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나서다/스쿠터일본일주

[스쿠터 일본가다] 34일차, 다시 부러진 텐트와 삿포로 시가지/북해도18日

기억할만한 지나침 2011. 5. 5. 01:34







한결 잔잔해진 호수가로 밀려오는 물소리에 잠을 깬다. 밤사이 조금더 추워졌다. 여름이 슬슬 가고 있다는 말이겠다. 어젯밤에 내린 약간의 비로 인해 맺혀있는 텐트 외부의 물기를 닦아내기 위해 걸레질을 하는 사이 툭하고 텐트폴이 부러진다. '아흑, 젠장'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들여다보니 전에 부려졌던 바로 위쪽이다. 


아무래도 그 칸의 텐트폴은 몽땅 불량인가 보다. 끝부분이 부러졌다면 대충 사용도 할 수 나마 있을텐데, 부러진 폴대의 위쪽이 다시 부러진 상태라 재사용도 힘들다. 처음 레분토섬에서 텐트폴이 부러졌을때 다시는 값싼 텐트를 사지 않겠다 다짐했었는데, 10만원대의 텐트치고 한 달간 거의 매일 사용되고 이정도로 버텨 준 것만도 용하다 싶다. 움직인 것에 비해 너무 많은 변화를 바라는 것도 반칙이고, 가격에 비해 너무 높은 품질을 요구하는 것도 반칙이다.




하룻밤 머무른 비푸에캠핑장. 시코츠호반에 있는 두개의 캠핑장 중 서쪽끝에 위치하고 있다.



텐트에 맺힌 물기를 닦아내다가 슬쩍 눌렀는데 텐트가 그만 툭, 부러지고 말았다.

끝이 조금 부러졌던 레시리섬에서와 달리 폴대의 가운데가 부러진 상태라 더이상 텐트폴로 사용하기 힘들다.



일단 먼저 씻고 짐을 꾸린 후, 아침을 대충 챙겨먹는다. 근처에서 짐을 꾸리고 있는 카츠시상에게 폴대가 부러진 이야기를 했더니, 나더러 카메라나 메모지를 들고 따라와 보란다. 쭐레쭐레 슬리퍼를 끌며 카메라를 한 손에 쥐고 쫒아가 보니 취사장 기둥에 붙은 아웃도어 용품점의 광고 포스트를 손으로 가르킨다.


훗카이도에서 가장 큰 매장이고 본인도 필요한 캠핑용구류를 그곳에서 구매했다며 추천을 해준다. 여기라면 텐트 폴대의 수리가 가능할 거란다. 천만다행이 아닐수없다. 하코다테에서 등산용품점을 찾기 위해 그렇게 돌아다녀봤음에도 시내 한쪽 귀퉁이에서 겨우 보이더니 이렇게 위치를 알게 된 것 만으로도 한결 안심이 된다. 카츠시상이 씨익 웃으며 "얏빠리 쿄와 삿포로다(역시 오늘은 삿포로야)."란다. 그도 타이어 교체를 위해 삿포로로 향하고 나도 텐트 때문에 삿포로로 향하게 되었으니 그말이 틀리지 않다.




텐트 폴대가 부러진 나를 끌고오던 카츠시상이 취사장 기둥에 붙어있는 아웃도어용품점의 안내문을 보여준다.

제일위에 있는 매장인 삿포로시 시로이시구에 들러보기로 한다.



짐을 대충 꾸려놓고 호숫가를 따라 잠시 짧은 산책을 한다.



시코츠호(支笏湖)는 원시림에 둘러싸인 둘레 약 42km, 최대 깊이 약 360m로 일본에서 두번째로 깊은 칼데라 호수다.

일본 최북단의 얼지 않는 호수이기도 하며, 투명하고 맑은 담수로인해 투명도 18m를 자랑한다.

투명한 호수 바닥을 들여다 보며 즐길수 있는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다.

▶ 시코츠호의 다른사진보기(링크)



비푸에캠핑장 전경. 나무가 많아 적당한 그늘이 드리워지는 곳이다.




잠시 캠핑장이 위치한 호수변을 산책하고, 시동을 건 후 캠핑장을 나선다. 카츠시상이 역시나 먼저 출발한다. 근처의 석문(코케노 도몬)에 먼저 가있겠단다. 나도 조금 뒤에 이어서 출발한다. 어젯밤에는 그렇게도 컴컴하던 숲길이 밝은 아침에 나서면서 보니 어찌나 울창하고 좋은숲인지 몇 번이나 가만히 느껴보려고 멈춰선다. 큰 나무들이 괴기스럽게 보여지던 밤길에서 밝은 태양 아래의 울창한 숲으로 바뀐후 느껴지는 변덕스러운 기분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을 하게 된다.




