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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나서다/스쿠터일본일주

[스쿠터 일본가다] 23일차-1, 일본최북단의 섬 레분토를 달리다/북해도7日









새벽 2시즘에 추워서 잠을 깼다. 어지간 하면 그냥 웅크리고 자버릴텐데, 도저히 추워서 더 잘 수가 없다. 침낭을 깜빡하고 바이크 사이드백에서 꺼내지 않은 탓이다. 자다말고 일어나 발 밑의 배낭 안에 들어있는 바람막이 긴팔 옷과 후드 집업까지 끼어 입고 누웠었음에도 새벽의 한기가 여전하다. 왓카나이는 일년내내 바람이 세게 불어오는 곳인데다, 일본의 가장 북쪽 도시다. 그래선지 유독 한기가 더하다.


할 수 없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스풋이 세워진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사이드백을 헤집어 열고 침낭을 꺼내들고 돌아온다. 잠들기 전에 없어도 되려니 싶어 놔둔채 그냥 잤더니, 결국 그 귀차니즘 때문에 새벽에 자다말고 이 고생이다. 침낭을 덮고 다시 잠이 든 후, 깨어나보니 7시다. 보통때면, 5시 30분 ~ 6시 정도면 일어나는데, 1시간이나 늦게 일어났다. 아무래도 새벽에 침낭을 꺼내느라 잠을 설친 탓인것 같다.


부시시 일어나 텐트 바깥으로 나와보니, 주변의 텐트들이 대부분 철수를 위해 정리를 하고 있다. 내려다 보이는 주차장에는 어젯밤보다  바이크가 더 늘어나 있다. 무료캠핑장이라서 찾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지금까지 캠핑장 중 이용객이 가장 많다. 게다가 토요일이라 더 하다. 



왓카나이 삼림공원 캠핑장 / 주차장

주차장에는 승합차나 승용차로만 여행하는 차량들도 보인다. 승합차의 경우 잠은 차량내부에서 자고, 음식은 주차장이나 캠핑장에서 해먹는다. 

승용차 여행자는 텐트를 치는 경우도 있고, 차량내부를 그냥 숙박장소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문인지 여행중인 차량 내부에는 커튼이 많이 달려있다.



어제 사놓은 우유와 빵을 아침삼아 먹고 짐정리를 한다. 사이드백에 의류팩과 침낭, 에어매트를 꾹꾹 눌러 집어 넣는 도중,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후다닥 바이크 커버를 씌워두고 짐을 놔두었던 텐트 사이트로 달려간다. 텐트를 접어 넣고, 풀밭 위에 돗자리만을 펴서 그냥 올려 놓은 가방과 나머지 짐들이 갑자기 쏟아진 비에 젖고 있다. 서둘러 나무 아래로 짐들을 피신시킨다. 10분 정도 지나자 비가 그친다. 지나는 소나기였나 보다.


다시 짐을 마저 챙긴 후 출발 준비를 마친다. 9시 30분, 다시 하루의 길을 시작한다. 삼림공원 캠핑장이 위치한 산의 더 윗쪽에는 왓카나이 시카이키 100주년 기념탑이 높다랗게 서있다. 네모난 기둥처럼 서있는 탑이 산정상으로 올려 보인다. 틀림없이 탑이 있는 위치에서 왓카나이 시내가 내려다 보일 것 같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나다. 길을 대충 찾아서 기념탑을 향해 스풋을 몰아 올라간다.


도착해서보니, 탑내 입장료가 400엔이다. 탑 앞의 언덕배기에서도 인근의 지역이 시원스럽게 내려다 보이므로 유료입장은 포기한다. 탑위로 올라가지 않더라도 시원한 전망이다. 레분토와 리시리섬으로 가는 페리 선박이 정박해 있는 항구와 왓카나이 시내 일대가 전부 내려다 보이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산정상이 구릉지대로 되어 완만한 편이다. 기념탑 뒷쪽으로는 구릉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산너머까지 이어지고 있다. 왓카나이시와 앞 바다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가, 페리 항구로 향한다. 




