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터 일본가다] 37~38일차, 우연히 만난 에어쇼와 외딴 캠핑장
2010. 9/19일, 37일차
새벽에 다시 비가 내렸다. 나뭇가지에서 물이 떨어져 텐트를 치는 툭툭 소리에 잠이 깼다. 서둘러 일어나 바이크 본체 위에 널어서 말리던 비옷과 신발등을 챙겨서 텐트 아래로 쑤셔넣고 바이크 커버를 씌운다. 새벽2시다. 아침에는 비가 그쳐있어야 할텐데 걱정이다. 다시 엎치락 대다가 잠이 들었다. 7시 30분. 바램과는 달리 여전히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그치고 나면 출발할 계획을 한다.
8시 즘 되자 비가 그쳤다. 하늘에 두꺼운 구름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어제 젖은 옷과 헬맷내피, 옷 가지류 들과 밀린 빨래를 뭉쳐들고 관리소 건물에 있는 동전세탁기를 찾는다. 세탁과 건조는 진행되는 1시간 30분가량의 시간이 걸린다. 그사이 다시 텐트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젖은 캠핑장비들을 말린다. 아스팔트 바닥에 텐트와 돗자리를 펼쳐 뒤집어 놓고 말린다. 다행히 햇살이 구름사이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러 분리수거장으로 향한다. 야영장에 근무하는 할아버지가 쓰레기수거장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내 손에 들린 쓰레기 봉지를 보더니 그 앞에 그냥 내려두란다. 뭐라고 내게 질문을 하는데 못 알아듣겠다. 죄송하다, 일본어를 조금밖에 몰라 못 알아듣겠다고 다시 말씀드리자, 곤란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고개만 끄덕인다.
가까이 있는 수도에서 걸레를 빨고 있는데, 다시 그 할아버지가 다가오며 하늘의 비행기를 손으로 가르키며 항공제가 오늘 벌어진단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전투기들이 낮게 연속으로 비행하며 시끄러운 굉음을 내고 있었나보다. 나는 단지 공항이 가까이에 있어서 그런줄로만 알았었다. 12시 30분부터 에어쇼가 시작되는데 여기를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에어쇼를 보러 온것이며, 할아버지도 그 시간에 맞춰 보러 갈거란다. 에어쇼를 즐기기 좋은 장소를 내게 알려주려고 설명을 하는데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곤란해 하는 표정이다. 어제 관리사무소에서 받은 인근지도(편의점의 위치를 묻자 내게 건네준 인근지도)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드리자 여기서 멀지 않은 호수근처의 한곳을 손끝으로 가르키신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텐트로 되돌아온다.
빨래와 젖은 물건들을 정리하며 챙기다보니 벌써 11시가 넘었다. 12시 반 부터 에어쇼가 시작된다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짐을 챙기기로 한다. 비를 피해 하루를 머물렀던 캠핑장을 나서면서 시간을 보니 12시 20분이다. 낮 시간인데도 벌써 부터 캠핑카들이 캠핑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일본은 우리에 비해 캠핑문화가 제법 많이 발달되어 있다. 캠핑카며 오토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많이 보인다.
미사와오토캠핑장. 오전 늦게서야 비가 그쳤다. 이른 아침까지도 내린 비에 젖은 텐트를 말린다.
캠핑장에 세워진 캠핑카들. 버스만한 캠핑카도 보인다.
지금껏 잘 신고다닌 5천원짜리 슬리퍼가 드디어 끊어져버렸다. 그간 고생했다, 잘가라.
할아버지가 알려준 위치에서 조금 못 미치는 곳, 논밭 가운데를 지나는 길가에 차량들이 길게 열을 지어 늘어서 있다. 차를 세우고 길옆으로 나온 모든 사람들이 에어쇼가 열릴 공항쪽 방향을 바라보며 서있다. 여기서 가까운 미사와시 해안은 미스 비돌호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무착륙으로 세계최초로 횡단한 교두보가 된 마을이 있고, 기념관과 복원된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항공기지가 있는 이곳에서 매년 9월 미시와기지 항공제가 열린다. 미사와항공자위대 기지는 미일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작전기지이다. 항공제의 곡예팀은 블루임펄스라는 이름을 가진 항공자위대 소속의 제4비행단 11비행대로 올해 창립50주년이 되었다고 한다.
