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나서다/스쿠터일본일주

[스쿠터 일본가다] 22일차, 지평선의 해안도로와 일본최북단 도시/북해도6日

기억할만한 지나침 2011. 1. 30. 22:53








부시럭 대는 소리, 짐 싸는 소리가 들려온다. 복잡한 소음소리가 섞여서 더이상 잠을 자기가 어렵다. 결국 일어났다. 붐붐 라이더 하우스다. 의류팩을 배게삼아 깔고 잤는데 균형이 맞지 않아 머리 한 쪽이 아프다. 생각해 보니, 어제 다함께 마신 사케의 숙취탓도 있을게다. 나는 술만 마시면 머리가 깨질듯 아픈것을 넘어서 가끔 이러다 죽는게 아닐까 싶도록 통증이 온다. 그래서 술과는 친하지 않다. 지끈 지끈 거리는 머리를 가라 앉히기 위해 아스피린을 꺼내 씹어 먹는다. 아스피린 중에는 씹어 먹는 제품도 팔고 있다. 두통이 이유없이 가끔 발생하는 나는 이 제품을 여행때 마다 주머니에 넣어 다닌다. 삼키는 것에 비해 속효성이라 통증 경감이 빨라 잘 가지고 다닌다. 다만 판매하는 약국이 흔치 않다. 


게다가 감기 초기에 복용하기도 좋다. 뭐 생각해보면 여행 중에 몸이 아픈적은 거의 없었다. 겨울의 길을 오랫동안 걸었어도 감기에 시달린 기억이 없다. 내 몸이 유독 다른 사람에 비해 건강하다기 보다, 날마다 익숙치 않은 환경과 새로운것들에 대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몸이 스스로 긴장감을 높여 면역력이 증가된 탓도 있을게다. 여행의 스트레스가 몸과 마음이 감당 할 수 있는 강도를 넘어선다면 해당사항 없는 말이 되겠다. 그렇다면 결국 길 위에서의 건강한 움직임은 어떤 면에서 정신과 마음의 수용폭에 따라 결정 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6시다. 슬슬 모두 일어나는 분위기다. 스풋의 사이드 백에 널어 놓았던 짐들을 차곡차곡 집어 넣고, 언제든 들고 나갈수 있는 배낭만을 남겨둔다. 그사이 페리에서 만났던 친구가 마루에서 청소기를 들고 청소를 하고 있다. 자전거 청년과 도쿄 청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어나 정리를 하고 있다.  늦게 들어온 3인은 어제 내린 비에 젖은 텐트와 침낭류들을 아침 햇빛에 널어 말리느라 분주하다. 세탁기며 건조기가 몽땅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마루에 앉아 슬슬 일정을 확인한다. 


은퇴 여행을 즐기는 할리 아저씨가 가장 먼저 떠나고, 효고에서 온 청년 그리고 자동차 여행을 하는 나라의 부부가 뒤이어 떠난다. 아주머니는 떠나기전 내 바이크를 기념으로 찍었다며 사진이 저장된 자신의 디카를 보여주며 괜찮으냐며 웃으신다. 삶의 되풀이되는 한장면 짧은 만남에 대한 이별의 시간이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삶이란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비가 그친 새로운 날, 아침 하늘에는 양털구름이 송송 떠있다. 어제의 그 괴롭던 비에 대한 보답 인 양 하다.


짐정리를 마치고 라이더하우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한다. 신발이 여전히 축축하게 젖어 있지만 달리다 보면 마를것 같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보니, 바늘이 멈춰 있다. 라이더하우스 내에 비치된 마을 약도를 보니, 시계점이 있기는 한데 8시도 채 안된 지금에 문을 열리 만무하다. 그냥 출발하기로 한다.




좌. 편안하게 하루를 보낸 '붐붐하우스', 어제 내린 비에 젖은 물품들을 너도나도 마당에 내어놓고 말리고 있다.

우. 주차장에도 곳곳에 옷, 레인코트, 침낭이 걸려있다.



