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나서다/스쿠터일본일주

[스쿠터 일본가다] 30일차, 훗카이도 최동단을 지나다./북해도14日

기억할만한 지나침 2011. 4. 5. 01:27








노츠케만이 잔잔한 호수처럼 바라보이는 캠핑장에서 눈을 뜬다. 꼬맹이들이 내 텐트부근에서 공을 차고 떠들어 대는 통에 눈이 절로 떠졌다. 부지런하기도 하다 녀석들. 취사장에서 씻고있는 사이, 떠들며 뛰어다니던 꼬마녀석들이 인사를 등 뒤에 대고 해댄다. 해가 밝게 떠올랐건만 "곰방와(안녕하세요. 저녁 나절의 인사)"란다. 귀여운 녀석들. 공복의 배고픔이 오랫동안 남아있던 어제 오전이 기억나서, 서둘러 미소된장국을 따스하게 끓이고 준비해뒀던 주먹밥과 함께 아침으로 먹고 출발을 한다. 스쿠터에 올라타자 내려쬐이는 아침볕이 따스하다.




노츠케만을 바라보고 있는 오다이토 후레아이 캠핑장, 널직한 부지 위에 가족단위의 캠핑텐트들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다.




항구마을을 지나 해안길을 달린다. 어제 오후 늦게 걸었던 노츠케만의 한쪽 공간에서 자라던, 나라와라의 나무들과 비슷한 형태의 것들이 길 옆으로 보인다. 도로를 따라 한참 달리자, 하시리코탄 반도를 가르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어제 들렀던 노츠케반도에 비하면 크기가 훨씬 작지만, 어떤 지형이 펼쳐지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이 가득 일어난다. 바이크를 몰아 하시리코탄반도를 따라 가보기로 한다. 


조그마한 하시리코탄 반도길은 억새와 갈대로 시작되고 있다. 하얗게 핀 갈대 위에 아침햇살이 머물고 평화롭게 주욱 펼쳐지고 있다. 아침볕을 받아서 은은하게 반짝이는 억새 위로 스프레이처럼 반사되어 나오는 빛과 초지의 모습, 장관이 따로없다. 지상으로 내려온 볕이 수풀을 만나 이리 아름다울수 있다니... 바람에 넘실대는 억새의 풍경과 반사되는 부드러운 빛이 어우러져서 마음이 푸근해진다. 반도의 한쪽 귀퉁이에 위치한 조그마한 마을을 들렀다가, 길이 끝나는 곳까지 달려 본다. 잔 자갈이 깔린 비포장길이 이어지고 있어서 조금 달려보다가 되돌아 나온다. 머리 위로 펼쳐지는 하늘은 오늘따라 어찌나 선명한지, 떠있는 구름이 만화처럼 보일정도로 맑은 날씨다. 너무파란 하늘이라,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노츠케만에 접해있는 오다이토미나토마을의 포구.

포구 가까이에 올려진 어선들의 모습이 출동대기 중인 우주전함 같다. 어딘가 잘 찾아보면 '출동'버튼이 있을지도.



도로 옆으로 노츠케만이 보인다. 바다 위 수풀의 흔적이 보이는 곳은 어제 들렀던 노츠케반도.



244번 국도변, 도로 가까이에도 노츠케만의 석호지형과 짧은 사주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노츠케만을 벗어나 244번 국도를 이어달린다. 시원스럽게 펼쳐진 짙푸른 오츠크해 해안이 연이어진다.



후렌호수를 만나기전까지 나지막한 지형의 부드러운 길을 주욱 달려간다.



새우양식장 건물벽면에는 거대한 새우(고래크기?)가 조각되어 붙어있는 모습도 보인다.



하시리코탄반도를 향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반도를 향해 왼쪽 길로 꺽어든다.

국도를 따라 주욱 직진하면, 오늘 가고자 하는 네무로반도와 네무로시 방향이이다.



하시리코탄(走古丹)반도는 내륙쪽으로 후렌호(風蓮湖)를 감싸고 있고, 바깥으로는 오츠크해와 맞닿아있다.

반도의 2/3까지 475번 지방도로가 이어진다.



■ 후렌호(風蓮湖)


하시리코탄반도와 슌쿠니다이가 오츠크해쪽에서 감싸고 있는 후렌호는 네무로 반도의 시작점에 위치하는 호수로 면적 57.74km²로 일본의 호수중에서는 14 번째로 크고 훗카이도에서는 샤로마호, 노토로호에 이어서 세번째로 큰 호수이다. 둘레 길이 96km에 달한다.


호수 이름의 유래는, 아이누어인 "푸 레 뻬쯔"(빨간 강)로, 유입 하천인 후렌가와(風蓮川)를 가르키는 지명이기도 하다. 후렌가와 강의 습원으로 부터 붉은 물이 흘러 들었던 것과 이름의 유래가 연관되어 있다. 


바닷물이 섞인 후렌호수는 오호츠크해에 접하여 길게 뻗은 사주 위에 만들어진 해안사구에 도요새와 텃새류, 큰백조, 거위 등의 철새 도래지 및 이동 중계지로 약 280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는 곳이다


-출처 : 위키피디아





너른 초지가 시원스레 펼쳐지는 하시리코탄 원생화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475번 지방도로가 이어지는 하시리코탄의 도로는 해당화로드라는 이름이 붙어 있을 정도로 해당화가 많이 피는 곳이다.

