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터 일본가다] 45일차, 센다이성터를 지나 내륙의 자오고원으로 향하다
오가메산 삼림공원 주차장이다. 새벽 2시 반 즈음에 아웃텐트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한번 잠들면 데굴데굴 굴려서 100미터 경주를 해도 깨지 않는 수면습관을 가지고 있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새벽에 슬며시 떨어지는 빗소리에 눈이 떠지며 몸이 반응을 한다. 이번 여정에서 비는 꽤나 스트레스로 작용하는가 보다. 생각해보면 이번 1주일 동안은 쉴 새없이 비가 내렸기도 했다.
빗속을 주행하는 것도 추위와 손발이 젖어드는 것에 대한 방비와 안전한 운전을 철저히 이행하면 그다지 크게 문제가 될것도 없을 터이나, 애초부터 비오는 날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라는 근거없는 낙관으로 계획을 세웠고 몇 번이나 빗속을 쫄딱 젖어가며 달려온 아직까지도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오늘 비가 내렸으니 뭐 더 오기야 하겠어? 에이, 이번에야 말로 끝이겠지'라는 생각을 비 내리는 날마다 반복하고 있다.
빗소리에 잠을 깨긴 했으나, 뭐 걱정만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제법 굵어지기 시작한 빗줄기에 텐트내부가 젖지 않도록 아웃텐트를 다시 팽팽히 댕겨긴 후, 바닥에 깔아놓은 그라운드시트를 살짝 들어 올려 놓고 다시 누워서 잠을 청한다. 제법 깊게 잠들었다가 어제와 대충 비슷한 시기인 6시에 눈이 떠진다. 아침 잠 많은 예전의 생활방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이 길 위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빗방울 소리가 여전히 후두둑대며 들리고 있다. 텐트를 살짝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먹구름이 하늘에 가득 하다. "아, 젠장!" 먹구름을 보자마자 짜증 섞인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일어나지 않고 그냥 계속 누워있기로 한다. 비가 그칠때까지 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므로 마음먹고 빈둥거려 본다. 가스도 다 떨어진터라 밥도 못해먹는 상태다. 이유인즉, 어제밤 물병에 뜨거운 물을 담기 위해 물을 끓이다가 그만 잠들어버렸다. 다행히 가득 담아놓은 물이 끓어 넘치는 바람에 화기는 저절로 꺼졌지만 가스가 다 새어나가 버렸다. 까딱 운 나빳으면 화재로 인해 일본 땅에서 이재민이 될 뻔했다. 새나온 가스를 마시면서 잠이 들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오너가 집으로 찾아와서 난동을 부리는 요상하고 찜찜한 꿈까지 꿨던 터다.
뭐 이런 이유로 아침밥도 못해먹는다. 딱딱히 굳은 햇반에 스프라도 뿌려 먹어볼까,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건 사람이 먹을 수준은 아니다 싶어 관두기로 한다. 누워서 엎치락 뒤치락 하며 뒹군다. 지금 어디즘 와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어제 캠핑장을 찾느라 헤멘 마을에서 부터 지도를 들여다 보며 천천히 유추를 해본다. 마을길이 묘하게 엇갈려있어서 알 수 없는 경로로 3번 현도로 점프를 해버렸다.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린다.
8시를 지나 9시가 되어도 비가 주적주적 내린다. 조금 가늘어 지더니 9시 반이 되어서야 비가 그친다. 텐트바깥으로 나와보니 주차장에는 대 여섯대의 차량들이 서있다. 옷가지며 짐들을 먼저 챙겨서 사이드백에 싣고, 마지막으로 텐트를 걷는다. 그런데 다시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텐트를 걷어내던 손을 멈추고, 바이크에 커버를 씌운다. 오락가락 하던 비가 20여분 지나자 완전히 그쳤다. 하늘에 구름이 아직도 가득 남아있는 상태라, 언제 비가 다시 내릴지도 모르겠다. 주차장 입구 쪽에 있는 휴게정자 아래에 텐트를 펼쳐놓고 걸레로 물기를 제거 후 널어서 말린다. 화장실에서 씻고 있는 사이 캠핑장에서 무슨 행사가 있는 모양인지 세대의 차량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서 짐을 들고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근처에 세워둔 스풋의 빵빵한 짐과 이상한 번호판을 보더니 모두 고개를 갸웃댄다.