46번 도로를 따라 시베츠시까지 북상한다음, 훗카이도의 서쪽해안으로 향하는 239번 국도를 달릴계획이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정말 누군가 그려 붙여놓은 그림인 것만 같다. 파란 하늘에 붓의 흔적같은 구름, 솜털같은 구름이 가는 길 내내 앞으로 이어진다. 텔레비젼에서 확인한 오늘의 최고 온도는 28도라고 한다. 역시 북쪽에 위치한 훗카이도다. 훗카이도로 건너오기전에만 해도 혼슈는 34~35도를  오가는 무더위였는데 갑자기 6~7도는 떨어져 버렸다.


잠자리때가 도로위에서 날아다니다가 달리는 내내 부딪혀든다. 무섭다. 어제는 바이크 주행중에 비를 맞으면 몸이 아프다는 것을 처음 알았는데, 오늘은 잠자리가 드러난 턱과 목에 부딪히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한 50마리 정도의 떼거리가 종종 도로 위로 나타난다. 말그대로 무서울 뿐이다. 잠자리 때문에 몸을 움츠리며 달린다. 하긴 날벼락은 잠자리들에게 더 심할것이다. 평화롭게 하늘을 좀 즐기려고 애들 불러모아 단체 플라잉도 가졌는데, 왠 조그만 바이크의 머리큰 넘이 무리사이를 휘젖고 통과하니... 정말 가을이 되어버렸나 보다. 잠자리가 달리는 길 내내 보인다.




시베츠시(士別市)를 향하는 도로변. 하늘이 너무 맑아서 행복한 아침 길이 시작된다.



시원스럽게 곧게 뻔은 도로



달리는 내내 보이는 구름이 다양한 모습으로 길 앞에 나타난다.




시베츠시를 지나버렸다. 마을안에서 좌회전하는 이정표를 보지 못하고 20km 가량 북상했다. 가까이 보이는 미치노에키(국도변 휴게소)에 서있는 세움판 지도를 잠시 들여다 보다가 알게 되었다. 머리를 한번 긁적이고는 다시 되돌아간다.이번에는 제대로 길을 노려보며 마을가운데에서 우측으로 나있는 239번 국도로 바꾸어 달린다. 시베츠(士別)시를 벗어나는 다리를 건너자 좌측에 '양과 구름의 언덕(羊と雲の丘)'이라는 간판이 나온다. 지도에 보면 전망이 아주 좋은 곳으로 별표기가 되어 있다. 안가볼수 없다. 언덕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른다.


길옆으로 가득 자란 코스모스밭을 지나고, 언덕위에 전원풍의 건물이 예쁘게 세워져 있다. 언덕위의 건물까지 가는 길도 무척이나 아름다울 뿐더러, 건물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별 열개는 주고 싶은 경치이다. 눈 아래로 시베츠시와 주변의 목장과 구릉이 한 눈에 파노라마처럼 들어오는 장소다. 게다가 어제 내린 비로 시야가 맑아진 대지위로 파아란, 물감색 같은 파란 하늘에 구름까지 동동 떠다니고 있다. 볕아래 가만이 오랫동안 서있어도 햇살이 뜨겁지 않다. 기온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양목장인데, 어쩐지 아무리 둘러봐도 양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다들 증발해 버린 것인지...


언덕을 내려와 인근의 목장사이로 이어진 농로를 따라 달려본다. 언덕길을 다시 오르자 경이롭기까지한 아름다운 하늘아래 녹색의 구릉과 초지가 길옆으로 이어진다. 어디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을까. 그저 감탄사만 연발할 뿐이다. 가다말고 멍하니 멈추어 서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어제의 고통스럽던 비가, 오늘은 이렇게 맑고도 아름다운 날씨를 뒤이어 내놓았다. 이런 날씨가 계속 된다면, 하루걸러 하루씩 비가와도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실제로 그런날씨가 이어진다면, 온갖 궁시렁을 다 퍼붓겠지만 말이다.