훗가이도의 이름있는 원생화원과 달리, 이곳은 아무런 시설도 보이지 않는다.



도로를 따라 가는 길의 좌측으로는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든 날씨에 맞춰 하얗게 피어오른 억새가 넘실댄다.

▶ 언제나 헷갈리는 갈대와 억새의 차이는?(링크)



빛을 받아 물결처럼 흔들리는 억새가 드넓게 펼쳐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곳에서 많이 핀다는 해당화대신, 지천으로 핀 억새를 억세게 운좋게도 대신 만났다.



바다를 뒤에 두고 넘실대는 억새와 함께 달리자니, 마음도 덩달아 넘실대는 것만 같다.



갈대지를 지나서자 시원스레 쭈욱 뻗은 도로 위로 파란하늘과 하얀 구름이 나타난다.

이 길은 어제 들런 노츠케반도에 비해 관광화 되어있지 않은 곳이라,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는 한적한 길이다.



어제 들런 노츠케반도 나라와라에서 신비한 모습으로 서있던 졸참나무군락과 닮은 나무숲이 나타난다.



나지막한 반도지형인 탓에, 약간의 숲과 낮은 초지를 제하고 시선을 가로막는 물체가 없다.

도로 옆으로 시원스레 초지가 펼쳐지고 있다.



하시리코탄반도의 끝을 향해 달리는 도중, 시선을 들어 어디를 보더라도 더없이 맑은 하늘이 펼쳐지고 있다.



포장도로가 끝나더니, 자갈길이 시작된다.



해안을 따라 이전에는 도로가 존재했었나보다. 지금은 유실된 도로만이 흔적으로 남아있다.



햇살아래 풀풀날리는 흙먼지를 뒤에 남겨두고, 되돌아가기로 한다.

볕이 뜨겁지 않다면 천천히 걸어봐도 좋을 길이다.



그나저나, 오늘의 하늘은 그림이 따로 없다. 파란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을 근래 자주만난다.

일상을 살면서 만나기가 쉽지않던 맑은 날씨를 이번 여정에서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복이 또 있을까.



잠시 가까운 해안으로 내려선다. 

하시리코탄반도가 바깥으로 접하고 있는 오츠크해의 맑은 바다는 여기서도 바닥이 들여다 보일정도로 여전히 투명하다.



인적없는 한가한 모래사장, 파란 하늘과 구름. 무인도 어디즘에 서있는 것만 같다.



뜨거운 볕아래를 열심히 달려주고 있는 스풋도 한 컷 찍어본다.



하시리코탄반도의 길 끝즈음에서 보이는 길과 하늘의 모습은, 엽서사진 그 자체다.

이러니 길 위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그것 때문에 가슴 설레이는 길이다.

다시 반도의 길를 되돌아서서 422번 국도를 향한다.




슌쿠니타이 원생야조공원 길로 들어선다. 정오가 조금 덜 된 시간. 조그마한 포구에 연결된 다리를 지나, 모래사주 섬의 끝부분에 만들어진 바다습지 길 위에 도보길이 깔려있다. 나무다리를 건너며 보이는 습지 안쪽의 초원 풍경이 시원스럽고 호방하다. 주목을 닮은 신비스런 붉은가문비나무들이 탐방로 주변에 자라있다. 길을 따라가봤더니, 입구에 세워놓은 지도와는 달리 도보코스가 중간에 끊어져 있다. 


애초 원생화원을 들어설때 부터 멀리 보이던 전망대에 올라서면 이 인근의 경치가 훤히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보도로를 멀리 한바퀴 돌아 전망대로 갈 생각이었다. 결국 예상대로의 코스와는 달리 끊어진 길에서 되돌아 나와서 다시 다리를 건너 전망대로 향한다. 천천히 평탄한 길을 걸어 도착한 전망대에는 오르는 계단이 없다. 멀리서 봤을때에는 입구에 줄이 둘러쳐져있어서 못올라가게 막아놓은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저런 줄 즈음이야 무시하고 올라가주마, 하며 내심 비장한 결심을 했었는데 아예 올라가는 계단이 사라져 있다. 좀 허무하다.


초지 가운데에 어울리지 않게 불쑥 서있는 전망대의 사진만을 담고, 아쉬운 마음을 접는다. 걸어 올 때와는 반대인 오츠크해쪽 길을 따라 되돌아간다. 돌아온 주차장에는 스풋말고 다른 바이크가 한대 세워져 있다. 배가 고프다. 걷고 났더니 12시가 훨씬 넘어선 시간이다. 




하시리코탄반도를 벗어나 시원스럽게 뻗은 244번 국도를 달린다.

이런 시원한 길을 지날때는 슈퍼맨처럼 두팔을 쭈욱 뻗고(안되면 한쪽 팔이라도...) 쌩쌩~달려줘야 한다.



국도 244, 243을 거쳐 44번 국도에 다다르자 와렌호수를 오른쪽에서 감싸고 있는 사주지형의 섬인 슌쿠니다이로 향하는 길이 보이고,

슌쿠니다이 원생야조공원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길을 따라 원생화원으로 향한다.



사주지형이 다리너머로 보인다. 나무로된 다리와 전망대, 그리고 너른 초지가 근사하게 바다 곁에 펼쳐지고 있다.



어선들이 옹기종기 정박하고 있는 조그마한 포구인 도바이 마을 앞의  다리를 건너서면 사주지형이 이어진다.

