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터 일본가다] 56일차, 산골 다랭이논과 구마노옛길 그리고 폭우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비소리가 잠결에 잠시 들려왔었는데, 눈을 뜬 아침 하늘은 부분부분 푸른 하늘이 드러나있다. 구름이 약간 끼어있을 뿐 다행히 비가 내리지는 않는다. 해변에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서쪽 하늘은 검은 구름이 가득 덮여 있는 상태다. 국지적으로 비가 내리고 있는것 같다. 라면밥으로 아침을 챙겨 먹은 후 짐을 챙긴다. 라면을 챙겨 넣다 보니 떠오르는 것이, 신라면과 즉석밥, 그리고 모기향을 가장 싸게 살수 있는 곳은 희안하게도 대형식품매장이 아니라 대형 의약품 매장이었다. 신라면을 89엔이라는 비교적 싼가격에 사기도 했다. 출발하기 몇 분 전, 잠에서 깬 낚시 휴가를 온 어제밤의 그 아저씨가 부시시하게 텐트 속에서 나온다. 혹시 일기예보를 라디오로 들었는지를 물었더니 오늘 오후 즈음에는 태풍으로 인해 비가 내릴거란다. 잠깐의 인연에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휘어지며 이리저리 꺽이는 해안선을 따르는 311번 국도는 구마노옛길과 부분부분 겹치고 있어서, 어제 오후 늦게 길을 지나오면서 보았던 도보길 표시들이 연이어 길가에서 보인다. 41일간 1,200km를 걸으며 도보여행에 흠뻑 빠져봤던 내게, 긴 걷기 코스는 언제나 매력적인 유혹이다. 길을 지날때 마다 표시되어 있는 저 구마노옛길을 다 걷는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궁금하기까지 하다. 도로를 따라 달리는 도중 나타나는 전망터에서 느긋하게 해안의 풍경을 감상을 하면서 간다. 두꺼운 구름사이로 해가 살짝 나오는 지금은 전혀 그럴것 같지 않은데, 오늘 오후면 내린다는 비 소식 때문에 압박감이 슬슬 든다.
좌.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하루를 보낸 내 1인용 텐트. /우.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함께 보낸 낚시꾼 아저씨의 텐트.
대충 세워놓기만 하는 내 텐트와는 달리 어찌 저리도 팽팽한 각을 자랑하는지. 내가 너무 인생을 너무 느슨하게 살고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텐트 바깥으로 나오자, 호수처럼 고요한 미키사토 해안이 눈 앞으로 펼쳐진다.
태평양을 향해 열려있는 수평선만 아니라면 둘러싼 산 속에 둥글게 펼쳐진 영락없는 호수 분위기다.
태평양쪽으로 열려있는 미키사토 해수욕장 해안. 오른쪽으로 보이는 해안선이 오늘 달려갈 방향.
해수욕장에서 가까운 미키사토초 마을. 조용하고 소박한 마을이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국도변에는 곳곳에서 구마노옛길(熊野古道)를 가르키는 이정표들이 나타난다.
고목을 가르키는 표지판이 마을을 벗어나는 도로 도중 보여서 따라 들어와봤다.
수령 1,000년을 자랑하는 녹나무(장뇌목, 장목)가 무시무시한 크기(높이 30m, 둘레 11.5m)로 서있다.
장뇌목이라고도 불리는 이 녹나무는 우리나라의 남해안과 제주도에서 자생하기도 하며, 중국·일본· 타이완에 많이 분포한다. 또한 장뇌(樟腦)를 얻을 수 있어 이용 가치가 높다. 장뇌는 나무의 둥치나 뿌리를 수증기로 증류시켜 얻은 기름으로서, 향료를 비롯한 방충제·살충제·강심제를 만드는 원료가 된다. 또한, 이 나무는 장뇌의 강한 방향(芳香)이 있어 벌레가 먹지 않고 썩지 않으며 보존성이 높아 예로부터 왕후귀족의 관재(棺材)로 많이 사용되었다. (참조 : 위키피디아)
도로변의 마을 사이로 구마노옛길(도보길)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중간중간 세워져 있다.
이 마을에서 도보길은 국도와 달리 마을 뒷편 산을 넘어 이어진다.
도로에서 건너다 보이는 해안마을 전경.
경사진 비탈면의 바다 가까이로 촘촘히 모여있는 가옥들의 모습들이 눈길을 끈다.