239번 국도를 따라 시베츠시를 벗어나자, 양과 구름의 언덕(羊と雲の丘) 간판이 요란하게 서있다.



목장언덕을 따르는 길 옆으로 가득핀 코스모스



양과 구름의 언덕(羊と雲の丘) 정상부의 전망대 건물.



언덕위의 건물을 향해 길을 오른다.



동화속에서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목장길을 따라 오른다.



정상 전망대 건물 앞에서 보이는 주변의 전경에 평화스러움이 가득하다.



아랫쪽에 지나온 목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 건물 뒷편으로 보이는 풍경에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 같다.



목장을 따라 둘러쳐진 울타리의 초지 위로 솜사탕 같은 구름이 떠있다.



양목장 답게 창고문에도 양들이 뛰어 다닌다.



건물 뒷쪽으로 조금전에 지나온 시베츠시가 멀리 내려다 보인다.

사방을 둘러봐도 막힘이 없는 파노라마의 전경이 보이는 장소이다.



언덕 전망대를 내려와 주변의 목장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본다.

목장위에 이런 그림 같은 집이 서있기도 한다.



오늘 펼쳐지는 하늘은, 정말 선물같은 하늘이다.



목장의 언덕길을 따르는 도중 주변으로 보이는  하늘이 너무 아름답다.



험하지도 않은 구릉지의 언덕길이 평온히 이어지는 길이다.



양은 보이지 않지만, 초지에서 말들이 쉬엄쉬엄 풀을 뜯고 있다.



주변에는 시야를 막아서는 산지가 없어서 멀리떨어진 내륙까지 보이는 곳이다.

구름과 양의 언덕길을 내려가 다시 국도로 되돌아 간다.



다시 239번 국도로 되돌아와 언덕을 넘는다. 고개를 넘어가는 완만한 경사의 길이 끝나고 내리막이 시작될 즈음 길 가운데에 뭔가 있다. 천천히 속력을 줄이고는 목을 빼고 눈에 힘을 주어 보니, 여우다. 귀가 크고 새초롬하게 생긴 여우녀석이 내가 달려가는 차선 위에 떡하니 멈춰서서 두리번 거리고 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고, 카메라를 꺼내들자 녀석이 잽싸게 뒤돌아 갓길의 덤풀로 뛰어든 후 사라져 버린다. 훗카이도와 일본에 서식한다는 붉은여우인가 보다. 사진에 담지 못한 느린 손과 반응을 자책하며 다시 길을 이어 달린다. 내륙의 길을 따라 달리는 내내 파란하늘에는 다양한 모습의 구름이 펼쳐진다. 길게 뻗은 오르막길에 바람을 타고 휘몰아치는 것같은 모양의 구름이 머리위로 나타나면, 마치 구름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오가는 차량이 적은 한적한 길이다.


 호로카나이초 마을을 지나서 나타나는 380m 높이의 키리타치고개(霧立峠)를 넘어간다. 고개 길 옆에는 비상주차장이 있다. 그 주차장에서 큰 배기량의 바이크 한대가 튀어 나오더니 내 앞을 달려간다. 속력을 줄이고는 나도 그 바이크뒤를 따라 달린다. 갑자기 앞서가는 바이크가 브레이크를 급히 잡는다. 그러더니 길을 살짝 우회하며 다시 속력을 올리고 대달린다. 다가가서 보니, 여우 한마리가 도로위에 쓰러져 있다. 나도 놀라며 우회하며 지난다. 놀라기도 했지만, 역시나 이곳은 훗가이도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평생 보지도 못한 여우를 두 마리나 본다. 그것도 생사로 나뉘어서.





239번 국도를  따라 해안선을 만날때까지 달려간다.



오늘의 포인트는 뭐니 뭐니 해도 파란하늘과 하얀 구름의 하늘이다.

주행도중 도로를 잘살피며 가야하는데, 자꾸만 시선이 너르게 펼쳐진 하늘로 가게된다.