1시를 넘어서자 대여섯대의 비행기가 에어쇼를 펼치기 시작한다. 하늘이 푸르르면 더 좋았겠다. 아직도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 끼어있다. 비행기가 날아다니며 펼치는 신기한 동선들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본다. 항공기 에어쇼를 처음 보는 나는 내내 신기하다. 1시간 정도 지켜보다가 에어쇼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자리를 뜨기로 한다. 비 때문에 늦게 출발한 터라 지금부터라도 좀 바삐 움직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도로변에 서서 한참 기다리자, 드디어 하늘에 비행기들이 쉭쉭 지나가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시원스럽게 나타나 날아가는 비행기들이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날아다닌다.
요상한 모습으로 곡예비행을 하기도 하고,
무리지어 편대비행을 펼치기도 한다.
하늘을 난다고 모두 자유스럽게 보이는건 아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기술의 하나인 비행기는 그 움직임이 극히 제한적이다.
그 제한적인 움직임을 내에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형태를 만들어내려면 얼마나 고민을 해야할까.
여러 형태의 에어쇼가 벌어지자, 애들보다 애들을 데리고 나온 어른들이 더 신났다.
"저기봐 저기봐! 우와~"
여러대의 비행기가 뭉쳐졌다가 나누어지는 여러 모습들이 구름낀 하늘위에서 신나게 벌어진다.
슬슬 다가오던 비행기가 미친듯이 하늘로 쏫구쳐 오르기도 하고,
뒷쪽에서 나타난 비행기가 순식간에 내려오기도 한다.
엣지있게 팍, 꺽어서 물수제비처럼 날아가는 비행기도 보인다.
한잔 드신 모양새로 날아가기도 한다.
이건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뒤집어져서도 오랫동안 날아간다.
슉슉~대며 하늘을 오가는 비행기들.
쏘아진 미사일처럼 한방향으로 날아간다.
미자와 시가지를 향하는 도로변에는 대부분의 차량들이 멈춰서있고, 모두 차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다. 에어쇼가 사람들의 시선을 오랫동안 하늘에 묶어두고 있는 광경이다. 시내를 거쳐간다. 홈센타(정원용품, 생활용품 전문판매점. 대형마트와 유사한 외관을 하고있어 눈에 잘 띄임)에서 몽키를 사서 엔진오일도 조금 빼내야 하고, 캠핑가스도 구매해야 할 참이다. 시내로 들어서자 대부분의 가게에는 쉬는 날이라 팻말이 붙어있고, 항공제 때문에 찾아든 차량과 사람들을 위해 교통통제와 안내를 하는 경찰관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조그마한 도시가 가득 찰 정도로 차량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교차로의 경찰관에게 홈센타의 위치를 물어서 다시 길을 고쳐 잡는다. 무진장 도로가 막히고 있다. 사잇길을 비집고 운행해서 겨우 홈센타에 도착했다. 가스와 몽키를 사들고 나와 아오모리시에서 남쪽방향에 위치한 토와다코 호수를 향할 계획을 세운다. 역 부근에서 22번 지방도를 따라 시가지를 벗어나자 그제야 심하던 교통체증이 사라졌다.
산골마을과 농장, 밭을 지나는 길이 20km가량 이어진다. 비가 내릴것 같은 하늘 탓에 평소 목에 걸고 다니던 카메라도 가방에 넣어두기만 하고 주욱 내리 달리기만 한다. 점심시간이 벌써 오래전에 지났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4번국도와 지방도로가 만나는 부근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커피우유를 사서 주차장에서 먹는다. 나도 좀 뻔뻔해졌다. 길가에서 퍼질러 앉아 음식 먹는 행위가 아무렇지도 않아진걸 보면 말이다. 다들 지나가며 힐끗힐끗 쳐다보지만 별로 신경쓰이지도 않다.
차량이 정체되던 미자와시를 빠져나와 달리는 지방도로.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이 가득하다.
답답하게 꽉끼인 구름만 아니라면 달리는 맛이 더없이 좋았을 시원한 도로를 지난다.