연이어지는 해안도로
해안을 따라 달리는 도중 결국 비가 내린다. 약하게 내리던 빗줄기가 굵게 변해가는 터라 할수 없이 가까이 나타나는 해수욕장의 송림속에 멈춰서 비를 피해간다. 세워둔 스풋에는 돗자리를 대충 올려두고, 무성한 잎의 소나무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보니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다. 20여분 지나자 하늘이 다시 맑아진다. 바이크에 올라타고 다시 도로 위로 나선다. 42번 국도로 길을 바꾸어 타자 트럭과 승용차의 통행이 많아졌다. 오니하라죠 터널을 지나면서부터 터널내부 차선 도색작업때문에 통행 정체도 심하게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국도는 왕복 2차선의 넓이라 심적인 답답함이 더욱 심하다. 한적한 해안길로 몇 날이나 달려온 탓에 차량 통행이 많아진 도로 위에서 유독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고 있기도 한 것일 테다.
미키사토초 마을을 벗어난 311번 국도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해안선.
여기저기서 주상절리가 보인다.
해안기슭의 중턱을 따라 도로가 이어진다.
바다로 툭튀어나온 타게가사키(곶). 곶지형을 둘러싼 해안암반이 대부분 주상절리로 되어있다.
도로변에서 내려다 보이는 니기시마만
니기시마만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전망터 겸 주차장
주차장에서 보이는 니기시마만 풍경. 내륙으로 깊이 들어온 리아스식 지형의 바다 위에서 가두리 양식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다.
니기시마만과 쿠마노시 인근 바다에서는 겨울철에 잡힌 꽁치를 과메기처럼 반건조한 특산물이 유명하다.
과메기처럼 말린 상태에서 그대로 먹지는 않고 주로 구워 먹는 것이 다른점.
전망터 주차장이 있던 국도에서 내려와 아래쪽으로 보이던 니기시마만 가까이의 해안소로를 따라 가본다.
국도변에서 내려다 보이던 다케가사키(곶)가 해안선에서는 이런 모습으로 보인다.
달려가야 할 방향의 해안선. 바다 가까이에 접해 있는 마을에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다.
경사진 땅에 용케도 자리를 잡고 살고 있는 모습.
조금 전 해안도로에서 보이던 경사진 지형에 위치한 어촌 마을(호보초 마을)을 지난다.
역시나 짐작대로 옹기종기 모여앉은 집들 때문에 지나는 도로도 마을 골목마냥 좁다.
니기시마만의 어장
다시 넓어진 도로변에는 휴게터가 만들어져 있다.
휴게터에서 보이는 니기시마만의 풍경. 만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정면의 곶지형은 아까 지나왔던 다케가사키(곶) 이다.
내내 두터운 구름이 끼어있던 하늘에서 잠시 햇살이 나타났다.
311번 국도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니기시마 마을.
옴폭 들어온 니기사마만의 가장 안쪽에 옹기종기 자리잡은 마을이다.
해안도로에서 곧장 다시 산으로 이어지는 도로, 제법 한참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애매한 차선, 애매한 내벽공사의 터널을 지나서 남쪽해안으로 넘어간다.
좁은 터널길을 지나오자 내륙으로 바다가 움푹 밀려 들어온 아타시카만이 나타난다.
해안가 답지 않게 울쑥불쑥 높다랗게 둘러싼 산세가 힘차게 늘어서 있다.
아카시카 해수욕장. 아카시카만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한 지형이다.
흐리기만 하던 하늘에서 약한 빗방울이 두둑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굵은 소낙비가 쏟아지는 통에 아카시카 해수욕장 송림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가기로 한다.
텐트 그라운드시트를 꺼내어 재빨리 바이크에 뒤집어 씌우고, 나는 나무그늘 아래에서 비를 피해 서있는다.
비가 그친 후, 다시 출발. 좁은 국도가 여러번 꺽어드는 해안도로 곁에 바다를 내려다보며 서있는 찻집이 위치해있다.
문이 열려 있다면 향 좋은 차 한잔 마시고 가면 좋을 곳이다. 맛없는 차라도 맛나게 할것만 같은 시원스런 위치다.
해안을 따라 경사진 산비탈에 세워진 가옥들은 전부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다.
저 속의 어느집에서라도 마당 앞에서 선다면 바다가 한가득 눈으로 밀려 들어 오겠다.
구마노시가지를 지나 8km정도 달려오자 311번 국도의 갈림길이 나온다. 해안길을 따르던 42번 국도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311번 국도로 바꾸어 탄다. 목적지는 기이반도의 내륙 중간즈음에 위치한 구마노혼궁타이샤(신사)다. 구마노혼궁타이샤는 기이반도 순례길의 3대 신사 중의 하나로 쿠마노옛길 참배길과 더불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 곳이다.
고개를 넘어가는 오르막길 도중 마루야마 센마이다(丸山 千枚田)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센마이다는 계단식 논을 일컫는다. 이정표가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외진 산길을 꼬불꼬불 따라가보니 산중턱의 길모퉁이에서 전망이 탁트이고, 발 아래로 산중턱에 걸쳐진 오밀조밀한 계단식 논의 풍경이 나타난다. 입을 벌리고 가만이 선채 눈아래로 펼쳐지는 풍경들을 즐긴다. 논 건너편에는 700~800미터 높이의 산봉우리들이 논이 만들어진 산골짜기의 지형을 둘러싸고 있어 더욱 독특한 풍경이다. 지나는 길에 들린 여행자의 눈으로 만나는 다랭이논의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동스럽지만, 정작 이것들을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은 많이 힘들었을게다.