왓카나이 시카이키 100주년 기념탑

 왓카나이시(稚内市) 창립 100주년과 시정 30주년을 기념해서 1978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철골조로 만든 2층의 북방기념관(北方記念館)을 토대로  지상 80m의 높이를 가진 철골콘크리트 기념탑이다. 탑의 정상에는 높이 70m의 전망대가 있어 이곳에서 왓카나이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날씨가 좋은날은 인근의 사로베츠(サロベツ), 오호츠크해, 리시리(利尻), 레분(礼文)은 물론이고 사할린까지 파노라마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1, 2층에 자리잡고 있는 북방기념관에는 사할린 관계의 자료와 소야(宗谷, 훗카이도 최북단 지역)지방의 개척 자료와 발굴된 고고자료, 자연과 동물, 산업자료가 전시되어져 있다.



100주년 기념탑 앞의 언덕에 서자, 왓카나이 시가지와 그 너머로 어렴풋하게 소야(宗谷)곶까지 보인다.

왓카나이시가 도시로써는 최북단에 위치해 있지만, 물리적인 지형으로는 저 멀리 보이는 소야곶이 훗카이도와 일본의 최북단이다. 왓카나이시에서

사할린섬까지의 거리는 고작 43km이다. 그래서 100주년 기념관과 왓카나이 시내 곳곳에는 러시아 관련 문화들과 러시아어 간판이 있기도 하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바로 아래쪽의 언덕 위에는 공원묘원에 세워진 석비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묘지들을 보고 있자면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든다. 

생전에도 빼곡히 도시와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다가, 죽어서도 석비와 묘소를 빼곡히 이루어 모여 있는 답답한 모습들이다.

살아 생전 수많은 것들에 매여 살았을텐데, 사후에는 좀 더 자유로운 모습이어도 좋지 않을까. 

하긴 묘소란 죽은사람이 아닌 산사람들을 위해 의미가 더 큰 것이긴 하겠다.



멀지 않은 곳에 페리선착장이 보인다. 저 곳에서 레분섬과 리시리섬으로 가는 페리를 탄다.



기념탑이 서있는 산의 능선이 비스듬히 뒷쪽으로 보인다. 급하지 않은 스카이라인이다.



기념탑이 있는 이곳까지 자전거로 올라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산세가 완만하긴 하지만, 올라오는 도로는 굉장히 급한 경사다. 용케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들이다.



목장의 초지로 쓰이면 좋을 완만한 구릉산이 기념탑 뒷편으로 이어진다.




인근 마을의 학생 마라톤이 벌어지고 있나보다.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도로를 따라 얼굴이 벌게진 채 뛰어간다. 게중에는 지친듯 걸어가는 아이들도 보인다. 주변에는 응원하는 마을사람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한 녀석이 앞으로 지나가며 들이쉬는 거친 숨이 길 옆에까지 전해져 온다. 힘들어 보인다. 몰래 바이크 뒷자리에 태워서 피니쉬라인까지 데려다 주고싶을 정도다. 발로 뛰어야 하는 룰 속으로 다른 수단이 끼어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이야 숱하게 들어온것 아니던가. 그래서 나도 정해진 룰의 일부인양 자동차도로를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등교길을 따르는 학생마냥 달려오고 있다. 하지만, 뛰어가는 사람들의 행렬속으로 바이크도 밀어넣고, 손수레도 밀어넣고, 자전거, 유모차 들도 밀어넣어주고 싶은 충동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수 없다. 공상만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눈 앞으로 뛰어가던 아이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


도로를 통제하는 수신호에 따라 잠시 기다린 후, 마라톤 코스인 큰 도로 대신 마을 뒷편으로 에둘러 가는 차량들을 따라간다. 얼마간 가다보니 페리항 이정표가 보인다. 연료 게이지가 바닥이라, 항구 인근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운 후 페리선착장으로 향한다. 레분토까지 운행하는 페리 승선권의 가격이 바이크를 포함해서 4,800엔이다. 혼슈의 아오모리에서 훗카이도의 하코다테로 오던 페리보다 어째 요금이 더 비싸게 느껴진다. 훗카이도행 페리의 4시간 운항에 비해 레분토행의 1시간 40분을 운항은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인데 불구하고, 요금은 동일하다. 애초 목적지가 레분토였으므로, 비싼것 따위는 개의치 말고 무조건 배를 타야한다. 


