가 더많이 보인다.



소야곶 뒷편의 언덕. 소야곶과 인근 지형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풀밭이 곱게 깔린 언덕 한 켠에는 이런 전망대가 서있다.



전망대에서 내려 보이는 해안선. 바다와 인근의 집들이 내려다 보인다.



사방을 가르키는 이정표에는 각 도시들까지의 거리가 적혀있다.

동경 1106km, 사할린 40km, 오키나와 이시가키 2849km, 

미국 앵커리지 4845km, 필리핀 바지오 3,820km, 시리시 레분토 73km.

이정표를 만나는 것은 지도를 들여다 보는 것이나 산꼭대기에 올라서는 것과 비슷하다.

물리적인 한계에 갖혀있는 신체와 인식을 한없이 멀리까지 확장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몸은 일본의 북쪽 끝에 서있지만, 내 의식은 필리핀을 지나 적도에 가 닿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 동부해안까지 가 닿는다.

좁은 내가 한 없이 넓어질 수 있는 순간이다.



소야곶 뒷편의 구릉지를 향해 난 도로를 따라 가본다. 잠시 멈추고 되돌아 본 바다가 멀리서 푸른 색으로 빛나고 있다.



드넓은 목초지 저 멀리로 소야곶 너머의 파란 바다가 보인다.



구릉지가 도로 옆으로 쫘악 펼쳐지기 시작했다.



시야를 가로막는 조형물이라고는 하나 없는 드넓은 목초지다.



달려오는 도중 뒤돌아보면, 이런 길이다.



사방으로 연이어 펼쳐지는 목초지가 보인다.



길게 휘어지며 꺽이는 길. 어디즘 가고 있는지도 망각되는 그런 길이다.



드넓은 목초지에 흑우들이 점처럼 박혀있다.



그림같다, 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길이다.



목초지, 하늘, 가늘게 보이는 바다. 모든것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부다다~ 대며 지나는 스풋의 엔진소리에 풀을 뜯던 흑우 한마리가 고개를 슬며시 들더니 내 쪽을 바라본다.

손 한번 흔들어 주고는 지나간다.



전망이 광활하고 시원스런 소야구릉은 훗카이도유산(北海道 遺産)으로 지정되어 있다.

소야구릉은 2만년전 빙하기의 방하에 침식된 지형이다. 메이지 중기까지는 삼림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계속된 화재로 인해 지금의 낮은 초목들이 자라는 구릉이 되었다고 한다.




■ 훗카이도유산(北海道 遺産)이란?

다음 세대에 이어줄 유형, 무형의 재산 중에서 북해 도민 전체의 보물로 선정된 것이 "홋카이도 유산"이다.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자연, 역사, 문화, 생활, 산업 등 각 분야에 걸쳐 훗카이도 도민의 참여로 선정되었다. 2001년 10월에 1차 선정 분 25개가 결정 공표되었고,2004년 10월에 2차 선정 분 27건이 결정되어, 홋카이도 유산은 총 52 개가 되었다.


■ 홋카이도 유산 구상이란?

훗카이도의 보물을 지역에서 보호, 육성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활기와 장점을 키워, 새로운 매력을 가진 홋카이도를 창조해 나가는 도민 운동이 바로 "홋카이도 유산 구상"이다. 홋카이도 유산은 관 주도가 아닌 훗카이도 유산에 애착을 가지고 활동하는 시민단체가 구상하는 것이 특징이다. 훗카이도 유산을 보호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활용을 통해 인적자원 조성과  관광 촉진을 비롯한 경제 활성화로 이어 나가는 것이, 이 구상의 최대의 목적이다.

 ○ 지역의 보물을 발굴, 육성 활용하는 과정에서 지역인프라 조성, 인적자원 육성

 ○ 자신이 사는 마을이나 지역에 대한 애착과 긍지를 양성하는 

 ○ 관광 촉진을 비롯해 지역 경제 활성화로 연결


■ 훗카이도유산 선정기준?