다리너머의 사주지형의 섬은 슌쿠니다이(春国岱)라 불린다.



빨간 글씨로 현재지라 쓰인 곳이 슌쿠니다이를 둘러보는 출발점인 이 곳이다. 사주로 이루어진 섬을 따라 슌쿠니다이 원생야조공원이 이어진다.

도보코스가 만들어져 있으므로, 주저없이 걸어보기로 한다.



■ 슌쿠니다이(春国岱)


오츠크해와 와렌호(風蓮湖)사이에 위치한 길쭉한 모래톱. 네무로 십경에 포함된다.

 

1,500년~3,000년에 걸쳐 퇴적한 3열의 모래 언덕에 해안, 초원, 다습 초원, 숲, 갯벌등의 다양한 환경이 존재하고있다. 슌쿠니다이와 인근한 와렌호에는 지금까지 약 310종의 조류가 목격되어 조류의 성역으로 알려져 있다. 네무로를 대표하는 자연의 보고이다. 


2005년 람사협약에 등록, 2010 년 동아시아 호주지역을 통과하는 물새의 중요 서식지 네트워크에 포함되어 습지와 물새 서식지 보전을 실시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이누어인 "슌쿠니타이"(가문비나무 숲)"는 유래 지명 그대로 일본 유일의 모래 언덕에 자생하는 붉은 가문비나무 숲이 이루어져 있다. 또한 습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 먹이를 구하는 천적동물의 습격에 비교적 안전한 곳이기도 하여 철새의 도래지로 이용되고 있다. 일본 최대의 해당화군락지가 분포하고 있는 곳이다.


- 출처 : 위키피디아, 슌쿠니다이 네이처센타, 네무로시(根室市) 관광안내


 슌쿠니다이 원생야조공원 네이처센터 사이트(일본어, 구글번역)




원생야조공원의 초입은 걷고 싶도록 만드는 근사한 분위기를 흘려내고 있다.

너른 초지를 따라 목책길이 길게 놓여있고, 드넓은 파란 하늘이 올려다 보인다.



목책길을 따라 걸음을 시작해 본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와렌호의 한쪽 귀퉁이가 걷는 길 왼쪽을 따라 가깝게 펼쳐진다.



산책로 아래에는 조그마한 고등들이 흩뿌려진 소라과자처럼 갯흙에 묻혀있다.

우리 남해안이나 서해안의 갯흙과는 약간 달리보이는 토질이다.



속이 시원해지는, 더없이 쭈욱 뻗은 길을 따라 여유있는 걸음을 만들어간다.



스쿠터를 타고 여러 지역을 지나 긴 길을 달리는 것도 좋지만, 시원스럽게 뻗어있는 이런 길을 거침없이 걸어 보는 것도 비할바 없는 기쁨이다.



와렌호의 물줄기가 슌쿠니다이의 습지로 흘러드는 길목에 목조 교각이 놓여있다.



해안습지와 습지를 연결하는 잘 만들어진 나무다리를 느긋하게 걸어 지난다.

볕은 제법 따갑지만, 선선함을 머금은 바람이 가끔씩 불어와 더없이 걷기 좋은 날이다.



교각아래를 지나는 물빛이 맑다. 들어가면 무릎 깊이 정도 되어 보인다.



녹지와 바닷물의 경계를 따라 낮은 풀들이 빼곡히 자라있다.



조수로 인한 물길이 만들어지는 틈을 제하고는 수풀들이 습지를 가득 덮고 있다.

이럴때 보면, 지구는 식물들이 소리없이 지배하고 있다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고스란히 믿겨진다.



낮은 초지를 지나 붉은가문비나무 군락지를 향해 산책로가 계속 이어진다.



쨍한 하늘아래, 날카롭고 기이하게 서있는 나무들이 나타난다.



주목처럼 삐죽히 마른 가문비나무들은 서있는 그자체로도 기묘하고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하늘로 발사되기 직전의 길쭉한 우주선 같은 모습, 혹은 시간이 쌓인 유적같은 모습으로 메마른 나무들이 서있다.



숲이 들어서지 않은 초지 위에 듬성듬성 서있는 삐죽히 마른 나무들은 우주를 향해 교신하고 있는것만 같다.

가만히 서서 귀와 오감을 최대한 열어본다. 내게도 그들의 이어짐, 그들의 주고받는 교감이 느껴 질 수 있을까.



성장이 종료된 삐죽한 나무 기둥들은, 황폐함 뒤를 이어 독특한 기호를 만들어 내고있다.

말라버린 나무기둥에는 이끼류의 기생식물들이 걸쳐지듯 자라고 있다.



살아서 개체를 성장 시키던 나무는 땅으로 돌아가기 전, 거침없는 볕과 해풍에게 다시한번 몸을 내맡기고

우주를 향해 남아있는 몸짓을 고스란히 던져올리며 서있다.

슌쿠니다이에는 황폐함을 넘어선 특별함이 있다.



한바퀴 돌아 늪지를 지난 후, 해안가에 보이던 높다란 전망대로 갈 예정이었으나

길이 끊긴다. 목책로 갈림길에 세워져 있던 안내판에는 분명 산책로가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함께 걷기 힘든 습지가 펼쳐지고 있다.



길이 끊긴 조망터의 통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주변의 습지를 가만히 둘러본다.

