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터 일본가다] 21일차, 비에이의 화려한 꽃언덕과 빗길주행/북해도5日
라이더 하우스 GO!에서 눈을 떴다. 오래된 건물에서 쿰쿰한 냄새가 나는 건 여전하다. 방에 비치된 낡은 이불들을 덮고자기가 껄끄러워서 가지고 온 침낭속에서 잠을 잤다. 낡은 집의 합판이 누운채 눈에 들어온다. 어제밤에 빨래를 세탁기에 공짜로 돌리고 방에 널어 놓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만져보니, 여전히 덜 말라 있다. 완전 건조하기에는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 그대로 의류팩에 일단 집어 넣는다. 새벽에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은듯 하다. 바깥으로 나가보니, 비는 더이상 내리고 있지 않다. 다만 하늘은 검은 구름이 가득 끼어있다. 사이드백에 짐을 집어 넣고나니 다시 비가 내린다.
출발하려다가 멈추고, 다시 라이더하우스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 비가 그치려면 시간이 필요할것 같다. 남는 시간에 아침삼아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한다. 의류팩에 집어 넣은 덜마른 옷가지들을 다시 꺼집어 내서, 의자에 빼곡히 걸쳐 놓고 선풍기를 틀어 둔다. 라면을 먹은 후, 설겆이를 하고 테이블에 놓인 바이크 잡지도 넘겨가며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두꺼운 것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빨래들이 얼마지나지 않아 말랐다. 바깥을 보니, 아직도 비가 주적주적 내리고 있는 상태다. 하루종일 여기서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출발하기로 한다. 방풍방수 바람막이 상의를 바깥에 입고, 좌석 아래에 묶인 가방은 바이크 커버로 꽁꽁 씌우고 출발한다. 비가 좀 약해져서 흩날리는 수준으로 내리고 있다.
하룻밤 머무른 라이더하우스 GO의 객실 내부.
라이더하우스 조리구역. 여기를 찾은 사람들이 남겨두고간 식재료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낡은 집이다.
라이더하우스의 거실. 오랜만에 일기예보를 텔레비젼으로 확인했다. 이 지역은 오늘 비가 온다고 한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한글로 이름이 적힌 정체불명의 먹거리가 놓여있다. 누군가 두고 간 것 일테다.
'좋은맛' 이란다. 작명센스가 참으로 솔직하기 그지없다! 불붙은 고추그림에 호기심이 생겨 맛을 볼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지사제도 비상약으로 가지고 온 터라 이 "좋은맛" 때문에 약간의 갈등이 일었다.
라이더하우스 GO의 외관.
하룻밤 머물기에는 그럭저럭 충분한 수준이지만, 푸세식의 바깥 화장실은 비위 좋은 내게도 조금 난감한 상태다.
길 옆에 세워진 간판. 이걸 보고 들어왔다.
비에이쵸의 시키사이의 언덕(四季彩の丘)으로 향한다. 후라노의 유명한 라벤더 꽃은 이미 다 지고 없지만, 비에이에서 너른 농장의 다양한 꽃을 아직까지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시키사이 언덕이다. 구릉을 따르는 농장길을 천천히 달려 시키사이 언덕에 도착했다. 구릉지의 이 도로에는 파노라마 로드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약간의 비가 내리고 있지만, 걸어 다닐 수 있는 수준이다. 주차장에도 비가 와서인지 차량들이 듬성듬성하다. 카메라를 옷아래 집어넣고 입구를 향한다. 입구에는 유지관리비 200엔을 자발적으로 집어 넣는 박스가 걸려있다. 주머니를 뒤져 동전 두 개를 집어 넣고 꽃이 가득한 언덕으로 들어선다.
비탈이다. 너른 구릉의 비탈이 눈 앞으로 내려다 보이고, 각양각색의 꽃들이 줄지어 심겨져 있다. 멀직이서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꽃들이 다양한 색깔을 자랑하며 이어지고 있다. 입구의 건물 가까이에는 언덕을 따라 한바퀴 돌아오는 트렉터 열차가 있다. 1인에 요금 500엔이다. 구석까지 가지 않으면, 걷기에 충분한 넓이로 보여서 그냥 걸어가 보기로 한다. 이런 꽃의 낙원은 천천히 걸으며 즐겨줘야 하는거다.