학술적인 가치와 미적 가치 등의 "객관적인 평가 기준"뿐만 아니라 지역이 보전 활용해서에 사용하고있는 것이나, 미래의 가치에 기대할 수있는 것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 52개의 훗카이도유산


■ 훗카이도유산 홈페이지 : http://www.hokkaidoisan.org/


■ 훗카이도 유산안내 브로셔 다운로드(한글 pdf)


     북해도유산01-표지.pdf


      북해도유산02-분포도.pdf


      북해도유산03-소개01.pdf


      북해도유산04-소개02.pdf


      북해도유산05-소개03.pdf


      북해도유산06-소개04.pdf


(자료출처 훗카이도유산 홈페이지)






흑우가 풀을 뜯고, 하늘은 더없이 맑고, 구름은 솜사탕 같으며, 길은 깔끔하게 휘어지는 곳.

소야구릉의 모든 것이 그림이다.



아름다운 장소에 있다보니, 지나가는 이 마저도 특별하게 보인다.

시원하게 내리막 길을 질주하는 자전거가 지나간다.



소야구릉을 내려오자, 소야곶을 향해 달렸던 해안도로와 다시 만난다.

소야구릉의 길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해안도로는 그만두고 다시 소야구릉을 향해 왔던길로 되돌아 달린다.



소야곶에서 더 먼 쪽으로는 풍력발전기가 구릉을 따라 가득 늘어서 있다.



길을 천천히 따라 달리다가 멈췄다. 소들이 풀을 뜯는 목초지에 사슴이 보여서다.

새끼가 따라오기를 기다리던 어미는 멀리 떨어진채 바라보는 내 쪽을 한 동안 바라보더니, 스프링처럼 통통 튀는 움직임으로 바람처럼 뛰어가 버렸다.



소야곶 해안에서 가까운 목초지에도 흑우들이 풀을 뜯고 있다. 이 인근은 3,000마리 가량의 흑우들이 방목되는 곳이다.




소야미사키 바로 인근의 주요소에서 기름을 넣자, 조그마한 카드의 최북단 방문인증서와 기념 가리비를 준다. 특이한 곳이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는데다, 기념품까지 받으니 더욱 그렇다. 이어지는 해안도로인 국도 238호선을 따라 달린다. 지금부터는 훗카이도의 동쪽해안과 짙푸른 오오츠크해를 따라 남하하는 해안도로가 시작된다. 오늘도 길 옆에 세워진 전광판에서는 풍속 5m/s, 기온 21'C로 적혀나온다. 리시리섬에서의 어제 만큼은 아니지만, 오늘도 제법 쎈 바람이 불고 있다. 덕분에 체감온도는 더 낮다. 늦가을 같은 날씨다. 걸어다니는 행인들은 바이크 만큼 바람을 타지 않으므로 반팔옷을 입고 오가고 있다.


주욱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달린다. 소야군의 포로호수를 지나기 직전 좌측 바다쪽으로 원생화원의 간판이 보인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틀림없이 초원길과 들꽃들을 만날 수 있는 산책로가 있을것이다. 하루종일 바이크만 타고 있었더니, 걷고 싶어진다. 길지않은 진입로의 끝에 주차장과 높다란 조망타워가 세워져 있다. 스풋을 주차장에 세우고, 베니야 원생화원의 초지를 향해 걸어간다. 들꽃들과 초록의 낮은 풀들이 가득 자라는 초원과 습지를 걸어 지나자, 바다가 나타났다. 오츠크해의 바다가 아름다운 물빛으로 눈 앞에 놓여있다. 




해안 마을을 지난다. 훗카이도의 대부분의 집들은 얇은 철판을 지붕 위에 덧씌운 형태다.



국도 238호선을 달려 훗카이도의 동쪽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길이 시작된다.



길 앞으로 나타나는 해안선과 오츠크해의 바다가 시원스럽다.



훗카이도의 북쪽인 이 근방은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곳곳에서 풍력발전기가 눈에 띄인다.



해안을 따라 꺽어지는 아름다운 도로가 연이어진다.