구불구불 논을 지나 골짜기 아래로 이어지는 길은 좁은 농로가 이리저리 휘어지며 이어져 있고, 짧은 구간 산책로도 만들어져 있다. 몇 안되는 마을의 집앞을 지나 도로를따라 내려간다. 내리막길 아래로 펼쳐지는 오밀조밀한 논의 풍경과 건너편의 산세가 잘 어우러지는 풍경때문에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길가에 가꾸어진 알록달록한 꽃들이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아름답게 흔들리고 있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그만두고, 구마노시에서 부터 내륙쪽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달려간다.
기이반도(紀伊半島)의 가운데 즈음에 위치한 구마노 혼쿠타이샤(熊野本宮大社, 구마노삼산의 중심 신사)가 그 목적지다.
구마노혼쿠타이샤 까지 이어지는 길은 구마노옛길이 위치한 길이므로 사방에서 옛길에 대한 표식들이 보인다.
내륙으로 들어오자 높다란 산들이 길 앞을 가로막기 시작한다. 저 산줄기를 넘어 내륙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산길을 넘어가는 도로에 서있는 구마노옛길 안내표
600~700미터 고도의 산줄기를 넘어서는 길을 따라 연이어 달려간다.
기이산(紀伊山)지 내륙으로 이어지는 311번 국도에서 잠시 벗어나 마루야마 센마이다의 다랭이논을 찾아가는 길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오자, 마루야마 센마이다(丸山 千枚田)의 계단식논 전망터가 나타났다.
시원시원한 모습으로 고산지 산기슭에 만들어진 다랭이논(丸山千枚田).
논 위쪽에는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루야마 센다이다는 해발 90m~160m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으로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은 표고 600~700미터가 넘는다.
자잘한 논들이 계곡을따라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져 있는 모습
마루야마 센마이다 전경
■ 일본최고의 계단식 논 : 마루야마 센다이다(丸山千枚田)
작은 무논이 계속 이어져 있어서 센마이다(千枚田)라고 불리운다. 하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더니「삿갓밑에 감추어져 있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은 무논들이 몇 겹이나 겹쳐져 있다. 그 총 수가 1,300여개나 된다.
마루 야마 센마이다는, 기와초 마루 야마 지구의 경사면에 겹겹에 그려진 계단식으로 일본의 계단식 논 100선에도 선정되어 있다. 계단식이 조성된 시기는 불명확 하며, 1601년에 이미 2.240개의 논이 만들어져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1965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벼농사 전환 대책에 의한 삼나무 조림 및 1975년대 이후의 고령화에 따른 휴경지 증가로 인하여 530개 까지 감소 하였다. "자신들의 대에서 이 귀중한 문화 유산을 없앨 수는 없다. 훌륭한 경관과 농경 문화를 후세에 남겨 알려 나가야한다"고 각성한 지역주민들이 늘어나고, 1993년 마루야마(丸山) 지역 주민 전원에 의한 마루야마 센다이다 보존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마루야마 복원 및 보전 활동이 시작되었다.
보존회 결성 후 4 년 동안 810 개의 복원에 성공하였고 1,340 장이라는 일본에서도 최대 규모의 매수를 자랑하는 계단식논이 되었다. 논 1장 당 평균 면적이 약 10 평으로 매우 작은 논 뿐인 이곳은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대부분이 전통적인 수작업으로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구마노시는 마루야마 센마이다(千枚田)을 후세에 남기기 위하여 1994년에 전국 최초의 센마이다(千枚田) 조례가 제정되기도 하였다.
* 설명참조 : 마루야마 센다이다 보존회 홈페이지
* 마루야마 센마이다의 아름다운 석양사진 보기 : 링크
전망대에서 계단식논으로 향하는 도중, 구마노옛길의 토리고개 도보길이 산길을 따라 이어진다.
계단이 시작되는 초입에는 힘든 사람을 위한 나무지팡이가 여럿 세워져 있다.
마루야마 센다이마를 지그재그로 통과하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 보기로 한다. 제법 급한 경사길이다.
마루야마 센마이다 가운데에 서있는 휴게터에서 잠시 주변의 풍광을 즐겨본다.
휴게정자에서 아래로 보이는 계단식 논.
길을 따라 심어진 상사화와 노란코스모스가 산바람을 타고 산들산들 흔들리는 풍경과 계단식 논,
주변을 둘러산 산세가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구불구불한 길도중의 마루야마 센다이다 풍경. 가까이서 봐도 역시 자잘한 면적의 논이다.
벼 수확시기가 지났는데 논에 뭔가 심어져 있다.