캠핑장을 빠져나가는 비포장도로. 거목들이 곳곳에 서있는 울창한 숲이다.



호반일주로로 빠져나가는 길



호수로 흘러드는 물줄기



시원하게 뻗은 호반길



시코츠호반지역은 시코츠-토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캠핑장에서 멀지 않은 코케노도몬 주차장에 도착하자 카츠시상이 다시 바이크를 몰아 도로로 나서고 있다.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걸어가야 코케노도몬을 볼 수 있다고 해서 타이어 교체 예약시간을 맞추기 위해 삿포로로 곧장 간다고 한다. 먼저 간다는 말을 내게 전하는 그가 "또 어디선가 보자구"라며 씨익 웃는다. 손을 흔들고 그를 떠나보낸다. 이제는 더이상 길에서 우연히 만나기는 힘들것이다. 그의 즐거운 바이크여행을 속으로 빌어본다.


주차장에서 내려 사무실 입구를 통과해서 걸어간다. 입장하는 입구에는 협탁기금을 내는 모금통이 놓여있다. 지나는 사람이 알아서 내는 거라 그냥 지나가려고 했지만 옆을 지키고 있는 관리인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통에 100엔을 던져 넣고 지난다. 그렇게 먼 길을 달려왔건만 나는 아직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행동을 하고 있다.


비가 내려 축축해진 보통의 숲이다. 느릿느릿 길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가는 달팽이도 만나고, 완만한 경사의 길을 걸어 오른다. 계단이 나타나더니 그 위쪽에 이끼가 가득낀 석문이 있다. 석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더 재미난 풍경을 만날것 같은데, 팬스 너머로는 출입금지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내려온다. 뭔가 허전하다.




코케노도몬(석문)을 향해 걸어 가는 길.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걸어간다.



여전히 이곳도 곰 출현 주의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인근에 살고있는 갈색곰에 대한 설명이 찍힌 사진과 함께 세워져있다.



스쿠터를 타고 이곳저곳 기웃대며 느긋이 길을 달려가는 나보다도, 더 느리게 길을 가는 달팽이 녀석도 보인다.



코케노도몬 입구



주변에도 숲이 우거진 탓에 녹색의 이끼가 사방에 가득 끼어있다.



코케노도몬. 난간너머는 출입금지다.



코케노도몬. 돌사이의 협로를 따라 걸어들어가면 더 재미난 경험일것 같은데 팬스로 막혀있다.

되돌아서자니 뭔가 허전하다.



근처에는 훗카이도 모양을 본떠서 돌을 촘촘 깔아놓았다.



구석진 암반에는 어김없이 파란 이끼들이 가득 끼어있다.



다시 호수변의 도로로 빠져나와 호숫길을 달린다. 삿포로를 향한다. 삿포로는 훗카이도 제1의 도시로서 570만명의 북해도 인구중 175만명이 살고 있는 일본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곳이다. 훗카이도처럼 평방 제곱킬로미터당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15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좀 신기한 곳이다.


■ 삿포로시


삿포로(札幌)는 '평원을 흐르는 중요한 강'이라는 아이누어에서 유래되었다.


홋카이도는 면적 8만345평방킬로미터, 전체인구는 약 570만명으로 중심도시는 삿포로시(인구 약 175만명)이다. 홋카이도北海道)라는 이름은 1868년에 메이지유신이 일어난 다음 해에 북방탐험대를 파견하였는데 이때부터 북해도北海道)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이전에는 에조蝦夷)라고 불렸다. 메이지유신 초기부터 대규모 홋카이도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그 때 삿포로는 섬의 행정 중심지로 선택, 외국의 전문가들에 의해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그래서 삿포로는 북미 스타일의 장방형 도로체계를 바탕으로 구축되었다. 1857년에는 인구가 7명 뿐이었던 삿포로는 현재 일본 전국에서 가장 젊은 대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홋카이도 사람들은 가족의식이나 조상숭배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고 도덕적인 개념도 느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방적이고 합리적이며 작은 것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대륙적인 기풍과 진취적인 기상을 가지고 있어 개척정신이 왕성하다고 한다. 이처럼 인습에 얽메이지 않는 기질 때문에 순간적이고 향락적인 기질로 평가되어 홋카이도출신 사람들 중에는 회사에서 독립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말하자면 철저한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혹독한 자연환경과 개척민으로써 힘든 노동환경 속에서 정서적인 세계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던 사정이 있다. 이러한 도상코道産子)적 기질은 남자보다 오히려 여자들에게서 더 잘 볼 수 있는데, 남녀구분 없이 노동을 해야만 했던 환경 속에서 기가세고 일 잘하는 여성상이 형성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일지는 모르나 이혼율 또한 일본에서 최고라고 한다.