낮은 구릉성의 산지와 푸른 바다의 해안선이 쭈욱 뻗은 도로 옆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바다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도 지난다.



하늘이 참 맑은 날이다. 오늘 같은 날은 하늘에 취해서 길을 달려가는 날이다.



완만한 해안선이 길게 이어지는 바닷가에는 낚시꾼 1명이 십여개의 낚시대를 한꺼번에 세워둔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이런 식의 낚시 방식은 처음본다.



길게 달리던 해안선 옆으로, 주차지역이 나타났다.

이 인근의 바다는 가리비가 많이 나는 곳으로, 일본 제일의 가리비 산지이기도 하다.



주차지역에 놓인 화석군.

신생대3기, 약 4천만년전에 만들어졌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40톤 짜리 커다란 바위의 여기저기에서 조개와 가리비의 화석 흔적이 보인다.



오츠크해로 흘러드는 하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손을 대지 않아 깔끔한 원래모습을 지니고있다.



비행선처럼 두둥실 떠가는 구름들이 달리는 길 위에 가득이다.



길옆의 초지



길옆의 초지. 땅을 개발하기위해 손을 댄 흔적이라고는 전혀없는, 단지 넓기만한 초지가 이어진다.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머리 위를 뒤덮은 날, 멈추고 싶지도, 멈출 이유도 없는 길이다.



국도변을 잠시 벗어나 베니야 원생화원으로 들어왔다.

원생화원은 인간이 손을 대지 않고 자연 그대로 상태에서 꽃이 피는 습지와 초원 지대를 말한다.

독특한 식물을 볼 수있으며, 오호츠크해 연안을 비롯하여 道東~道北 지방에 많이 분포한다



바이크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드넓은 초지로 걸어서 들어선다.



습지의 식물들 사이로 나무판의 길이 꼼꼼하니 깔려있다.



바다로 이어지는 길과, 넓은 초지, 파란 하늘. 이것들이 걷는 길의 모든 것이다.



베니야원생화원 탐방로



바람에 찰랑이는 작은 호수가 습지 가운데를 가로질러 길게 놓여있다.



늦여름의 원생화원에는 색색의 조그마한 꽃들이 피어있다.

원생화원을 걷는 묘미의 하나는 작은 들꽃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 바다가 나타났다.



초지의 길을 지나서자, 파란 하늘과 오츠크해의 바다가 눈앞에 나타났다.

지나온 길 끝에 다른 세상 하나가 생겨 난것만 같다.




다시 바이크에 올라타고, 사로후츠무라의 오오누마(大沼) 호수를 향한다. 해안을 따르던 길이 잠시 마을을 지나 내륙으로 이어진다. 오오누마호수가 내려다 보인다는 목장지대의 크로바 언덕으로 향한다. 오오누마 호수를 지나 달리는 길 옆으로는 줄곧 목장이 있다. 언덕배기에 여유롭게 풀을 뜯는 소들이 내내 보이는 길이다. 도로에서 목장지로 올라가는 지점에는 크로바 언덕을 알리는 조그마한 이정표만 있을 뿐이다. 이리저리 헤매며 인근 지대에서 가장 높은 크로바 언덕에 올라섰다. 생각보다 오오누마 호수가 멀리 떨어져 있다. 목장지대의 끝까지 걸어나간다면 호수가 어느정도는 보일지 모르겠지만, 길에서는 약간만 보여질 뿐이다. 목장지대 초지의 평온한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다.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 가무이(神成)곶에서 스풋의 엔진을 쉬일 겸 40분 가량 바다 가까이에서 쉬었다간다. 해안으로 부터 3~4미터 가량 높이 솟아있는 도로의 가장 자리에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자니, 눈 앞의 바다가 동공을 투과해 몸 속으로 곧장 들어오는 느낌이다. 가까운 바위 암반 위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멋있는 포즈로 낚시를 즐기고 있다. 익숙하면서도 부드럽고, 동작 큰 자세에서 바다를 닮은 여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 풍긴다. 