비가 조금씩 더 내리고 있다. 우산이 없는 나는 후드 모자를 뒤집어 쓰고 길을 걷는다. 우산을 들고 꽃길을 걸으며 즐기는 여행객들이 여럿 보인다. 확연하게 드러나는 화려한 색상의 띠가 길게 이어진다.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주황색의 카페트가 땅 위를 가득 덮고있다. 우중충한 빗 속의 날씨라도 화려한 꽃의 색은 여전히 뚜렷하다.
꽃의 색처럼 강렬한 색상을 가진 인공 구조물이나 인쇄물들을 한 동안 쳐다 본다면, 눈이 피곤해져서 장시간 들여다 보고 있지 못할 것이다. 그에 비해 자연이 만들어내는 것들은 아무리 강렬한 색상이라도 오랜시간 바라보고 있어도 눈이 피곤해져 고개가 돌아 가지는 않는다. 평면을 벗어나 입체와 공간을 가지는, 자연만이 품고 있는 마력의 하나 일 것이다. 후라노 평원에 가득한 라벤더 꽃을 비록 보지는 못했지만, 여기에서 본 꽃들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꽃을 좋아하는 내게는 더없이 걷기 좋은, 천천히 즐기기 좋은 곳이다.
시키사이의 언덕(四季彩の丘) 주차장에 도착하자, 한글로 된 환영인사가 보인다.
'웰컴' 이란다.
시키사이의 언덕(四季彩の丘) 입구 건물. 건물 내부에는 특산품과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건물의 입구. 비에 젖은 아스팔트가 보인다. 입장료를 자발적으로 집어넣는 돈통에도 비닐우산이 씌어져 있다.
입구건물 내부. 발목 돌아간 허수아비 인형이 기념 티셔츠 모델이다.
찬데서 이렇게 오래 앉아 있으니, 발목이 돌아가는게다.
시키사이의 언덕(四季彩の丘)의 상징캐릭터인 볏짚 인형이 입구를 들어서는 여행자들을 맞이 한다.
이름도 붙어있지만, 그것까지야 뭐... 패쓰.
입구 가까운 곳에 청춘불패팀이 왔다간 흔적이 남겨져 있다.
입구에는 이렇게 자잘하게 꽃들이 심겨져 있고.
시키사이의 언덕(四季彩の丘) 팻말이 있는 조망터 앞에서 부터 본격적인 꽃언덕 풍경이 벌어진다.
언덕 조망터. 슬쩍 꽃 모자이크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리는 비 탓에 우산을 쓰고 농원을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산이 없는 나는 방풍자켓의 후드 모자로 대체.
카메라가 젖을까 조심스레 옷자락으로 감싼다.
꽃이 활짝 피는 시기를 지난 시기의 라벤더가 열을 지어 서있다.
백일홍이 갖가지 색으로 열 맞춰 피어있다.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한 색의 향연이 시작된다. 가만보고 있으면 군대 사열을 하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여러가지 색의 맨드라미가 열을 바꿔가며 언덕을 따라 광활하게 심어져 있다.
요금 오백엔의 농장순환차량이 느린 속도로 지나간다.
무릎 정도의 키높이로 자란 미니해바라기가 일제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피었다.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는 꽃밭이다.
멀리로 이어지는 구릉을 따라 참 길게도 피어있다.
국민학교 때, 꽃씨를 학교에 가져 가느라 도로변에 핀 맨드라미 꽃의 까만씨를 가을에 털어내던 기억이 난다.
길쭉한 꽃을 뽑아 꽁무늬를 빨면, 달콤한 맛이나는 사루비아도 긴 꽃띠의 한부분을 이루고 있다.
훗카이도로 년간 500만명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장본인, 라벤더가 아직 지지않고 남아있다.
라벤더 품종도 다양한가 보다. 영하에서 견디는 품종도 있다고 한다.
잎이 하얀 눈의 결정을 닮은 허브도 색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코튼라벤더다.
족도리풀이라는 우리말로 불리는 풍접초도 분홍색, 백색, 보라색으로 가득 자라있다.