계단식 논을 통과하던 지그재그길이 끝나는 즈음에 서있는 거대한 바위. 말 그대로 집채만한 바위가 불쑥 서있다.
계단식 논의 풍경을 한참이나 여유있게 즐기고 다시 311번 국도로 되돌아 간다. 국도를 타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기와쵸이타야마을이 나온다. 가옥수가 얼마되지 않는 조그마한 마을인데 기와광산자료관이 만들어져 있다. 광산자료관에는 흥미가 없지만, 자료관 바로 옆에 만들어진 노천족탕에 들리기 위해 잠시 멈춰선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 발을 담그고 보니, 그닥 뜨끈하지가 않다. 쿠로베 온천마을에서 만난 데일듯한 뜨거운 족탕을 기대했는데 약간 실망스럽다. 구마노옛길을 따라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잠시 쉬면서 발의 피로를 풀고가기에는 좋겠다 싶다. 마을의 휑한 길거리 만큼이나 한적한 무료 족탕에 앉아 천천히 즐기다가 다시 출발한다.
마루야마 센마이다를 빠져나와 다시 311번 국도로 되돌아 가는 도중. 옛 이야기 하나즘 묻어 나올것 같은 그늘진 숲길을 지난다.
국도로 다시 되돌아 왔다. 도로옆 주택에 일본 공명당 선거 포스트가 가정집 벽에 붙어있다. '깨끗한 정치' 란다.
공명당은 남묘호렌게쿄로 알려진 일련종에서 갈라져 나온 종파인 창가학회라는 종교단체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일본 정당이다.
일본자민당과 10여년간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도 했으며, 자민당과함께 평화헌법을 개헌하기 위한 절차로 국민투표법을 2007년에 발의한 정당이기도 하다.
▶ 투표시 연필로 쓰는 독특한(?) 일본 선거의 투표 시스템! (링크)
다시 국도를 따라 내륙으로 향한다. 국도는 작은마을 미와초를 통과해 지나간다.
미와초 마을 도중의 기와광산자료관이 보여 잠시 들어간다.
녹슨 광산 기계들이 기와초마을의 광산자료관 앞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사람은 아무도 없고 휑하다.
이 인근의 기슈(紀州)광산은 1940 ~1945년에 1,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강제 연행되어 그 중 3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유골은 공동묘지와 사찰에 분산되었다고 한다. 이 광산자료관에는 조선인이 노동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전시가 전혀 없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이 지역 행정관청인 구마노시는 기슈광산에서 사망한 영국인 포로 16명에 대해서는 「史跡영국인묘지」로서 위령하고 있다.
텅빈 자료관으로 들어온 이유는 바로 이것. 무료 족탕때문이다.
날씨가 점점 식어가는 가을로 들어선 터라, 팔팔 끓는 뜨끈뜨끈한 족탕이면 좋았으련만 미지근 한 물이다.
공짜이므로 이 정도로도 만족하며 발을 첨벙 담근 후 잠시 쉬어간다.
기타야마강을 따라 복잡하게 휘어지는 구간에 들어서자 행정경계가 지금까지 달려오던 와카야마현에서 북쪽에 위치한 나라현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있다. 산 줄기를 따르는 강의 전경이 풍성하다. 연이어 만나는 169번 국도를 따라 남하한다. 도중에 지나는 마을에는 검은옷을 입은 한 떼의 사람들이 상갓집에 모여있다. 뿌르릉대는 시끄러운 배기음을 내뿜으며 지나가기에는 미안한터라, 속도를 낮추고 지나간다. 그러고보면, 죽은이를 애도하는 자리에는 검은색 옷을 갖춰입지 않던가. 우리네 상중복식은 소복이나 삼베옷이었는데 어쩌다가 검은 옷으로 몽땅 바뀌게 된걸까. 어쩌면 흰색과 검은색은 전혀 다른듯 하면서도 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내륙으로 한참 들어온 311번 국도가 산길을 몇 번 넘더니 강과 만났다.
내륙을 흐르는 기타야마강을 따라 산세가 이어지고, 그 곁을 도로가 함께 따라간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지나 작은 산골마을들을 지나간다.
쓰악~ 휘어지며 흘러가는 기타야마 강.
강변 산기슭을 따라 난 도로의 모양이 요상하다. 좁은 길이지만 최대한 활용되는 모습이 재미나다.
기타가와강을 따라 하류방향으로 달려가는 길.
기타야마 강변의 도로를 따라 달리다보니, 얕은 강물을 따라 하류에서 부터 달려오는 배가 보인다. 사람들을 태운 쾌속 유람선이 순식간에 곁을 지나간다. 강물의 깊이가 배를 자유롭게 몰아갈 정도로 깊어 보이지는 않는데, 쾌속으로 몰고가는 유람선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신기한 기분이다. 기타야마강이 구마노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다다르자 도로가 다시 168번 국도와 합쳐진다. 강을 따라 각가의 도로가 뻗어간다. 남쪽으로 향하는 길 대신 구마노강의 상류 쪽으로 난 168번 국도를 따라 구마노 혼쿠타이샤(熊野本宮大社)로 향한다. 구름이 더욱 두텁게 하늘을 덮어가고 그탓에 조금 어두워진다.