티켓을 발권하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출발 10분 전이다. 관광안내 팜플렛이 꽂혀있는 가판 사이로 한글 팜플렛이 몇 개 보인다. 잽싸게 집어들고 서둘러 건물 바깥으로 나온다. 바이크에 올라타고, 두리번 거리며 승선장을 찾는다. 사람들이 올라타는 승선장쪽으로 스풋을 끌고가자, 승무원이 선박 뒷쪽으로 서둘러 돌아가라고 알려준다. 출항하기 위해 갑판문을 닫기 직전이다. 후다닥 서둘러서, 페리 꽁무니로 뛰어 들어간다. 바이크를 갑판에 고정시키던 승무원들이 스풋의 번호판을 보며 수근댄다. 한글도 보이고, 영문으로된 번호판도 겹쳐져게 붙어 있어서 이상한가 보다. 바이크가 고정되는 것을 확인하고, 배낭 만을 들고 3층 객실로 올라간다. 객실 뒷편의 배 후미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들이 선실 외부에 줄지어 놓여있고, 4층에는 지붕이 없는 전망 갑판이다. 배에 올라탄지 얼마되지 않아 페리가 왓카나이항으로 부터 점점 멀어진다. 왓카나이의 북쪽으로 툭 튀어나온 노샷푸곶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출발 10분을 남겨두고 서둘러 레분섬으로 향하는 페리에 올라탔다. 레분토를 향해 배가 항구를 떠난다.



4층 전망갑판. 사방으로 열린 바다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페리가 왓카나이 항을 빠져나와 오츠크해의 바다를 향한다.

이 페리는 레분섬-리시리섬-왓카나이를 순회하며 오가는 선박이다.



배가 진행하는 왼쪽으로 왓카나이시의 뾰족한 끝부분인 노샷푸곶이 보인다.



노샷푸곶이 점점 멀어진다. 완만한 구릉산 위로 출발전에 들렀던 왓카나이 100주년 기념탑이 희미하게 보인다.



배의 오른쪽으로는 일본의 진짜 최북단인 소야곶이 가늘게 보인다.



페리터미널 건물에서 뽑아온 관광안내서. 한글로된 팜플렛도 있어서 코스 설정에도 제법 유용하게 이용된다.

내 여정의 기본 계획은 해안선을 따라 일본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세부적인 포인트들은 하나도 잡혀있지 않다.

길을 가다가 눈길과 마음을 잡아끄는 곳이 있으면 멈추고, 그렇지 않으면 가던 길을 계속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정은 전날 밤에 결정된다.

이 팜플렛들도 순식간에 결정되는 여정에 한 몫 한다. 물론 레분토는 반드시 가고 싶었던 곳으로, 예외다.

팜플렛의 큰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훗카이도 흔들흔들 배의 여행" 한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쓸 수 없는 직관적인 문구가 인상적이다.



객실전경.통으로 넓은 마루형의 객실인 우리나라 연안여객선들과는 달리 작은 공간들로 나뉘어져 있다.

덕분에 누워서 뒹굴어도 남의 시선이 덜 부담스러운 곳이다.



여러개로 쪼개어진 객실들의 가운데에는 앉아서 기댈 수 있게 쿠션 파티션이 고정되어 있다.

연안 여객선 사이즈로는 엄청큰 페리임에도, 올라탄 승객들이 얼마 보이지 않는다.




바다로 나온지 30여분 지나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레분토(礼文島)에서는 비가 없어야 할텐데 걱정이다. 바다의 색이 거무스름한 짙푸른 감색으로 변했다. 내려다 보고 있으니, 약간 무서워 보인다. 그래도 파도는 그리 높지 않다. 작년 봄, 완도에서 제주를 향하는 페리에 올랐다가 누워있던 객실바닥에서 공중부양을 경험했던 기억이 난다. 엄청난 파도였다. 그때, 누운채 꼼짝않고 잠에 빠져들지 못했더라면 배멀미를 잘 하지 않는 나라도, 구토를 숨쉬듯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파도의 10분의 1 수준도 안된다.