말라죽은 나무의 밑둥이 날카로운 뼈조각처럼 하늘로 들려있는 모습, 습지와 초지가 흐트러진 모습으로 반복되는 풍경의 묘한 마력에 빠져든다.

삶 뒤에 남겨지는 잔재. 죽음은 그렇게 서럽지도, 숭고하지도, 엄숙하지도, 황폐하지도 않고 그저 담담할 뿐이다.

다만 우리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 위에 덧칠된 그 이미지가 세상을 호들갑스레 떠도는 것이겠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죽음을 죽음 자체로만 받아들이기, 삶의 숙제가 다시 되살아나는 풍경이다.

거침없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시작점은 그 숙제를 해낸 다음이 아닐까.



노츠케반도의 바닷길 산책로에서 만나던 그 삶과 죽음의 이미지가 이곳에도 묶여있다.

그 두 가지가 공존하지 않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만 민감하고 예민하게 느낄수 있는가, 숨겨진듯 섞여든 그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가, 깨닫고 난 후, 담담하고 의연하게 바라 보고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터다.

가만이 앉은 눈 앞으로  펼쳐져 보이는 이곳은 마치 가파른 세상의 끝머리 어딘가와 닮아있다. 이 장면, 이 느낌, 이 땅, 깊고 선명하게 기억해 둘 일이다.



가고자 했던 전망대를 향하던 길을 포기하고 습지 앞에서 되돌아 선다.



다시 나무다리를 건너와 초지를 따라 전망대로 향한다.



초지를 따라 걷는 길은, 물이 들면 잠기는 곳인가 보다. 여기저기 물이 고인 웅덩이가 남아있고 질퍽이는 흙길이 이어진다.



사람뿐만 아니라 새들과 짐승들도 길을 함께 애용하는 듯, 선명한 새와 짐승의 발자국과 신발의 흔적이 진흙길에 함께 찍혀 있다.

사람과 동물, 밀려들었다가 다시 나가는 바다, 흔적없이 오가는 바람까지 모두 이 길을 지나는 것이다.

슌쿠니다이 한 켠에서 만나는 질퍽한 이 길에는 세상의 모든 길이 들어있는 것만 같다. 



산책로 도중의 안내지도판에 전망대 출입금지라 적혀있길래 인적이 없어 위험을 예상하여 적어놓은 말인줄 알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깟 전망대 하나 못올라갈 소냐, 기꺼이 올라가주마 하며 벼르고 왔다.

가까이와서 보니, 아예 올라가는 계단이 허물어져서 사라진 상태다. 줄하나 던져올리고 잽싸게 타오르는 닌자술이라도 익혔다면 올라 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는 불가능한 상태다. 멀뚱멀뚱 쳐다 볼 뿐이다. 할 수 없이 전망대에서 인근지역을 내려다보고자 했던 기대를 접고 되돌아 간다.



슌쿠니다이의 길을 되걸어 바이크를 세워 놓은 곳으로 향한다. 

인상적인 길은 불거리가 많은 길이 아니다. 세상과 스스로를 투영할 계기와 영감이 되는 파장이 전해져 오는 곳이 바로 인상적인 길,

인상적인 장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슌쿠니다이 원생화원은 굉장히 인상 깊은 곳이다.

물론 그 인상적인 길을 나처럼 미련하게 사방을 떠돌아 다니며 만날 수 도 있고, 

깊고 세밀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 살피며 일상과 가까운 곳에서 현명하게 만날 수 도 있겠다.




1시, 다시 파란하늘 아래를 향해 출발한다. 온네토 다리를 넘어 네무로반도의 끝인 노사푸곶으로 향한다. 네무로시를 향해가는 도중 해안선에 연이어 펼쳐지는 절벽 지형이 도로에서도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자전거 여행자가 많이 보인다. 반대편 차선에서 내 진행방향과는 반대로 달려오는 자전거들을 오늘만 해도 6대는 본 것 같다. 페달을 밟아 자신의 힘 만으로 길을 이어달리는 그들은 얼마나 힘이들까, 그 힘든만큼 달려온 길에 대한 벅찬 감동도 남달리 클 터이다. 볼때마다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대자 페달을 밟는그들도 기분좋게 손을 흔들며 응대를 한다.


가는 차선을 따라 자전거 한대가 달려가고 있고, 스쿠터를 탄 나는 그 자전거를 추월한다. 얼마떨어지지 않은 휴게 주차장에 잠시 멈춰선 사이, 지나쳤던 그 자전거도 조금 후에 도착해서 쉬고 있다. 편안하게 바이크로 여행을 즐기는 내 입장에서는 어쩐지 안스러운 마음과 응원해주고 싶은 생각이 가득 든다. 가방을 뒤져보니, 포도쥬스가 있다. 쉬고 있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그 포도쥬스를 건네주고는 힘내라는 응원메세지를 전한다. 그도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며 고맙다며 싱긋 웃는다. 그의 웃음에는 자전거로 달려오며 온몸으로 만났던 바람의 모습이 섞여있다.


훗카이도의 최동단이라는 여러 꼬리표(일본 최동단역인 네무로역이 이곳에 있기도 함)가 붙은 네무로시(根室市)를 지나 35번 지방도를 타고 네무로반도의 바다를 따르는 도로를 달려간다. 네무로 반도는 훗카이도 최동단으로 길이 약 30km, 폭 8km의 홀쭉한 반도이다. 반도라면 산이 바다를 향하다가 끊기거나 잠기는 곳인데, 이 곳은 그런느낌이 전혀 없는 구릉의 평야지대로 되어있다. 나무하나 보이지 않는 반도의 평야에 오로지 목장초지만 보이고 있다. 신기한 지형이다. 그래선지 바람이 사방에서 굉장히 거세게 불어온다. 