*출처 : http://kr.japan-guide.com/

           http://www.japong.com

           위키피디아



호수 북쪽으로 삿포로를 향하는 453번 도로가 뻗어있으므로 그 길을 향한다. 갓길이 거의 없는 호수를 따르는 도로를 빠져나오자 산길을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도중의 뷰포인트에서 내려다보이는 호수의 전경을 잠시 즐기기도 하면서 산길을 넘어간다. 꼬불꼬불, 울퉁불퉁한 산길을 10km가량 달리자 내리막을 따라 주욱 길이 이어지고 삿포로시의 외곽지로 진입한다.




시코츠호반도로



시코츠호반도로



시코츠호반도로



시코츠호반도로



시코츠호반도로



시코츠호수에서 삿포로를 향해 넘어가는 오르막길 도중에 내려다 보이는 호수전경



삿포로를 향해 넘어가는 오르막길 도중에 내려다 보이는 호수전경




캠핑장 기둥에 붙여져 있던 팜플렛에 나온 주소만으로 대충 구까지는 찾아왔지만 자세한 주소를 알 수가 없다. 가까이에 보이는 파출소에 들어가 물어보기로 한다. 바이크에서 내려 작은 코반(파출소)안으로 들어가자 두 명의 경찰관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중년과 20대 초반의 신입 경찰관이 함께 근무하는 모습이 왠지 코미디영화에서 나오는 파트너 경찰로 보인다. 한국에서부터 와서 바이크로 여행중 이라고 대답을 하자 굉장하다며 과한 호기심을 보인다.


찾고자하는 아웃도어 매장의 위치를 물으니 인근의 도로지도와 휴대폰 검색을 통해 위치를 알려주며 내가 가진 지도에도 표시를 해준다. 나오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조심히 가라며 인사를 전한다. 


파출소에서 알려준 길을 따라 복잡한 시내길을 달린다. 175만의 인구수 만큼 복잡하게 보이는 삿포로다. 나는 복잡한 도시길을 통과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아마도 복잡한 교통시스템과 많은 사람으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그 영향일터다. 이런 스트레스들에 약한 내 성향을 가지고 지금껏 폭주하지 않고 살아 온 것이 용하다. 뭐 어쩔수 없다.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원치않는 길도 가야한다. 그냥 느긋하게 마음먹기로 한다. 쫒기듯 낯선 시내길을 달려가지 말고, 뭐 색다른것 없나 두리번 거리는 느긋한 동네아저씨 모드로 돌입하기로 마음먹는다.


버스터미널을 지나자 찾던 건물이 중앙선 건너편으로 보인다. 유턴을 할 수가 없어서(일본 도로는 유턴신호가 거의 없다) 우회전 후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온다. 다시 좌회전 하며 좁은 도로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국의 우측차선(일본의 주행반대차선)으로 들어가 버렸다. 신호대기 중인 차 앞을 스치듯 지나 다시 중앙선을 넘어와서 정상차선에 들어섰다. 헐... 식겁했다. 이러니 습관이라는 것이 무서운거다. 한 달 넘게 일본의 길들을 달려왔음에도 아직도 간간이 한국에서의 운전습관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난다.


매장 앞에 주차를 하고, 건물로 들어간다. 3층짜리 건물이 모두 아웃도어 용품으로 가득 차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오케이아웃도어 오프라인 매장 정도 되겠다. 그보다 더 크고 다양한 용품들이 갖춰져 있다. 2층의 텐트코너에서 부러진 폴대를 보여주며 부탁을 하자, 이 매장에서 보유하고 있던 폴대 중에서 동일한 타입으로 골라 길이를 맞추어 잘라준다. 단돈 524엔으로 다시 쓸만한 텐트로 바뀌게 되었다. 우리나라 아웃도어매장에서 텐트 폴대까지 잘라주는 곳을 본적이 없는데, 낯선 일본에서 찾게 되다니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혹시나 싶어 1인용 텐트코너를 들여다보니, 역시나 몽벨이나 허바허바 브랜드의 1인용 텐트들은 40만원을 웃도는 고가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보다는 조금 싼 편이다. 이런 예상치 못한 곳에 돈을 쓸수는 없는터라, 품질 좋은 녀석으로 하나 사버릴까 하며 잠깐 생겨난 생각을 꾸역꾸역 누르고 고개를 돌린다. 잃어버린 양말과 신축성 팔토시를 이곳에서 함께 구매하고 건물 밖으로 나온다.


