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고 짐을 챙긴다. 이 캠핑장의 뒷편이 고속도로인데다, 멀지않은 곳이 코마츠비행장이라 소음이 제법 많은 곳이다. 모르고 들어왔지, 알았으면 못올 곳 같다. 그로 모자라서 가까이의 밤새 술마시며 떠들어대던 5명의 팀때문에 새벽녘 잠까지 설쳤다. 짐을 챙긴 후, 사무실 건물의 홀에 들러 지도를 들여다 보며 경로를 확인한다. 시원한 에어컨 덕분에 밤새 쌓였던 짜증이 한 풀 꺽인다. 캠핑장내부를 청소하시는 관리인 아저씨께 쓰레기는 어디다 버리는지를 물었더니, 조그만 봉다리 하나뿐이나며 자신에게 달라고 하신다. 고맙게 넘겨드리고 출발이다.
하룻밤 머무른 캠핑장에서 짐을 다시 챙기는 도중
출발직전 관리사무소 로비에서 경로를 재확인한다. 켜진 에어컨이 너무 쾌적해서 나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후레아이긴코히로바 캠핑장을 알려주는 표식. 어제 오후 늦게 이 간판을 보고 따라 들어왔다.
길이 무진장 헷갈린다. 일본 3대 정원의 하나인 켄로쿠엔(兼六園) 팻말이 보인다. 유명관광지, 게다가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장소다. 원래라면 신경쓰지도 않고 지나갔을 터이지만, 어차피 8번 국도를 따라 지나가는 길이라 들러보기로 한다. 카네자와시를 향해 이미 나타난 이정표를 따라간다. 어제 오후부터 이시카와현으로 들어선터다. 시내길을 복잡하게 통과한다. 교차로의 신호대기가 많아서, 뜨거운 볕 속에서 서서 기다릴려니 볕에 노출된 종아리가 타들어 가는것 같다. 칠부바지를 입고 있는 상태다. 덴라쿠엔 주변도로에 도착 후, 주차장을 찾기위해 빙글빙글 돌다가 나도 모르게 일방통행로를 거슬러 달리다가 관리인에게 제지당한다. 머쓱하게 웃으며,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가까이에 바이크주차장이 따로있 다.
다시 한 바퀴를 돌아 바이크가 줄이어 세워진 장소에 스풋을 주차시킨다. 300엔을 내고 측면으로 난 문으로 입장한다. 넓은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다. 너무 잘 가꾸어져 있어서 거부감이 들 정도다. 일본 3대 정원라는 말이 가져오는 대단함의 비중까지는 모르겠고, 엄청난 손길과 노력으로 가꾸어 진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산과 바다의 절경만 보아오던 탓일까. 왠지 이것들이 시시하게 보인다. 게다가 이곳은 명성과 비례해 관람객 또한 굉장히 많은 곳이다. 잘 만들어져 있는 정원이다.
완벽히 화려한 것들은 미학적으로 무효다. 적절히 내비치고 적절히 가리워진 은은한, 감추어 놓은 듯 격을 흘려 놓는 것, 자연스러우면서도 긴장감이 살아있는 것들이 진짜다. 그런 의미에서 3대 정원이라 불리는 이곳은 섬세함에서 오는 긴장감과 눈길을 잡아끄는 세밀한 화려함은 살아있으나 오래도록 눈을 붙잡아 두는 자연스러움의 멋이 부족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들지만 그 가치를 얕잡아 볼 곳은 아니다.
아마도 한국의 자연스러운 옛 것들을 오랫동안 체험하며 겪어온 내게 형성되어진 미적 울타리의 탓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일본의 문화는 선종불교의 미학이 녹아있는 섬세함과 단순함을 추구한다. 목조건물들만 하더라도 세부적으로 하나하나 똑같은 규격, 동일한 자재를 사용해서 정밀하게 이루어 져있다. 시코쿠의 여든여덟 사찰에서도 많이 보고 느꼈던 부분이다. 어느하나 틀림이 없는, 꼭 맞아 들어가는 섬세함을 바탕으로 하는 화려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에 비해 우리 문화들은 이도다완 속에 녹아있는 무위의 멋스러움이나 개심사 심검당의 다듬어지지 않은 기둥들에서 보여지는 자연스러운 멋이 정수일 것이다. 한국인의 미적감각으로 일본문화를 짐작하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일까?
