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의 페달을 밟으며/유하
미야자키현, 니치난 해안도로|2013.11.13.|기억할만한 지나침...
無의 페달을 밟으며
유하
두 개의 은륜이 굴러간다
엔진도 기름도 없이 오직
두 다리 힘만으로
은륜의 중심은 텅 비어 있다
그 텅 빔이 바퀴살과 페달을 존재하게 하고
비로소 쓸모 있게 한다
텅 빔의 에너지가 자전거를 나아가게 한다
나는 언제나 은륜의 텅 빈 중심을 닮고 싶었다
은빛 바퀴살들이 텅 빈 중심에 모여
자전거를 굴리듯
내 상상력도 그 텅 빈 중심에 바쳐지길
그리하여 세속의 온갖 속도 바깥에서
찬란한 시의 月輪을 굴리기를, 꿈꾸어왔다
놀라워라, 바퀴 안의 無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희망의 페달을 밟게 한다
바퀴의 내부를 이루는 무가
은륜처럼 둥근, 생의 노래를 부르게 한다
구르는 은륜 안의 무로
현현한 하늘이, 거센 바람이 지나간다
대붕의 날개가 놀다 간다
은륜의 비어 있음을, 무를 쓸모 없다 비웃지 마라
그 텅 빈 중심이 매연도 굉음도 쓰레기도 없이
시인의 상상력을 굴린다
비루한 일상을 날아올라 심오한 정신의 숲과 대지를 굴리고
마침내 우주를 굴린다
길이여, 나를 태운 은륜은 게으르되 게으르지 않다
무의 페달을 밟으며
내 영혼은 녹슬 겨를도 없이 自輪하리라
●
두 바퀴에 닿아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엊그제 지나온 골목길에 깔리고 있던 아스팔트와 김을 내뿜던 작업차와
피해가라 손짓을 하던 인부들의 몸짓에 닿아있었던가 하면
금이 사라진 청명한 날의 가을 하늘 어귀와 아무도 진입하지 못한 완전한 자유의 청공에도 닿아있었고
이미 만났거나 아직 만나지 못한 영혼의 벗과 동지를 향한 간절한 외침에도 닿아있었다.
멈추지 않는 페달질로 녹슬지 않는 영혼을 굴려가다보면
틀림없이 80만광년 바깥에서 떠도는 떠돌이행성 'PSO_J318.5-22'의 궤적에 까지 가 닿겠고
비로소, 아름답기만한 시대에 안녕을 고하며 영원히 철들지 않는 방랑의 여정에 당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