구불구불 굴곡지던 도로가 넓어지며 시원시원해졌다. 뭐 그래도 여전히 왕복 2차선.
강의 폭도 상류에 비해서 시원스레 넓어졌다.
왱왱대는 엔진음 소리가 들려 내려다 보니 얕은 강을 따라 괘속질주하는 유람선이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다.
(양 옆에서 낚시를 즐기던 사람들은 어쩌란 말이냐.jpg)
길쭉한 장어를 닮은 유람선이 낮은 강바닥임에도 엄청난 속도로 달려간다.
쏜살같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람선.
생긴 모양새는 영 비호감인데 시원스레 강을 거슬러가는 모습을 보니 한번 타보고도 싶어진다.
이윽고 도착한 혼쿠타이샤(熊野本宮大社) 앞의 세계유산센터에 먼저 들어가 본다. 목조건물을 현대적으로 접목하여 만든 센터건물 내부에는 구마노산잔(熊野三山) 신사를 순례하는 구마노옛길에 대한 설명들과 자료들,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항목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도보 순례길에 대한 안내들을 센터에서 하나하나 훑어보니 꽤나 긴 길이다. 이세(伊勢)와 기이(紀伊)지역, 고야산(高野山) 그리고 산지의 중심인 혼쿠타이샤(熊野本宮大社)로 이어지는 순례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그 중 300km정도의 도보길이 문화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문화유산 중 종교 순례길은 프랑스와 스페인을 잊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와 더불어 이 구마노옛길이 유일하다.
일본어로 된 설명들을 자세히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가, 안내데스크 근처에 배치된 한글 안내문을 읽고나니 문화유산에 대한 대체적인 이해가 간다. 도보길과 3개의 신사만이 유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경주역사지구처럼 순례길과 폭포, 사찰, 신사, 숲 등이 '기이산(紀伊山) 성지(聖地)와 참배길'이라는 이름 아래에 한 묶음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재되어 있는 것이다.
기타야마 강과 도중에 합류하는 구마노강을 따라 상류로 달려왔다.
드디어 기이산지 내륙의 목적지인 구마노 혼쿠타이샤 앞 세계유산 센터.
쿠마노 문화유산센터 건물
개방적인 목조 골격을 적절히 드러내며 지은 건물이다. 제법 큰 건물임에도 수수해 보이기까지 한다.
구마노옛길이 포함된 이 복합 문화유산의 정식명칭은 '기이산(紀伊山) 성지(聖地)와 참배길'이다.
길들에 대한 안내도가 배치되어 있는 모습.
순례길 참배객 모형인형. 전부 얼굴이 없다. 볼펜으로 그려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도보 순례자들이 문화유산센터를 한번씩 다녀가는 모양이다. 즈에(지팡이)에 백팩, 등산복 차림의 순례객들이 자주 눈에 띄인다.
문화유산센터 안내데스크 내부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분포도. 세계유산은 자연유산, 문화유산, 복합(자연+문화)유산으로 나뉘어진다.
일본은 2007년 기준 자연유산 3개, 문화유산은 11개가 지정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후지산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공을 들이고 있다.
■ 이 참에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유산을 잠시 살펴보자면
벽에 걸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증서 / 한국어 안내문도 배치되어 있다.
세계유산센터를 나와 길 건너편에 위치한 혼쿠타이샤로 들어선다. 역시나 일본 신사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때문에 순례까지는 아니더라도, 경내를 가볍게 둘러보기만 한다. 기이산지 문화유산의 중심이라면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 무언가 있을듯도 싶다. 들어서는 입구가 인상적이다. 초입을 따라 주욱 늘어선 삼나무와 급격하게 솟구치는 가파른 계단길,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익숙한 풍경인듯도 하다.
신사를 둘러보고 나와 강변 바로 옆에 위치한 구, 혼쿠타이샤 터인 오유노하라(大斎原)까지 둘러본다. 신성한 땅이라 일컫는 원래의 터는 오래전 홍수로 인해 떠내려 가버리고 지금의 혼쿠타이샤 건물로 새로 이전되어 지어진 것이라 한다.
구마노혼쿠타이샤(熊野本宮大社) 입구
구마노산잔(熊野三山)의 성지인 혼쿠타이샤의 진입로 초입의 계단길
가파른 계단길과 쑥쑥 뻗은 삼나무가 인상적이다. 한번씩 숨고르며 올라와야 하는 길이다.