오가메산 삼림공원 주차장. 밤늦게 도착해서 주차장 한 구석에 텐트를 쳤다. 아침내내 비가 내린다.
외딴곳에 위치한 휑한 주차장이다.
말린 텐트를 접어 넣고, 나머지 짐들을 정리해서 출발준비를 끝내고 나자 11시다. 주차장 바로 뒷산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서있다. 높은 곳에서의 전망을 좋아하는 내가 그냥 지나칠수는 없어서, 출발 전에 잠시 산길을 걸어올라 본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아름드리 나무가 서있는 숲길을 지나자 높다란 전망대가 나타났다. 전망대의 바닥에는 해발 218미터라 적혀있다. 각진 나선 계단을 천천히 걸어올라 꼭대기 층까지 오르니 숨이 차다. 꼭대기 층의 바닥에는 해발 238미터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봐선 이 전망대의 높이가 20미터 정도 되나보다. 난간에 서자 이 인근의 숲이 아래로 시원스럽게 내려 보이고, 멀리 센다이시의 중심가와 그 뒷편으로 늘어선 높은 산줄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시간을 내어 올라오길 잘했다 싶은 시원한 전망이다.
스풋의 출발준비를 마쳐둔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오자 12시가 다되었다. 오늘도 비 때문에 늦게 시작되는 일정이라 주행거리는 얼마되지 않겠다. 출발하려고 하자 다시 약한 비가 내린다. 변덕스럽기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날씨다. 비닐로 된 우의와 코트식 상의를 끼어입고, 갈까 말까 주저하다가 그냥 출발하기로 한다.
오가메산 주차장 뒷편의 산정상으로 보이는 전망대를 향해 올라가보기로 한다.
오가메산 삼림공원 정상의 전망대. 얼핏 목탑을 닮아있다.
네모진 나선계단을 20미터 가량 오른다.
숨이 가빠질 무렵 도착한 전망대의 꼭대기 층. 표고 138미터라 적혀있다.
오가메산 전망대
막힘이 없는 주변풍광이 전망대에서 펼쳐진다.
도심에서 떨어져있는 외진 곳이라 주변에는 온통 숲만 보인다.
센다이 시가지가 멀리로 보이고 있다. 오늘 가야할 방향이다.
센다이 시가지 서쪽으로 높다란 산줄기가 내륙을 막아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제 지났던 8번, 3번 현도가 만나는 지점에 HOMAC(홈센타)이 보인다. 들러서 캠핑가스와 비옷하의(비닐로 된 일회용 비옷은 바이크에 올라타면서 다리를 크게 벌리면 열 접착된 가랑이 부분이 잘 찢어진다)와 방수장갑을 사들고 나온다. 방수장갑은 그 종류가 몇 되지 않지만 우의는 종류별로 굉장히 많다. 고가부터 저가까지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어서 잠시 망설였다. '이 참에 제대로 된 걸 살까? 아니야, 이 비도 오늘 정도면 그칠텐데 뭐하러.' 하며 갈등을 하다가, 결국 긴축재정의 압박이 승리하여 오천원 정도하는 우의 바지만 집어 들었다.
홈센타 건물을 나서자 역시나 빗방울이 가늘게 떨어진다. 새로산 우의와 함께 비옷을 끼어입고, 8번 지방도와 45번 국도를 갈아타고 센다이 시가지로 들어선다. 높은 건물들과 넓은 시내도로, 오가는 수많은 차량이 가득하다. 월요일 오후의 시내 중심가는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센다이는 도호쿠(東北)지방 최대의 도시로 인구 150만이 넘는 큰 도시이다. 시내를 통과하는 도중 비가 완전히 그치고 하늘이 밝아졌다. 도로변에 잠시 스풋을 세우고, 답답한 비옷을 벗는다.
