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나서다/스쿠터일본일주

[스쿠터 일본가다] 1일차, 얼떨떨한 첫날, 선물같은 시노지마

기억할만한 지나침 2010. 10. 27. 15:00




6시 눈을 뜨다. 선내가 제법 차고 건조하다. 에어컨이 빵빵하니 돌아간 탓이다. 무더운 여름에 더없이 좋은 조건임에도 깊게 잠들지 못하고 네 댓번은 깼다. 왜 이럴까. 평소에는 머리만 닿으면 쑤욱 잠속으로 빠져드는 나인데... 잠깬 새벽이 피곤하다. 2등 객실의 이 곳 10인실은 배에 준비되어 있는 매트를 바닥에 깔고 준비된 시트를 펼친후 그 위에서 이불과 베게를 덮고 자는 장소다. 두 세 군데를 빼고는 자리가 가득 차있어, 여름 성수기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갑판으로 나와보니 페리는 이미 큐슈의 후쿠시마와 야마구치현의 시모노세키 사이의 바다 위에 도착해 있다.


부시시한 얼굴로 갑판에 서자, 미지근한 여름의 아침바람이 일본 땅으로부터 불어온다. 머리를 감고 씻은 후, 하선준비를 한다. 8시가 되어 안내하는 승무원을 따라 차량갑판으로 내려선다. 스풋(이라고 이름붙인 내 소유의 스쿠터)은 스마트키가 장착되어 있어 터치키를 이용해 시동을 끄면 도난경보기가 자동으로 작동된다. 그래서 핸들이나 차체에 진동이 생기면 경보음이 시끄럽게 울려댄다(비싸지도 않은 스쿠터에 비싼척하며 돈주고 달았다). 밤새 선내의 갑판에 세워두면 배의 진동 때문에 경보기가 울려 댈것을 우려해서 시동은 끄고 메인전원은 켜놓았던 터라, 방전이 되지않았나 걱정스럽다. 


불안한 맘으로 시동을 걸어보니, 스풋녀석 멀쩡하다. 10~20분 기다린 후 하선을 대기하던 차량들의 매연 가득한 차량갑판을 벗어나 일본 땅인 시모노세키항에 내린다. 안내에 따라 입국장 건물 2층의 세관으로 이동 한 후, 스쿠터를 세워두고 입국수속을 밟는다. 자동차 일시반출입 서류를 제출하고 자기배상 책임보험에 가입했다.(일본국내 주행을 위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최소한의 대인, 대물 처리 보험, 혹시 예상한 두달이 넘어설지도 몰라 3달로 기간을 설정했다. 6,130엔) 보험료를 지불하고 자동차 일시반출입 보증료(보증료라 표기되어 있으나 되돌려 받지 못함, 주행세의 성격)로 1만엔을 별도로 지불한다. 생각보다 제법 돈이 많이든다. 입국수속과 서류작성을 끝나고 나서 한참을 기다린다. 보험서류 처리가 늦어진다.


애초, 체류하는 기간이 2달 정도인 터라 길에서 만일의 사고가 일어나면, 자기배상 책임보험 만으로는 처리가 어려울듯 하다는 생각이 들어 임의보험(자기배상책임보험에서는 보상되지 않는 대물과 대인의 충분한 보상이 되는 보험)도 가입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정이 생겨 출발일을 수요일에서 토요일로 변경하다보니 임의보험을 처리하는 보험회사가 쉬는 공휴일에 도착해 버렸다. 결국 임의보험은 가입하지 못한채라, 조심스레 타고 다닐 생각이다.




도착직전 갑판에서 보이는 시모노세키 항구 모습



차량갑판에 튼튼하게 고정되어 있는 스풋

124cc의 스풋은 1947년 인류최초로 쏘아올려진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에서 따온 이름이다. 

스푸트니크는 개 한마리를 태운채 우주로 날아갔고, 이 녀석은 나를 태우고 두어달간 함께 유랑을 시작할 것이다.