큰 정원이라 한 바퀴 돌아보는 데도 시간이 제법 걸린다. 더운 탓에 천천히 걸어 나오는데에도 땀이 흐른다. 덴라쿠엔 건너편에는 마츠모토성이 있다. 도로 위를 지나는 다리를 건너 성문 앞까지만 갔다가 바이크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입장료 앞에서 한 없이 약해지는 나다.
오카야마 시의 고라쿠엔, 미토 시의 가이라쿠엔과 더불어 일본 3대 정원의 하나인 겐로쿠엔 내부에 들어섰다.
겐로쿠엔 내부의 가장 큰 연못
가지가 휘어지게 자란 정원수 아래에는 기둥들이 받쳐져있다.
흐르는 수로가 정원내의 영역을 여러 곳으로 나누고 있고, 정원을 걷는 맛을 더해준다.
나무 아래에는 잘자란 고운 이끼가 가득이다. 분재와 석부작을 즐겨 가꾸시는 아버지가 봤다면, 냉큼 몇자락 떼 가셨을지도 모르겠다.
흐르는 물들이 수로를 따라 높이가 각각 다른 연못으로 흘러들어 간다.
한 가지에서 과할 정도로 많은 가지를 뻗어올린 나무들이 재미난 모습으로 곳곳에서 보인다.
정원의 곳곳을 관통하며 흐르는 물이 맑다.
겐로쿠엔의 가운데즘 되겠다.
기괴할 정도로 독특하게 생긴 소나무도 보인다.
수로를 건너는 짧은 다리도 건너고.
연못 가장자리에 놓인 찻집이 평온하게 보인다.
낮은 지대에 위치한 또 다른 연못. 산책로가 연결된 연못 가운데에는 석탑이 서있다.
연못주변에는 찻집이 들어서 있다.
겐로쿠엔을 빠져나오면서 보이는 상점가. 목조건물들에서 옛 상가의 느낌이 희미하게 난다.
겐로쿠엔 정문에서 건너다보이는 마츠모토성
시내를 벗어나 다시 해안길을 향한다. 예정은 159번 국도를 따라 해안선으로 향하는 것이었으나, 헷갈리는 갈림길에서 다른 방향으로 오고야 말았다. 159번도로는 시내를 우회하는 바이패스와 시내를 통과하는 두 경로가 있다. 바이패스는 배기량이 적은 스풋으로는 달릴 수 없는 곳이고, 시내길은 지도와 달리 도로번호가 전혀 다른 번호로 붙어 있다. 이러니 헷갈릴 수 밖에 없다. 215번 국도를 탔다가, 어쩌다 보니 내륙쪽 방향으로 길을 들어섰다.
도중 나타나는 미치노에키(국도변 휴게소) 내에서 도시락을 먹고 잠시 쉬면서 지도를 곰곰이 들여다 본다. 이 도로는 내륙의 토나미시를 향하고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10km 떨어진 교차로에서 471번 도로를 타고 북상하면 될 것 같다. 미치노에키에서 나와 신나게 내륙의 길을 달린다. 통행량도 적고 산 길에서 보이는 계단식 논의 풍경과 겹겹의 산세가 평화롭고 고요하다. 18세기에나 세워진듯한 성모양의 교육센타건물을 지나고, 계단식논을 지나 좁은 마을길을 통과해 드디어 249번 도로와 합류한다.
삼나무가 길을 따라 시원스레 서있는 내륙도로를 달린다.
내륙을 통과하는 도로 옆으로 계단식 논들이 펼쳐져 보인다.
국도변에서 숲속으로 보이는 건물
도로변의 근대식 건물에서 단체행사가 열리고 있다.
아담한 꽃들이 피어있는 산간도로의 버스정류장에 여름볕이 따스하게 들고있다.