(신사를 즐겨찾는 할매 할배들은 어쩌란 말이냐.jpg)
신사 경내
신사 본궁 입구. 좀 많이 요란스럽다.
나무껍질로 만든 지붕이 장중하게 올라간 신사 본궁. 처마끝 선으로 과일도 깍아 먹을수 있겠다.
세 신(神) 중 하나를 두고있는 왼쪽 전각
보수공사를 하는 가운데 전각은 주신을, 우측끝의 전각에는 세번째 신을 두고 있다.
각각 다른 신을 신사마다 숭배하며 기원하는 일본의 신도는 인류사의 대표적인 종교인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과는 달리 신과 인간이 합일하여
다시 세상의 중심이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지점을 설명하는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종교의 차원에서는 전근대적인 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신에게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신이라는 가치를 받아들여 인간에게로 중심을 옮기가기 때문이겠다.
혼쿠타이샤 경내.
구마노 혼쿠타이샤(구마노 본궁대사)는 강변에 위치한 오유노하라(大斎原)가 대홍수로 쓸려가버린 이후 이축해 온 건물이다.
혼쿠타이샤 배전. 신사 곳곳에는 삼족오가 상징으로 붙어있다.
고구려 벽화와 삼국유사 연오랑, 세오녀 설화에도 등장하는 삼족오는 일본어로 八咫烏(やたがらす, 야타카라스)로 일본 개국신화에서
태양신의 사자로 나타나며 일본축구협회의 엠블램이기도 하다.
■ 신사로 대표되는 일본의 고유신앙 '신도(神道)'
일본 각지에 숱하게 서있는 신사들을 이해하려면 우선 이 고유신앙인 신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고유 신앙인 신도(神道)는 일본이라는 국가와 역사를 같이 한다. 불교와 함께 일본의 주요 종교라 할 수 있다.
신도는 종교의 창시자 및 성경과 같은 경전을 갖고 있지 않다. 신도는 일본인들의 생활에 깊게 뿌리내려 있기 때문에 포교나 설교활동 또한 흔하지 않다.
신도의 “신”은 “카미“라고 한다. 이는 바람, 비, 산, 나무, 강, 다산 등과 같이 삶과 관련된 중요 개념 혹은 사물의 형태를 한 신성한 혼이다. 인간 또한 죽은 뒤에 카미가 되고, 가족들은 이들을 조상신으로 모신다. 비범한 사람의 카미는 신당에 안치되기도 한다. 태양신 아마테라스는 신도의 가장 중요한 신으로 여겨진다.
돌출된 바위들은 카미로 여겨 숭배한다.
많은 유일신 종교와 달리 신도에는 절대적인 존재가 없다.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절대적인 선과 악도 없다. 신도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착하며, 악령에 의해서 악해진다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믿음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신도 의식의 목적은 카미에게 정화받고, 기도하고, 헌납함으로써 악령을 쫓는 것이다.
신사(신도의 사찰)는 숭배의 장소이며, 카미의 집이기도 하다. 많은 신사는 카미에게 바깥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정기적으로 축제(마츠리=일본의 전통 축제)를 개최한다.
신직(神職신쇼쿠)은 신도 의식을 행하는 사람이며, 신사의 경내에서 종종 살고 있다. 남녀 모두 신직이 될 수 있으며, 결혼은 물론, 자녀도 가질 수 있다. 신직은 의식을 진행하거나 신사의 다른 일을 하는 동안 젊은 여성(미코)의 도움을 받는다. 미코는 흰색 기모노를 입고, 미혼이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신직의 딸이기도 한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오랜시간 전해 내려온 신도는 예술적으로 일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신사 건축, 노(가면 음악극) 극장, 서예, 궁정 음악인 가가쿠(아악)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세 진구(伊勢 神宮)는 신도의 가장 신성한 사당이다.
- 신도의 역사
6세기에 불교가 유입되며 초기에는 두 종교간에 충돌이 있었지만, 곧 조화롭게 공존하게 되었으며 서로를 보완하게 되었다. 많은 불교 신자들은 카미를 부처의 현신이라고 여긴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며 신도는 일본 국교가 되었다. 신직은 공무원이 되었고, 중요 신사는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일본의 창조 신화는 일왕 숭배를 촉진시키는데 이용되었으며, 이를 위해 불교와 신도를 분리하여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일황은 항복 선언에서 자신은 신이 아님을 인정하였고, 정치와 신도가 분리되었다.
- 현대의 신도
사람들은 신사를 방문하거나 집의 제단에서 기도하며 신의 구원을 구한다. 신사에서는 교통안전, 건강기원, 사업성공, 순산, 합격기원 등 다양한 목적의 부적(お守り, 오마모리)을 구할 수 있다. 많은 결혼식이 신도식으로 거행되는 반면, 죽음은 부정의 근원으로 여겨져 불교식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 설명출처 : 재팬 가이드 닷컴(http://kr.japan-guide.com/articles/religion/shinto)
혼큐타이샤(본궁대사)에서 나와 강변에 위치한 오유노하라를 찾았다.
