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터 일본가다] 33일차, 벚나무길과 경마목장마을/북해도17日
하쿠닌하마 오토캠프장에서 눈을 떴다. 티셔츠를 갈아입기 위해 옷을 꺼내보니, 세탁해서 집어넣은 티셔츠의 등짝에 검은 먹가루가 잔뜩 묻어있다. 영문을 모르겠다. 지난번 세탁기를 사용 할 때, 뭔가 섞여 들어갔던 모양이다. 잘 지워지지 않는 검은 얼룩이 제법 넓게 남아버려서 손으로 직접 꼼꼼히 빨고 다시 건조기에 넣어 말린다. 건조기가 돌아가는 사이 짐을 꾸린후 카츠시상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내 조그만 스쿠터에 앉아보기도 하고, 나도 그의 큰 바이크에 올라 앉아 보기도 한다. 기념사진도 찍는다. 다리 짧은 나는 그의 바이크에 올라앉아 있기도 힘들뿐더러, 무게는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나다. 타고 다니라면 몇 시간 만에 내 팽겨쳐 버릴 것 같다. 그는 나보다도 키가 작지만 용케도 이런 바이크를 잘 끌고 다닌다. 15살 때부터 30년간 바이크를 몰았다는 경륜이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이겠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어제 낮 동안 지끈지끈 아픈 머리도 그렇고, 잠자던 새벽에도 속 울렁거림이 심해서 자다 말고 깨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다시 자리에 눕기도 했었다. 그 탓인지 머리 속에 희뿌연 장막이 쳐져 있는 것 같고, 속도 불편하다.
짐을 다 챙긴 후, 캠핑장을 나선다. 카츠시상도 내가 진행하는 방향과 동일하게 움직인단다. 그는 에리모곶을 시작으로 동선을 잡고 있고, 나는 어제 오후 늦게 들렀으므로 곶을 들러지 않고 지나는 길을 따라 해안선을 달릴 예정이다. 서로 안전한 여행을 전하고 출발한다.
정갈하고 깨끗한 캠핑사이트를 자랑하는 하쿠닌하마 오토캠핑장. 300엔의 저렴한 이용료로 넉넉한 여유를 누릴수 있다.
에리모곶 도착 직전 2km 앞에서 곶을 가로질러 반대편 해안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다. 길을 따라서 잠시 오르막을 오르자, 광활한 구릉이 주욱 펼쳐진다. 우연히 선택한 길에서 만나는 풍경덕분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다시 해안마을로 내려서니 벌써부터 절경이 해안을 따라 펼쳐진다. 암석들이 멋드러진 모습으로 서있다.
어제 부터 달려오던 336번 국도를 계속 달려 에리모곶에서 부터 북상하는 코스를 이어간다. 길 왼쪽으로는 태평양이 드넓게 펼쳐진다. 조그마한 포구를 지나고 있으려니, 작은 어선들이 포구 인근에 가득 떠있다. 뭔가 조업을 하고 있는 광경인데 사뭇 궁금하다. 포구 방파제에 올라서서 그 모습들을 관찰한다.
일어날 때 부터 속이 좋지 않아 먹지 못한 아침대신으로 우유와 빵을 뜯으며 5~6미터 높이의 높다란 방파제 위에 앉아 조업을 하는 어선들을 구경한다. 다시마를 채취하는 중이다. 갈고리로 바다 속의 다시마를 끌어올리고, 배에 가득 차면 포구로 되돌아와 내려놓는다. 포구에서는 그 다시마를 차에 싣고 적당한 자갈해안을 찾아 좋은 볕 아래에서 곧장 펴서 말리고 있다. 다시마 수확을 하는 수십 척의 배들이 포구 근처에 하얀 갈매기처럼 떠있고, 바삐 왕복하는 배들이 포구와 바다를 오간다.
에리모곶을 우회하는 길. 주변을 가로막고 있는 산세들이 없어 시원스럽다.
부다다다~ 소리를 내며 오르막을 오르는 스풋엔진소리에 소들이 풀을 뜯다말고 내쪽으로 돌아본다.
"잰 뭐야" 이런 느낌.
언덕배기를 올라서자, 시원스런 평지가 쭈욱 펼쳐지고 멀리 자위대 레이다기지도 보인다.
반대편 해안에 도착했다. 벌써부터 해안선이 심상치 않다.