하늘에 구름이 아직도 끼어있기는 하지만, 밝은 색의 옅은 구름이라 비가 더 이상 오지는 않을 성 싶다. 복잡한 시가지를 통과해서 센다이시내로 들어온 이유는 센다이시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센다이 성터로 가기 위해서다. 꼬불꼬불한 차도를 따라올라 성터 주차장에 들어선다. 100엔의 바이크 주차료를 내고, 알려준 곳에 주차를 한 뒤 성벽 끝을 향해 걸어간다.
성벽의 끝머리에 서자 센다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멀리 태평양 바다도 가물가물 보이고 있다. 하늘에는 빼꼼한 구석이 없이 전부 구름이 끼어있는 상태지만,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센다이 시가지의 재미난 형태들을 즐기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체관광객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온다. 왁자지껄한 그들을 피해 성벽을 따라 한 바퀴 크게 돌아 걷고 주차장으로 되돌아온다. 다음 목적지는 내륙의 자오다.
복잡한 센다이 시가지를 뚫고 센다이성터에 도착했다.
성터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으면 센다이 시가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내려다 보인다.
센다이 성터 내부
성터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가이드가 인솔해서 다니는 사람, 홀로 나들이 온사람, 천천히 산책을 즐기는 사람 등.
단체 관람객이 들어서자 텅빈 성터가 순식간에 가득 차버렸다.
이곳에 왔다면 너도나도 인증샷을 찍는다는 다테 마사무네 동상이 위엄있게 센다이 시가지를 내려다 보고 서있다.
다테마사무네는 일본 전국(센코쿠)시대 62만석의 토지를 소유한 대 다이묘(번주)중의 한명이다.
마사무네의 동상이 있는 석벽끝에 서면 바로 아래로 센다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토호쿠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답게 고층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센다이는 인구 150만이 넘는 토호쿠(東北)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일본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센다이는 많은 수의 대학교들이 들어서 있어서 학술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토호쿠대학 의학부의 전신인 센다이 의학 전문학교는 중국의 그 유명한 문호인 루쉰이 100년 전에 유학을 와서 입학했던 곳이기도 하다.
센다이성 성벽. 현재는 이 돌벽과 재건된 망루만 남아있다.
센다이성은 1603년에 센다이번 초대 번주인 다테 마사무네가 축성한 이래 270년간 다테 가의 거성으로 사용되다.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의 건축물은 지어졌으나,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경계심을 품지 않도록 하고자 천수각은 건축 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때 소실되었으나 거대한 석축과 재건된 스미야구라 망루 등이 당시의 위용을 짐작게 한다.(출처 : Japan-i)
성터 한쪽에는 이곳에 쓰인 석부자재들이 남아있다.
아오바성 자료전시관과 신사, 상가들이 성터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성터에서 다시 시가지로 내려가는 길. 길옆으로 높게 서있는 성벽은 그 선마저도 섬세하다.
둘러보면 일본의 성벽들은 투박한 우리와는 달리 촘촘하고 틈새가 없도록 지어진 구조로 되어있다.
센다이성터 가까이에 토호쿠(東北)공대 캠퍼스가 있어서 스쿠터를 타고 오가는 학생들이 자주 보이기도 한다.
센다이 시내를 관통하는 4번 국도를 따라 남하한다. 인근 도시들의 시가지를 여러번 통과하는 4번 국도 길은 좀 지겹다. 시가지를 통과하는 내내 정체와 서행을 반복하고 센다이에서부터 나토리시, 이와누마시, 비다타초, 오가나와초가 연이어 붙어있어서 국도변에서 여유있는 풍경을 즐기지도 못하는 길이다. 30km정도 남하하다가 시로이시시가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12번 현도를 타고 내륙으로 향하는 길을 달려간다.
내륙의 고원지대인 자오까지 이르르는 고갯길은 지도에서 경관이 좋다고 되어있는 표기가 요란스럽게 찍혀있다. 내심 어떨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ZAO Eco Line’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이 12번 현도는 미야자키현 오가와라초에서 부터 야마가타현 야마가타시까지 이어지는 35km정도의 도로이다. 지도를 미리 들여다보면 지나는 길옆으로 폭포가 여럿 있는 것으로 봐서는 협곡과 산길을 지나는 도로인것 같아 보인다.