오오누마 호수에서 크로바 언덕으로 향하는 길.



목장이 줄줄이 들어서 있는 도로에는 횡단하는 소를 주의하라는 재미난 표지판이 보인다.



시야를 가로 막는 높은 산지가 전혀 없는 쭈욱 뻗은 내륙의 도로를 달린다.



크로바 언덕길



크로바 언덕에서 보이는 오오누마 호수방향. 호수가 시원스레 조망되지는 않는다.

시원스러운 초지와 목장지의 풍경이 광활한 곳이다.



사진작가들이 담은 컷에서 보이던 목장의 장면들이 지나간다.

그들처럼 나도 따라 찍어본다.



해안도로를 따라 가무이곶으로 향한다.



코뿔소 콧등 처럼 생긴 가무이곶을 향해 달리는 길.



가무이곶을 돌아나와 한적한 도로변 끝에서 잠시 쉬어간다.

해안선이 시원스러운 바다다.




벌써 시간이 3시 30분이 되었다. 다시 출발이다. 오늘은 여기서 50km정도 떨어진 우타노보리(うたのぼり) 펜케나이에 있는 후레아이모리(ふれあい森) 무료캠프장에서 하루 머무르기로 한다. 원래 예정은 150km는 더떨어진 세로야 호수 부근의 무료캠핑장이었으나, 스풋의 엔진도 걱정스러운데다가 이래저래 느리게 움직이고 있기도 해서다. 빡빡하게 길을 달리는 것보다, 여유있는 여정에 더 많은 것들이 끼어들수 있기도 하다.


에사시(枝幸) 시가지가 나타났다. 마을로 진입하는 길을 따라가며 슈퍼를 찾는다. 길 옆으로 보이는 슈퍼마켓에 들어가 저녁과 아침거리를 준비하고 나온다. 라면을 대체할 만한 것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김치도 없는 슈퍼다. 시 자체가 조그마한 도시다. 읍소재지의 마을정도 될터인데, 일본에서는 시(市)라고 붙어있다. 행정체계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가 보다.


해안도로에서 내륙으로 12km정도 꺽어 달린다. 달리는 내내 주변과 길 가까이로 집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광활한 느낌의 훗카이도. 이 큰 섬의 최대 매력은 이런것일테다. 거침없이 자연 속에 놓일 수 있는 시간을 부여 받는 것. 해안도로와 내륙의 도로를 따라 길게, 아주 길게 달려보는것. 내륙의 구릉, 목초지를 따라 하늘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거침없이 내달리는 것. 그리고 멈춰선 곳에서는 아득하고 파란 하늘이 늘 머리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것. 그것이 이 훗카이도가 가진 마력 일 것이다. 훗카이도에 온다면, 유명관광지를 제하더라도 훌륭하리 만큼 마음에 와 닿는 사방에 펼쳐진 자연과 길게 이어진 길은 반드시 달려보아야 한다. 반드시.


인적 없는 내륙길을 지나 나타난 조그마한 마을에 편의점인 세이코 마트가 있다. 김치를 사들고 다시 캠핑장을 향해 달린다. 신호 대기중에 멈춰선 앞에는 먼저와서 기다리는 스포츠형 바이크가 두대 나란히 멈춰서 있다.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자 부아앙 하는 소리만을 남기고 시원스럽게 앞으로 사라진다. 스풋은 감당하지도 못할 속도다. 바람처럼 앞을 지나치는 큰배기량의 바이크들이 자주 눈에 띄인다. 이럴때면, 저렇게 슈웅 사라지는 바이크를 한번즈음은 타보고 싶기도 하다. 이런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다시 생각해보면 속력이 빠른것들은 멈춰서기 힘든법이다. 나처럼 느긋느긋 달리다가, 서다가를 반복하는 여행자에겐 지금 타고다니는 스쿠터인 스풋이상으로 좋은 건 없는거다. 그런생각이 드니 괜시리 헤드라이트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다. 고장없이 여기까지 잘 달려준 기특한 녀석.