파란 하늘때문에 농작물이 파릇파릇 하게 자라는 농작지 마저도 인상적인 풍경이다.



시선을 흔들어 버릴것 같은 구름이 길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산악지형을 지나 내려가는 길을 따라 깨끗한 하천이 보인다.



농작물 수확이 끝난 밭도 지난다.



해안도로가 나타나려면 아직도 45km는 더가야 한다. 산지로 이어지는 길 옆으로 인가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오직 푸른 숲과, 파란 하늘만이 길 앞에 놓여있다. 풍경이 좀 단순하고 지겨워졌다. 해안도로를 5km 정도 앞둔 고탄베츠 마을을 지나는 도중에 졸음이 쏟아진다. 나는 차를 운전 할 때에도 장거리 운전을 하면 반드시 한번씩은 조는 습관이 있다. 지금까지 용케 바이크 타면서 급하게 졸음이 쏟아 지지는 않았었다. 이번에는 순식간에 화악 잠이 쏟아진다. 차를 운전 할때는 옆자리에 항상 딱딱한 먹거리를 두고 씹어 먹으며 잠을 쫒곤했지만, 바이크는 그렇게 할수가 없다. 마을길을 지나는 도중, 넓직한 갓 길에 멈춰서서 스트레칭을 한다. 맨손 체조를 하며 팔을 휙휙 휘두르는 사이 동네 할아버지가 트렉터를 몰고가며 나를 쳐다본다. 머쓱해져 뻣뻣한 동작으로 어색한 웃음을 짓는 내게, 할아버지가 씨익 웃고는 지나간다. 덕분에 잠이 싹 달아났다.


다시 출발한다. 드디어 해안도로인 국도 232호선과 만났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바다를 만난지 사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한 달은 된 것 같다. 역시 나는 해안도로 체질인가 보다. 머리가 맑아지고, 눈빛이 초롱초롱해 진다. 생각해보면,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배경의 영향이 크겠다. 국민학교 다닐때는 여름만 되면 바다에서 뛰어 노느라 새까맣게 피부가 타서 눈만 말똥말똥 했었다. 피부가 허옇게 허물벗듯 벗겨지는 일은 수시로 있던 일이었다. 100원이 수중에 들려지는 날이면, 동네 녀석들을 모아서 낚시줄 50원 어치에 추와 바늘 50원 어치를 사들고는 바닷가의 조그마한 부둣가로 달려가 줄낚시를 놀이삼아 즐기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랬으니, 바다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게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도 바다와 섬으로 떠나는 길 위에 서는 것을 가슴 설레여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륙도로를 따라 달려온 끝에 해안도로를 만났다. 사흘만에 만난 바다가 더없이 반갑고 좋다.



부드럽 휘어지며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려간다.



일부러 채색 한 듯한 파란 하늘과 해안도로의 질주, 아름다운 길이다. 



나지막한 해안구릉지대를 통과하는 도로가 연이어 진다.



에스자로 길게 휘어지며 뻗은 도로가 보기만 해도 낭만적이다.



도로옆의 해안에는 한적하고 여유있는 풍경들이 가득이다.



내륙쪽의 도로 건너편으로는 목초지가 이어지기도 한다.



시원스럽게 뻗은 도로.



스풋의 백미러를 통해 들여다보이는 하늘에도 몽실 몽실한 구름이 떠있다.




232번 국도를 따라 훗카이도의 최북단 도시인 왓카나이(稚内市)시까지 북상하는 코스다. 오늘 내 목적지도 왓카나이에 위치한 무료캠프장이다. 풍력발전기 여러 기가 해안선을 따라 잠시 보여지더니, 바다를 따르는 길 옆으로 낮은 구릉지대가 펼쳐진다. 구릉지대로 이어진 해안선을 달려가는 도로가 인상적이다. 길고 유려하게 휘어지는 도로가 아름답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도로를 오가는 차량들이 제법 많다. 그탓에 갓길이 좁은 해안도로 도중에 스풋을 멈춰 세우기가 어렵다. 사진에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가슴과 눈으로 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이 가득 들어찬다. 어제까지 처럼 달리다가 멈추면 땀이 주르륵 등을 타고 흐르던 날씨가 지나가버린 것일까. 달리는 길 위에서도 멈춰선 길 위에서도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진다. 이로서 나는 여름을 달려와 가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겠다.