빵과 우유를 다 먹어가는 찰나 비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다. 약한 빗줄기라 일단 비옷을 입지 않은채 그냥 달린다. 오늘가고자 했던 토와다 국립공원 가까이의 캠핑장까지는 산길을 달려 60km가량 더 가야된다. 394번 국도로 옮겨타기 직전, 비가 너무 심하게 내린다. 할 수 없이 적당한 곳에 멈춰서서 비옷을 껴입는다. 다시 달린다. 빗줄기가 제법 거센 편이라 60km거리를 1시간 가량 달려가기가 어렵겠다 싶다. 할 수 없이 다시 지도를 들여다보고 이곳에서 20km정도 떨어져 있는 무료캠핑장으로 향한다.
상의는 그냥 방수바람막이만 껴입었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차가워진다. 게다가 안쪽에는 반팔티셔츠라 팔뚝부근으로 떨어지는 비를 바이크로 달리면서 맞고 있으려니 아프기까지하다. 걸치고 있는 하의는 편의점에서 싼 비닐로 된 우의다. 바이크에 올라타면서 다리를 길게 휘익 걸치는 동작을 했더니 가랑이사이가 찢어져버렸다. 그 탓에 달리고 있으면 바지 안으로 빗물이 술술 흘러들어오고 있다. 신발은 뭐 애시당초 아쿠아슈즈 상태이다.
몸이 점점 젖어가고 차가워지는 상태로 한참을 달리자, 고속도로 방향으로 길이 꺽인다. 빗길이라 빨리 달릴 수는 없어서 50~60km의 속도로 유지하며 천천히 달려간다. 5km 정도를 더 가자 이번에는 울퉁불퉁 패인곳에 빗물이 사방에 고인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삭막한 골재채취장을 지나 골짜기로 접어드니 제대로 찾아 온건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지도로 봤을때는 길이 오직 이 하나뿐이므로 일단 더 가보기로 한다. 비가 내리는 날은 멈춰서서 지도한장 넘겨보기도 힘들다. 시로헤쵸 삼림공원이라는 팻말이 그제서야 보이고 있다. 공원입구 바로 우측에는 곰출몰 주의라는 경고판이 무시무시하게 서있다.
공원 내의 휴게정자에는 몇몇의 사람들이 짐을 내려 놓은채 비를 피하고 있다. 일단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낡은 취사장 지붕 아래에 스풋을 세우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휴게정자 안으로 들어선다. 오프로드 튜닝을 한 차량들을 몰고 온 서너명의 사람들이 10여분 지나 차에 오르더니 빗길을 뚫고 공원을 나간다. 내리는 빗줄기가 거세기 때문에 야외에서 텐트를 치기는 무리다. 또, 스풋을 세워둔 취사장은 텐트를 치기에는 좁고 불태운 재와 검정숯들이 바닥에 뒹굴고있어 적당치 않다. 휴게정자 안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게터 지붕아래의 한쪽 귀퉁이에 텐트를 친다.
텐트를 친 후, 젖은 옷들을 벗어서 갈아입고 비에 젖은 물건들을 닦아낸다.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도구들을 보니 먼저와 있는 이들은 낚시를 온 동호회 일행들 같다. 대충 짐을 풀고나니 5시 30분이다. 의자에 앉아 젖은 것들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일행 중의 한명이 내게 로 다가와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고 스쿠터로 일본을 여행 중이다 라고 대답을 했더니, 놀라며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여러가지 질문을 하며 궁금해하는 이 사람은 나와 비슷한 연배인 30대 초중반으로 보인다. 함께 있는 이들은 여기서 멀지 않은 도시인 하치노헤에서 살고 있으며, 내일까지의 연휴를 맞아 루어낚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라는 설명을 해준다. 이 캠핑장 바로 옆에는 아오모리의 산골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맑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이들은 전부 7명인데 적당한 포인트를 찾아서 흩어져 있다가, 퍼붓는 비를 피해 한명 한명 베이스 캠프인 이곳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먼저 대화를 걸어온 그와 지금 있는 곳의 위치며, 훗카이도를 포함한 지금까지의 나의 스쿠터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주욱 하다가 저녁 준비 때문에 이야기를 멈춘다. 나도 저녁밥을 해먹기 위해 버너에 불을 켜고 물을 끓인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한참이나 맞고 달려온 탓인지 몸에 한기가 든다. 밥을 짓는 동안 텐트 속에서 침낭을 푸욱 뒤집어쓰고 누워있으니 편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다. 이건 뭐, 내 집의 안락한 방보다도 더 편하게 느껴진다. 몸을 뉘여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은 넓이와 시설로 결정되지는 않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침낭 속에서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음악을 들으며 지도를 펴놓고 일정을 다시 계획한다. 오늘 갑자기 이곳으로 오는 바람에 일정 수정이 불가피하다. 바람과 비는 여전히 몰아치고 있다. 흩어진 낚시동호인들이 다모여서 저녁을 먹는지 바깥은 제법 소란스럽다. 1시간정도 지나자 바깥에서 누군가 부른다. 빼곰히 목을 내밀어보니 아까 나와 대화하던 그 친구다. 잡은 생선으로 스프를 끓였는데 괜찮다면 함께 먹잔다. 술도 마시려는데 괜찮냐고 덧붙여 묻는다. 기꺼이 함께 합석한다.
