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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나서다/스쿠터일본일주

[스쿠터 일본가다] 0일차, 시모노세키를 향해 배에 오르다.

[-1day / 2010. 08. 12.]


부산을 향해 달리는 길, 청도즈음.



출발이다. 늦은 오전 11시, 집을 나서 출발을 한다. 생각보다 짐이 많아져서 바이크 사이드 백이 축처질 정도다. 

미리 모든것이 정돈된 상태에서 출발했으면 좋았겠지만 세상일이 그러하던가. 

약간은 엉성한데다 한 두가지 정도는 빠뜨리고 시작되는 것이 보통의 일들이 아니던가.

빼먹은것들이 한 두가지 눈에 밟히긴 하지만, 그냥 이렇게 출발 하기로 한다.


충북 괴산을 지나 상주, 구미, 대구로 이어지는 길.

대구가 가까워지며 길 옆으로 흐르고 있는 낙동강에는 흙탕물이 가득하다. 가슴이 아프다.

4대강 사업이 저리 파뒤집어 놓았다. 세상사에서 인간의 오만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어찌될까.

결과만 아름다우면 과정은 어찌되든 상관없는 걸까. 

한참 동안이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바이크의 진동과 함께 머릿속을 파고든다.


삼랑진을 지나며 고개를 오르는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에서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고, 길은 김해로 흘러들기 직전이다.

하루종일 달렸더니 지는 해가 강의 서편 뒤쪽 산줄기로 넘어가며 수면을 아름답게 비추고있다.

쨍한 유리같은 풍경.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사진에 저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내지 못 할 듯하다.


김해 입구에서 봉하마을 팻말이 보인다. 마음은 이미 그 곳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해가지기 직전의 바이크 운행과 내일 아침 도착해야 할 부산까지의 여정을 떠올리면 어려운 길이다.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자가 떠올라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김해국립박물관 근처에 숙소를 잡는다. 한 달 정도 일 때문에 일본에 갔던 동생이 

지금에야 도착해서 집에 왔다는 연락이 왔다. 하루를 김해에서 마무리한다. 인간미 없는 모텔이다.





[0 day / 2010.08.13]



모텔에서 일어나 눈을뜨자, 비가 내리고 있다. 바이크를 타고 부산까지 1시간 30분 가량 달려가야 하는데 걱정이다.

출발 전 지하주차장에서 위 아래 비옷을 착용하고, 사이드백에 방수커버를 단단히 씌우고는 길을 나선다.

비오는 날은 처음 운행해보는 터라(사실 스쿠터를 몰아보는 것도 한달이 채안됐다) 약간의 긴장이 생긴다.

시속 50km가 못되는 속도로 천천히 길을 나선다. 앞에서 부터 날아오는 빗방울과 앞바퀴에서 튀어오르는 

아스팔트에 고인 물탓에 빗길 바이크 운행이 생생히 실감난다. 바퀴가 미끄러지지는 않지만, 운전하는 내내 긴장의 연속.

뭐, 바이크 운전 초보가 당연히 감당해야할 긴장이긴 하다.


낙동강 하구의 다리를 건너 부산에 들어섰다. 복잡한 도시의 길들을 하나하나 헤쳐나가는 경로가 마치 미로같다.

외워둔 지명을 하나하나 거쳐 여객선터미널로 향한다. 길을 잘못들어서서 목적지의 이정표가 잠시 사라졌다.

할 수 없이 길가는 행인에게 길을 물어 다시 찾아간다.


오전 11시 30분, 드디어 국제여객터미널 도착. 바이크의 세관수속과 탑승수속은 오후 3시다.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버렸다.

가방에 넣어온 PMP를 꺼내 웹접속을 했는데, 이 곳 무선인터넷이 지독히도 느리다.

결국 포기하고 스풋의 기름을 보충한 후,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한다.

들런 주유소에서 번호판을 보신 아저씨가 무전여행 중이냐 묻는다. 일본으로 갈거라는 대답을하자,

'시모노세키! 잘 알지 내가 30년간 배를 탔거든' 하신다. 그도 나름 재미있는 인생을 살았을게다.


식사를 하고 느긋이 승선수속을 끝내고 기다리자, 3시 15분 즘 부관페리 승무원이 바이크 세관통과 수속을 밟기 위해 따라오란다.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온 일본행 여행자 한 명과 함께 수속장으로 향한다. 큰 배기량의 바이크에서 들려오는 엔진소리에 심장이 다 떨려온다. 서류를 제출하고 확인을 하고나자 10여분 정도 소요. 타고 갈 페리가 정박한 부두 가까운 곳에 세관의 차량 일시반출입 수속이 끝난 바이크를 주차시킨 후, 터미널 대합실로 되돌아 온다. 오후 6시 마지막 출국 수속 후, 페리의 화물칸에 바이크를 실어올리는 일만 남았다.


세관 수속을 함께 받은 할리데이비슨의 오너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캠핑장에서 야영으로 숙식을 해결할 계획이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캠핑장 위치는 어떻게 찾았냐 묻는다. 구글맵스에서 A4 100여장 프린트해서 미리 확인해두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일부분의 복사를 했으면 한단다. 가방에 담긴 2~3일 분량의 경로지도를 건네 주고 6시에 여기서 다시 만나기로 한다.


먼 길 배웅한다고, 동생 녀석이 도착했다. 한 달만에 보는 얼굴이라 여간 반갑지가 않다. 게다가 지금껏 1년간 맘놓고 여행을 하며, 여유있게 쉴 수 있었던 것도 일부분 녀석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힘들었을터다. 여튼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이라 반갑고 고맙고 그렇다. 얼굴이 약간 야위어 있다. 됴쿄의 무더운 여름에 고생을 제법 했나보다.