산길을 지나 바다와 처음 만났던 토마메쵸와 쇼산베츠를 지나고 엔베츠쵸의 후지미(富士見) 까지 주욱 구릉지대가 이어지는 독특한 경관의 길이나타난다. 엔베츠쵸를 지나, 데시오쵸(天塩町)의 카카미누마 해양공원(鏡沼海浜公園)으로 우연히 들어선다. 바다와 채 3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넓은 호수가 펼쳐져있고, 주변은 잘가꿔진 초지로 덮여있다. 둘러보니 캠핑장이 있고, 토요일이라 일찍부터 자리잡고 텐트를 설치한 나들이객들이 많이 보인다. 되돌아나오는 길에 마을 뒷길을 지나며 우연히 106번 지방도로로 이어져 달린다. 그덕분에 마을길을 요리조리 꺽지 않고도 왓카나이로 향하는 해안도로에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까지 타고 왔던 239번 국도는 내륙으로 꺽어진다.


테시오강을 건너는 다리를 넘어서자, 여기서 부터 일본 최북단의 국립공원인 리시리 레분 사로베츠 국립공원((利尻礼文サロベツ国立公園))의 영역이 시작된다. 끝없이 뻗은 해안평지로 이어지는 길, 눈앞으로 오직 지평선만 보며 달리는 길이 60km 정도 이어지는 길이다. 길의 끝에는 오늘의 목적지인 왓카나이 시가 있다. 독특하고 특별한 경치에 가다가 서다가를 반복하며, 입으로 탄성을 여러번 내뱉는다. 28개의 풍력발전기가 일렬로 줄을 지어 서있는 길을 지나고, 해얀평야의 습원과, 초지와 해안사구를 지나, 달려도 달려도 지평선만 보이는 길이 이어진다. 도로 좌측의 바다 너머로는 리시분섬이 화산지형인 삼각형의 모습으로 서있다.


드디어 내가 꼭가보자 했던 종점, 레분토섬과 리시리섬이 눈앞에 보이고 있다. 애초 이 여행은 레분토섬의 꽃이 가득핀 트레킹 코스 사진 한 장으로 촉발 된 것 아니었던가. 드디어 눈앞이 목적지다. 되돌아서 훗카이도의 동쪽해안과 혼슈의 나머지 절반의 길이 남아있긴 하지만, 어쩐지 달려온 길이 끝나 가는것 만 같다. 이제 고작 절반 정도 왔을 뿐인데 말이다.


해가 지는 늦은 오후는 쌀쌀한 공기가 떠돈다. 긴팔을 입지 않으면 팔이 시릴정도다.  바람을 가르며 해안도로를 신나게 미친듯이 달려간다. 이 처럼 뻥뚫린 속시원한 길을 달려본적이 있었던가. 조그만 내 스풋이 크루즈 유람선인것 처럼 느껴진다. 목이 쉬어라 노래도 크게 불러가며, 다시 못 올 곳처럼 길을 즐긴다. 옆에서 누군가 보고 있다면, 언덕 위의 하얀집으로 끌려 갈지도 모르겠다.




데시오쵸에서 국도를 빠져 나오자, 해안에서 3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초지로 둘러싸인 카카미누마 호수가 있다.
주변은 해양공원으로 가꾸어져, 캠핑장이 들어서 있다.



왓카나이시까지 이어지는 106번 도로를 향한다. 오늘의 목적지 왓카나이까지 69km가 남아있다.



테시오강을 건너는 교각을 넘어서자 황량하면서도 특이한 지형이 시작된다.