조그마한 농촌 마을을 지나면서 산길을 오르기 전 미리 주유를 가득히 하고, 본격적으로 에코라인을 달려간다. 산기슭에 한적하게 자리한 도갓타 온천마을을 지나자 산길이 시작된다. 우거진 나무들 탓에 비가 그친 지금도 이곳의 도로는 젖어있다. 산길이라서 일찍 추워진다. 고작 4시 반이 지났을 뿐인데 차가운 기운이 길 위에 가득하다. 엊그제 산 패딩조끼 덕분에 추위는 한결 덜었지만, 조끼인 탓에 덮히지 않은 팔은 시리다. 가방에서 끼어 입을수 있는 홑옷들을 꺼집어 내어 최대한 걸치고 오르막길을 다시 오른다. 온천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올려다 보이던 산줄기에는 하얀 구름이 중간 중간 걸쳐져있어서 멋스러운 풍경이 연출되었었다. 그런데 조금씩 고도가 높아지자 그 멋스러움이 고난으로 다가온다. 자오까지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이 산악도로는 1,600미터~1,800미터의 산줄기를 넘어가는 가파른 고갯길이다.
도중에 나타나는 폭포전망대에 잠시 멈춰 서보지만, 산에 가득하게 끼어있는 구름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안개만이 길 위에 가득하다. 오르막 산길 내내 희뿌연 안개구름이 끼어있어 5미터 앞이 안보일 정도이다. 비상등을 키고 천천히 길을 따라 오른다. 간간이 내려오는 차들은 보이지만, 내가 달리는 방향으로 운행하는 차량들은 한대도 없다. 천천이 길을 따라 달리자 오르막이 조금 완만해 지고 구름이 사라졌다. 호텔과 식당이 보이는 정상을 향하는 길옆으로 고즈넉한 모습을 드러낸다. 길을 더 달려가자 산위의 도로에서 날이 서서히 저물어가며 어둑해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가는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헬맷의 쉴드에도 뿌옇게 성에가 끼어 앞이 잘 안보이기 시작했다. 고개 정상의 전망대에 도착하자 빗줄기가 굵어지고 바람이 거세진다. 이제부터는 구불구불한 내리막 길이 시작된다.
자오고원을 향해 12번 현도를 달려가는 도중 마을의 약국.
왼쪽의 하얀간판은 처방전을 전문으로 조제하는 보험 조제 약국이고 오른쪽의 초록색 간판의 약국은 간단한 의약품을 판매하는 드럭스토어다.
일본의 약국은 이렇게 이원화 되어있다. 일반적인 드럭스토어는 이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매장을 가지고 있으며 간단한 약품류(감기약, 소화제, 해열제 등) 이외에도 화장품, 목욕용품, 미용용품등의 생활용품을 같이 취급한다. 이곳은 조그마한 마을의 작은 약국이지만 보통의 드럭스토어는 큰 규모의 대형매장인 경우가 많다.
자오고원을 향하는 12번 현도.
12번 현도변에 접한 도갓타 온천마을을 지난다.
온천마을을 지나서자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간다.
산 중턱길에 들어서자 안개가 점점 짙어진다.
폭포를 내려다볼수 있는 타키미다이에 도착했지만, 가득낀 안개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물소리만 들린다.
낙차 54미터의 또다른 폭포 앞을 지나간다.
여전히 전망대 아래로는 하얗게 끼인 안개 구름 때문에 시야가 불투명하다.
자오고원을 향해 올라가는 오르막 도로위에는 점점 안개가 짙어져서 5미터 앞을 분간 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자오고원까지 이어지는 이 12번 현도는 자오 에코라인(蔵王 エコー ライン)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산정상이 가까워지자 바람만 거세게 불고, 안개는 사라졌다. 1000미터 이상으로 올라온 상태다.
자오에코라인은 11월 말에서 4월 중순까지의 동계기간에는 폐쇄된다.
자오에코라인의 고개길을 향하는 도중 옆으로 보이는 산.
이때부터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한다.