오시상이라 불리는 나이 지긋한 분이 이 모임의 마스터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 뛰어난 마스터가 가장 많이 잡았다며, 루어낚시로 건져 올린 산천어를 닮은 물고기를 보여준다. 잡은 생선과 버섯을 넣고 수제비까지 넣은 후 바글바글 끓인다. 사케와 함께 그릇에 담아 내미는 그것을 한숟갈 떠먹어 보니, 맛도 모양새도 영락없이 우리 수제비를 같다.
술을 한잔씩 마셔가며 이야기가 슬슬 무르익는다. 여행을 하게 된 계기와 여행에 관련된 이런저런 궁금증들을 어김없이 내게 묻는다. 바로 옆에 앉은 유쾌한 사나이, 사사키상은 자기를 ‘산타마리아 사사키’로 불러달란다. 심장에 선천선기형의 병을 가지고 있음에도 멈추지 않고 술을 마셔대는 사람이다. 술이 한 두잔 오가게 되자 여러 사람이 함께 떠들어대는 그 분위기에 취해 나도 '산타마리아 오'라고 불러달라고 장난을 건다. 산타마리아 사사키상이 던지는 농담들과 몸짓이 얼마나 기발하고 웃긴지 연신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자기 인생에서 세번째로 좋아하는 것이 망사스타킹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그런 말을 대놓고 하면 변태로 취급받는다고 이야기를 해주자, 자신은 생각나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타입이란다.
일찍부터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비슷한 연배의 친구는 36세의 카가상, 초등학교선생으로 재미난 사사키상이 매형이다. 맞은 편에 앉은 동글동글한 인상의 스물 네살의 젊은 친구는 참치를 잡는 어부란다. 그의 오른쪽에 앉은 젊은 장인과 함께 낚시에 왔다. 마스터와 나머지 세명의 아저씨들(아, 나도 이제 아저씨의 범주에 들어가는가!)도 낯선이를 격없이 서글서글 편안하게 대하는 사람들이다.
이어지는 권주와 장난스런 농담들과 낚시 이야기와 내 여행에 향한 궁금증, 그리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들로 뒤섞인 시간들이 길게 이어져 11시가 넘었다. 지금껏 9~10시면 잠들곤 했는데 제법 오래 버틴 셈이다. 그들도 물속에 들어가 낚시대를 던지는 하루가 피곤했던지 하나둘 차량과 근처에 미리 쳐둔 텐트로 자러간다. 사사키상, 마스터, 초등학교 선생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만 남고 모두 사라졌다. 앞에 놓인 안주들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자 도중에 사온 연어포를 꺼내놓는다. 먹어보니 굉장히 비리다. 용케도 이들은 잘 먹는다. 자주 먹어본 모양이다.
새벽 1시. 마신 술로 발음이 조금씩 부정확해지는 마스터가 일본이 어떠냐고 묻는다. 아름다웠다, 특히 훗카이도가 그랬다는 대답을 간단히 하자, 다시 묻는다. 일본사람은 어떠냐 란다. 외국인(그러고 보니, 나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일본에서 외국인이라고 지금까지 생각 해본적이 없었던 듯하다.)의 눈으로 확인받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있다.