추차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사람에게 인근에 바이크샵이 없냐 물었더니 2km정도 가면 혼다샵이 있다고 알려준다. 오일필터와 오일를 교체할 시기가 되어서 교체가 필요한 터다. 알려준 곳으로 가봤더니 스풋을 처음보는 바이크샵 오너는 머플러까지 뜯어야 오일필터 커버를 빼낼수 있다며 5,000엔 정도의 요금을 요구한다. (지금껏 직접 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 엄청 간단한 작업이다.) 하코다테의 그 비싼 레드바론에서도 3,700엔 이었는데 너무 많이 부른다. 너무 비싸서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하고 나온다.




삿포로시내의 코반(파출소). 아웃도어용품점의 정확한 위치를 물어보기 위해 들렀다.

친절한 경찰관들이 자세하게 알려준다.



삿포로시내의 아웃도어전문매장 슈가쿠쇼(秀岳荘) 시로이시점(白石店).

슈가쿠쇼는 삿포로에만 3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훗카이도 여행중 필요한 아웃도어용품을 이곳에서 구입하면 편리하다.

▶ 슈가쿠쇼 홈페이지(링크)



아웃도어매장을 나와 다시 삿포로 시가지를 지난다.




오는 길에 시 외곽에서 보이던 레드바론 지점이 생각나 그곳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낯선길을 꾸역꾸역 뒤쫒아 도착해서 물어보니 이곳은 회원제라 비회원인 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며 단호하게 말한다. 하코다테에서의 경우가 특별한 경우였던 것이다. 예전 영수증을 찾아서 꺼내보니 위쪽에 '긴급구조'라며 체크가 되어 있다. 새삼스레 하코다테 레드바론의 인상 좋았던 엔지니어가 고맙다.


근처의 다른 바이크 샵을 물으니 다리건너 2km정도에 한 곳이 있다고 한다. 다시 길을 달린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어쩌다보니 삿뽀로역 부근의 도심까지 와버렸다. 차량과 지나는 인파가 바글바글하다. 광역시의 도심 어딘가를 지나는 것 같다. 격자모양의 길들이 사방에 깔려있는 탓에(삿포로는 개척 거점으로 만들어진 미국식 계획도시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못하겠다. 게다가 반복되는 격자의 사거리들에는 지명표지판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230번 도로를 찾느라 정신이 없다. 시내가 혼잡해서 두 세블럭 가량 차량이 정체되는 구간도 있고 높은 건물도 빽빽이 들어서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주광역시(인구 145만명) 즈음 되겠다. 북해도의 수도답게 복잡한 활기를 띄고 있다.


헤메다가 겨우 길을 찾아든다. 복잡한 시내길을 통과하는 사이, 이상한 번호판과 조그만 바이크에 가득 실린 짐으로 인해 시선의 주목을 몽땅 받은것은 말할 것도 없다. 손에 직접 기름 묻히지 않고 번거로움을 피해 볼려다가 더 복잡한 도로 찾기에 휘말려 버렸다. 공구를 구매해서 직접 오일과 필터를 교체하는 것이 속 편하겠다. 조그만 야마하 바이크 샵이 길 옆으로 보인다. 들어가서 3,000엔을 내고 엔진오일만 교체한다. 점화플러그와 타이어압력도 점검하고 다시 길을 출발한다.




바이크샵을 찾기위해 시내를 헤매다가 발견한 독특한 바이크판매점.

삼륜바이크와 보기힘든  커스텀모델들이 매장 안팍으로 가득 있다.



바이크샵을 찾기위해 헤메다가 결국 야마하바이크샵에서 3,000엔을 주고 엔진오일만 교체한다.

점화플러그, 브레이크패드, 타이어도 점검.




삿포로를 한참이나 달려서 도시를 벗어난다. 오일을 교환해서인지 달리는 스풋의 느낌도 좋다. 시내 길을 헤메느라 벌써 오후 4시가 되었다. 삿포로시에서 남서쪽으로 100km정도 떨어진 토롯코호수가 오늘의 최종 목적지다. 산길을 따라 860m의 나카야마고개를 지나는 오르막이 어찌나 길고 경사진지 시속 60km이상으로 속력이 나질 않는다. 