네무로반도의 끝점인 노사푸곶을 향하는 도중, 중학교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듬성듬성 무리지어 걸어가고 있다. 발랄한 소녀 중의 하나는 스쿠터의 부다다다~하는 엔진소리를 듣더니 되돌아서서는 두 손을 재미나게 흔들어댄다. 나도 웃으며, 한쪽 팔을 크게 흔들어준다. 손을 흔든 소녀도 방긋 웃으며 굉장히 즐거워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인사는 지구 소속 생물들의 발칙한 관계의 시작점이다.


네무로반도의 끝부분인 노삿푸곶 주차장에 도착하자, 한 떼의 그 체육복 입은 학생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무슨 걷기 행사가 있나보다.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는 학생 무리를 지나쳐, 곶의 등대로 향한다. 뭐 그다지 황홀한 비경을 간직한 곶은 아니다. 다만 북해도 최동단의 곶이라는 의미가 스며있는 곳이다. 때때로 사물이 가진 의미는 외형과 객관적인 수치를 뛰어넘어 특별한 가치를 가지게 한다. 이 노삿푸곶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겠다. 곶 끄트마리에는 난파되어 부서진 러시아 선박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 두고 있어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곶 끝 이라선지 바람이 많이 불어오고 있다. 이곳을 찾은 바이크도 서너대가 보인다.




슌쿠니다이를 나와 네무로곶을 향한다. 

44번국도를 따라 달리는 도중 네무로반도와 훗카이도가 연결되는 지점에 커다란 석호가 바다를 향해 입구를 열어두고 있다.

건너온 길을 뒤돌아보자 온네토호수를 건너는 온네토다리가 보인다.



네무로반도의 해안선. 바다로 부터 불쑥 올라와 융기되어 있는 평평한 지형이 이어진다.



훗카이도 최동단의 도시인 네무로 시가지를 지나 얼마간 달리자, 다시 육지로 움푹패여 들어간 석호를 다시 지난다.

평평히 융기된 독특한 지형의 해안선이 35번 지방도를 따라 연이어 나타난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도로를 따라 무리지어 걷고 있는 모습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걷기 행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길 앞으로 네무로반도의 끝지점인 노삿푸곳에 서있는 높이 90미터의 전망탑인 평화의 탑이 높다랗게 보인다.



노삿푸곶 인근의 해안선. 짙푸른바다와 높다랗게 융기된 지형이 가파르게 이어진다.



훗카이도의 최동단 노삿푸곶이 가까워졌다.



노삿푸곶의 끝에는 하얀 등대만 덜렁 서있고, 곧장 파르란 바다가 삼면으로 이어진다.

노삿푸등대는 1872년(메이지 5년)에 홋카이도에서 최초로 점등한 등대로,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은 1930년(쇼와 5년)이다.

빛의 에너지원은 석유에서 아세틸렌을 거쳐 전기로 바뀌었으나, 빛을 방출하는 4등렌즈만은 당시 그대로라고 한다.



어제 오늘 해안을 향해 파도가 제법 쳤었던듯, 해변에는 미역줄기가 가득 밀려와있다.

한 뭉테기 줏어담아서 살짝 데친 후, 초고추장에 꾹 찍어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한가득 밀려오지만 귀차니즘 승! 눈으로 보기만 한다.



지금 서있는 노삿푸곶의 지형도가 어슬픈 모습으로 말뚝에 붙여져있다. 바다건너로 보이는 4개의 섬이 일본의 북방영토라고 곳곳에 써붙여 놓았다.

지금까지 따라오던 길에서도 북방영토반환이라는 글씨가 적힌 인쇄물들이 끊이지 않고 보였었다.

북쪽은 러시아와의 북방영토 분쟁, 남쪽은 중국과의 센카쿠열도 분쟁, 서쪽은 우리와의 독도분쟁.

전쟁이 끝난지가 60년이 넘었음에도 이 나라는 아직도 영토를 두고 분쟁을 하고 있다. 폐쇄된 섬지형과 오랫동안 고립되었던 시스템이 가져오는 

필연적이고 의도된 분쟁임을 어렴풋이 짐작을 할 수는 있으나, 가끔씩 독도를 두고 벌이는 일본의 얌체짓을 보면 

북방영토 분쟁 따위는 영원히 해결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다. 



노삿푸 곶의 끝머리에 서있는 등대 뒤로 돌아가면, 해안암초 부근에서 난파된 러시아 선박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난파된 선적의 의도적인 방치가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노샷푸곶은 북방영토탈환이라는 일본의 목적을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의도가 사방에서 풀풀 풍기는 곳이다. 




■ 노샷푸곶(納沙布岬)


지명은 아이누어인 "ノッ・サム"(놋 샤무/곶 가까이)에서 유래되었다. 원래는 곶 근처에 있던 마을 이름이다. 행정구역은 네무로시 포함된다.