바다도 바로 곁에 펼쳐져 있다.



길 옆의 바다너머 섬전체가 국립공원의 일부인 레시리섬이 희미하게 보인다.



시야 앞을 가로막는 지형이라고는 전혀 없는 뻥뚫린 길이 시작된다.



바다와 길사이에는 초지가 길을따라 길게 이어진다. 



길을 따라 풍력발전기가 좌악 늘어서 있다. 

바다와 고저차이도 얼마되지 않고, 주변을 가로막는 지형이 없는 광활한 곳이라 바람이 많아 풍력발전기를 가동하기에 적합하겠다.



근처의 주차지역에 멈춰서 헤아려보니 28기나 서있다. 



주차 지역 아래로는 초지를 걸어볼수 있는 짧은 산책로가 나있다.



다섯시가 다되어 가는데도, 하늘은 변함이 없다. 하늘과 구름이 하루종일 아름다운 날이다.



해안을 달리는 도로 도중에 바다로 내려갈수 있는 희미한 길이 나있다.



검은 모래길을 따라 해안선으로 내려섰다. 온갖물건이 밀려와 흩어진 해안너머로 삼각형의 리시분섬이 보인다.



누가 알면 바이크로 사람한명 치고 달려온줄 알겠다.

도로 위를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이 스풋에 부딪쳐 생겨난 흔적이 섬뜩하다. 물티슈로 재빨리 닦아낸다.



주욱 이어지는 해안도로 도중에 평지에 터널이 있다. 파도와 바람이 심하게 불때 멈춰 피할수 있는 비상주차구역이다.




반대차선에서 달려오는 라이더들도 이 감동적인 길을 달려 흥분이 된듯, 팔을 크고 과장되게 흔들며 지나간다.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앞으로 내밀어 보이는 라이더도 있다. 바이크 세대가 굉음을 내며 나를 추월해간다. 도중의 습원주차장에서 봤던 아버지와 아들, 딸이 함께 바이크 라이딩을 즐기는 가족이다. 참 재미나게 사는 가족이다. 습원이 내려다 보이는 유쿠루 전망지가 나타났다. 신나게 달리던 길을 잠시 멈추고 전망대로 올라 레시리섬이 내려다 보이는 바다를 한동안 내려다 보며 주변의 습원과 해안사구를 구경한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어둑해 지고 있다.


얼마남지 않은 왓카나이를 향하는 길을 달린다. 시가지가 얼마남지 않은 도중에 길 왼쪽으로 구름과 수평선사이의 틈으로 해가지는 광경이 나타난다. 너무도 아름답고 매혹적인 장면이라 바이크를 급하게 세우고 사진에 담아본다. 일생에 몇 번 만나지 못할 강렬한 일몰의 풍경이 지나간다. 이런 감동과 매력을 사람이 가질 수 있을까? 가질수만 있다면 한번 가져보고 싶을 정도다. 자연만이 가능한, 자연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모습을 하루종일 달려온 길 위에서 만난다.




지평선만을 보며 달려가는 도로 옆으로 바다와 섬이 보이는 낭만적인 길이다.



해안도로 옆으로 펼쳐지는 바다.



한참을 달려와도 지평선만 보이는 도로다.

내륙쪽의 초지 한가운데에는 사로베츠원야지와 습지대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오후 늦은 시간에도 이길을 달리는 라이더가 지나간다.

그도 나 만큼이나 기분 좋은 질주를 즐기고 있겠다.



평지가 길게 이어지다가 나타난 굴곡진 길로부터 차량들이 달려오고 있다.



달려보면 더없이 기분좋은 해방감을 맛볼수 있는 일자로 뻗은 시원스런 도로가 이어진다.



왓카나이가 가까워지자 전망대건물이 나타났다.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 보니 인근의 습원을 따라 산책로가 나있다.



오늘의 목저지인 왓카나이시가 있는 노샤프곶이 멀지 않았다.