고개 정상의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다시 내리막길을 한참 달려가자 저녁시간으로 접어든 하늘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해가 사라지니 추워진다. 여름 반팔만 입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아름다운 노을이 내내 눈앞에서 붉게 타고 있다. 퇴근하는 지친 길을 달려서 갑갑한 아파트로 되돌아오며 하루를 마감하던 입체감 없던 예전 삶의 패턴에서 하루종일 길을 달려 붉은 노을을 맞닥뜨리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지금의 여행. 내 인생에서 이런 호사스런 날들이 얼마나 있었던가.




삿포로에서 230번 국도를 따라 나카야마고개를 넘어가는 길. 제법 높은 산들이 길옆으로 펼쳐진다.



오르막길의 정상부인 나카야마 고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아직 한참이나 남은 도야코 호수를 향해 달려간다.



슬슬 어두워지더니 노을이 길앞으로 생겨난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진 후에도 아름다운 노을의 흔적이 하늘 곳곳에 퍼져있다.



호수로 들어가는 간선도로가 공사로 막혀있어서 더 멀리로 길을 돌아간다. 컴컴해진 길을 따라 호숫가로 내려가자 길옆의 호반 캠핑장이 보인다. 도착 후 취사장에서 그릇을 씻고 있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관리실은 따로 없단다. 아침 6시에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돈받으러 오곤 하므로 그전에 돌아가면 공짜라고 알려주기까지 한다.


어디서 왔냐고 내게 묻는다. 스쿠터로 한국에서부터 왔다고 했더니 자기도 후진기어가 달려있는 1,200cc의 할리가 삿포로의 집에 있다며 반가워한다. 서서 나누는 이야기 도중에 그의 아버지가 북조선 사람이라며 서투른 억양과 발음으로 '아버쥐, 어뭐니'를 연발한다. 그 두 단어는 정확한 발음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인생에서 중요하고 기본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야기를 들어보니, 캠핑장 길 건너편의 인테리어 공사중인 건물에서 잠시 머무르는 중이며,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단다. 코펠을 씻고 물을 끓이기 위해 준비를 하러 취사장으로 나오자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까의 그가 저녁 먹었냐고 재차 물어본다. 지금 준비중이라고 대답을 했더니 훗카이도에서 김치라면 먹어봤냐고 다시 묻는다. 김치라면... 아 그립다. 먹어본적 없다고 하자 휘익 가버린다.


텐트로 돌아와 라면을 끓이고 있으려니 그가 다시 나타났다. 손에는 김치라면과 즉석밥에 캔녹차까지 들고 나타났다. 끓이던 라면을 밀어두고 감사히 냉큼 받아든다. 밥 먹는 나를 앞에 두고 그의 숱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그마한 체구의 50대 중반인 그가 쾌할한 어투로 말을 이어간다. 북해도이야기, 키우던 토끼사건(죽어서 너무 그리워한다), 와이프의 고향이 리시리섬이라는 이야기, 고베에 있는 사랑스런 딸 이야기, 이 곳에서 찍은 재미난 사진, 피카츄가 똥사며 뛰어다니는 휴대폰 애니메이션(단연 압권이었다. 웃다가 숨 넘어가는 줄 알았음)등등. 두 시간 가까이 끊임없는 이야기를 하던 그가(나야 뭐 짧은 일본어로 뭔 대화를 그리 길게 하겠는가), 이제는 쉬라면서 일어난다.


그립던 김치라면을 곁들인 저녁식사에 오랜시간 말동무까지 되어준 그가 참 고맙다. 한동안 이어지던 대화가 사라진 고요한 호반에는 무엇을 축하하는지 모를 폭죽이 건너편 온천마을로 부터 쏘아올려지고 있다. 반짝 반짝, 별이 타들어가는 빛을 발산하는 폭죽의 불꽃들이 별빛 대신 호수의 수면 위로 비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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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행거리 : 188km


* 숙박지 : 도야마치 소공원 캠핑장

  - 1박 : 500엔

  - 화장실, 취사장

  - 텐트사이트에서 토야코호수 가운데에 떠있는 나카지마섬이 운치있게 건너다 보임


* 주유 : 2회(741 + 611엔)


* 엔진오일교환 : 2,960엔


* 주행경로 : 시코츠호수 → 삿포로 → 토야코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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