오유노하라(大斎原)의 거대한 도리이가 멀리에서도 눈길을 잡아끈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높이 33.9m, 가로 42m의 일본 최대 도리로 앞에 서서 올려다 보면 목이 아프다.
여기도 도리이 상단 중앙부에 삼족오가 금박을 번쩍이며 붙어있다.
오유노하라(大斎原) 진입로
대홍수로 쓸려내려간 오유노하라(大斎原)는 단지 평평한 땅이다. 너른 터 가운데에 작은 사당만 하나 세워져 있다.
구마노산잔의 성지인 이곳을 마지막으로 찾는 도보순례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바이크를 세워놓은 문화유산센터 건물 주차장으로 되돌아오자, 빗방울이 조금식 떨어진다. 얼마 오지 않을 것 같은 비라 비옷을 입지 않고 그냥 출발한다. 가까운 마을 슈퍼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나오니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진다. 서둘러 목에 맨 카메라를 가방에 쑤셔 넣고 백팩에 비닐을 씌운 후 우의를 껴입는다. 스쿠터의 속도를 높여 급하게 출발한다. 비가 얼마 오지않을때 조금이라도 더 가볼 요량이다.
바이크를 세워둔 문화유산센터 주차장으로 돌아오자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진다.
달려오는 내내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더니 결국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후, 쏟아지는 비 때문에 사진은 하나도 못찍게 된다.)
17km정도 달려가자, 장마비 수준으로 빗줄기가 거세졌다. 나뭇가지가 드리워진 도로변의 주차구역 아래에서 잠시 멈추어 자꾸만 거세져 가는 비를 잠시 피해가기로 한다. 뚝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이 한번씩 후두둑 거리며 나뭇가지를 타고 떨어진다. 나무 아래에서 빵봉지를 뜯고 우유를 마시고 있자니, 갑작스레 터져나오는 웃음이 멈추지를 않는다. 이 상황이 이유없이 그냥, 웃기다. 어찌나 웃어댔던지 사레가 들려 한참동안 기침을 해댄다. 누가 옆에서 봤으면 참, 가관이었을게다. 손가락 만한 빗줄기 아래에서 빵과 우유를 마시며 서있는 스쿠터 라이더가 갑자기 허리가 꺽일듯 미친듯이 웃고 서있는 모습이라니. 그것도 혼자. 자칫하면 구금감이다. 뭐 살다보면 이유없이 이리 웃긴 날도 있는게다.
여전히 그치지 않는 굵은 비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사방 가득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그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으므로 그냥 빗속을 달려가기로 한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지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신발은 이미 흠뻑 젖어들었다. 자꾸만 거세지는 빗줄기는 폭우처럼 거세져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적당한 나무아래에서 다시 폭우를 피해간다. 도로 위로 흐르는 빗물이 얕은 냇가의 물줄기처럼 흐르고 있다. 이왕 흠뻑 젖은것, 애초 오늘 목적한 혼슈(일본 본섬) 최남단의 시오노 미사키(곶) 무료캠핑장까지 달려가 보기로 한다. 통장 잔고가 점점 증발해가는 근래들어 '무료 캠핑장'에 꽤나 목매고 있다.
구마노강 하구에 있는 신구시까지 이어지는 계곡의 길은 아름다운 강과 아기자기한 산들이 강을 따라가며 이어지는 수려한 곳이지만, 이 엄청난 빗속에서 그것들을 즐길 여유는 없다. 빗물로 자꾸만 험해지는 도로상태를 주시하면서 간간이 도로옆으로 보이는 강의 수려한 풍광을 보며 속으로만 '아, 좋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아니 조금이라도 약하게 내렸더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만 토로할 뿐이다. 50km/h의 속도로 달려가며 빗속을 뚫고 신구시가에 도착했다. 다행히 아까의 하늘 뚫린듯한 빗줄기는 약해지고 가늘어졌다. 저가로 구입한 비옷 하의는 많은 비속에서는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라 바지며 속옷까지 이미 시원하게 젖어있는 상태다. 42번 국도를 따라 주욱 남단의 곶까지 남하하는 코스만 남아있다. 얼마되지 않는 거리의 경로임에도 빗속을 달려가는 길이 참 멀고도 지리하게 느껴진다.