언덕 구릉을 따라 길게도 자라있다.
낮은 지대에서 올려다보이는 짙은 색의 꽃들이 화려한 줄무늬 목도리 같아 보인다.
이 언덕의 식재를 디자인 하는 사람은 골머리를 꽤나 썩겠다.
색깔과 품종을 고려해 맞추어 이 넓은 곳을 채워야 하고, 사람들의 눈높이까지 만족시키려면 보통일은 아니겠다.
풍성하게 꽃을 매달은 금잔화도 보인다.
걷는길 가까이로 내내 이런 꽃들이다.
색깔별로 빼곡히 자란 꽃들이 뒤덮힌 언덕이다.
빼곡한 꽃들만 보다가, 귀퉁이 땅에서 여유있게 자라는 이런 꽃들을 만나니 반갑다.
꽃이 땅을 가득 매우고 있는 언덕을 천천히 걷는다.
화려한 꽃만 보이던 꽃밭에서 잎과 함께 핀 작은 꽃들을 보니, 소담스럽기 그지없다.
한 바퀴 크게 돌아 시작점으로 되돌아 왔다. 처음에 봤던 볏짚 인형은 남자인형, 이 녀석은 여자인형이다.
방풍자켓에 빗물이 제법 묻어있다. 훌훌털고 입구건물로 들어온다.
벽면을 보니, 청춘불패의 기념사진이 붙어있다.
비가 내려도 여름의 후덥함은 그대로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언덕을 한바퀴 걸어온 내게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보상으로 준다.
역시, 소문대로 훗카이도의 아이스크림은 부드럽고 맛나다.
시키사이 언덕을 여유롭게 걸으며 즐긴 후,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는 다시 바이크에 올라 길을 달린다. 약한 비가 여전히 흩날리는 상태다. 파노라마 로드 곳곳에 위치한 전망 좋은 언덕을 찾아가 보려고 했지만, 길이 공사 중이라 막혀있다. 포기하고 비에이 시가지 방향으로 길을 달린다. 도중, 언덕배기에 전망대가 서있는 장소가 보인다. 산아이 언덕(三愛の丘)이다. 비는 내리지만, 바이크를 세우고 전망소로 올라가 본다. 초록으로 덮힌 주변의 경치가 빗속으로 내려다 보인다.
비내리는 파노라마 로드를 달린다. 주변으로 방풍림과 농장지의 언덕뿐이다.
파노라마로드 옆으로 내려다 보이는 구릉
산아이 언덕이 나타났다.
잠시 산아이 언덕 전망소로 오른다. 내려다 보이는 주변의 풍경이 평화롭다.
맑은 날이면 더 없이 좋은 경치겠다.
빗속에서도 꿋꿋이 달려온 스풋. 핸들 아래에 묶인 가방은 바이크 커버로 둘둘 감아 둘렀다.
일본은 비에이와 후라노 같은 농촌관광사업이 많이 활성화 되어있다. 그래서 보통의 농업지역이었던 곳이 후라노와 비에이처럼 년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일본의 이런 농촌관광사업은 많은 지원과 노력끝에 만들어진 산물이다. 우리나라도 이것들을 차용해서 많은 노력들이 기울여지고 있기도 하다.
일본의 그린 투어리즘 정책자료
☞ http://www.sericeo.org/file/DATA/NS/pdf/0906_200707050002.pdf
링크를 한번즘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부처를 가리지 않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정책을 수립하는 윤곽들이 읽어진다.
비에이 시가지를 지나 북상하는 237번 국도를 향한다. 얼마간 더달려 국도에 들어서자, 비가 점점 거세진다. 비를 피할 만한 곳이 없다. 훗카이도 집들은 지붕도 짧아서 처마 아래 비를 피할 곳도 마땅치 않고, 연이어 드넓은 농토 가운데를 통과하는 길이다. 할 수 없이 그냥간다. 이미 비 옷을 바깥에 끼어 입은 상태지만, 방수가 아닌 신발과 장갑은 젖어서 질퍽한 상태다. 국도를 따라 우중(雨中) 질주를 한다. 바이크로 장거리 여행을 할 요량이면, 상하의로 된 바이크용 우의와 방수 부츠나 스패츠를 챙기는 것이 좋겠다. 우의(그것도 일회용 하의와 도보시 사용하는 레인코트다)만 덜렁 챙겨온 터라 빗 속을 달리면서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것이 엄청나게 후회된다.