교요우마이수도(珸瑤瑁水道)를 끼고 바다 건너에는 현재 러시아의 실효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하보마이군도가 보이기도 한다. 하보마이군도의 가장 가까운 섬 까지는 불과 3.7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러시아의 순시정 이 해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망향의 미사키 공원, 노샷푸곶 등대, 북방관, 망향의 집, 평화의 탑 등이 있고, 여름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설날에는 홋카이도에서 가장 빠른 일출을 볼 수 있는 위치로 "노샷푸곶 첫날 참배"가 행해진다.


북방관, 망향의 집 2층은 쌍안경이 설치되어있어, 여기에서 하보 마이 군도의 水晶島(7km)을 볼 수있다. 평탄한 섬에 세워진 러시아의 감시탑과 레이더 시설을 볼 수있다.


이 근처의 해역은 거리가 좁아서 일본 해역과 러시아 해역이 모두 수역기준인 200 해리를 만족시킬수가 없다. 해역을 설정을 위해, 노샷푸곶으로 부터 하보마이 군도 사이의 러일 중간선(사실상의 국경선)에 부표가 있다. 일본 어선이 이것을 초과, 무허가로 조업을 하여 러시아 측에 나포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노샷푸곶등대 근해에는 2003년 4월 18일 좌초된 러시아 배가 바위에 올라앉은 채 방치되어 있다. 그 모습을 노샷푸곶등대 라이브카메라로 낱낱이 관찰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좌초된 배는 몇해 전 태풍으로 인해 해상 부분이 유실되어 현재는 일부분만 남아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네무로 반도의 반대쪽 방향 해안선. 오늘도 열심히 달려 가야할 방향이다.




다시 곶의 반대편 도로를 따라 달린다. 평평한 지형이 바다로 부터 불쑥 솟아있는 땅덩어리라 평지 같은 곶이 파란 하늘 아래 거침없이 펼쳐지고, 그위에 놓아진 도로마저 시원스레 이어진다. 겨울이면 얼만 황량할까. 눈마저 덮힌다면 이곳은 어떻게 변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국도만을 따라가다가, 따분해져서 섬과 절벽이 보이는 해안마을로 잠시 내려선다. 해안을 따라 보이는 절벽 끝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마을길을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다니다가, 다시 되돌아나와서 오치이시곶으로 향한다. 작은 무인역에서 길을 꺽어들자 해안 마을이 나타난다. 천혜의 동그스름한 절벽이 항구를 아득히 감싸고 있는 멋진 풍경, 멋드러진 포구의 해안마을이다. 도로 중간의 다리 위에 서서 항구의 비경을 한참이나 넋놓고 바라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형을 간직한 항구일게다. 오른쪽을 감싼 지형의 끝머리가 오치이시 곶,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다.




노삿푸곳을 지나 다시 평평한 지형의 네무로반도의 길을 달려간다. 나무가 거의 없는 초지의 지형이라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거쎄다.

그 바람을 이용하기 위해 군데군데 풍력발전기가 서있다.



네무로반도를 한바퀴 돌아가는 35번 지방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지겨워져서 길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포구로 잠시 내려선다.



도모시리포구. 바다 가까이에서 보이는 해안선의 풍경은 지금까지 네무로반도를 달려오며 보아오던 해안선의 융기된 지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불쑥 쏫아오른 지형의 단면이, 웅장한 높이의 벽으로 해안을 둘러싸고 있다.



오치이시곶을 향해 달리는 길 아래로, 독특한 해안선의 오치이시 포구가 내려다 보인다.

양 옆으로 둥그스름 감싸며 튀어나온 융기된 지형들이 포구와 마을을 포근하게 둘러싸고 있는 해안이다.



땅으로 부터 떨어져나간 흔적들이 길게 이어지는 지형의 끝머리에서 선명하게 보인다.



양 옆으로 튀어나온 지형이 슬며시 감싸고 있는 천혜의 포구이다.

마을을 향하는 도로에 서서 내려다 보이는 포구의 풍경은 장엄하면서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카메라 앵글에 한번에 담기는 힘들지만, 이런 지형으로 둘러싸인 포구이다.



포근히 둘러싸인 포구 뒷편으로 자그마한 오치니시마을의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울퉁불퉁한 도로와 비포장의 길을 따라 마을 뒷편의 언덕길을 오르자 길이 막혀있다. 1.3km정도 걸어가야 한다는 안내문에 따라 스풋을 세워두고 걸어간다. 내 조금 앞에는 한쌍의 남녀가 먼저 걷고 있다. 어둑해지는 외진곳이라선지 사람의 흔적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 지금까지 외진 캠핑장이며 산길을 혼자서 잘만 돌아다니던 내가 이곳까지와서 인기척으로 인해 안심을 느낀다는 것도 좀 웃기다. 상황에 따라 수십번은 더 변덕처럼 바뀌는 내 마음이 어슬프게 느껴져서 피식 웃음이 난다.


걷다보니 조금씩 어둑해진다. 길 옆으로 용담꽃이 보라색의 망울을 잔뜩 틔어내고 있다. 이국땅에서 만나는 용담꽃이 반갑기까지 하다. 생뚱맞은 빈건물을 지나 길이 이어진다. 사카이쯔쯔지 보호림이라 적힌 세움판에서부터 통나무 목책길이 높이 1.5미터 정도로 유지되며 이어지기 시작한다. 방부목의 목책이 아닌, 통나무를 일정하게 잘라 이어붙인 길이라서 걷는 걸음이 조금 어색하하다. 울퉁불퉁한 발밑의 통나무 목책길을 삐뚤삐뚤 걷는 발걸음이 재미난 산책로이다. 붉은가문비나무 숲을 통과해서 지난다. 나무 숲사이에는 열대식물처럼 잎이 거대하게 벌어져 낮게 자라는 식물들이 한가득 자라고 있어 기괴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바닥은 늪지라 숲에서 습하고 음침한 기운이 느껴진다.