첫번째로 만나는 마을에서 해안 마을길을 따라 잠시 들어가본다.
포구를 따라 둥그스럼한 초지의 지형들이 펼쳐진다.
독특하게 생긴 거대한 바위도 보인다.
336번 국도를 따라 북상을 시작한다.
요상하게 생긴 버스정류장도 지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이 인근의 볼수 있는 생물종들을 거리표시와 함께 그려놓은 표지판이 보인다.
시원스럽게 쭈욱 뻗은 도로는 아니지만, 친근한 매력을 느낄수 있는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자그마한 포구마을을 지난다.
포구 인근에서 작은 어선들이 모여서 조업을 벌이고 있다. 궁금해서 높다란 방파벽 위로 올라서 본다.
이런 배들이 가득 모여 다시마 채취중이다.
배가 가득차면 포구로 되돌아온다. 대기하고 있던 작은 트럭들이 설치되어있는 작은 크레인으로 다시마를 실어 담는다.
차에 실린 다시마는 적당히 좋은 볕아래에서 건조한다.
배위에서 갈고리를 이용하여 다시마를 끌어 올리는 어부.
포구마을을 지나 다시 해안도로를 이어달린다.
모퉁이 돌아가는 길을 따라 다리가 놓여있는 모습도 보인다.
잠시 멈춰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이, 등뒤에서 커다란 엔진소리가 들린다.
멈춰서 사진찍고 있는 사이 카츠시상을 다시 만났다. 900CC의 야마하 TDM900을 타고 있는 모습이 근사하다.
탐나는 노란색이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해안 모퉁이로 이어지던 다리를 따라 가보니, 길이 막혀있다.
가까운 곳에 터널이 뚫린후 이길은 폐쇄된 모양이다. 열리면 지나가보고 싶은데, 굵직한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
아름다운 해안선이 끊임없이 달리는 앞으로 나타난다.
저 멀리 바다로 툭 튀어나온 산은 에소루무곶(エソルム岬).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 에소루무곶(エソルム岬)이 가까워졌다.
포구를 떠나 다시 달린다. 해안선 모퉁이를 돌아가는 방파벽 근처에서 스풋을 세우고 사진을 찍던 중, 뒤쪽에서 바이크 엔진소리가 크게 들린다. 돌아보니, 노란색 바이크를 탄 카츠시상이 스풋 뒤에 와서 멈춰섰다. 생각보다 멀리 못갔네 라며 그가 웃는다. 아침에 헤어지고는 다시 못 볼 줄 알았는데 반갑다. 포구에서 한동안 멈춰있다가 왓다는 이야기와 원래 나는 천천히 간다고 알려주자 그가 다시 손을 흔들며 먼저 출발한다.
해안을 따라 주욱 달리는 오늘의 첫 목적지는 에소루무곶(エソルム岬)이다. 파란 하늘 아래 길게 이어지는 태평양의 푸른빛이 반짝인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늘 그렇듯이 한 번에 주욱 달리지 못하고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에소루무곶에 도착했다. 휑한 주차장에는 카츠시상의 노란 바이크가 벌써 와서 서있다. 70미터 높이 언덕배기의 급한 계단을 헥헥대며 올라서자, 그가 여유있는 모습으로 꼭대기에서 기다리고 있다.
1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길에서 멈춰서서 이 곶을 향해 사진찍고 있는 나를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다며 카메라를 내밀어 보여준다. 메일로 나중에 보내준단다. 한숨 돌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절경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주변의 풍경, 항구와 내륙과 해안선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눈으로 속속 들어온다. 이런 길을 달려왔구나 싶어 새삼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아침부터 호강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다. '자꾸 나타나봐, 맘껏 즐겨주마' 뭐, 이런말이 절로 나온다.
에소루무곶(エソルム岬) 주차장에 도착하니, 사츠시상의 바이크가 먼저 보인다.
지그재그 계단을 따라 70미터 높이의 곶 정상으로 올라간다.
에소루무곶(エソルム岬) 정상에서의 전경. 바로 아래에 있는 사마니 포구가 시원스럽게 내려 보인다.
에소루무곶(エソルム岬)과 연결된 지형.
지금까지 달려온 에리모곶 방향의 해안선
태평양 쪽의 바다색도 맑고 시원스럽다.
시마니포구를 지나 토마코마이까지 이어지는 해안선.