비와 함께 한참을 달린다. 아사히카와시를 우회하는 37번 지방도로를 달리는 도중 우측으로 아사히카와 공원 이정표와 아사히카와 동물원 이정표가 함께 보인다. 공원이라면 적어도 우거진 나무 아래나, 휴게정자 등의 비를 피할 만한 곳이 있겠다 싶다. 더이상 비가 그치지 않는다면 공원의 적당한 장소에서 텐트를 칠 수도 있을것이다. 길을 우측으로 꺽어 공원을 향해 달린다. 비가 더욱 거세져서 한번씩 헬멧을 손으로 닦아내지 않으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갑자기 많이 내린 비에, 도로에는 물이 고여있다.
아사히카와 동물원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는 곳이다. 동물원 관람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책에 실릴 정도로 혁신적인 운영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사히카와 동물원은 훗카이도 아사히카와시에서 1967년에 개원한 작은 동물원으로 겨울에는 영하 25°C까지 떨어지는 지역이다. 직원 10명의 작은 규모의 이 동물원은 시설 투자 중단으로 관람객이 급감하고 재정적자가 누적되어 문을 닫을 위기까지 몰렸었다. 하지만 차별화된 역량을 만들어내기 위한 직원들의 여러 아이디어로, 동물원을 찾는 고객에게 가까운 장소가 되도록 만들어 내었다. 그 결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입소문과 언론의 주목으로 일본 최고의 동물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일본 기업만 받을 수 있다는 경영혁신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경영서적에 실리기도 했으며, 동물원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까지도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도 『아사히야마 동물원 ‘창조적 디자인경영’』이라는 책에 자세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 아사히야마 동물원 관람기1 : http://blog.naver.com/appaloosa73/50103696167
▷ 아사히야마 동물원 관람기2 : http://blog.naver.com/appaloosa73/50103696167
▷ 아사히야마 동물원 관람기3 : http://blog.paran.com/hayananara/42831098
세상 일은 어쩌다 보니, 생겨나는 일들이 허다하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이 주행도 마음 먹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닌, 어쩌다 보니 아직도 빗속을, 그것도 장대처럼 쏟아지는 길을 바이크로 달리고 있다. 우의 속으로 비가 스며든다. 헬멧과 우의 상단의 틈이 있는 목부분으로 빗물이 들어온다. 가슴팍이 서늘하고 축축하다. 바이크로 길을 달리는 라이더 한명이 나와 교차하며 지나간다. 동병상련의 처지가 안타까우면서도, 손을 흔들고 지나가는 다른 라이더를 보고있자니 뭔가 약간의 안심이 되는것 같기도 하다. 나처럼 빗속의 이 길을 달리는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
훗카이도에서는 바이크 라이더들이 서로를 지나칠때, 팔을 흔들며 서로에게 인사를 한다. 참 유쾌한 여행 방식이다. 지나치며 만나는 바이크 여행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나면 괜스레 달리는 길이 더 즐거워 지기도 한다. 한참을 달렸는데도 이정표에 적힌 공원이 없다. 빗 속을 웅크리며 달려오느라 못보고 지나친것 같다. 긴가민가 하지만 앞으로 더 가보기로 한다. 비가 조금 약해졌다. 한참을 더 달려도 공원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 한켠에 바이크를 세우고,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간다. 젖은 손을 대충 닦아내고, 지도를 꺼내본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캠핑장이 있다. 이 빗속을 더이상 달리기는 무리다. 몸도 점차 차가워져 굳고 있다. 그 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비가 계속 내리지만, 어떻게든 텐트만 치고나면 젖은 것들은 해결 될것이다.