사실 생각해 본적 없다. 일본인이 어떻다, 한국인이 어떻다. 구분지어 본적이 없다. 약간의 지형적인 기질과 문화가 다르기는 하지만 사람은 다 그기서 그기 아니던가. 한국이나 여기나, 세상 어디라도 마찬가지다. 대화가 얼마 이루어지지 않아도 코드가 맞는 사람, 타인에게 조용한 사람, 상대를 대함이 예상치 못할 정도로 섬세한 사람, 관계에 사교적인 사람, 스케일이 남다른 사람, 모든 것에 거리를 두는 사람, 웃음에 이유없이 유쾌함이 묻어나는 사람. 이렇게 편의상 구분짓는 도드러진 사람의 특성들을 한 몸뚱아리에 조금씩 섞은채 담고 있는 인간이라는 특별한 존재. 그 특별한 존재들이 한국이든 일본든 살아가는 곳일 뿐이다. 국적을 통한 특성의 분류 짓기는 의미가 없다. 그저 인간이라는 존재가 의미 있을 뿐인 것이다.
언제나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겪으며 살아온 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인간과의 관계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는 대신, 고칠수 없는 병처럼 자연 앞에서 심장이 뛰는 증상을 얻었다. 그탓에 긴 길들을 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무거운 카메라 하나 목에 걸고서. 그 길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지구의 우주의 선물일테다.
대답대신 여러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엮여들어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던 나를 기다리던 마스터가 꾸벅꾸벅 앉은채 졸기 시작한다. 밤이 깊어지자 공원의 불이 꺼져있는 어둠속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거대한 나무가 무서워 보인다. 공원 입구에 세워진 곰출몰 주의라는 팻말 때문에 더 으시시하다. 이들이 없이 이 외딴곳에 혼자 머물렀다면 밤이 참 길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비를 피해 들어온 골짜기의 캠핑장, 시간은 새벽으로 접어들고 있고 나는 낯선 곳의 낯선 낚시클럽 모임 속에 앉아서 또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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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20일, 38일차.
어제 밤, 대화도중에 휴대폰 검색으로 그들이 알려준 오늘의 날씨정보는 이 인근과 가려고 했던 목적지인 국립공원인 토와다호수 모두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는 것이었다. 일어나보니 어제 내내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곧 쏟아 질 것 같은 먹구름의 하늘은 여전하다. 어제밤 술자리에서 오늘 새벽 6시즘에 루어낚시를 하러 강으로 나가는데 날더러 함께 가자고 건의를 받았다. 물속에 들어가서 하는 루어낚시는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지만, 흔쾌히 그러마고 대답을 했다. 왠걸 일어나보니 7시 반이 넘었다. 함께 가자고 했던 카가상은 이미 새벽낚시를 갔다와서 조그마한 물고기를 한 마리 잡아온 상태다.
어제 빗속을 질주한 스풋의 상태점검과 과하게 들어간 엔진오일을 빼내기 위해 새로산 몽키를 들고 스풋을 세워놓은 취사장으로 향한다. 바닥에 엎드려 몇 번이나 오일 배출구의 볼트를 풀기위해 시도해봤지만 자꾸만 미끄러져 볼트 모서리가 마모되기만 할 뿐이다. 30분간 시도를 하다가 결국 포기한다. 육각복스로 풀어야 볼트 손상없이 쉽게 풀릴 모양이다. 이것저것 육안으로 점검 해보니 특별한 이상은 없다.
전원을 넣으려고 호주머니에서 꺼집어 낸 스풋의 스마트키가 좀 이상하다. 감응센스가 붙어있는 머리부분이 쏙빠져서 어디론가 홀랑 날아가 버렸다. 좀 황당해서 멍하게 서있다가 주변을 샅샅이 뒤져본다. 찾을 수가 없다. 혹시나 싶어서 배낭 안에 여분의 키를 챙겨 왔길래 망정이지 꼼짝없이 여기서 길을 멈출뻔 했다.
텐트로 돌아와 말리기 위해 널어놓은 짐들을 챙기면서 보니, 테이블 의자 한쪽 모퉁이 아래에 스마트키의 머리부분이 쏙 빠진채 놓여있다. 테이블위에는 일회용도시락에 담긴 밥이 올려져있다. 카가상(초등학교선생)이 나더러 먹으라고 놓아둔 것이다. 침낭과 매트를 집어넣기 위해 다시 스풋을 세워놓은 곳으로 향한다. 스풋의 사이드백 안에서 스쿠터 메뉴얼을 꺼내어 드라이브 벨트교체주기 및 기타 정비요령에 관한 내용을 선채로 읽고, 도면과 비교해가며 들여다보고 있는 사이 낚시클럽의 마지막차가 부웅하고 떠나버렸다.