급한 경사의 계단이 정상까지 이어져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보이는 에리모곶 방향의 해안선.
곶 정상의 전망대에 올라서서 보이는 경치못지 않게 계단을 내려오며 보이는 경치도 운치있다.
시마니 포구로 어선이 들어오는 모습까지도 아름답다.
곶의 전망대를 내려와 다시 출발한다. 다음 목적지는 카츠시상이 알려준 경주마 목장으로 유명한 시즈나이 마을이다. 그가 먼저 출발하고 뒤이어 내가 따라간다. 내 최고속도가 그의 바이크 평균속력이 정도밖에 안된다. 300km/h의 속도까지 훌쩍 달린다는 그의 바이크를 내가 제대로 따라갈리 만무하다. 얼마간 함께 달리다가 그를 먼저 보내고 천천히 뒤따라 길을 달린다. 경주마로 유명한 마을에 도착하자, 가로등에 붙어있는 말 장식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륙 쪽으로 길을 꺽어 4km가량 오래된 벚나무가 늘어서있다는 12간도로를 향한다. 말목장이 길옆으로 연이어 보이고,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는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광경도 흔하게 나타난다.
벚나무길이 시작됐다. 카츠시상이 또 먼저와서 천천히 벚나무 가로수길을 지나고 있다. 웃으며 손 흔드는 그가 길 너머로 사라진다. 4~5km가량 일직선의 길에 거목의 벚나무가 양옆으로 서있는 굉장한 길이다. 생각보다 도로가 넓고, 거대하게 자란 벚나무들이 즐비하다. 시작되는 입구에는 코스모스 꽃이 산들산들 피어있어 여유롭게 달리는 느낌이 더없이 상큼하다. 5분에 1대 정도 차량이 지나갈 뿐, 지나는 차량이 거의 없다. 한적하고 긴 길을 즐기는 기분이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이다.
벚꽃이 활짝피는 5월 즘의 시기라면 정말이지 정신 줄 놓아버릴 정도로 황홀하겠다. 언제고 한번 꽃이 활짝 핀날 다시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길이 끝나고 산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돌아 시가지를 우회한다. 길옆으로 전부 마목장이고, 빛깔 좋은 말들이 풀을 뜯는 한가로운 풍경이다. 이 마을의 길을 지나며 평생 볼 말은 다 본 것 같다.
속도빠른 카츠시상은 먼저 출발하고 나는 뒤따라 천천히 다시 해안선을 달려간다.
중간중간 훌륭한 해안풍경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깨끗하게 정비된 해안가의 마을들도 지난다.
얼마지나지 않아 미츠이시 미치노에키(국도변 휴게소)에서 다시 카츠시상을 만났다.
점심으로 사진에 보이는 가게의 우동을 추천해준다.
이지역의 특산물인 다시마로 낸 국물맛이 일품이다. 고명으로 큼직하게 썰린 소라가 들어있어 씹는 맛이 좋다.
카츠시상이 내민 오사카의 신사에서 판매하는 유명한 고춧가루. 우동에 넣어먹으면 칼칼한 맛이 제법 느껴진다.
600엔짜리 우동을 먹고나서 주인아저씨에게 계산하기위해 지갑을 뒤졌더니 1만엔짜리 지폐만 있다. 어쩔수 없이 내밀었더니, 주인도 잔돈이 없어서 300미터 떨어져 있는 미치노에키 건물까지 뛰어가서 바꿔온다. 그럴줄 알았으면, 그냥 내 바이크로 가서 바꿔왔을텐데 미안스럽다.
우동을 먹고 잠시 쉬는 사이, 잠시기다려 보라던 카츠시상이 바이크 뒤에 분홍색의 깃발을 케이블타이로 튼튼히 묶어서 매달아준다.
분홍색의 깃발이 펄럭이면 가시성이 좋아서 안전하기도 하니 매달고 가란다.
뭐 깃발 내용은 훗카이도북부 일본농협(JA)의 홍보 문구인 '우유를 마시자'이지만, 왠지 스풋 뒤에 귀엽게 매달린 깃대 하나에 즐겁다.
다시 여기서 그와 나는 헤어진다.
시즈나이 마을 시가지. 경주마와 벚꽃길이 유명한 마을 답게 조그마한 시가지로 들어서자 가로등위에 상징장식이 붙어있다.