나지막한 고개를 지나고 농지를 지나 골프장 가까이 위치한 키토우시(キトウシ) 삼림공원이 나타났다. 사무소를 찾아간다. 바이크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디디고 서자 신발과 장갑에서 물이 주르륵 흘러 내리고 있다. 걸을 때마다, 천 재질로 된 신발 등쪽에서 거품이 일어난다. 대충 몸의 물기를 털고 사무소로 들어간다. 문의를 하자, 내일있는 이벤트 행사 때문에 캠핑사이트를 이용 할 수 없다고 한다. 완전 절망이다. 이 빗길을 뚫고 한 줄기 희망을 찾아 왔는데, 안된단다. 가까이의 캠핑장을 물어보자, 6km 정도 떨어진 캠핑장을 알려준다.
다시 바깥으로 나와 젖은 채, 바이크에 올라탄다. 알려준 캠핑장을 찾아가려고 하다가, 너무 비에 젖어있는 상태라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젖은 옷가지와 신발등을 갈무리 하기에는 무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지도를 보고,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라이더하우스를 찾아가기로 한다. 어차피 젖은몸 조금더 달려보기로 마음을 다독인다. 몸이 슬슬 추워지고 한기가 들고 있다.
조금 약해진 빗줄기가 끊임없이 내리는 길을 다시 달린다. 40~50km/h의 속도로 천천히 길을 달린다. 도로에 고인 물 때문에 추월하는 차량 바퀴에서 물보라가 일어나고 튀어 날아든다. 어쩔수 없다. 감수하며 그냥 달려야 한다. 라이더하우스가 지도에 표시된 인근 지역에 도달해서는 더 천천히 길을 달린다. 라이더 하우스를 가르키는 이정표 같은건 보이지도 않는다. 특징이 없는 지형이라 지도와 비교하기도 어렵다. 마침 삼거리 옆으로 편의점이 보인다.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며 바이크 시트에 올라 타느라 신축성 없는 비닐 우의의 가랑이 부분이 찢어진 상태다. 그래서 빗물이 바지로 새어들고 있다. 더 이상 입고 가기에는 너무 불편하며, 다리도 차갑다. 앞에 보이는 편의점에서 비옷을 새로 구하기로 한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비옷을 그냥 입고 편의점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민망하다. 처마 아래에서 비옷을 모두 벗고 몸의 물기를 대충 닦아낸 후, 편의점으로 들어선다. 문을 열고 카운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신발이 머금은 빗물이 발을 내디딜때 마다 꾸르륵 흘러나온다. 민망하고 미안해서 카운터에 서있는 여점원에게 웃으며 먼저 말을 뗀다.
"이래서 미안합니다. 갑자기 비를 만나서요."
"아, 아녜요. 괜찮습니다." 여점원이 웃으며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비옷이 어디있나요?"
"네, 바로 우측에요."
돌아보니, 출입구 바로 옆에 걸려있다. 훑어봐도 내게 필요한 사이즈가 없다. 미디엄 사이즈만 있다.
"혹시 큰 사이즈는 더 없나요?"
"어머, 거기 있을텐데요. 잠시만요."
그녀가 살펴봐도 없다. 죄송하다고 하더니, 매장 안으로 들어가 여유분의 비옷을 꺼내온다.
"여기요. 손님"
"아, 고맙습니다."
오늘 먹거리를 미리 이 곳에서 준비하기로 한다. 상품을 고르고 있는 등 뒤로 두 명의 여점원이 쾌활하게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빗속에 얼어붙은 몸이 긴장을 바짝하고 있었는데 밝은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오자, 그 긴장감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계산을 하면서 길을 물어본다.
"혹시 가까이에 라이더 하우스가 있나요?"
"아, 그럼요. 역 바로 옆에 있어요. 뭐더라... 이름이... 분분? 분분하우스던가?."
"어, 그럼 여기서 어떻게 찾아가나요?"
"정면의 길을 따라서 주욱 직진하면, 5거리가 나와요. 그 곳에서 비스듬히 난 좌측으로 가면 역이 나와요. 바로 우측에 있는 건물이 라이더하우스에요."
"아, 직진하다가 오거리에서 비스듬 좌측이요?"
"네, 네, 주욱 직진, 비스듬히 좌측."
"아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새로산 비 옷 바지를 다시 껴입고 알려준 길을 따라 달린다. 여전히 그치지 않는 비다.