멈춰서 기다리고 있다가, 다음번에 오는 버스에 올라타고 싶어진다.
길게 시원스레 뻗은 도로를 따라 달린다.
지나는 마을에는 기와지붕의 집들이 늘상 나타난다.
이제는 주욱 이 도로로만 달리면 해안을 이어가는 길이다. 8km가량의 모래해안 드라이브가 가능하다는 센리하마(千里浜)해수욕장을 지난다. 이색적인 곳이라 한번 달려볼까 싶은 마음도 들지만, 묻은 모래등을 털어내며 달린 뒤 남아있을 뒷 일이 부담스러워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예정했던 오늘의 숙박지는 지도에서 3페이지나 더 지나가야하는 곳에 있는 유스호스텔이다. 혼슈 서해안에서 가장 큰 반도인 노토반도(能登)에 길이 들어선다. 지금까지처럼 해안선을 따라서 반도를 한바퀴 돌아서 되돌아온 후, 북상하는 코스가 된다.
확인을 해보니 호주머니에 3,000엔이 전부다. 숙박비를 내고 나면, 주유비까지도 안나 올 듯하다. 농협에서 만들어온 Maestro 현금카드는 지난번 시코쿠에서도 유용히 잘 사용했었다. 단, 우체국에서만 현금 인출을 하다보니 주말인 우체국이 문을 닫는 토요일, 일요일이면 사용이 불가능하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우체국은 사용 불가일테고, 은행을 사용해 보기로한다. 혹시나 싶어 가는 길에 나타나는 은행에 들러 ATM기에 현금카드를 집어 넣어본다. 역시나, Maestro-cirrus카드를 지원하지 않는다.
길을 따라 나타나는 편의점인 로손, 써클K, 썬쿠스, 패밀리마트의 ATM에서도 전부 사용이 불가능하다. 그로 모자라서 대형수펴마켓의 입구에 놓인 ATM에서도 인출이 안된다. 농협(JA)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을마다 하나씩은 있는 우체국만을 사용한다면 모를까, 지금 같은 경우라면 Maestro카드가 굉장히 불편하다. VISA가 지원되는 ATM은 많다. 일본여행을 할 경우라면 VISA로 현금카드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 싶다. 결국 현금인출을 포기한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근거없는 낙관에 기대어 다시 길을 달리는 순간이다.
노토반도 해안의 이와몬(巖門). 바위 위로 자란 소나무들도 근사하다.
이와몬 해안
노토반도 하다고이와(機具巖)가 노토반도 해안길 옆으로 보인다.
정면에서 보는 하다고이와(機具巖). 신사 입구에 자주 걸리는 금줄인 시메나와라가 걸려있다.
남사당패가 여기서 줄타기 한번 하면 신명나는 장면이 벌어지겠다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노토반도 해안길이 이어진다.
249번 국도변 도중 '세계에서 가장 긴 비치'라 적힌 세움판을 따라 들어가본다.
나오면서 다시 보니 '세계에서 가장 긴 벤치'였다. 간판을 오해했다.
길게 휘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산책로 옆으로 나무로된 460m 길이의 의 벤치가 놓여있다.
벤치라기보다는 나무데크로 된 스탠드 같다.
해안에서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지형이 좀 독특하다.
해안암반위에 시멘트를 부어 간이 포구가 되어있는 모습도 보인다.
괴기스러워보이는 해안터널도 통과한다.
노토반도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해안도로 옆으로 이런 바위산이 서있기도 한다.
해가 뉘어진 서쪽 바다로부터 볕이 눈부시다. 그래도 오후 늦은 시간의 짙은 색의 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해안의 풍경은 아름답다. 5시. 노토반도의 북서쪽인 몬젠마치쵸 해안에 청소년 여행캠프장과 유스호스텔이 있다. 일단 249번 국도를 벗어나 해안으로 향하는 산길을 넘는다. 외진길이 끝나고 해안마을에 도착했다. 찾아가보니 목조주택의 2층 집에 유스호스텔 간판이 붙어있다. 문을 두드려 보아도 잠긴문이 열리지 않는다. 사람이 없나보다.