차량 입국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네 댓명의 사람들(배에서 만난 할리바이크 한대, 한국에서 차량을 가지고 온 한국인 가족, 한국을 둘러보고 다시 일본으로 되돌아온 일본인 차량여행자가 함께 기다린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기다리는 사이 수속이 끝났다. 바이크 선적을 하면서 우연히 만난 할리 오너와 함께 하룻동안 동행하기로 한다. 헬멧을 쓰고 스풋과 함께 국제여객터미널을 나선다. 네비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므로 먼저 서점을 찾아 지도를 구매해야 한다. 미리 구글맵스에서 시모노세키항에서 가까운 서점의 위치를 프린터 해서 들고 있기는 하지만, 막상 나와보니 얼떨떨하다.


차선은 왼쪽으로 주행인데다, 신호등은 우리나라와 달리 좌회전(한국의 우회전)시에는 직진신호에 파란등이 켜져야만 좌회전이 가능하다. 머릿 속으로는 미리 설정을 하고 외워뒀으나 막상 닥치니 약간의 불안감과 괴리가 생긴다. 그나마 하룻동안 함께 할 동행이 있어서 다행이다. 지도를 따라 대충 따라가보니 시모노세키 역 앞이다. 역근처의 적당한 공간에 바이크를 대충 세워두고 동행한 할리오너가 길가는 행인에게 물어보니 눈 앞에 보이는 쇼핑센타 4층에 서점이 있단다.


서점에 도착해서 책을 찾아보니, 사전에 알아두었던 투어링매플(Touring Mapple)이라는 지도책이 눈에 띄인다. 서서 대충 내용을 살펴보니 상세한 지도인데다, 캠핑장표식이며 주유소, 숙박, 이름난 음식점, 전망 좋은 포인트, 추천드라이브 코스까지 잘 표기 되어 있어 바이크 여행 가이드 북으로서는 제격이다. 100장 넘는 구글맵스의 프린터물을 가지고 다닐 걱정이 사라졌다. 이 지도책이면 여행이 충분 할 듯 하다. 추후 일본인들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이 투어링매플이란 이 지도는 일본 바이크 라이더들에게 바이블과 같단다.


계산을 하며 나오는 길에 보니 얼마 전 국내에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3권이 서점내에 진열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인다. 3권을 사놓고 이번 여행때 가져올까 고민하다가 너무 두꺼워서 가져오길 포기했었다. 하루키, 내가 한 작가의 모든 책을 빠짐없이 읽은 경우는 아이작 아시모프를 빼고 살아있는 사람으로는 그가 유일하다. 어쩌면 그리도 중독적으로 읽었을까. 독특한 세계관과 이야기. 그 속에서 가느다랗게 연결되는 등장인물들의 유기적인 관계. 독특한 문체. 평면에서 입체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올리는 흥미로운 작가의 손 끝. 도서관에서 그의 모든 책들을 넘겨가며 즐기던 기억들이 아련하다. 그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책장을 넘겨보았던 무라카미 류도 더불어 기억난다. 책에 묻혀 지나간 기억들이 일본의 낯선 서점안에서 어렴풋이 떠오르고 있다.


투어링매플과 함께 얇은 일본전도 한 권을 사들고 나와서 다시 역 앞으로 돌아온다. 고픈 배탓에 가까운 식당에서 600엔짜리 정식을 먹고 한 숨 돌린 후, 본격적으로 길을 나선다. 지도를 펴보니 시모노세키시를 빠져나가는 도로는 191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주욱 따라 달리기만 하면 된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내길을 따라 달려간다. 엔진소리가 심장을 울리는 굉장한 소리의 할리를 뒤에 두고 앞서 가려니 부담이 된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기도 한 탓이다. 스쿠터핸들을 잡은지 채 한달도 안된 초보가 할리를 뒤에 따라오게하고 앞서서 달리다니, 그것도 차선이 정반대인 남의 나라에서.