객실 콘센트에 소켓을 꽂고 휴대폰과 MP3를 충전하며 잠시 누워 있는다. 살짝 요동치는 배를 등밑으로 느끼며 눈을 감고 있는 사이, 배가 레분섬의 항구에 가까워졌다. 방송이 흘러나온다. 짐을 챙겨들고 차량갑판으로 내려오니, 휑하다. 배에 실린 차량이 몇 대 없다. 이 큰 페리에 승용차 3대, 화물차 1대, 컨테이너 2개가 전부다.




바다 위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바다색도 짙은 감색으로 어두워졌다.



방송이 흘러나와 객실바깥을 보니, 레분토가 가득낀 구름 아래로 보이고 있다. 



내가 탄 페리와 같은 하트라인 페리가 곁을 지나간다. 왓카나이로 향하는 배이다



나지막한 섬의 산아래에 집들이 모여있는 레분토의 카후카(香深)항이 가까워졌다.



북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레분토의 일부가 어렴풋이 보인다.




차량갑판으로 내려오자 스풋이 튼튼하게 묶여있다. 레분토에 내리기 위해 하선 준비를 한다.




인구 3,400명의 조그마한 일본최북단의 섬 레분토(礼文島)에 드디어 배가 닿았다. 레분토의 길 위에 핀 꽃들을 만나고자 8월 중순부터 달리기 시작한 길이었건만, 어느새 9월이 되어 버렸다. 높아진 하늘, 선선한 날씨. 훗카이도는 이미 가을이 되어가고 있다. 배에서 내려서자, 비가 떨어지고 있다. 편의점에서 미리 사둔 김장봉투를 백팩에 씌우고, 우의를 껴입고 길을 달릴 준비를 한다. 엊그제 엄청나게 쏟아지던, 아프도록 떨어지던 빗속을 네 다섯 시간 달렸더니 이정도 가랑비는 걱정도 안된다. 이러니 사람은 한계를 경험해 봐야 하는거다. 자꾸만 한 발씩 넓어지는 스스로의 폭이 얼마나 더 넓어 질 수 있는지 틈날때 가보는거다.


우의를 껴입는 사이, 항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민박집 주인들이 잘곳을 구했냐며 묻는다. 캠핑장을 예약해 놨다는 거짓말로 그들을 뿌리치고 섬의 가장 남쪽끝을 향한다. 남쪽끝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며 레분토를 여행하기로 한다. 왠지 그 시작점을 정확하게 정해놓고 길을 달려야 할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레분토는 섬의 남쪽 끝에서 북쪽까지 일자형의 섬으로 동쪽해안을 따라 도로가 이어져 있다. 


헬멧에 맺혀 흘러내리는 비를 손으로 닦아내며, 작은 마을을 지나 섬의 남쪽끝에 도착했다. 해안으로 이어지는 길은 비포장으로 바뀐다. 그것마저도 얼마가지 않아 높다란 바위산에 막혀있다. 바이크를 세우고, 해안을 따라 자갈해안이 나타나는 곳까지 걸어본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레분토에 내딛은 첫 발이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고 있지만,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내 표정에는 연신 헤벌죽 웃음이 일어난다. 젖은 비포장길을 걷는 발걸음이 더없이 가볍다.




페리에서 내린 후 첫발을 내디딘 레분토의 남쪽끝 시레토코(知床) 해안.

레분토 여행을 이곳에서 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배낭을 덮어 씌운 반투명한 대형 폴리에틸렌백(김장봉투)은 일본 편의점에서 구할수 있다.



이어지던 도로가 주차장에서 끊어지고, 산책로가 다시 나타난다.



내리는 빗속으로 천천히 걸어나가자 몽돌 해안 옆으로 높다랗게 쏫은 구릉산이 앞을 막아선다.