해안의 우측에 위치한 청소년여행촌 캠핑장으로 향한다. 도착해 보니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지 건물 주변에 웃자란 풀들이 무성하다. 앞쪽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의 캠핑사이트는 잔디가 잘자란 넓직한 장소이다. 찾아간 관리실도 잠겨있다. 아무래도 폐쇄된 캠핑장인것 같다. 시간이 벌써 6시 30분이다. 산길을 지나오기전에 지나쳐온 마을에서 캠프장 간판을 봤던 기억이 난다. 바이크의 연료도 바닥을 가리키고 있는 터라, 그쪽으로 한번 가본다. 부리나케 왔던 길을 되돌려 간다. 주유소가 있는 마을을 지나치며 연료를 채우고, 캠핑장을 가르키는 간판을 따라 동네 뒷 산길을 오른다. 도착해보니, 인근에 토목 공사장이 벌어지고 있고 캠핑장은 이미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캠핑사이트에는 수풀이 허리까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이 곳에 비하면 앞서 들렀던 청소년여행촌이 쾌적한 곳이겠다. 탁트인 사이트 앞으로 바다가 내려다 보이기도 하고.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 가기로 한다. 두 번을 왕복하는 길이라, 길 눈 밝은 나는 이 동네 길을 몽땅 외우겠다. 해가 뉘엇뉘엇 넘어간다. 7시 30분. 다시 되돌아와서 캠프사이트에 도착했다. 캄캄해지기전에 서둘러 텐트를 치고, 저녁으로 라면을 끓인다. 다행히 편의점마다 김치를 팔지 않는 곳이 없다. 반으로 쪼개서 나눠먹는 일본김치를 사들고 온 터라 라면과 곁들이니 먹을만 하다.
저녁을 먹고나자, 사방이 캄캄해졌다. 불빛하나 없는 적막함으로 인해 살짝 무서워지기까지한다. 나가서 씻는것 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다. 텐트속에서 가방을 베고 비스듬히 누워서 이것저것 끄적이고 있으려니, 시커먼 그림자가 텐트 옆으로 지나간다. 섬뜩한 느낌이 들어 열린 아웃텐트 바깥으로 후레쉬를 비춰보니 컴컴한 어둠속의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고양이 한마리가 웅크리고 엎드려 있다.
야영장 휴게정자 아래인 이곳이 저녀석이 원래 쉬어가는 장소였나보다. 경계의 눈빛도 없이 여유롭게 바닥에 엎드려 있다. 가지고 있던 소세지를 하나 던져줘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우리집 푸들녀석은 저 소세지 하나면 달까지 왕복은 거뜬할 정도로 요란떨며 환장을 하는데, 꽤나 도도한 녀석이다. 길을 떠돌며 살더라도 내키지 않으면 거들떠 보지 않는, 비굴해지지 않는 저런 자존심 정도는 있어줘야 한다. 맘에 드는 녀석이다.
김동률의 음악이 켜놓은 MP3의 외장스피커로 흘러 나온다. 달이 밝은 바닷가의 외진 언덕. 이곳과 잘 어울리는 목소리다. 어둠에 둘러싸인 약간은 무서운 밤. 밤이 더욱 깊어진다.
유스호스텔과 캠핑장이 있는 해안마을로 넘어가는 산길
해안마을길. 바람을 막기위해 높다랗게 세워놓은 대나무울타리가 이색적이다. 울타리 뒷편으로 어촌집 같은 유스호스텔이 위치하고 있다.
청소년여행촌의 접수사무소. 문이 굳게 잠겨있다.
청소년여행촌 건물앞의 야영장. 캠프사이트에서 바다가 환히 펼쳐져 보인다.
* 이동거리 : 195km
* 숙박 : 노토반도 청소년여행촌 - 무료(휴장상태)
* 이동경로 : 주황색선 / 이시카와현 코마츠시 -> 하쿠산시 -> 카나자와시 -> 하쿠이시 -> 노토반도
큰 지도에서 스쿠터 일본일주 9일차 경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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