일본 최북단의 시인 왓카나이시는 연중 많은 바람이 불어 바람의 도시로 불린다. 이곳에서도 세찬 바람이 불고있다.



얼마남지 않은 왓카나이시를 향해 다시 길을 달린다.



지평선만 보이던 지형이 끝나자, 독특한 구릉성 산지가 도로 옆으로 길게 이어진다.



왓카나이시가 얼마남지 않은 도로 좌측으로 해가지면서 노을이 펼쳐진다.

급하게 멈춰서서 노을을 향해 선다.



이렇게 강렬하고 매혹적인 노을은 본적이 없다.

하늘과 바다의 틈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광경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왓카나이 시가지로 길이 넘어간다. 지도를 다시 한번 살피고 캠핑장이 있는 왓카나이시의 북쪽 변두리 삼림공원으로 향한다. 이미 시간은 7시라, 어두워졌다. 시내길에서 경로가 얽혀 빙글빙글 돌다가 몇 번이나 길을 고쳐 잡는다. 시내를 지나고, 페리항구를 지나 산 위의 공원으로 이어지는 급한 오르막길을 달려간다. 과연 길 끝에 캠프장이 있을까 싶은 외지고 으슥한 길을 따라 한참을 가자, 훤한 주차장이 갑자기 튀어 나온다. 이미 십여대의 바이크와 여러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전부 이곳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다. 


어둠속에서 적당한 자리를 찾아 텐트를 치고 짐을 내려 놓는다. 가로등이 가장자리에 서있어서 내가 자리잡은 곳은 꽤 어둡다. 지금껏 해가지면 당연한 것 처럼 전기불 아래에서 일상을 이어갔었다. 텐트를 치며 여러날 동안 길 위를 떠돌면서 좋은 것중의 하나는, 전깃불의 혜택이 없는 대신 몸의 감각들이 하나하나 세밀해진다는 것이다. 내버려 두었는 귀와 눈과 코의 세심한 기능을 어두운 밤을 지나보내며 조금씩 이용하게 된다.


어김없이 저녁으로 라면에 고춧가루를 풀고, 야채를 넣어 짝퉁 찌게를 만들어 데운 즉석밥과 김치를 곁들여 밥을 먹는다. 일본의 어디에서도 편의점에서 라면과 즉석밥과 김치를 구할수 있다. 맛이야 한국에서 먹는 것과는 차이가 나지만. 보통때 보다 늦은 시간이라 배가 많이 고프다. 허겁지겁 수저를 들고 밥을 먹는다. 그런데 라면에서 뭔가 적응하지 못할 맛이 난다. 이미 찢어 헤쳐진 봉지를 다시 꺼내보니, 왼쪽 위에 카레(カレ―)라 적혀있다. 허걱. 잘못보고 카레 라면을 사왔다. 게다가 5개짜리 묶음 라면을 집어왔는데, 낭패다. 어쩔수 없이 독특한 맛을 즐기면서 저녁식사를 마친다.


넓은 잔디 사이트에, 이 삼십여개의 텐트들이 어둠속에서 조명을 약하게 밝히고 있다. 불빛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온다.

내일이면 드디어 꼭 가보고 싶어 했던, 최북단의 섬 레분토로 향하게 된다. 소풍 전날 같은 설레임이 가득 일어나는 밤이다.









* 숙박지 : 왓카나이(稚内) 삼림공원 캠프장

  - 무료, 등록불필요.

 

* 주유 : 1회(742엔)

   

* 여행정보 : 

  - 리시리 레분 사로베츠 국립공원(한글) : http://hokkaido.env.go.jp/nature/mat/park/kr/rishiri/index.html

 

* 이동거리 및 경로 :  319km / 누적거리 : 5,670km

    삣뿌쵸 붐붐하우스  시베츠시   도마마에초  쑈샨베츠  엔베츠쵸  데시오쵸  왓카나이시

큰 지도에서 스쿠터 일본일주-22일차 경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