라이더 하우스 처럼 보이는 건물에 도착하자, 주차장 차양 지붕 아래에 나보다 먼저 온 두명과 바이크가 서있다. 쏟아지는 비가 여러사람을 고생시킨다. 그들도 온통 젖어있는 물건들을 닦아내고 있다. 잠시 그들과 함께 주차장에서 기다리자, 관리인 할아버지가 와서 라이더 하우스 건물의 문을 열어주신다. 먼저 온 그들이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한것이다. 원래는 오후 4시부터 문을 여는 곳인데, 쏟아지는 비때문에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와서 열어주는 것이다.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은 도쿄와 효고현에서온 라이더들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바이크에 짐을 가득 싣고 훗카이도를 여행하고 있다. 인사를 하며 말을 건네본 관리인 할아버지의 어투가 알아듣기 힘들다. 도저히 한단어도 알아들을수 없는 우물거림으로 이야기를 하신다. 먼저온 그들이 아니었으면, 곤란할 뻔 했다.
집에 들어가서 가방의 짐들을 해체한다. 바이크 커버로 감싼 가방의 여기저기가 비에 젖어있다. 바이크커버가 완전히 방수가 되지 않아서다. 조금 지나자, 여행하는 중년부부 한쌍과 자전거 여행자 1명이 들어온다. 연이어 큐슈에서 온 나이지긋한 아저씨 한명도 들어온다. 조금더 있으니,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한 명 들어온다. 하코다테를 향하던 페리에서 만난 그 거구의 청년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악수도 나눈다.
젖은 물건들을 모두 꺼내어, 돋자리를 펴고 그 위에 널어서 말린다. 젖은 옷이며 밀린 빨래감들을 세탁기에 집어 넣는다. 여기는 동전세탁기와 건조기가 두대씩이나 있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코인샤워룸도 있다.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오자, 한기가 좀 가신다. 여유가 생겨 건물내의 여기저기를 기웃대 본다.
남녀 머무르는 방이 따로 나뉘어 져있고, 방은 다다미로 되어있다. 현관문을 들어서서 바로 좌측의 책상에는 머물고 가는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 기간을 적는 기입대장이 있다. 그 위를 보니, 돈 통에 이용료를 넣으라고 적혀있다. 금액은 300엔이다. 깨끗하고 정갈한 이런 시설에 하룻밤 묵는데 300엔이라니, 그저나 다름없다. 후딱 집어 넣고 대장에 이름과 주소를 영문으로 적는다. 거실구석에는 바이크가 그려진 스탬프가 있다. 기념 삼아 일기장 뒷편에 찍어도 본다.
중년부부는 나라에서 온 분들로, 아주머니는 나라여자대학교의 교수고 남편은 건축설계를 한다고 한다. 아주머니의 어투가 나지막하게 조목조목 설명하는듯한 습관이 묻어있다. 직업의 흔적일 테다. 남편 분이 장난 삼아 하는 말이지만, 자기는 와이프를 여사님으로 모시고 가자는 대로 운전해서 가는 운전수란다. 그 두분과 함께 거실에 앉아 오랫동안 대화를 한다. 훗카이도의 독특한 건축과 내가 바이크를 끌고 일본으로 오게된 경위, 그리고 자신도 한국으로 갈수 있는지, 간다면 언어문제, 물가, 교통,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이어간다. 훗카이도 일주를 끝마치고 혼슈 동측 해안을 따라 되돌아갈때, 나라를 들릴 수도 있을 것같아서 몇가지를 물어보았다. 꼭 가봐야 할 곳, 나라에 살고있는 사람으로서 추천하고 싶은곳, 유명한 곳 등. 그들도 내게 좋은 장소를 알려달란다. 내가 이틀동안 지나온 훗카이도의 서남해안을 아직 못가봤다면서 좋은 장소를 추천해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저없이 샤코탄반도의 가무이곶을 추천했다.