비탈 중턱에 갈매기 둥지가 있는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바이크에 올라타서 우의를 잘 여미고, 섬의 북쪽을 향해 달린다. 레분토는 섬의 남북길이가 29km, 동서길이가 8km인 길죽한 섬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동쪽해안의 도로를 따라 살고 있다. 도로를 따라 조그만 어촌마을을 몇 개 지나, 10km 정도 더 달리자 비가 그치기 시작한다. 하늘이 밝아지고 있다. 낮은 구릉으로 된 섬의 산아래를 따르는 해안도로를 달린다. 우에도마리 마을을 지나자 내리막길 좌측으로 레분토의 유일한 호수인 구슈코(久種湖)호수가 보인다. 호수를 지나자 가옥들이 꽤 많이 밀집해 있는 후나도마리 마을이 연이어 나타난다. 레분토의 북쪽을 향해 달려가는 길을 잠시 멈추고 후나도마리 마을 해안으로 나가본다. 레분토 공항 방향으로 해안도로가 계속 이어져 있다. 산 위로 올려다 보이는 레분토 공항은 현재 폐쇄상태다. 천천히 도로를 따라 달려 레분토공항 앞으로 뾰족히 튀어나온 카네다곶(金田ノ岬)을 돌아간다. 내 뒷 쪽에서부터 택시 한대가 지나치더니, 200미터 앞에 멈춰선다. 차에서 기사와 타고있던 승객들이 내려 바다를 가르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도 그 근처에서 바이크를 멈추고 그들이 가르키는 바다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랬더니, 바다 위에서 뭔가 길게 드러 누워있는 것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물개처럼 보이는 물범이다. 해안에서 150미터 정도 떨어진 바다 위와 암초 위에 훗카이도와 사할린등지에서 서식한다는 잔점박이물범이 둥둥 떠있다. 잔점박이 물범은 이곳보다 약간 더 북쪽인 캄차카반도와 알래스카 그리고 훗카이도 부근에서 주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희귀동물이다. 신기하다. 동물원에서나 보던 물범을 눈 앞에서 직접 보게 될줄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하긴 이 길들을 달리고 있는 것도 상상이나 했던가.


더 자세히 보기위해 도로와 해안선을 경계지으며 허리 높이로 서있는 방파벽으로 올라섰다. 그러자 경계심 많은 물범들이 불쑥 튀어오른 나를 보고는 파다닥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 목만 빼꼼히 내밀고 있다. 그러면서 요상한 경계음을 물 속에서 내고 있다. 괜스레 평화로이 일상을 즐기고 있는 녀석들을 방해 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않다. 다시 방파벽 아래로 내려와 비스듬히 기대서서 납작 업드린 후, 느긋이 바라본다. 내가 서있는 해안 쪽을 연신 힐끔힐끔 보던 녀석들이 10분 정도 지나자 그제야 서너마리가 암초 위로 다시 올라온다. 굉장히 조심성이 많은 녀석들이다. 아까 그 택시는 관광택시였나 보다, 이 지역의 명소를 하나씩 보여주며 손님을 태워 다녔던 것이다. 덕분에 못보고 지나칠 뻔한 물범을 보게됐다. 운이 좋은 날이다.





섬의 북쪽을 향해 달리는 도중 뒤돌아본 레분토. 출발한 남쪽 끝이 아득하게 보인다.

아직도 비구름이 섬의 꼭두방에 가득 덮여있다.



북쪽을 향해 이어지는 해안선. 비가 그치지 않고 조금씩 내리고 있다.



도로를 따라 외따로 떨어져있는 집도 지나고,



연이어 늘어선 소박한 가옥들도 지난다.



레분토의 지명 이정표에는 마을마다 각각 다른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들꽃으로 유명한 섬이라 역시 이정표에도 꽃그림이 가득이다.



나지막한 구릉성 산지 아래로 길게 휘어지는 해안선이 독특하게 펼쳐진다. 산을 누군가 면도기로 밀어 놓은것 같다.



산을 따라 이어선 해안의 집들이 소담스럽다.



줄곳 바다 바로 옆에 도로가 나있다. 비가 슬슬 그치기 시작한다.



산을 넘어가는 도로 아래로 우에토마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마을끝에 툭 튀어나온 지형의 평지에 레분토공항이 있는 카네다 곶이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공항이다.



오르막길 옆으로 독특한 지형이 이어진다. 낮은 구릉이 줄곧 길 옆으로 나타난다.



언덕배기를 넘어설 즈음, 간판이 하나 서있다. '최북단의 자위대'

꽃그림으로 간판이 꾸며져 있지만, '자위대'라는 단어는 어쩔수 없이 거부감이 느껴지는 단어이다. 