토요일이라 시모노세키 시내를 관통하는 도로가 막힌다. 갓길 사이로 살살 빠져서 막히는 국도(왕복2차선이 주욱 이어진다)를 지나자 바다가 나타났다. 일본에서 처음 보는 동해(일본의 서해)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보니 바다색이 누렇다. 이건 뭐 황해도 아니고... 서서히 교통체증이 뚫리기 시작하는 191번 도로를 타고 달린다. 해안도로와 낚시 포트를 지나 275번 국도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바다로 난 방향으로 향한다. 




아직 적응못한 얼떨떨한 세모노세키 역 앞



191번 국도를 달려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동해(일본 서해)



비가 왔었는지, 바닷물이 누렇다. 처음 만나는 바다는 당연히 파란 바다일줄 알았는데, 당혹스럽다.



해안도로를 따르는 191번 국도



나란히 쪼르르 떠있는 귀여운 섬들도 보인다.



시모노세키 낚시포트, 낚시를 하려면 입구에서 돈을 지불하고 바다로 길게 뻗은 포트로 걸어나가야 한다.



한참 달려가니 해안도로인 275번 국도의 중간즘에서 시노지마(角島)로 건너가는 시노지마대교(시노지마오오하시)가 나타났다. 도로 끝 전망대에서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유려한 교각이 환상적인 모습으로 서있다. 다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혼을 뺏길것 같은 교각의 끝, 무작정 섬을 향해 달려본다. 긴 다리를 달리는 내내 파아란 하늘과 에메랄드 빛 바다가 주변을 감싸고 있어, 이색적이고 행복한 기분이 가득 일어난다. 시노지마의 서쪽 끝즈음에 있는 등대공원에 잠시 들러본다. 더운 날씨다. 바닷바람이 불어오긴 하지만, 타는 듯 내려쬐는 볕 덕분에 그늘에 앉아 있어도 땀이 흘러내린다.




시노지마로 건너가는 시노지마대교



시노지마대교 전망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교각 입구. 토요일이라 투어링 나온 바이크가 제법 보인다.



오늘의 첫번째 선물 시노지마오오하시. 

유려하게 뻗은 다리의 구조도 멋지거니와 둘러싼 에메랄드 빛의 바다와 섬의 초록이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다.

1993년에서 2000년까지 7년에 걸쳐 지어진 이 대교는 2003년 토목학회 디자인상 우수상을 받았다.



투어링 나온 바이크들도 보인다. 250CC 배기량의 야마하 막삼이 줄줄 앞서서 달린다.

뒤에서 따라가며 보이는 바이크들의 트렁크가 사람 하나 정도 느끈히 들어갈 기세다.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아니 거의 없는 스풋에 비하면 무한히 부러운 점.



시노지마 해수욕장. 주말맞아 물놀이 나온 사람들이 가득이다.



시노지마 등대공원을 향하는 길

오늘 하루 동행해서 달리는 할리의 기종은 나이트트레인이다. 만세 자세로 라이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노지마 등대공원 해변. 앞에 세워진 할리에 비하면 스풋은 거의 세발자전거 같다.



바이크를 세워두고 시노지마 등대공원 해안을 거닐어본다.



시노지마 등대공원 해안



시노지마 등대. 지금껏 본 등대 중 가장 미학적으로 뛰어난 아름다운 등대이다.

등대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줄서서 대기해야 하는 인기장소.



시노지마섬에서 되돌아오는길. 시노지마대교 아래로 보이는 에메랄드 빛 바다



시노지마대교 중간 즘에있는 비상주차대. 다리 가운데 멈춰서서 너도나도 주변의 전경들을 즐기고 간다.



시노지마대교 비상주차대에서 보이는 시노지마쪽



유려한 곡선이 감탄스러운 시노지마대교.