누군가는 일본에서 도시마다 새겨진 도안이 바뀌는 맨홀 두껑 살피며 다니는 재미가 솔솔하다던데, 땅만보고 다니는 짓을 어찌 하랴.
이렇게 하늘만 보고 다녀도 대충 그 마을의 유명한 것들은 다 알수있다.
넑직한 자위대 트럭이 좁은 일본도로의 차선에 꽉차서 멈춰선다.
운전병출신이라 이런건 또 놓치지 않는다.
시즈나이마을길을 따라 끊임없이 나타나는 경주마목장
9월 중순인데 벌써 추수가 끝난 논이 보인다. 좀 이른시기다.
벚꽃길이 유명한 십이간도로를 알리는 팻말을 따라 길을 꺽는다.
물론 틈틈이 끊임없이 마목장이 보인다.
12간도로(니쥬겐도로 사쿠라나미키) 초입에 들어서자, 산들산들 줄지어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반긴다.
시원스럽게 4~5km가량 쭈욱 뻗은 길을 따라 알록달록 코스모스가 나풀댄다.
도로의 가운데즘, 신호등을 넘어서면 본격적인 벚꽃길이 시작된다.
시원스레 쭈욱 뻗은 도로 옆으로 백년은 됐음직한 벚나무 거목들이 열지어 서있다.
아무도 지나다지니 않는 한적한 도로 한가운데 서서 양팔을 쫘악 벌리고 서있으면,
바람을 타고 스물스물 감동이 일어나는 길이다.
벚나무 가로수 뒷쪽은 여전히 광활한 초지와 목장지.
도로 양옆으로는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크게자란 나뭇가지가 산책로를 드리우고 있어 여유있게 걷는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길이다.
시원스럽게 뻗은 도로는 슬슬 달리기만 해도 해방감을 가득 맛볼수 있다.
조그마한 스풋조차 이 도로 위에서는 멋있게 보인다.
이런 도로에 5월이 되어 벚꽃이 활짝, 피어오른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상상을 해본다.
언제고 다시한번 와봐야겠다.
벚나무길 끝즈음에는 오래된 목조가옥도 보인다.
12간도로 끝에서 길을 꺽어 빠져나가는 도로도 빼곡히 길을 따라 심어진 가로수들 덕분에 운치있다.
시나이마을로 돌아가지 않고 우회하는 도로를 따라 달려간다.
스풋을 팔고 말한마리 사서 여행하는 것도 재미나겠다. 문제는 망아지값이 스풋보다 3배는 비싸다는 것.
수입경주마 6개월 된 망아지 한마리가 천만원정도 한다나 뭐래나...
여기저기 온통 목장이다.
목장사이에 메모리얼 파크가 있다. 찾는이가 아무도 없는 헐렁한 공원에서 간식도 섭취하고, 잠시 셀카놀이도 한다.
백마 위에 올라 타고 카우보이 기분을 약간이나마 맞보려고 백방 노력을 기울였으나, 내 다리 길이로는 불가능하다. 승쥘나서 얘네들을 좀 괴롭혔다.
물론 앞에는 "위험!올라가지말것!"이라고 경고문이 붙어있긴 하다.
숱한 말목장을 통과해 니이캇푸 시가지까지 이어지는 206번 지방도로에는 '서레브레이드 긴자'라는 도로이름이 붙어있다.
좀 거창하다.
206번 지방도로의 끝에 쉬어갈수 있는 휴게터가 만들어져있다.
내려다 보이는 인근의 목장 전경이 휼륭하다.
휴게터
휴게터안의 음용수대는 지역특색 답게 귀여운 말모양이다.
화장실문에도 말발굽이 그려져있다.
건물앞의 엑스표는 캠핑 금지를 알리고 있다.
휴게터의 의자까지 말발굽.
휴게터 주차장. 일본은 대체로 어딜가나 자전거와 바이크 주차장 구역이 잘 만들어져 있다.
다시 해안선으로 이어지는 235번 국도로 되돌아와 북상한다. 토마코마이시를 지나 일본에서 4번째 크다는 칼데라호수인 시코츠호수를 향한다. 시코츠호숫가의 캠핑장에서 하루 머무를거라며 동선이 비슷하 내게 가능하면 그쪽까지 오라는 카츠시상의 말도 있었던 터라 하루 주행거리가 비교적 짧은 편인 나도 바짝 속력을 내어 달려본다. 지도상으로는 80km정도 남았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다. 서쪽방향으로 달리고 있어서 지는 해가 왼쪽 앞에서 눈을 찔러댄다.