소야곶에서도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보다 바이크가 더 많았던듯 하다. 역시 훗카이도는 바이크와 여행자의 천국이다. 오늘만 해도 훗카이도 북쪽의 외진길에서 어김없이 서너명의 자전거 여행자와 두어명의 도보여행자가 보였었다. 해가 산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시간이다. 산길을 달리는 도중, 길옆으로는 여전히 방목용 목초지가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이 생계수단일 터다. 그 생계 목적의 초지가 여행자들과 길지나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들고 있다. 


'건강회복촌'이라는 한문의 간판이 길옆에 크게 세워져 있다. 그 아랫쪽에 조그맣게 후레이아모리 캠프장의 표식이 덧붙여져 있다. 달리던 길에서 간판이 가르키는 우측으로 길을 꺽어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간다. 골프장과 작은 호텔을 지나 1.5km정도 산길을 따라 도로가 이어진다. 캠핑장의 주차장에는 두대의 캠핑카가 먼저와서 세워져 있다. 텐트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가무이곶을 지나 에사시쵸를 향하는 길



훗카이도 서쪽의 사로베츠해안을 달려 왓카나이를 향하던 도중, 북위 45도의 기념비를 지났었다.

이제는 동쪽해안을 따라 북위 45도를 지나 남하하는 길이다.

적도를 기준으로 북쪽 끝이 북위 90도다. 지금이 딱 북반구의 중간지점, 중위도를 지나는 셈이다.



해안도로를 따르던 238번 국도에서 벗어나 내륙의 우타노보리 마을로 향한다.



우타노보리 마을을 지나, 120번 현도를 따라 한참을 더 달리자 간판이 나타났다.

건강회복촌과 미나미소야 골프장 간판이 함께 서있다. 건강회복촌 간판의 아래쪽에 조그맣게 캠프장이 표시되어 있다. 오늘의 목적지다.



골프장과 호텔을 지나 산길을 잠시 달려오르자, 유메노모리 캠핑장이 나타났다.



나지막한 산의 정상 부위의 숲에 위치한 무료 캠핑장이다.




다섯시를 넘어선 시간이라 관리인도 없다. 취사장과 화장실이 가까운 적당한 장소에 텐트를 설치하고, 호텔을 지나오며 보았던 조그마한 온천(가정집 사이즈의)으로 향한다. 짐은 모두 텐트안에 넣어두고, 지갑과 수건만을 들고 온천에 들어선다. 400엔을 지불하고 들어온 천연온천의 탕속은 누런 물이 가득하다. 아무도 없는 탕에서 느긋하고 여유롭게 온천을 즐긴다. 온천에서 되돌아오니, 날이 저물어서 어두워졌다. 물을 끓이고 슬슬 저녁준비를 한다. 만두라면을 끓이려고 사온 만두를 집어넣었더니, 우리나라보다 훨씬 부드러운 만두의 피가 싸악 풀려서는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국물까지 짜다. 대충 저녁을 먹는 사이 조용한 캠핑장으로 부다다다하는 바이크 엔진소리가 들려온다. 라이더 한명이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텐트를 설치하고 있다.


산속의 캠핑장이라, 침낭 속에 쏙 들어가 누워있어도 살짝 한기가 느껴진다. 더없이 고요한 산속의 캠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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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박지 : 후레아이노모리 캠핑장

  - 무료, 일부시설 유료

  - 취사장, 화장실 있음. 샤워장 없음(인근 온천있음)

 

* 여행정보 

  숙박지 : http://www.pref.hokkaido.lg.jp/sr/sky/homepage/katuyou/taiken/05fields/5-10souya/data/fl207.htm

  - 에사시군 에사시쵸 홈페이지 : http://www.town.esashi.hokkaido.jp/contents/guide/digs/index.html#

 

* 이동거리 및 경로 :  220km

   왓카나이 삼림공원  소야곶  소야군 사루후츠무라  세이야 원생화원  오오누마 크로바언덕  에사시쵸 

     후레아이노모리 캠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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