시원하게 뚫린 국도를 달려가자 비바람에 거세진 태평양의 거친 바다가 길 옆에서 움찔댄다. 잿빛하늘 아래 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바다가 오늘은 골이 난 사람의 표정같다. 어머니가 가끔 하던말이 생각난다. "바다는 천상 사람의 얼굴이야. 그렇게 조용하며 온화하다가도 성질에 받힌 사나운 얼굴을 드러내는 사람 같이 변하는 것을 보면..." 나는 이렇게 거칠어진 바다 마저도 좋다. 잡아 먹을 듯 무섭게 변하는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눈길을 사로잡는 바다의 모습들에서 시선을 떼어 낼 수가 없다. 이것도 병이겠다. 아직 바다로 인해 상처와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낭만으로 치부 될 지라도 말이다. 사실 고통마저 웃어 넘기며 대상을 사랑할때, 그것이 진짜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진짜라면 나는 아직도 피상적인 바다를 눈으로 쫒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가지 길을 통과한 이후 주욱 길 옆으로 보이는 섬과 반도, 그리고 만의 모습들이 지나간다. 그 모습들에는 어김없이 비가 섞여 있다. 화창한 날의 풍경들이 선명한 칼라사진이라면, 비오는 오늘 같은 날은 깊이가 있는 흑백사진이다. 흑백사진 같은 빗속의 풍경이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달려가는 스쿠터 옆으로 한 장면씩 넘겨진다. 상체 일부를 제외한 몸이 쫄딱 젖고, 주르륵 물이 흘러넘치는 신발과 잿빛바다와 어두운 하늘도 함께.
오늘의 목적지인 시오노 미사키(곶)까지 47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 속도로 1시간 가량 달려가면 도착하겠다. 어쨋든 도착지까지의 거리를 명확히 알게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비가 약해지더니 바이크가 휘청일 정도의 바람이 바다쪽에서 불어온다. 속도를 더욱 줄이며 천천히 달려간다. 오늘 예정에서 둘러보기로 했던 곶이며 전망터들은 이미 그냥 지나쳤다. 멈춰 세워서 빗속의 풍경을 즐기고 갈 만큼의 여유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 전이다. 머릿 속에는 오직 도착지에 대한 집념, 그 하나뿐이다. 해안암반이 총총히 늘어선 유명 경승지마저도 그냥 지나치며 달려간다.
이정표를 본 이후 1시간 가량 더 달려오자, 시오노 미사키 해안도로로 들어서기 직전의 작은 마을에서 편의점이 보인다. 온 몸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편의점에 들어가 먹거리를 사든다. 신발이며 몸에서 흘러내리는 빗물 때문에 편의점 직원에게 미안할 정도다. 비가 점점 지긋지긋 해지고 있다. 편의점을 나와 다시 빗속을 달려간다. 거세게 연이어 불어오던 비바람이 좀 약해졌다. 7km 정도 남아있는 도로 위에서 드디어 날도 어둑어둑해져 간다.
캠핑장 표시가 나타나더니 휑하니 광활한 잔디밭이 펼쳐진다. 맑은 날이라면 미친듯이 뛰어다니고 싶은 곳이지만, 빗속에서 쫄딱 젖은채 오랜시간 라이딩을 하다보니 그저 빨리 젖은 옷을 벗고 싶은 마음 뿐이다. 캠핑사이트에는 이미 먼저 온 누군가가 대형 캠핑 텐트를 야무지게 쳐두고 있다. 오늘처럼 내리는 빗속에서 용하다. 주차장 가까운 곳에 내 1인용 텐트를 부랴부랴 치고 나니 다시 빗줄기가 거세진다. 다행히 텐트를 치는 사이에는 흩날릴 정도의 약한 비만 내렸었다.
이 시오노미사키 캠핑장은 8월 말까지만 운영되며, 그 외에는 사용금지라는 안내문이 써져있지만 사용료가 무료인 곳이라 개의치않고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어제 해변에서 만난 낚시아저씨의 정보로 알아내어 빗길을 뚫고 용케도 무사히 잘 달려왔다. 텐트를 치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모든것이 젖어있다. 윗도리의 티셔츠도 헬맷 아래 목으로 빗물이 타고 들어와 젖어있고, 바지는 말할것도 없다. 빗속에서 또 이렇게 젖게 될줄 알았다면 이전에 들런 홈마트에서 좀 비싼 비옷이라도 사둘걸 싶은 후회도 든다. 혼슈 완주의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돈이 아까워서 그냥 견뎌 낼려고 했더니, 이늠의 비는 정말 인정사정 없다. 하긴, 언제는 날씨가 인간의 사정을 봐준적이 있긴했던가?
젖은 옷을 벗고, 비에 젖은 물건들을 닦아내며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뿐이다. '제대로된 비 옷을 사야하나?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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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박지 : 시오노미사키 캠핑장(무료)
- 화장실
* 주유 : 649엔
* 구마노옛길 소개 : http://www.tb-kumano.jp/ko/kumanokodo/index.html
* 이동거리 및 경로 : 190 km
미키사토 해안 캠핑장 → 구마노시 → 구마노 혼쿠타이샤 → 신구시 → 쿠시모토초 → 시오노미사키(곶) 캠핑장
큰 지도에서 스쿠터 일본일주 - 56일차 경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