헬맷에 내장된 썬바이저 덕분에 눈부심은 덜하지만 이래저래 피곤하게 달려가는 길이다. 한시간정도 달려왔을까 여전히 토마코마이시까지도 못왔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달려왔던 지금까지의 주행 습성 때문인지 한시간정도 길게 멈추지 않고 달려오는 것도 내게는 고역이 되어간다. 중간 중간 멋드러진 풍경들을 만날때면 잠깐사이의 피곤함은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말지만, 몇 시간을 목적지까지 내리 달려가는 것은 결코 흥미롭지 않다. 게다가 차량이 복잡한 답답한 시내길을 통과해서 가는 길은 더욱 그렇다.
다리를 지나고 오가는 화물차가 많아지더니 차량통행도 많아진다. 드디어 토마코마이시가지로 진입했다. 자동차전용도로가 4km정도 달리는 경로에 걸쳐져 있지만, 뭐 그냥 달린다. 어차피 한국번호판을 달고 있는 내 상태로는 스풋의 배기량이 얼마인지 알아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일본의 자동차전용도로에는 125CC이상의 이륜차만 진입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는 자동차전용도로 125CC이상, 고속도로는 250CC이상(동승금지)의 배기량 제한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바이크 운행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그마저도 전혀 불가능한 현실이다.
한국에서 바이크를 몰아본 경험이야 미천하지만, 목적지까지 바이크로 이동하려고 하면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국도를 따라 도경계라도 넘어설라치면 자동차전용도로를 통하지 않고 지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주욱이어 달리던 국도가 어느 시점 갑자기 자동차전용도로로 바뀌어 지면, 우회해서 돌아갈 길 찾기가 수월치 않다. 게다가 지도에 자동차전용도로라 표시되어 있지도 않으므로 목적지까지의 경로설정하기가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일부러 오래된 구 도로만 찾아다니지 않는 다음에야 바이크는 대체 국내에서 어떻게 통행하라는 건지모르겠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륜차의 고속도로 통행(링크)이 가능하며, 이런 규제는 OECD국가 중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인도네시아와 베네수엘라 정도가 고속도로 통행불가 국가이다. 비과학적인 위험도를 앞세운 막연한 부정적 제도의 유지를 넘어서 합법적인 교통수단의 이동권이 제한되는 현실은 다시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다. 고속도로 주행 허가가 안되면 자동차전용도로의 주행이나마 좀 검토해줬으면 좋겠다. 부산에서 경기도까지 도로를 피해서 에둘러 달려오려면 당췌, 1박2일은 달려와야 하니 말이다.
지나고 있는 토마코마이시는 센다이, 도쿄, 오사카로의 동일본페리와 니키타로의 서일본페리 노선이 출발하는 곳이다. 여기서 페리를 타고 센다이로 훌쩍 점프를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복잡한 시내를 통과하는 도중에 문득 든다. 복잡하긴 하지만 4차선의 넓은 도로라 지날만하다.
토마코마이시를 향하는 도중 해안선
토마코마이시가지를 빠져나오는 지점에 있는 녹지공원.
공원인데... 곰주의란다. 역시 대범한 훗카이도.
아직은 목격되지 않았나보다. 발견 일시가 적혀있지 않다.
토마코마이 시가지를 지나와 녹지언덕 공원에서 우측으로 난 296번 도로를 따라 40km정도만 더 가면 오늘의 목적지 호숫가 캠핑장이다. 어제 밤에 카츠시상에게 손님대접을 받은터라, 오늘은 뭐라도 대접해야겠다 싶다. 바베큐 꺼리를 사기위해 세이코마트를 찾아봤지만 오늘따라 북해도에 유난히 많던 세이코마트가 안보인다. 대충 세븐일레븐에서 돼지고기와 샐러드 등을 사서 다시 길을 달린다.