이 곳에서는 뭐든 최북단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사실 일본의 최북단은 왓카나이시에서 동쪽으로 더가면 나오는 소야곶이다.



언덕을 넘어서자 내리막 길이 주욱 이어지고 넓다란 호수가 나타난다.



조그마한 섬에 있을건 다있다. 레분토의 유일한 호수, 구슈코(久種湖)호수다.

여기도 최북단이라는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일본최북단의 호수이다.



호수를 지나 만나는 후나도마리 마을에서 섬 북쪽으로 향하는 길 대신 마을 해안도로를 따라 가본다.

길너머 약한 경사진 구릉의 끝부분이 공항이 있는 카네다 곶이다. 이 길을 따라 해안선을 달리면, 아까 지나온 우에토마리 마을로 한바퀴 돌아가는 길이다.



카네다곶을 지나온 후, 택시에서 내린 사람들을 보고 따라 멈춰섰다. 뒤쪽의 휘어지는 끝부분이 카네다곶이다.



바다쪽을 보니, 바람을 불어넣어 부풀린것 같은 물범이 요상한 자세로 떠있다. 

저 자세로 어떻게 물 위에 떠있나 싶어 유심히봤더니, 수면으로 보일락 말락한 해안 암초 위에 올라가 있다.




■ 잔점박이 물범?

잔점박이물범(Phoca vitulina)은 물범의 한 종이다. 북반구 전체의 해안에 넓게 분포한다. 태평양과 대서양 연안을 포함하여 북해와 발트 해 연안에서 발견된다. 잔점박이물범은 특유의 V자 모양 콧구멍을 갖고 있으며 몸 색깔은 갈색, 황갈색 또는 회색이다. 다 자란 개체는 몸 길이 1.85m에 몸무게 130kg 정도가 된다. 수명은 암컷이 30~35년, 수컷이 20~25년 정도이다. 포식자가 미치지 못하는 바위가 많은 지형, 그리고 먹이가 되는 물고기가 풍부한 지역에 서식한다. 수컷들은 물 속에서 암컷을 놓고 다투며, 암컷은 가장 강한 수컷과 짝짓기를 하여 한 마리의 새끼를 밴다. 새끼는 태어난 지 몇 시간 안에 수영하고 잠수할 수 있으며, 어미의 젖을 먹고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잔점박이물범의 전 세계 개체수는 40만~50만 마리이며, 어떤 아종은 멸종 위협을 받고 있다. 한때 성행했던 잔점박이물범의 사냥은 이제는 거의 불법화되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 우리나라의 잔점박이 물범

   ▷ 우리나라의 잠점박이 물범 분포 :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331789.html

   ▷ 백령도의 잔점박이 물범 : 문화재청자료

   ▷ 태안가로림만의 잔점박이 물범 :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3746

   ▷ 강릉 경포의 잔점박이 물범 : http://imnews.imbc.com/fullmovie/fullmovie01/2202223_6446.html




좀더 자세히 보기위해 방파벽 위로 뛰어 올라갔더니, 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란 물범들이 전부 물 속으로 뛰어 들어 버렸다.

몇 초 뒤 조금 더 멀어진 바다 속에서 머리만 빼꼼이 내어밀고 있다. 경계심이 많은 녀석들이라 10분 정도 지나자 두 세 마리 만이 

원래 있던 암초로 되돌아 온다.



암초를 따라가며 물범들이 연이어 보인다. 동물원에서나 보던 동물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카네다곶(金田ノ岬) 물범의 큰사진 보기




해안도로를 더 따라가자, 아까 지났던 우에토마리 마을이 다시 나온다. 해안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한바퀴 돌아 이 마을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 마을 포구 앞에 멀직이 떠있는 암초에도 물범들이 떼지어 누워있다. 사람이 가까이 살고 있는데도, 멀지않은 해안에 서식하고 있는 녀석들이 놀랍다. 왔던 해안도로를 따라 다시 되돌아간다. 후나도마리 마을로 다시 오자, 구름이 잔뜩 끼어있던 하늘에서 해가 빠져나오면서 건너편 해안선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 가득낀 비구름이 한 쪽으로 물러가고 파란 가을 하늘이 드러났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며 보이는 산과 구름과 길과 하늘, 그리고 바다의 풍경이 너무도 낭만적이다.