밀린 이런저런 이야기를 대합실 의자에 앉아 여동생과 한참을 나눈다. 헬멧도 써보이고, 여행을 위해 준비한 이런저런 물건들도 보여주고, 여행에 함께할 바이크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눈다. 페리에 오르기 전 미리 저녁을 먹으러 함께 가기로 한다.


여행 도중 일본에서 PMP를 통해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 Wi-Fi 로밍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KT와 SK 지점에 들러보았더니, SK는 자체상품이 아예 없고, KT는 자사 이동통신 가입자가 아니면 안된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SK 가입중이다.

어쩔수 없이 여행도중 인터넷 사용은 포기하기로 한다. 불편하고 아쉬운 점은 있겠지만 여행에 큰지장을 줄 정도는 아닌 항목이니까.


부산역 뒷 골목에서 동생과 함께 저녁을 먹고 터미널로 돌아오니 6시다. 예의 그 할리 오너와 만나 동생과 함께 출국장이 있는 2층으로 오른다. 6시 15분. 동생을 돌려보낸다. 부모님께 다녀오겠다는 전화를 하고, 걱정마시라는 이야기를 여러번 드린다. 아버지는 못내 불안하신 모양이다. 이번 여행은 되도록 안갔으면 하시는 눈치다.


됴쿄에서 동생이 머무르는 한 달 동안 2~3일 연락이 되자 않자 나마저도 불안한 마음이 들던데, 바이크를 이용한 먼 길의 여행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부모님 마음이야 오죽할까. 기억난다. 시코쿠의 긴 길을 걷고 있던 어느날, 아버지가 내 삶의 처음으로 보내주셨던, '사랑한다 아들, 몸 건강해라'는 문자 메세지. 그 짧은 문장에서 얼마나 마음이 따스하고 포근했졌었던가. 사랑한다고 말씀드려야 할텐데... 


출국수속을 하고나서 바이크를 페리에 싣는다. 차량갑판에는 수 대의 화물차와 승용차들 그리고 바이크 두 대가 전부다.
페리 승무원들이 바닥에 고정된 고리에 길고 넓은 끈으로 바이크의 여러부분을 묶어 고정한다. 처음겪어보는 광경이라 호기심 생겨나는 광경이다. 이 후,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객실로 올라온다.

할리데이비슨의 오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내이야기다. 이 놈의 입이 터져버렸다. 배 위에 올라서서 보이는 부산항의 경치에 자극 받은, 평소와 달리 두근거리는 심장 탓일게다. 나는 약간 들떠있는 상태다. 그도 제대 후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다가 3달 전 마무리하고 지난 달에 자전거로 일본여행을 왔었단다. 그때 다친 무릎이 탈이나 우여곡절 끝에 귀국한 후 수술까지 받았었단다. 그러고 나서는 못내 아쉬워서 준비한 것이 이번의 바이크여행이란다. 그는 1달을 예상하고 있다. 

내 집 앞의 3번 국도는 휴일만되면 '부다다다~' 커다란 엔진음을 내며 달리는 바이크들이 보인다. 멀리에서 지나가는 모습만 봤는데, 그 소리요란하던 바이크류가 이 친구가 타는 바이크다. 눈빛이 매섭지만 웃는 얼굴에 선함이 남아있는 친구. 통성명을 하고 나이를 서로 이야기한다. 내 나이를 듣던 그 친구가 깜짝 놀란다. 막연히 2~3살 정도 많을 줄 알았는데 7살이나 내가 많다는데 놀랐단다. 나만 모르고 있지, 내 나이가 적은 나이는 아닌듯. 

타고 있는 페리가 아름다운 야경의 부산항을 드디어 벗어난다. 이 배는 지금껏 내가 타본 배 중 가장 큰 배다.
그간 섬으로 가던 수십차례의 뱃길들, 그 기억들이 어렴풋이 스치고 지나간다.
어릴때 숱한 배멀미를 해가며 여러번 타봤던 울릉도행 배,
풍랑주의보가 멎은 직 후 출항을 하며 목포로 되돌아오던 홍도발 쾌속선,
갑판에 누워있으면 자연스레 공중부양을 선사하던 파고를 헤치며 달리던 제주행 여객선, 
파랑이 부드럽게 일어나던 파르란 바다의 마라도와 기분 좋은 바람의 우도,
하조, 자은, 팔금, 가좌, 보길, 노화, 청산, 평일, 고금, 거문, 매물, 욕지, 사량, 임자도... 
서해와 남해의 숱한 섬들을 향해 나아가던 배들.
그 배 위에서 언제나 두근 거리며 함께 고동치던 내 심장의 느낌을 기억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가슴속에서부터 시작되는 두근거림을 잊지 않으려 애쓰며 페리 난간에 기대어 선다.

배가 가르는 파고의 일부분이 갑판 위로 튀어오르고, 기우뚱 대기 시작한다. 먼 바다로 나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다의 넘실거림이 어렴풋하지만 짙게 발아래로 지나간다.
나는 지금 일본을 향하는 배 위에 서있다. 두 달간 길위에서 발이 되어줄 스풋과 함께다.


페리 선박 차량 갑판에 고정된 스풋




페리갑판에서 보이는 부산항




유람선이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다.




갑판에서 보이는 부산여객터미널




부산에서 제주를 오가는 코지아일랜드호가 보인다.




해가 지기전에 출항했던 유람선이 환한 불을 밝히며 항구로 되돌아오고 있다.




항구를 벗어나서 얼마되지 않은 시간, 도항선처럼 보이는 선박이 페리 옆으로 와서 가까이 댄다. 도항선인듯.




페리에서 사람이 내리고 그 배로 올라타는 모습이 보인다.