5시 30분을 지나자, 어둑해지더니 컴컴해진다. 게다가 시코츠호수 까지는 외곽의 산길이라 해가 진후에 달리기에는 좀 스산하다. 여우가 갑자기 튀어나와 잠시 놀라기도 하며 남은 길을 달려간다. 호수입구까지는 20km가량으로 해가 진 밤에 달리는 길은 왜 이다지도 길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불빛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숲길이다. 갑자기 헬멧 앞이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급하게 멈춰서 가방 주위에 은박매트를 두르고 카메라를 집어넣고 비를 대비 한 후 속도를 늦춰서 천천히 달린다.
신호등이 나타나고 호수주변을 절반정도 따라가는 길이 나타났다. 캠핑장은 아직도 18km정도 더 가야 한다. 낮에 보면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호숫가의 길이겠으나 빗방울 떨어지는 컴컴한 밤길의 바이크 라이딩은 긴장의 연속이다. 앞쪽에서 차량이라도 나타나면 불빛이 맺힌 헬맷 쉴드에 번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오가는 차량이 많지는 않다.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고 깊은 어둠의 숲길을 한참 달리자, 가고자 하는 캠핑장의 표지판이 우측으로 보인다. 숲으로 따라 들어가자 아스팔트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1km가량 비포장길이 이어진다. 오로지 바이크 헤드라이트가 외진 숲길을 비추고 있다. 이런 곳에서 한구짜리 스쿠터 불빛은 참 미미하게 느껴진다. 주변의 나무들은 신령스럽다 할 정도로 높이 치솟은 거목들이 빼곡한 숲이라 하늘은 아예 가려져서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좀 무섭다.
1km의 비포장길이 지겹게 느껴질 즈음 되자 드디어 캠핑장 불빛이 보인다. 접수대에 노란바이크를 탄 라이더가 왔는지 물어보니 1명 와있단다. 사용료는 좀 비싼편이다. 1일에 1,000엔. 호숫가 주변에 만들어진 캠핑장이라 내부가 꽤 넓다. 이리저리 헤메며 찾아보니 호숫가 가까이에 노란바이크가 보인다.
어둠속에서 불쑥 나타난 나를 보더니 카츠시상이 놀란다. 오늘 이곳까지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어서 내 바이크로는 무리일거라고 생각했단다. 후다닥 텐트를 치고 사온 음식을 함께 요리해서 먹는다. 그는 이미 밥을 먹기 시작한 찰나다. 세븐일레븐에서 산 양념돼지고기의 팩은 알고보니 구워먹는게 아니고 뜨거운 물에 비닐팩을 통채로 집어넣어 덮혀 먹는 즉석식품이다. 모르고 있다가 카츠시상의 설명을 듣고서야 알았다.
소세지와 즉석돼지고기에 야채까지 곁들여서 코펠 두껑에 지글지글 구워서 김치, 샐러드와 곁들여서 먹으니 입안에서 녹는다. 그와 함께 진정 캠핑같은 저녁식사를 한다. 그는 내일 삿포로로 간단다. 왜냐 물으니 바이크 뒷 타이어가 너무 심하게 닳아 위험한 수준이란다. 그래서 삿포로의 던롭 지점에 가서 전용타이어로 교체 할 예정인데 그 비용이 35,000엔(우리돈 46만원 가량) 이란다. 으악! 소리가 절로난다. 무슨 바이크 타이어에 금테를 둘렀나 싶다.
저녁을 거창하게 먹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텐트로 되돌아 온다. 텐트에 들어오니 바닥의 울퉁불퉁한 자갈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에어매트에 바람을 더 빵빵하게 불어넣고 엎드려 일기를 쓴다. 웬걸, 9시가 넘어서자 졸음이 팍팍 쏟아진다. 하긴 늦게까지 운전한 하루라 피곤 할만도 하다. 이내 펜을 집어던지고 바닥에 편안하게 눕자, 호수의 파도소리가 쏴아~쏴아~ 하면서 들린다. 눈을 감자 편안한 파도소리가 가물가물한 머릿속으로 환영처럼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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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행거리 : 255km
* 숙박지 : 비푸에캠핑장(美笛キャンプ場/http://www.shikotuko.jp/bifue.html)
- 1박 : 1,000엔
- 코인샤워(19시까지), 코인세탁기, 취사장, 방갈로
- 호수가 바라보이는 전경과 인근의 거목숲이 장점
* 주유 : 1회(657엔)
* 주행경로 : 에리모곶 → 코마코마이시 → 시코츠호수, 비푸에캠핑장(美笛キャンプ場)
큰 지도에서 스쿠터일본일주-33일차 경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