저녁시간이 되자 부부 중의 아주머니가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자고 제안을 한다. 신문지를 깔아 놓고 각자 인근 편의점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 놓는다. 술을 즐기는 아저씨가 사온 사케를 함께 나눠마신다. 밥을 먹고나자 이야기가 길게 이어하는 술판이 벌어졌다. 여행도중의 재미난 이야기들, 훗카이도 이야기, 궁금한 한국이야기, 일본이야기, 두 나라의 차이들에 대해 떠들어댄다. 안주를 먹다가, 고추장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내 배낭에 넣어둔 튜브 고추장이 있다. 가지고 나와서 함께 나눠 먹어 본다. 볶음 고추장이라서인지 그다지 맵지 않고 맛있다고들 한다. 두부에 올려먹고, 과자에 찍어 먹고 술안주로 튜브 하나를 다 써버렸다. 피같은, 고추장이 몇 시간새 사라졌다. 이모소주를 나눠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사이에 몇시간이 후딱 흘렀다. 다들 유쾌하다. 물론, 함께 모여서 이야기 하느라 유쾌해진것일 테다. 어둑해진 늦은 시간인데, 바이크 라이더 청년 3명이 뒤늦게 붐붐하우스로 들어온다. 그들도 물론 쫄딱 젖어있다.
자리를 파한 후, 일기를 대충쓰고는 마루에 침낭을 깔고 눕는다. 어제에 이어 두번째 라이더 하우스지만 전날에 비해 비교도 안 될정도로 깔끔한 곳다.
붐붐하우스는 쵸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훗카이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다음날 찍은 사진)
현관을 들어서서 보이는 라이더 하우스 내부
숙박대장을 적고, 돈통에 300엔을 집어 넣는다. / 코인샤워룸도 있다.
남자용 객실. 다다미방이다. / 거실 한켠에 비치된 기념 스탬프를 일기장 뒷쪽에 찍어봤다.
저녁 먹으면서 이어진 모임이 왁자지껄 이어진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대학생 한명이 사진찍는데서 빠져서 아주머니가 부르고 있다.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7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1. 나 보다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던 바이크 여행자. 내가 가져온 고추장 맛에 반해서 두부에 뿌려먹기까지 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 2. 훗카이도행 페리에서 만났던 거구의 청년. 나와 같은 나이다. 약간 수다스럽지만 낮선이에게 경계가 없는 친화력이 부러운 친구다. / 3. 하루에 100km를 자전거로 달리며 여행한다는 도쿄에서 온 대학생.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그에게 사람들이 음식을 밀어준다. 새카맣게 탄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어쩐지 안스럽다. / 4.나라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는 아주머니. 조목조목 설명하는 말투에서 직업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이 모임을 불러모은 장본인. / 5. 아주머니의 운전수로 불러 달라는 남편. 건축설계를 하며 술을 밥보다 사랑한다. 한국으로 차를 몰아 여행오고 싶다는 분이다. 그에게 근거없는 한국여행의 희망을 듬뿍 북돋워 주었다. 뒷일이야 뭐... / 6. 고베에서 온 순박한 웃음의 바이크여행 청년 / 7. 큐슈에서 온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아저씨. 은퇴하자마자 돈을 털어 할리를 산 후, 곧장 훗카이도로 달려왔단다. 일본 코미디언의 유행어를 아무렇지 않게 남발하는 굉장히 유쾌한 분이다. 어제도 여기서 묵었으며, 비가와서 멀리 못가고 아사히카와 동물원에서 동물들과 하루종일 놀았단다. 어디서 많이 뵌분이다 싶어 곰곰 생각해보니, 마시마로를 닮은...
후라노, 비에이지역
<후라노>
"후라노 시"는 "홋카이도" 중앙부의 "소라치 강" 중류지역에 위치하며, "후라노 아시베쓰 도립자연공원"에 속해 있다. "홋카이도"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에 배꼽의 도시라고 불리며, 3천명의 춤꾼들이 복부에 얼굴을 그려넣고 메인스트리트를 행진하는 유머러스한 "홋카이 헤소 축제"가 매년 여름 개최된다.