길을 주욱 달려, 초록의 수풀로 뒤덮힌 구릉지를 지나 레분토섬의 북쪽 끝인 스코톤곶(スコトン岬)에 도착했다. 스코톤곶 너머 바다에는  무인도인 토도지마섬이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떠있다. 곶 주변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당당한 해안풍경을 선사한다. 주차장에 스풋을 세우면서 보니, 한무리의 관광버스 여행자들이 버스에 올라타고 있었다. 섬내에 순환관광버스가 있다. 이곳도 레분토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이다. 곶의 끝머리를 향해 짧은 걸음을 옮긴다. 섬의 최북단 답게 바람이 거쎄게 불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섬의 서쪽바다는 일렁이며 짙은 빛을 띠우고, 동쪽바다는 고요한 바람의 결만이 바다위로 나타나고 있다. 눈 앞의 오츠크해가 짙고 깊은 푸른빛을 머금고 있다.





우에도마리 마을 포구 앞에 암초가 떠있고, 그 위에도 물범들이 누워있다.



눕는걸 참 좋아하는 녀석들이다. 저렇게 바다 위에 누워 하늘 아래를 유영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조금은 부러워지기도 한다. 마을포구에서 가까운 지점인데도 서식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비는 이미 그쳤다. 도로를 적시고 있던 빗물도 점점 마르고 있다.



어둡게 끼어있던 구름이 물러가면서 건너편 해안선이 점점 밝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후나토마리 해안으로 펼쳐지는 모래 언덕의 초지



후나토마리 해안. 30분전까지 비가 내렸다고는 믿기 힘든, 파란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을 뒷산 위에도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후나토마리 마을길. 우의를 차곡차곡 접어 넣고, 깨끗한 도로 위를 다시 달린다.



후나토마리 마을을 지나오자, 레분토의 북쪽끝이 멀리로 보이기 시작한다.



낮은 언덕 같은 완만한 산이 동쪽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다.



도로를 따라 여유있게 늘어선 집들이 이어진다. 섬의 풍경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가다말고 잠시 멈춰서서 지나온 해안선을 되돌아본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해안과 바다다.



아무리 봐도 길옆으로 보이는 지형은 독특하다.



나무라고는 보이지 않는 민둥산이다.



바다에서 올려진 배가 길 바로 옆으로 보이기도 한다.



오르막이 시작되고 스코톤 곶이 얼마남지 않았다.



스코톤곶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보이는 풍경. 너른초지와 바다와 섬이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곳이다.



스코톤 곶 앞에 떠있는 무인도인 토도섬의 지형이 독특하다. 너른 섬위에 군더더기 없는 평지가 펼쳐져 있다.



스코톤 곶을 얼마남겨 두지 않은 지점. 곶아래로는 절벽지대이다.



10미터 정도 쏫아오른 지대 위에 길과 인근 마을이 들어서 있다.



레분섬의 최북단인 스코톤곶에 도착했다.

파란 바다만 펼쳐졌다면 심심한 풍경이었겠지만, 토도섬이 곶 앞에 떠있어서 더욱 근사한 풍경이 되었다.



실제 곶은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곶을 향해 내려가는 계단앞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짧게 걷는 기분좋은 길이다.



곶의 서쪽은 너른 바다 방향이다. 오츠크해로 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거센 곶의 서쪽에는 파도가 제법 일어나고 있다.




스코톤곶을 바로 지척에 앞두고, 민박집이 서있다.

민슈코 스코톤곶. 이곳도 일본 최북단의 민박집이 되겠다. 하룻밤 묵는다면 특별한 기분이 들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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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단의 땅 스코톤곶'이라 적힌 나무표식이 서있고, 바다가 훨씬 가까워졌다.



스코톤곶 앞의 바다색이 맑다. 1.2km정도 떨어진 토도섬은 등대만이 서있는 무인도이다.

관광선이 오가기도 한다.



동쪽해안은 서쪽과 달리 고요한 물결이다. 너른바다로 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레분토 섬이 막아서고 있어서다.

고요한 바다와 파란 하늘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23일차-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