어둡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바이크가 휘청이며, 비까지 내려 시야가 불량한데다 꼬불꼬불한 산악도로의 급경사 길을 달려 내려가고 있으려니 이게 뭔 짓인가 싶기도 하다. 긴장되는 길이다. 헬맷의 성에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인다. 성에를 피해 헬맷 쉴드를 열면 비가 곧장 얼굴로 들이치므로 그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할 수 없이 젖은 장갑을 낀 손으로 쉴드의 안과 밖을 수시로 대충 닦으며 달려간다. 어찌나 길이 구불구불 한지, 180도로 꺽어지며 접힐 듯 이어진 길이 수두룩하다. 그 탓에 긴장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빨을 악물고 운전을 했더니, 잇몸이 얼얼하다. 이러다가 집으로 돌아갈때즈음이면 틀니하나 좋은 걸로 알아봐야 되는것 아닌가 싶어 너털 웃음이 난다. 의식적으로 힘주어 악물리는 턱에 힘을 빼본다. 산 아래에서는 구름 낀 정도로만 보이더니, 산 위에서는 이렇게도 날씨가 변덕스럽다. 역시 높은 산의 일기는 종잡을 수 없다는 말이 맞다.
내리막길 도중의 전망대에서 텐트를 치고 오늘은 그만 달릴까도 생각을 했으나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심해서 밤새 견디기가 녹록치 않을듯 하여 포기한다. 거센 바람을 막아 줄 만한 변변한 구조물하나 없는 장소다. 오늘 예상한 캠핑장에 제대로 도착이나 할지, 이 길고 긴 내리막길이 끝나기는 할런지 의문이 들고, 약간의 두려움마저 생긴다. 지도를 들여다 보면 얼마가지 않아 뻔하게 스키장으로 유명한 자오고원이 나오는것을 알고 있음에도 빗속의 험한 길로 인한 스트레스가 마음을 느슨하고 약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는 사방이 완연한 어둠으로 둘러싸였다. 캄캄하다.
거센 바람이 여전히 타고 있는 바이크를 한번씩 휘청이도록 흔들어 대고, 젖은 신발 속의 발은 시려온다. 비닐 봉지로 신발 위를 덧씌워 놓았으나 발바닥의 압력으로 조금씩 찢어지기 시작한 그 비닐은 주행풍 때문에 어디로 날려 갔는지 이미 흔적도 없다. 다행히 손은 홈센타에서 산 방수장갑을 고개 정상에서부터 착용하고 있는 덕분에 시리지도 않고 멀쩡한 편이다. 하의도 엊그제와 달리 물이 새어들지 않아 멀쩡한 상태다. 생각해 보면 엊그제의 빗속에서 보다 물리적인 상황은 훨씬 나은 편 임에도 스트레스는 더 많이 받고 있는 셈이다. 환경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흔들림,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로 다가온다.
한참 빗속을 뚫고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자, 저 멀리로 인가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불빛 하나에 마음이 놓인다. 커브길도 조금씩 완만해지고 드디어 캠핑장 표지판이 보인다. 바람은 여전히 거세고, 비도 변함없는 굵기다. 캠핑장 입구에 도착하니 7시가 넘었다. 늦은 시간이라 역시 사무소에는 불이 꺼져있고 아무도 없다. 가까이 있는 까페의 문을 두드리고 물어보니 아침 9시나 되야 관리인이 출근한단다. 사이트를 잡아서 텐트를 치고, 내일 아침에 접수하라고 일러준다.
캠핑장 안으로 들어서서 비바람을 적당히 막아줄 취사장 내부에 자리를 잡는다. 기둥과 지붕만 있는 취사장 안으로 바람은 거침없이 불어오고 있다. 두 번이나 부러진 전력이 있는 내 텐트가 오늘 밤 동안 잘 견딜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바람소리가 무서울 정도로 숲을 지나다닌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스풋을 가로막아 세워두자, 그제서야 텐트로 곧장 날아드는 바람이 좀 약해졌다. 일단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물을 끓인다. 가스버너의 불꽃이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휘청이며 춤을 춰댄다.
바람소리만 세상을 덮고 있는 고원의 캠핑장에는 적막감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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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박지 : 자오보다이라 국설야영장
- 관리인이 없어서 무단취식
- 화장실, 취사장, 샤워실
* 주유 : 630엔
* 이동거리 및 경로 : 130km
네바마해변 캠핑장(카마이시시) → 센다이 성터 → 자오고원
큰 지도에서 스쿠터일본일주-45일차 경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