다시 길을 돌려 시노지마를 빠져나온다. 남아 있는 275번 국도를 마저 달린 후, 191번 국도와 합류 한다. 지도를 보니 가는 방향의 앞 쪽에 반도 하나가 길게 튀어나와 있다. 길을 꺽어 반도의 끝머리로 방향을 잡는다. 그 끝 즈음에 도착해서보니 아뿔사, 내 바이크의 기름이 바닥을 가르키고 있다. 이런 외진 곳에 주유소가 있을리 만무하다. 길가는 동네 사람에게 물어보자 길을 되돌아서 국도변으로 나가야 주유소가 있다고 한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10km즘 달리자, 191번 국도와 만나는 부근에 주유소가 있다. 기름을 채워넣고 보니 벌써 시간이 4시가 되었다. 슬슬 동행한 할리오너와 함께 캠핑장을 찾기로 한다. 미리 알아두었던 오오하마 해변의 공짜 캠핑장을 찾아가 보니, 여름 성수기라 1인당 700엔의 사용료를 받고있다. 게다가 뜨거운 볕아래 그늘도 없는 캠핑사이트다. 지도에 표기된 다음으로 가까운 캠핑장이 있는 센조우치죠로 향한다.


해안선 끝을 따라 불쑥 쏟은 지형을 따르는 길을 달린다. 지나는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너무도 아름답다. 일행이 없었다면 수십번은 더 멈춰서며 지나갔을 터다. 아름다운 산수의 풍경을 눈에만 담고 길을 지난다. 도착한 330m 고지의 꼭대기에 센조우치죠(千量數)가 위치해 있다. 발아래로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해안의 풍경과 평지를 둘러싼 분지의 내륙이 포근하고 광활하게,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장소다. 이름이 아깝지 않다. 주변의 넓은 잔디밭에 두동의 텐트가 보이지만 샤워장이 없어서 패스 하기로 한다. 이 럭셔리한 몸뚱아리라니.


이 곳에서 다음으로 가까운 해변의 캠핑장으로 향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가자 높은 산이 팔벌려 둘러싼 맑은 바다 해변의 조그마한 니이노하마(二位ノ浜)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 캠핑을 하고 있다. 사용료 600엔을 내고 이곳에서 묵기로 결정한다.


편의점에서 저녁거리를 사온 후, 텐트를 친다.100엔에 2분간 물이 쏟아지는 샤워장에서 4분 동안 씻는다. 4분안에 거품칠샤워를 번개처럼 끝내버리고, 사온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한다. 저녁을 먹으면서, 또 먹고나서 동행한 할리오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하룻사이에 틈틈이 비친 내 성격을 이미 이리저리 파악했나보다. 얼추 그가 내 성격이 이럴것이다 라고 말하는 부분들이 들어 맞고 있다. 


해가 지면서 모래사장에는 모기가 극성을 부린다. 벌써 대여섯 군데는 물렸다. 성가신 모기를 피해 텐트로 들어와 일기를 쓰고 지도를 확인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역시나 혼자가 편하다. 아무때나 멈춰 설 수 있고, 맘대로 경로를 잡아도 신경쓰이지 않으며, 약간은 고독하겠지만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 할 수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여행들에서 그래왔듯이... 나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걷는 길에 길들여 진것일까? 어쨋든, 내일이면 그도 스스로의 길을 찾아 여행을 이어갈 것이고, 나도 다시 혼자의 길로 돌아갈 것이다. 


어둠이 내려 앉은 일본의 첫날 밤, 텐트 바깥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선명히 들려온다.




유야만(油谷灣)을 접하고 있는 포구마을



유야항(油谷港)



191번국도로 되돌아 가는 해안도로



마을길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조그마한 마을전경



센조우치죠(千量數)



센조우치죠(千量數)



센조우치죠(千量數)에서 내려다 보이는 내륙



센조우치죠(千量數)



센조우치죠(千量數)














* 숙박 : 니이노하마(二位ノ浜) 해수욕장 캠핑장

   - 1박 : 600엔

  - 샤워 : 2분/100엔

  - 관련웹사이트 : http://eco.pref.yamaguchi.lg.jp/beach/beach041.html


* 주행거리 및 경로 : 140km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항 세관 -> 시모노세키역 -> 츠노시마섬 -> 나가토시 유야만 -> 센조우치죠 -> 니이노하마 해수욕장 캠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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