목책길을 따라 한참을 걷자 갑자기 평평한 초지가 나타나고, 그 끝에는 등대가 서있다. 시원스레 둘러보이는 초지의 한켠에는 사슴 여러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장난기가 일어나 휘파람을 휘이~ 불어대자 고개를 들고 내쪽으로 바라본다. 집중의 박수를 짝짝~ 치자 귀까지 움직여가며 "잰 뭐야."하는 표정으로 보고있다. 내앞을 먼저 걸어갔던 남녀 한쌍은 벌써 등대를 둘러보고, 다시 길을 되돌아 가고 있다. 그래서 초지가 펼쳐지는 등대의 풍경은 오롯이 나혼자서 누리게 되었다.


나지막한 초지사이로 길이 여러갈래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직진해서 등대 근처의 길 끝에 선다. 둥글고 평평한 초지의 지형아래로 시퍼런 파도가 일렁이고 있다. 바다쪽에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기분 좋은 바닷바람이 해지기 전의 곶 끝머리로 불어오고 주변에는 시선을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독특하고 특별한 기분이 든다. 곶 전체가 마치 내 소유인것양 싶다. 시간이 좀더 있다면, 곶의 양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은데 벌써 5시가 넘었다. 예정한 캠프장에 도착하려면 아직 40여분은 더 가야 한다.




멋드러진 오시니치 포구를 지나 마을 뒷길을 잠시 오르자, 오시니치곶 등대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나타난다.

차량은 더이상 진입 할 수업게 막혀있으므로, 인적없는 들판 가운데 스풋을 세워두고 걸어간다.



오치이시곶(落石岬)을 향하는 길. 초입의 길은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보라색 선명한 꽃망울을 터트려올린 용담꽃이 이 곳의 들판 수풀 사이에서 보인다.

한국의 산천에서 보아올때와는 또다른 감회가 느껴진다.



5분정도 걷자 초지의 길이 끝나고 수림사이로 이어지는 목책로가 나타난다.

길 초입의 세움판에는 사카이쯔쯔지(サカイツツジ, 일본에서 유일하게 이곳에만 자생하는 철쭉과의 식물, 6월에 붉은 꽃이 핀다.)보존림이라 쓰여있다.

 카이쯔쯔지 사진보기



초지와 숲사이로 크지않은 나무목재를 정성스레 이어만든 목책길이 가늘고 길게 이어진다.



목책길은 혼자 걸어가면 딱 적당한 넓이로 지상에서 1.5m가량의 높이로 이어진다.

숲을 지나는 독특한 길을 걷고 있자니, 혼자 모험을 떠나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목책길이 지나는 숲사이에 잎의 길이가 1미터는 되어보이는 넘는 독특한 식물이 곳곳에 자라고 있다.

넓게 땅으로 잎이 벌어지며 자라는 이 식물은 미즈바쇼(ミズバショウ)라는 토란과의 식물로, 잎 길이 80cm, 잎 넓이 30cm까지 자라는 고온다습한 초지에서 자생하는 식물로 5월에 잎이 변형된 하얀 꽃을 피운다.

▶ 미즈바쇼(ミズバショウ) 꽃 사진보기




붉은가문비나무 숲을 지나는 길을 잠시 빠져나오자, 넓다란 초원이 나타난다.



붉은가문비나무가 드문드문 서있는 초지에서 사바나의 분위기가 약간 풍겨온다.

나무 아래에서 하품을하며 늘어진 꼬리 흔들어 파리 쫒고있는 사자 한마리 정도 나와줘도 전혀 이상 할 것 같지 않은 곳이다.



길을 따라 빼곡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붉은가문비나무의 토실토실한 잎.



나무숲과 초지와 다시 나무숲을 반복하며 통과하고 나면,



드디어 곶 끝머리에 서있는 등대가 나타나면서 사방이 뻥 뚫리듯 훤해진다.



늦은 오후에 인적없는 곶의 끝머리에는 사슴들이 풀을 뜯고 있다.

휘파람불며 손뼉을 쳐대는 나를 향해 쫑긋 귀를 세우며 고개를 들어보이고 있다.



목책길이 끝나고, 해안절벽 위에 서있는 등대를 향해 소롯길이 가늘게 이어진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길의 흔적이 여러갈래로 약하게 남아있다.



주변은 여전히 융기된 지형의 평평한 땅으로 산죽이 나지막하고 빼곡히 자라고 있다.



오치이시곶 끝머리 해안. 무너져 내린 지형에는 흙이 패인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곶 끝머리에 서서 아래를 슬며시 내려다 보면, 살짝 겁이 날 정도의 높이이다.



가파른 해안절벽에서 조금 물러난 곳에 오시이치곶등대가 홀로 서있다.



길이 끊기고, 땅이 끊어진 곶의 끝머리가 뭉툭하면서도 서투른 모습으로 바다를 따라 서있다.

늘상 느끼는 바이지만, 바다와 땅이 가파르게 만나고 있는 곶에 서면 일상에서 사라졌던 긴장감이 깊이 되살아난다.