길가에 핀 물파초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봄, 라벤다향기 가득한 여름, 단풍이 물드는 가을 "다이아몬드 더스트"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겨울등 "후라노"의 사계절은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지명의 어원이 된 "아이누(주로 사할린과 삿포로에 거주하는 민족)어"인 「후라누이」는 「향기나는 불꽃」이라는 의미이며, 시승격 8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하일랜드 후라노 라벤다의 숲"에서는, 꽃이 만발하는 여름 동안 향기로운 꽃향기속을 산책하는 관광코스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그리고, "소라치 강"에서의 래프팅과 더키, 열기구 체험 등 "후라노"의 자연을 무대로 야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알파인 비지터센터"와 "기타노미네 스키장"이 있어, 일년 내내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사히카와>
홋카이도 거의 중앙에 위치하는 아사히카와는 삿포로에 이은 홋카이도 제2의 도시이다. 웅대한 다이세쓰 산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120여개의 강이 흐르는 풍부한 자연의 혜택을 입고 있는 도시로서 소운쿄와 후라노 방면 관광의 관문이 되고 있다.예술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예술활동이 활발하며 아사히카와 역에서 곧게 뻗어있는 헤이와도리 가이모노 공원에는 곳곳에 분수와 이색적인 조각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시가지를 내려다 보는 고지대에 있는 홋카이도 전통미술공예촌은 유럽 중세의 성을 닮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유원지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유카라오리 직물 전시관도 있어 일본의 전통공예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그리고 아사히카와는 삿포로와 견주는 라면의 도시로, 수많은 라면점이 늘어져 있어 라면 미식가들에게는 인기있는 곳이기도 하다.
<비에이>
홋카이도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는 비에이 초는 다이세쓰 산 국립공원 도카치다케 연봉에 둘러싸여 넓게 펼쳐진 병릉(兵陵) 지대에 있다.비에이가 지금과 같이 인기 관광지로서 홋카이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1971년대부터라고 한다.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풍경 사진가로서,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마에다 신조 씨가 우연히 머물게 된 비에이와 주변 마을의 가미후라노 언덕의 풍경에 감동을 받아 10년 이상 비에이에 드나들게 되었고, 그 사진이 사진집이나 그림엽서, 포스터, 영화, 텔레비전 광고 등에도 사용되어 비에이의 경치가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는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이용해 비에이의 언덕에 ‘다쿠신칸’이라는 사진관을 열어 방문객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연간 12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비에이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패치워크 도로”를 중심으로 “시키사이노오카” “제루부노오카” 등, 가지각색의 이름이 붙여진 지역에 가득히 피어 있는 꽃의 풍경과 지평선을 내려다보는 언덕 풍경일 것이다. 라벤더, 해바라기, 양귀비, 코스모스, 보라색 사루비아 등이 문자 그대로 색이 선명한 ‘패치워크’와 같이 피어 있는 풍경은 압권이다.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꽃들 사이를 걸을 수 있는 곳도 있다. 유명한 장소로는 푸르름이 가득한 가운데 포플러와 떡갈나무가 위풍 당당하게 서있는 풍경이 잘 알려져 있다. 텔레비전 광고나 포스터에도 자주 등장하는 “켄과 메리의 나무”, “세븐스타 나무”, “오야코 나무” 등으로 이름 붙여진 이 곳을 “트윙클버스 비에이 호”, 대여 자전거, 관광 택시를 타고 둘러볼 수 있다.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겐세이노모리(원생림) 산책, 나무 올라타기, 하천 산책, 카누, 캠프,골프 등을 즐길 수 있다. 겨울에는 온통 눈으로 덮이는데, 그 장엄한 풍경이 겨울 비에이의 매력 중 하나로, “시키사이노오카 스노랜드” “제루부노오카”에서는 버기 스노우 모빌을 체험할 수 있는 등, 눈과 함께하는 비에이를 만끽할 수 있다.
(출처 : http://www.ilbonski.com)
* 숙박지 : 붐붐하우스(라이더 하우스)
- 1박 : 300엔
* 주유 : 1회(665엔)
* 여행정보 :
- 후라노 안내(관광지,교통,렌트바이크, 체험) : http://www.furano.or.kr/
- 비에이초 지도(비에이초 관광협회) : http://www.biei-hokkaido.jp/kr/map/body.html
- 붐붐하우스(ブンブンハウス, 삣뿌쵸) : 삣뿌쵸 홈페이지 / (0166) 85-2111比布町観光事業課)
* 이동거리 및 경로 : 105km
라이더하우스 GO -> 비에이 -> 아사히카와시 -> 삣뿌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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