기념사진도 한 장 못찍고 어제의 일들에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벌써 가버렸다. 어제밤 이야기로는 오늘 오후 5시까지는 여기서 낚시를 할 계획이라더니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일찍 되돌아가는가 보다. 넓은 이곳에서 언제나처럼 다시 혼자가 되었다.
다시 비가 내리더니 오락가락을 반복한다. 출발하려던 계획을 접고 오늘하루 여기서 느긋하게 쉬어가기로 한다. 텐트내부 바닥을 깨끗이 닦아내고, 아웃텐트를 활짝 열어 불어오는 바람에 환기도 시키며 덜마른 옷가지와 신발을 널어서 말린다. 복잡하게 쑤셔넣어 놓았던 짐들도 몽땅 꺼집어 내어 다시 정리를 한다. 정리 후 잠시 돌아보니, 휴게터 내부에는 낚시클럽이 남긴 잔여물들과 바람에 날려 들어온 낙엽과 발바닥에 묻어온 흙들이 남아있다. 기둥 한쪽에 걸려있는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깨끗하게 쓸어낸다.
천천히 바닥을 쓸다보니 왠지 청소하는 일이 대단한 일인것 같다. 다시 무언가를 이곳에서 시작 할 수 있는 출발점이 이 청소가 아닐까? 깨끗이 쓸어내고 닦아내면 누군가 다시 사용을 하고 다시 마무리 하고, 또 누군가 새로 시작하는 숭고한 일의 시작 부분인것만 같다. 일상을 벗어나서 좋은 점의 하나라면, 보통때 늘하던 행동들이 보통이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새삼스레 비질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일어난다.
가운데 기둥에 110V콘센트가 있다. MP3, 휴대폰, 휴대용컴퓨터를 충전한다. 오늘이 월요일이지만 일본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날이라 공휴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테이블에 앉아 몇시간째 글을 끄적이는 사이 차량들이 몇 대나 들렀다가 나간다. 좀 미안한 것은 이 동네 시민들이 누리고 쉴 수 있게 만들어놓은 휴게터의 일부분에 떠억하니 내가 텐트와 바이크, 빨래를 늘어놓고 앉아있는 것이다. 부디 내일은 맑기를 바랄뿐이다.
시간도 많은 터라 일정을 차근차근 다시 잡아본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보니 모든 계획들이 바뀌어져서 복잡해 졌다. 게다가 센다이 이남으로는 가고자 하는 동선에 캠핑장이 몇 곳 없다. 잠시 멈추던 비가 다시 훌훌 내리기 시작한다. 외진 계곡의 사람없는 캠핑장에서 모처럼 한적하고 여유로운 시간이다.
내리는 비때문에 하루더 머물기로 한 시로헤쵸삼림공원내의 휴게정자.
소박한 점심차림상. 낚시클럽이 주고간 밥과 김치, 볶음고추장으로 점심 해결.
일본의 최북단인 훗카이도 소야미사키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기념으로 받은 조가비.
짐정리하면서 꺼내보니 하나가 깨져있다.
접수한 유료캠핑장에서 나누어주는 표식. 텐트 앞에 부착해 놓는다.
짐정리 하다보니 이런것도 나온다.
비때문에 이틀이나 머물게된 시로헤초삼림공원, 나무사이로 보이는 조그마한 건물은 화장실.
외진곳에 있음에도 화장실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 바로앞에 곰출몰 주의 팻말이 서있다.
캄캄한 밤에는 좀 무서운곳이다.
시로헤쵸삼림공원 내부. 나무뒷쪽으로 작은 하천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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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박지 : 시로헤쵸 삼림공원
- 무료/관리인 없음
- 화장실, 취사장
* 미시와기지 에어쇼 안내
* 이동거리 및 경로 : 52km
미사와 오토캠핑장 → 미사와시가지 → 시로헤쵸 삼림공원
큰 지도에서 스쿠터일본일주-37~38일차 경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