사는것도 이 정도는 되어줘야 한다. 가파르게 무너져 내리면서도 바다를 향해 하염없이 몸을 내세우는 땅 처럼.

깊숙하고 가파른 비탈하나 속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

20분 정도 걸어온 길 끝에 이런 풍경이 기다린다는 것, 여행이 가져다 주는 선물이다.



곶 끝으로부터 바이크를 세워둔 곳으로 되돌아오자, 해가 지려고 하고있고 하늘의 색이 변해가기 시작한다.

오치이시곶에서 건너다 보이는 평평한 섬의 지형이 이채롭게 보인다. 이 인근에 떠있는 섬들은 대부분 평평한 상단부를 가진 융기된 지형으로 되어있다.




등대로부터 되돌아 걷는다. 좁은 목책로 위에서 이제서야 등대를 향해 들어오는 한쌍의 중년부부와과 마주친다. 한쪽으로 조심스레 비켜서자 목책로가 기우뚱 댄다. 화들짝 놀라며 그들과 내가 동시에 웃는다. 비켜선 길을 따라 지나는 그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상냥하게 남기고 지나간다. 스풋을 세워놓은 곳으로 되돌아와보니, 오늘도 까마귀가 바이크 안장 밑에 넣어둔 물통을 꺼집어 내어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놨다. 참, 이늠의 까마귀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눈에 띄는 곳에 물통을 비치한 내탓이다. 집어 넣고는 다시 도로를 향해 달린다.


142번 지방도로를 되돌아나와, 속도를 제법 높여서 길을 달린다. 달리는 사이 해가 져버렸다. 해가져서 어둑해졌지만 푸르스름 약하게 남아있는 빛의 잔재가 비추며 보여지는 길의 풍경이 너무도 아름답다. 이시간대의 풍경은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담아도, 제모습을 담을 수가 없다. 그저, 눈과 마음으로 보고 느낄수 밖에 없다. 어둑한 광량속에서도 보이는 길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둑한 밤에 달려가기가 아까울 정도다. 어쩔수 없다. 세상의 좋은 풍경, 좋은 곳을 전부 밝은 날, 환한 모습,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우 할 수는 없는 거다. 제법 빠르게 달려가는 바이크 앞으로 여우가 불쑥 튀어나와 피해서 달리기도 하고, 숲 그늘에서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사슴들에게 경적을 울러 경고하며 남은 길을 달려간다.




오늘의 목적지인 끼리탓푸곶 캠핑장까지는 한참이나 남아있고, 해는 저물었다.

어둑어둑해지는 길을 부지런히 달린다.



달리는 길 앞으로 선명하고 강렬한 노을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길을 달릴때 하루중 가장 인상깊은 시간을 말하라면, 내게는 단연코 해가 질 녘의 시간이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중간계 밝기의 하늘이 푸르스름 깊어져 갈때, 지평선과 수평선 사이로 생겨나는 빛의 틈을 따라 하염없이 달려가고만 싶어지는 시간.

그시간을 온전히 누리며, 사라져 가는 노을을 향해 미친듯이 바이크의 악셀레이터를 당겨본다.




40여분 달리자 무라다츠마을이다. 건물과 가로등 불빛에 길이 밝아졌다. 인근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곶끝의 이정표를 따라간다. 3km. 캄캄한 밤길 저쪽 너머에는 등대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어두워진 길을 달려 무료캠핑장에 도착하자 오토바이가 30대 가량 빼곡히 주차장에 서있다. 무슨날인가 싶다. 관리실에 불이켜져 있어서 텐트사이트를 문의하자 답변으로 들리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멀뚱멀뚱 관리인아저씨를 쳐다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더니 건물 좌측 박스에 들어있는 화일을 꺼내 이름등을 기재하라고 내어민다. 


늦게 도착한 캠핑장은 가득 들어찬 바이크 캠핑자들로 시끌벅적하다. 무슨행사가 있었던 걸까? 라이더들이 함께 모여 왁자지껄 떠들어 대고 있다. 거부감 강하게 드는 무리지은 그룹이다. 천상 나는, 어쩔 수 없는 방랑형 외톨이인게다. 슬 둘러보니 세워놓은 텐트가 엄청 많다. 지금껏 지나온 캠핑장의 사용자 중 최고로 많은 숫자다. 적당히 빈장소를 찾아 텐트를 친다. 저녁내내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음악들으며 별을 즐기는 내 귀에 들려온다. 게다가 가까이에 서있는 등대불빛은 회전할때마다 텐트 속으로 정기적으로 비춰들고 있다. 약간은 짜증스럽지만, 어젯밤이나, 오늘밤이나 그닥 별다르지 않은 여행길의 밤이다.


가까운 해안절벽 아래의 바다로부터 한번씩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텐트가 들썩인다. 

펄럭펄럭 생겨나는 바람과 등대 불빛과 뒤섞인 목소리. 훗카이도의 최동단을 지나와 도착한 곳에는 사람들 소리로 가득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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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행거리 : 240km


* 숙박지 : 끼리탓푸곶 캠핑장

  - 1박 : 무료

  - 관리실 입구에 비치된 사용자 대장에 이름과 주소를 기입한 후 캠핑사이트 무료사용.


* 주유 : 1회(750엔)


* 주행경로 : 노츠케만 → 후렌호수 → 슌쿠니다이 → 네무로시가지 → 노샷푸곶 → 하마나카 끼리탓푸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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